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악.
이 영악한 소년도 당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기지가 일체 통하지 않는 고
수들의 직접적 공격이었다.
그는 마차로 달려오다 당한 듯 머리를 마차 쪽으로 향한 채 지면에 쓰러져 있었다. 그
의 허벅지에는 철전(鐵箭)이 깊숙이 박혀 쉴새없이 선혈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부터 십여 장쯤 뒤에는 세 명의 금의인(金衣人)이 우뚝 서 있
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등에 철궁(鐵弓)을 메고 있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각기 예리하게 날
이 선 도검(刀劍)을 들고 있었다.
북리뇌우는 말없이 소악의 곁으로 다가가 상세를 살폈다.
"음!"
그의 얼굴에는 연민과 분노의 기색이 함께 떠올라 있었다.
그는 일단 정황을 무시하듯 소악을 마차 안으로 옮겨 가 편안하게 눕혔다. 그리고 다
시 제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 때까지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연후에야 그는 금의인들을 향해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묵묵히 서 있던 삼 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선우영령과 같이 있으면서 북
리뇌우를 감시하던 남의청년, 즉 화자연이 앞서 언급했던 모용장청(慕容長靑)이었다.
그의 입에서 냉오하고도 무감동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물을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
북리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천라단의 인물들은 다 그런 식이더군."
"뭣?"
모용장청의 무심한 얼굴에 일순 놀라워하는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뿐, 그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북리뇌우는 그에게 자르듯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소악의 피는 내게 있어 세상의 무엇보다 귀중하다. 그의 피 한 방울은 그대의 목숨과
맞먹는 값어치를 지녔지. 그대는 이 자리에서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
모용장청은 실소했다.
"후후, 지나친 자신감이로군. 네 운명이야말로 이 곳에서 끝장나게 될 텐데도 말이냐?
"글쎄, 과연 그럴까?"
북리뇌우는 짐짓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대는 나를 함부로 죽이지 못할 것이다. 내게서 알아내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을 테니
까, 아닌가? 결국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게 되겠지만."
모용장청의 짙은 눈썹이 꿈틀 했다.
"놈! 장담하지 말아라."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북리뇌우를 향해 다가섰다.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두 사람 사이
에는 무형의 살기가 형성되었다.
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칼날처럼 그어졌다.
"네가 죽은 후에는 일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필경 너를 찾으러 누군가 나타날 테고,
나는 그 자와 상대할 작정이다."
"호오! 미처 몰랐었군. 내가 그대에게 그토록 미움을 사고 있는지는. 이유가 뭐지?"
북리뇌우의 말에 그는 뭐라 답변을 하려다가 제 풀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스스로 생
각하기에도 상대에게 굳이 내심을 드러낼 까닭이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북리뇌우가 불쑥 물었다.
"그대들이 이 곳에 온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이 놈이 무슨 엉뚱한 소리를?'
모용장청은 일말의 의혹을 보였으나 잘라 말했다.
"없다."
"그렇다면 잘 되었군."
북리뇌우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만을 끄덕였을 뿐이었다.
모용장청은 그를 노려보더니 내쏘듯 물었다.
"너는 십방무림통사단과 관련이 있겠지?"
북리뇌우는 빙긋 웃었다.
"편한 대로 생각해라."
모용장청은 일시지간 안면을 차갑게 굳혔다.
"그 말은 곧 시인이겠지? 좋다. 이로써 양심의 가책에서 비로소 해방되었으니."
그 말은 개인적인 감정을 뜻하는 것이었고, 말을 마치자 그는 다시 북리뇌우를 향해
다가들었다. 그를 보며 북리뇌우는 여전히 빙글거리기를 사양치 않았다.
"그대는 보기보다 무척 어리석군."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된 듯한 읊조림과 더불어 북리뇌우의 신형은 도검이 내뿜는 광
망에 뒤덮여 버렸다.
츠츠츠츳―!
모용장청을 위시한 삼 인이 선공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집중적으로 북리뇌우의 가슴
을 노리고 공격했다.
모용장청의 철궁에서 혈전(血箭)이 섬전처럼 폭사되었다.
슈슈슉―!
고막을 자극하는 파공성과 함께 혈전은 무엇이라도 꿰뚫어 버릴 듯 무시무시한 위력으
로 쏘아져 왔다. 그것도 지척간인지라 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싶었다.
어디 그뿐인가?
파파파팟!
가공할 도세와 검기가 어지럽게 난무했으니, 양자가 모두 미증유의 거력을 지닌 괴초(
怪招)였다.
북리뇌우.
그는 삼 인의 합공에 휩싸인 가운데서도 응대하지 않았다.
스슥!
단지 그는 환상적인 보법을 발휘해 그들의 공세를 피해내기만 할 뿐으로 필경 결정적
인 허를 노리는 듯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다. 과연 큰소리 칠 만하군.'
와중에서도 감탄이 이는 것만은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부단히 몸을 움
직이면서도 염두를 굴리는 일은 결코 잊지 않았다.
'저들의 초식에는 현존하는 모든 무학들이 복합되어 있다.'
북리뇌우는 분석과 아울러 좀더 그들의 공세를 관망하기로 작정했다. 따라서 그의 입
술을 비집고 새어 나온 음성은 여전히 비아냥과 같은 류의 것이었다.
"후후, 그대들이 가진 재주들을 모조리 펼쳐 보라."
"놈! 광오하기 짝이 없구나."
모용장청을 비롯한 삼 인은 안면에 은은한 노기를 드러내며 연이어 공격을 퍼부어 왔
다.
슈파팟!
그들의 공세는 가일층 위력을 더해 장내에는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과 눈을 멀게 만들
듯한 섬광이 잇달아 작렬했다.
그러기를 한참 여.
혼란의 도가니였던 장내에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 깃들었다. 일련의 사태가 일시에 정
지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속에서 북리뇌우는 무심한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에 반해 모용장청 등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로서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수백여 초의 공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눈썹 하나 까
딱 않고 건재해 있으니 말이다.
북리뇌우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음, 이제야 그대들이 사용하는 무학의 부류를 알 것 같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훌륭하
게 키웠구나."
"뭐, 뭣!"
모용장청의 단아한 얼굴이 제멋대로 씰룩였다. 상대가 내뱉은 말은 어떻게 들어도 모
욕임에 틀림이 없었으므로.
"미친놈 아닌가? 감히 우리를 희롱하려......."
북리뇌우가 손을 저어 그의 말을 막았다.
"흥분할 것 없다. 내 지금부터는 그대들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되돌려 줄 테니 한 번
받아 보아라. 알맞은 무기가 없어 약간은 섭섭하겠지만."
"정신 나간 놈!"
모용장청의 부르짖음이 사위를 울리는 순간, 북리뇌우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양 손을
슥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서는 은은한 자광이 피어 올랐다.
스스스.......
이 때를 기해 그는 양 손을 움직여 허공에 현란한 호선을 그리며 도와 검을 든 자에게
뿌려냈다.
슈슈슈슉!
파공성과 함께 자광이 대지를 가르는 빛살처럼 양 인의 정수리로 눈부시게 뻗어 나갔
다.
개중 한 금의인이 눈을 휩뜨며 경악성을 발했다.
"헉! 이것은 용뢰천도(龍雷天刀)......!"
그 뒤를 이은 것은 북리뇌우의 냉소였다.
"후후, 그대가 시전한 도법의 이름이 용뢰천도였나?"
금의인의 놀라움은 비단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초식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거니와, 문제는 북리뇌우의 손에서 떨쳐진 용뢰천도가 자신이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묘하다는데 있었다.
실로 믿기 어려운 광경은 그 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두 금의인의 눈에 자색 빛무리가 가득 차 오르는가 싶자 그들의 동공은 극한의 두려움
으로 인해 한껏 확대되었다.
"크윽! 윽!"
기어이 두 사람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들의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
럼 솟구쳐 허공으로 뿌려졌다.
파아아아―!
비릿하고 역겨운 혈향이 사위에 번지자 북리뇌우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그뿐이었
다. 그의 냉혹비정한 태도에서는 일 점의 동요도 엿볼 수가 없었다.
그는 모용장청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대의 철전은 이렇게 쏘아지더군."
그의 손에서 한 줄기 푸른 연기가 발출되었다.
슈슉!
"으허억―!"
마침내 살인(殺人)이 이루어졌다. 두 명의 금의인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즉사하
고 말았던 것이다.
모용장청.
그는 상황을 다 지켜 보았으면서도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인지 입을 꽉 다물고 있었
다. 하지만 그의 눈에 떠올라 있는 경악과 공포의 빛만은 어떻게도 숨길 수가 없었다.
북리뇌우가 그를 직시하며 냉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대에게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선사하겠다."
파파팟!
"헉!"
짧은 찰나, 모용장청은 목에서 피분수를 내뿜는가 하면 푸른 연기에 가슴을 꿰뚫리는
비참한 국면에 이르렀다.
"크으윽......!"
그는 애초에 보여 주었던 기세와는 달리 참담한 신음성과 함께 가슴을 움켜쥔 채 모로
쓰러졌다. 손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두 금의인처럼 절명하고 만 것이었다.
북리뇌우는 묵묵히 세 구의 시체를 내려보다가 양 손을 허공으로 슬쩍 치켜들었다.
스윽!
세 구의 시체는 그의 손길을 따라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이 때에 그의 양 손 장심(掌
心)에는 선명한 혈광이 어려 있었다.
"마염대접인(魔炎大接引)."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시체들은 허공에서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재로 화해 흩어져
버렸다. 무참하게 흔적도 없이 공중 분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마염대접인이란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밀교(密敎)의 마공(魔功)이다. 장(掌)이나 지(
指)로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이 극양기공을 놀랍게도 북리뇌우가 익히고 있었다.
그는 일을 마치자 독백인 양 중얼거렸다.
"그대들은 이 시각 부로 실종된 것이다. 언젠가는 죽음의 내막이 밝혀질지도 모르지만
."
돌아서는 그의 입가에 여느 때에는 보기 힘든 섬뜩한 미소가 어렸다. 그런데 그 때였
다.
콰콰콰쾅!
굉렬한 폭음과 함께 한 곳에서 폭죽이 터지듯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 광경을 목도
한 북리뇌우는 검미를 꿈틀했다.
"수궁보가?"
귀를 기울이자 아득한 곳에서 간간이 비명성도 들려왔다. 그는 급히 몸을 돌려 마차
옆으로 다가갔다.
휘이익―!
누군가 한 인물이 그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전신이 흠뻑 피에 젖은 채 금세라도 추락할 듯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그 인영은
선우영령이었다.
그녀가 막 바닥으로 내려서는 찰나였다.
파츳!
그녀의 등뒤로 짙푸른 섬광이 작렬했다. 그것은 일종의 도강(刀 )으로 선우영령의 등
에 격중되었다.
"아악!"
그녀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가랑잎처럼 퉁겨져 나가더니 처참하게 바닥으로 메어 꽂히
고 말았다.
퍽!
듣기 민망할 정도로 둔탁한 음향이 울리는 순간, 그녀의 육신에서는 선렬한 피보라가
솟구쳤다. 그 상태라면 웬만해서는 죽은 목숨으로 보아야 할 듯했다.
'쯧! 저 계집도 별 수 없군.'
내심 혀를 차는 북리뇌우의 눈에 멀리서 한 줄기 검은 인영이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시 서 있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피범벅이 되어 있는 선우영령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짜증이 어려 있었다.
'이번 대면은 더 고약스럽군.'
첫댓글 감사 합니다
즐독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고맙습니다^^
찜통 더위에 시원한 하루 보네세요
즐독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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