<본 문> 쉬운 성경 시편 106편 34 - 48절
34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들은 다른 민족들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35 오히려 다른 민족과 어울려 살며 그들의 풍습을 배웠습니다.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겼고 그것이 결국 그들에게 덫이 되었습니다.
37 심지어 자기의 아들딸들을 귀신들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38 그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무죄한 사람의 아들과 딸들을 죽였습니다. 그 땅이 그들의 피로 더럽혀졌습니다.
39 그들의 이런 행동으로 그들 스스로가 더러워졌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김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힌 것입니다.
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셨으며, 자신의 자녀인 그들을 미워하게 되셨습니다.
41 주는 그들을 다른 나라들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들의 적국들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42 원수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힘으로 그들을 억눌렀습니다.
43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은 또다시 반역하며 점점 저 죄에 빠져 들었습니다.
44 그러나 그들이 신음하며 부르짖을 때, 주는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45 그들을 위해 주는 자기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크신 사랑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46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게 하셨습니다.
47 여호와 우리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세상 나라들에 흩어진 우리를 불러 모으소서.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며 감사드립니다. 주를 찬양하며 영광을 드립니다.
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합시다. 모든 백성들이여, "아멘!" 하십시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묵 상>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넌 후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40년 동안의 광야생활 중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순종과 불평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과 구원을 회고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제 본문은 가나안 땅에서부터 바빌론에 포로가 되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그 과정 중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범죄와 불순종에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합니다.
1. 시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자행했던 우상숭배를 돌아봅니다(34-39절).
시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 민족, 가나안 땅에 살던 일곱 족속을 멸하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했던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가 가득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도구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시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땅 위에 사람이 악한 행동이 크게 퍼진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언제나 악할 뿐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든 땅 위의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키겠다. 사람에서부터 땅 위의 모든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멸망시키겠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창 6:5-7)
이스라엘 자손들은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땅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과 어울려 살며 그들의 풍습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을 섬겼고 그것이 결국 그들에게 덫이 되었습니다."(35-36절) 여기서 '어울리다'의 문적자인 의미는 ‘섞이다’, ‘혼합하다’, ‘주고받다’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앙과 가나안 사람의 신앙, 이스라엘 자손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뒤섞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을 섬긴 것이 표면적으로 좋아보여도 실상은 올무에 걸린 상태와 같았습니다. 덫에 걸린 짐승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듯, 덫에 걸린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앙은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종교와 섞이게 되자 점점 더 악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아들딸들을 귀신들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무죄한 사람의 아들과 딸들을 죽였습니다. 그 땅이 그들의 피로 더럽혀졌습니다. 그들의 이런 행동으로 그들 스스로가 더러워졌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김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힌 것입니다."(37-39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혼합종교를 신앙으로 갖게 되자,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 자기 자식을 죽여 사악한 귀신에게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분노와 징계를 보여줍니다(40-43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렇게 악을 자행하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만히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노아 때처럼 이미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셨으며, 자신의 자녀인 그들을 미워하게 되셨습니다."(40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시고,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삼아주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오심이 생기실 정도로 우상숭배를 싫어하셨습니다. '분노하셨다'는 ‘맹렬히 노하다’는 의미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코에 불이 붙었다’입니다. 그만큼 화가 많이 나셨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는 그들을 다른 나라들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들의 적국들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원수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힘으로 그들을 억눌렀습니다."(41-42절) 여기서 '넘기다’는 ‘권한을 이양하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의 도구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제는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개혁의 주체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개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적국들이 무자비하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괴롭히고, 억눌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원수들의 압박에 눈물을 삼켜가며 복종해야만 했음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은 또다시 반역하며 점점 저 죄에 빠져 들었습니다."(43절) ‘여러 번’은 ‘많은 발자국’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 두 번 또는 몇 번 하나님께 범죄 했던 것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이 범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가셔서 그들을 건져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또다시 반역했다'는 것은 '교묘하게 거역했다',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복되는 범죄와 나름의 생각대로 고집을 부리다가 더 죄를 짓는 자리로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3. 시인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회개와 회복을 간구합니다(40-48절).
"그러나 그들이 신음하며 부르짖을 때, 주는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주는 자기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크신 사랑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게 하셨습니다."(44-46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토록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일관하며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저들은 나름대로의 생각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판단을 더 우위에 올려놓는 삶을 살다가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때에 회복과 은혜와 역전의 단어가 '그러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크신 사랑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한 대로만 보응하셨다면, 그들은 인류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만 갚지 않으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에 대한 간구와 찬송으로 마무리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세상 나라들에 흩어진 우리를 불러 모으소서.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며 감사드립니다. 주를 찬양하며 영광을 드립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합시다. 모든 백성들이여, "아멘!" 하십시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47-48절) 시인이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세상 나라들로부터 모으소서'라고 호소합니다. 그들은 지금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포로로 끌려와 이방 나라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4. 그들이 바빌론에서 포로로 살며 얻게 된 가장 큰 수확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바빌론 여러 강변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했던 것을 참회했습니다. 둘째는 회당제도가 생겼습니다. 이방 나라의 포로 신분이기에 절기가 되어도 예루살렘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거기에서 안식일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지키려고 하니, 그 말씀이 그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며 감사하고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하자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아멘”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아멘은 진실로, 틀림없는 사실이며, 우리가 동의해야 할 내용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렐루야_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이요, 은혜로 얻은 땅이었습니다. 그들이 돈을 주고서 산 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도 누리지 못했고, 은혜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보낸 350년이 ‘사사시대’입니다. 그 시대는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들이 왜 그 땅에서 약속과 은혜를 누리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가나안 땅의 신을 함께 섬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우상을 숭배했을까요? 우상숭배의 깊은 내면에는 반드시 자기 숭배, 즉 자신의 욕망을 숭배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바빌론 포로로 인한 흩어짐이었습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약속의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내 삶의 자리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우선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십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십시다. 그러면 그 말씀이 나를 지킬 것임을 잊지 마십시다. 주님의 말씀을 덧입어 살아가는 내 삶의 현장을 은혜와 찬양의 터전으로 가꾸어 가십시다.
<오늘의 기도>
복된 영광과 소망의 아버지 하나님! 날마다 새일을 행하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문화와 종교와 가치에 동화되어 살지 않게 하옵소서. 자신의 육체를 부추기는 더러운 욕망을 섬기지 않게 하옵소서. 내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은혜의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오직 영원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