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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창 2장 4-9;15장2-5)
성경본문 : 창세기 2: 4-9;15:2-5
4-9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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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5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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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보화 시대를 넘어서 지식화 시대, 지식 사회라고 합니다.
똑 같은 전화기라고 해도, 스마트해야 사람들이 사서 사용합니다.
같은 자동차라고 해도, 요즘은 더 지능적인 기능을 갖춘 자동차를 사람들이 원합니다.
그런데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에 영국의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고 말했습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가장 위대한 지식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 자신에 관한 지식이다”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을 창조주요 절대자로 선포하고 있다면, 창세기 2장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도 인간 창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2장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숲에 비유한다면, 2장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보다는 오직 인간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가장 잘 설명하는 한 구절을 찾는다면 창2:7절입니다.
다 같이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다른 번역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생령”은 무슨 특별한 뜻이 있는 단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Living Being)”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창세기 1:26-28절에서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하여,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의 독특성, 인간의 존엄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토기장이가 정성스럽게 고려청자 만들듯이 인간을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흙은 인간의 육체를 의미하는데 인간은 누구나 육체를 가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깨지기 쉬운 토기와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고후4: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후5:1,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압니다.”
물론 인간이 죄로 인해 육신의 질병과 죽음이 세상에 왔지만 원래부터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의 육체의 연약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성, 연약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성과 연약함을 분명히 인식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철인”이란 말이 있는데, 세상에 철인은 없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토인만 있을 뿐입니다.
초인적인 존재가 될 수도 없고 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제국의 황제들은 불로장생을 꿈꾸며 노력했지만, 황제들 중에 100살 이상 산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겸손해야 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창조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기적을 일으킨 후 사람들이 그들을 신처럼 생각하자 오히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요, 불평할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할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고후12장)
주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연약한 분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크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창세기2:7절에서 보여주는 인간 존재의 또 하나의 특성은 ‘인간은 영성을 지닌 영적인 존재“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비록 죄로 얼룩지고 타락하였다고 해도,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인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성 어거스틴의 고백)
육체를 위해서는 물과 양식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과 생수이신 성령의 임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실 때, 마귀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첫 시험이 무엇이었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흔드는 시험이면서 동시에 육체적 욕구만을 위해 살아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이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여기서 예수님은 육체적 생명보다 영적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인간은 오직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즉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가운데 살아야 진정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요6:3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인간은 물질적인 떡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소유가 많고, 명예와 권력을 누려도 하늘의 떡이요,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하면, 결코 삶의 만족, 영혼의 평안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애초부터 흙으로 지음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넣어진 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참된 평안을 누리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책임적 존재요, 도덕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독특하게 창조하신 것 중에 하나가,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 의지를 주셨다는 점입니다.
자유 의지란 선뿐만 아니라 악도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자유와 방종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지, 방종을 허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도덕과 책임에 관한 말씀이 오늘 본문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2:15-17절을 보세요.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이 말씀 속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이 성경 전체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애초부터 선악과를 동산에 두지 않았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혀 해석이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인간에게는 거의 무한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무한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계명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누리는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한계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는 조치였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창세기2:15-17절을 보세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여기서 자유와 책임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자유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은 에덴 동산에 있는 수 많은 과일을 다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지켜야 할 계명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무한한 자유보다 하나의 책임을 보면서 무겁다고 불평하고 회피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그 하나의 계명까지도 인간을 위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율법이 있지만, 그것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두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즉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만 하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던 다른 수많은 과일을 보지 못하고, 금지된 선악과 하나만 보며 부담스러워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없는 한 가지를 생각하기 보다, 있는 많은 것을 생각하며 감사할 때, 해서는 안될 명령에 대해 부담을 갖기 보다, 할 수 있는 수많은 자유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이 순종해야 할 명령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약1:25절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자유를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선악과를 부담으로 보지 마시고, 선악과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시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넷째로, 오늘 본문에서는 한 가지 더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요,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관계적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2: 18절을 보세요.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문자적으로 보면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들은 혼자 살아도 잘 사는데, 남자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람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독신주의자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원래 인간은 혼자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짝을 만나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남자의 창조보다 여자의 창조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부족한 남자를 도와서 삶을 완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남자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예쁜 여자를 만들어서 돕게 하셨습니다.
(남자들은 명심하십시오.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삶을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온전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여자를 만들었나요?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여자는 뼈로 만들어졌습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부터 재료가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뼈로 만들어졌다고 여자를 남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갈비뼈는 뼈 중에서는 잘 부러지는 약한 뼈입니다.
이것은 여자는 남자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연약한 그릇이란 것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의 위치는 갈비뼈의 위치처럼 남자와 동등하며, 남자의 삶의 동반자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담은 처음에 여자를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저는 제 아내에게 프로포즈 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여 편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그대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보다 더 여자를 감동시키는 고백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결혼과 가정의 중요한 원리에 대해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2:24-25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첫째, 결혼하면 부모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뜻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도 부모로부터 떠나서 부부가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고부갈등이 왜 심각합니까?
결혼했는데도 어머니는 아들이 아직 자기에게 속했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떠나지 못하고 의존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 남자는 결혼하면, 이제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분리 독립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부모 의존적이 되어서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둘째 원리는,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결합은 모든 부분에서의 결합을 다 포함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영적 결합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적 결합, 영적 결합이 중요합니다.
이미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신 분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헤어질 필요는 없지만 (사도 바울도 그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청년들 본인이나 자녀들의 결혼 문제에 있어서는 신앙의 문제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현재 믿지 않는 사람과 사귀고 있다면, 결혼 전에 믿음을 갖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배우자가 신앙이 없거나 다르면, 완전한 연합의 단계를 경험할 수 없으며, 오랜 세월 많은 눈물로 보내야 할지 모릅니다.
가능하면 믿음의 형제 자매들 중에서 배우자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번 연합되었으면, 분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종이도 두 장을 풀로 붙이면, 그 후에는 떼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억지로 떼내려고 하다 보면 찢어집니다.
한 몸이 되었는데, 몸을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없이는 이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격 차이나 경제 문제와 같은 일로 이혼을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혼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의 서약입니다.
그러므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세 번째 원리는, 부부 사이에는 그 어떤 간격, 그 어떤 부끄러움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 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서로 숨길 것이 하나도 없고, 떳떳하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예의를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만, 서로 감추고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떳떳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결혼 후에 부끄럽지 않도록 성적인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 중에도 배우자에게 부끄러울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음행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6:18-20절입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오늘 본문에서는 인간은 창조 시에 어떤 존재로 창조되었는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피와 살로 이뤄진 연약한 육체를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의 한계성을 인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연약해도 오히려 하나님이 능력을 크게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른 것이 영적인 존재라는 점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창조주의 숨결이 들어가 있는 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식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도덕적, 책임적 존재입니다.
무한한 자유를 받았지만, 그 자유를 죄짓는데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한계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놓으신 것은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선악과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요,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특히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가정의 중요한 원리는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연합하는 것이요, 부부 사이엔 그 어떤 비밀도 없는 친밀함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서로 지킬 것은 지키고, 무엇보다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곁눈질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죄는 관계를 깨뜨리지만, 사랑은 관계를 세웁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가장 잘 사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늘 겸손하고, 동물과 다른 영적인 존재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안에 살아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그리고 가정과 교회 공동체 속에서 복된 삶을 사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