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매력
손 원
운전할 때면 라디오 버튼에 손이 간다. 버튼을 누르면 채널이 바뀌어 원하는 방송을 듣게 된다. 운전 중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고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한다. 때로는 음악이나 토크쇼를 들을 수 있어 즐겁기도 하다. 언젠가 라디오 삼국지를 몇 번 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활동을 묘사하는 성우의 목소리가 실감 났다. TV나 만화를 보는 것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기회만 된다면 프로그램 전체를 듣고 싶었지만, 부분적으로 들어서 아쉬웠다. 때로는 애청자의 감동적인 사연이 소개되기도 한다. 귀로 듣고 장면을 연상해 보는 것도 꽤 매력적임을 알게 되었다. 승용차 운전 시 잊지 않고 라디오 채널에 손이 가는 이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년간 승용차로 출퇴근했다. 역내 직장은 승용차로 30분 정도였고, 주말 부부일 당시는 2시간 거리를 오간 적도 있었다.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카세트테이프를 듣기도 했다. 민병철 생활영어를 수년간 들었다. 행정법 강의도 들어 실무지식을 쌓기도 했다. 하루 한 시간의 투자로서 생각보다 성과가 나지 않았지만, 공염불도 쌓이면 살과 피가 된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들은 것 같다.
직장 워크숍 때다. 윤복만 교수의 배꼽 잡는 유머 강의가 인상 깊었다. 강의 후 유머가 저장된 CD 한 장을 받았다. 1시간 분량으로 몇 번을 들어도 지겹지 않았다. 때로 적절한 유머로 남을 웃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들었다. 모임 때 간혹 써먹으니, 모두가 즐거워했다. "인디언 마을에는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니까." "나는 어릴 때 송이버섯, 전복, 대게를 실컷 먹었다. 왜? 형편이 어려워 밥 대신에" 중식집 짬뽕에 빠져있는 파리를 보고 따졌더니, 주인은 파리가 아니고 콩이라고 우겼다. 끄집어내어 확인하고는 "파리가 국물을 먹었다면 얼마나 먹었겠어요? 바꿔 드리죠"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머가 감동적이었다. CD를 친구에게 빌려 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사라져 아쉽다.
승용차에 라디오와 오디오 장치가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 내비게이션이 부착되어 오디오 장치가 전부라 할 수는 없지만 길 안내에 한정된 장치다. 그렇게 볼 때, 승용차 운전중에는 듣는 장치 위주이고 여건상 그럴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에 익숙한 라디오가 승용차에 있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집안의 문화용품으로는 라디오와 전화기 정도였다.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연속극을 듣는 등 부족함이 없었다. 야구 중계를 듣고 선수의 동작을 연상했다. 반면에 TV 시청은 보고 듣기를 동시에 하기에 라디오에 비한다면 획기적임은 틀림없지만 단점도 있다. 라디오 청취는 연상을 하므로 뇌 작용이 더 활성화되어 또렷이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70년대 농구 스타 신동파 선수의 백발백중 슛 장면, 홍수환 선수가 남아공에서 WBA 밴텀급 챔피언에 오르는 순간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연상된다. 반면에 TV로 숱한 명장면을 봤지만,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도 익히 라디오의 매력을 알고 있기에 기회 있을 때마다 청취하고 있다. 요즘 크고 선명한 화질의 TV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 TV가 라디오를 대체하였다고 할까. 라디오를 청취할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 산책이나 운동할 때 들어 보려고 소형 라디오를 구입했다. 저녁 운동할 때 이어폰을 끼고 듣는다. 성능이 너무 안 좋아 청력 손상이 염려되기도 한다. 가성비 높은 휴대용 라디오를 구입하려고 무진 애를 썼건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국산은 없고 중국산 일색으로 음질이 떨어진다. 심한 잡음을 견디며 한 시간 정도 이어폰을 낀다. 라디오 성능도 문제지만 방송의 질도 떨어진 것도 난청의 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 트랜지스터라디오의 맑은 음과 비교된다.
라디오는 라디오 대로 가치가 있다.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MP3, 스마트폰이 라디오 기능이 있지만 종전의 아날로그 라디오가 좋다. 간편하게 채널을 맞추고 음량을 조절하여 선명한 음향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휴대용 라디오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기성세대에 대한 배려이며 세대 간 조화로운 문화 향유의 방법이 되리라 믿는다. (2023.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