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조여드는 운명(運命)
[1]
겁란(劫亂)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히 석양이 핏빛으로 타오르던 칠월 하순의 어느 날 저녁부터였다. 그 피의
대폭풍은 보름여에 걸쳐 중원대륙을 무차별로 강타했다.
결과는 실로 처참한 것이었다.
천라대성부(天羅大聖府)를 비롯하여, 정파무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주구대세가(神
州九大勢家)의 가주들과 그 수하의 반수 이상이 하루 아침에 몰살했다.
또한 천라대성부의 남북사십팔분단(南北四十八分團)과 이백구십구 개의 분타가 전멸상
태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무림 각처에서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으니.......
그런가 하면 명실공히 사파무림의 최고봉으로 군림해 온 십방무림통사단(十方武林通社
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십지(十地)를 관할하는 영사(領師) 오 인이 감쪽같이 격살되었고, 그에 따라 십지의
반수가 전면적으로 붕괴되었으며 남북 일백삼십이 개 지단이 단시일 내에 괴멸되었다.
이르자면 삼백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정사이대패세(正邪二大覇勢)의 뿌리가 무참하게
뒤흔들리고 만 것이었다.
혈풍십오대난겁(血風十五大亂劫)!
이렇게 명명된 대혈풍의 소용돌이는 전 무림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는 엄청난 파문 속
에 종식되었다.
그 겁란은 두 가지 불가사의를 남겼다.
첫 번째는 살상 당한 자들이 수령급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십 세를 전후한 젊은 무사들
이라는 점이었다. 중원무림의 후사(後事)를 멸절시키려는 계책의 일환이었는지 죽어간
자들은 하나같이 꽃다운 나이의 청년들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대두된 문제는 그 폭풍의 주역에 관해서였다.
그들은 백 명 내외의 흑의복면인들로 사용한 무기는 엽도(葉刀)였다.
하지만 그 외에 그들이 사용한 무공이나 이번 혈풍십오대난겁을 일으킨 이유 등은 밝
혀지지 않았다.
이에 무림인들은 의문에 앞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정파 무림의 태두인 천라대성부
는 대책 마련을 위해 천부금황령(天府金皇令)을 내려 정파의 수뇌들을 소집하기에 이
르렀다.
십방무림통사단 또한 방관하지 않고 녹옥통사령(綠玉通社令)을 내려 전 사파의 영수들
을 긴급히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그 때까지도 혈풍십오대난겁은 아직 진행 중
이었던 것이다.
밤바다는 넓고 거대했다. 짙고 적막한 야음이 줄곧 사위를 노려보며 음모의 혓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도 한 점 일지 않는 괴괴한 대해(大海).......
바다는 거센 폭발을 숨긴 채 음산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한 공기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면을 장식하고 있는 대선단(大船團
)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대해를 메우고 있는 무수한 선박군(船舶群)은 개개가 모두 거창한 규모의 거선(巨船)
들이었다.
특히 선단의 중앙에는 유난히 큰 선박이 떠 있었다. 그 대형 선박은 마치 여타의 선박
들로부터 호위를 받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크기 탓에 얼핏 보아선 하나의 섬과도
같았다.
또한 선체가 흑색이라 어둠 속에 파묻혀 있으니 그대로 암흑인 망망대해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실(船室).
그 곳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우선 선실답지
않게 드넓기도 했거니와 놀라우리 만큼 화려하게 치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값비싼 천축산 융단이 깔려 있었으며, 사방의 벽을 장식한 벽화를 비롯하여
눈부신 수정등에 투명한 묵옥(墨玉) 탁자 등 사소한 기물들조차 모두 진귀한 것들이었
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선실의 분위기는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우아하고 화려
한 치장 이면에는 왠지 숨통을 조일 듯한 무형의 압박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른바 사류(邪流)라고나 할까? 실내에는 은연중에 그런 기운이 전율처럼 흐르고 있었
다.
선실의 중앙에는 거대한 태사의가 놓여 있었다.
역시 화려한 이 태사의는 팔걸이가 기이한 묵광(墨光)을 발하는 보옥들로 장식되어 있
었고, 그 위에는 한 명의 황포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외양은 무척이나 청수했다.
고아한 분위기가 감도는 초로(初老)의 얼굴을 지닌 그는 희고 탐스러운 은염(銀髥)을
가슴까지 닿도록 기르고 있었다.
그가 어떤 류의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모습에서는 정기(正氣)도, 사기(邪
氣)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심지어 그에게서는 이렇다할 기도도 엿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에 대해서는 여하한 판별도 불가능했다. 보이는 현상 외에는 무엇도 짐작
해 낼 방도가 없다면 맞았다.
황포인의 앞에는 한 명의 흑의인이 부복하고 있었다. 그 자는 일견하기에 삼십대 후반
으로 보이는 위인이었다.
그 자가 전해 주는 느낌은 섬뜩했다.
얼음으로 깎아 만든 듯 차디찬 인상에 비수처럼 날카롭고 비정한 기운이 피 냄새와 함
께 전신에 흠뻑 배어 있었다.
그야말로 천하의 모든 사기(邪氣)와 마기(魔氣)를 본신의 냉혈(冷血) 속에 응집시키고
있는 듯한 자였다.
오랫동안 그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침묵이 깨졌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황포인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던 것이다.
"조사는 진전이 있었느냐?"
흑의인은 부복한 채로 대답했다.
"네. 역시 십방무림통사단의 총사라는 작자가 저지른 짓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자의 음성은 외양만큼이나 냉막했다.
"음, 수고했다. 그 자가 십 년 전에 한 아이를 주워 비밀리에 양육했단 말이지? 자신
의 후계자로 삼고."
"그렇습니다."
황포인은 다시 물었다.
"그 자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아냈느냐?"
흑의인은 고개를 더욱 깊숙히 숙이며 설명했다.
"그 자는 원래 안남(安南) 근방의 대륜국(大輪國) 출신으로 향지국(香知國)의 국왕과
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 때에도 그 자는 향지국에서 중원으로
향하던 해로(海路)상에서 아이를 얻었다고 합니다."
"음! 그랬었군."
"그 아이의 현재 이름은 북리뇌우(北里雷雨), 무림에서는 십전무판자(十全武判子)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황포인은 눈을 빛냈다.
"당시 그가 건넜다는 해로는 분명 유화천궁과 중원이 만나는 삼각지점이렸다?"
"그렇습니다."
"좋다! 네 보고는 매우 쓸만하구나."
황포인은 치하와 더불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힘입어 흑의인은 사뭇 결의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 일은 끝까지 속하의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중원 청년들의 씨를 말려서라도 반드
시 놈을 없애겠습니다."
황포인은 입가에 엷은 웃음을 드리웠다.
"물론 그래야지. 만약 실패를 하게 되면 네 목숨을 대신 거두게 될 것인즉 명심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나가 보아라. 그리고 성공하라, 지옥사인(地獄死人)."
"복명(復命)."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마무리지어졌다.
슥!
흑의인은 한 줄기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혼자 남게 된 황포인은 태사의를
빙글 돌려 앉았다.
그가 흘려낸 독백이 선실 안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지옥천룡(地獄天龍), 너는 죽어야 한다. 지옥삼혈좌(地獄三血座)가 처리되었듯이 너
도 사라져 주어야겠다."
무심한 음성에 비해 그 말에 내포된 의미는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지옥천
룡이나 지옥삼혈좌가 어디 이처럼 쉽게 거론될 이름들인가 말이다.
황포인의 말은 점입가경이었다.
"내게 있어 중원무림 따위는 작은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오해(五海)와 구천(九天)을
내 발아래 두게 될지니......."
그의 음성 자체에서도 어느덧 천하의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패기(覇氣)가 묻어 나왔
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옥천룡, 네가 사라져야만 한다. 방해가 될 만한 요인을 방치해 둘
수는 없지."
황포인은 태사의에 몸을 깊이 묻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덧붙였다.
"삼백 년간 준비해 왔던 대야망의 열매가 거두어질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허허허...
...."
그의 웃음소리가 실내에 묘한 파동을 전했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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