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역설
여섯 명 정원의 거실의 형태는 30년 전이나 비슷했다. 단지 재래식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뀌고 식기세척용 싱크대가 거실 안에 있다. 예전에는 밖에서 물을 받아 화장실 안에서 식기를 닦았던 것 같다.
인권신장인지 국력신장인지 징역 같지 않고 어디 허름한 콘도에 휴양차 온 것 같다. 명색이 징역은 징역 다 와야 하는데 음식이며 물이며 무절제의 극치다. 1식 4찬에다 사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생필품이 다양하여 구매물품 들어오는 시간은 시내 슈퍼마켓을 방불케 한다.
범죄 종류도 하도 다양하여 범죄 유형에 따라 방이 정해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사기방인데 경제방이라고 미화시키고 있다. 사기에다 나같이 부정수표단속법 교통사고 및 음주운전, 절도범 요즘은 무전취식도 사기로 심판을 받는 것 같다.
내가 속한 미결수 방은 검찰수사와 재판진행중인 관계로 아직 죄인이 아니라고 애써 위안을 삼기도 한다. 운동시간과 면회시간 외는 꼼짝없이 갇혀있다. TV신문이 예전과는 달리 볼 수 있다. TV는 녹화인 것 같고 신문은 사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각자 재판준비도 하고 남은 시간에 독서도 하고 어딘가 편지도 쓴다. 대체로 낮이고 밤이고 잠자는 선수들이다. 요즘은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어 재판준비는 재판부에 제출하는 반성문 쓰는 것이 고작이다.
반성문을 대필해 주다가 진짜 반성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당연이 아니라고 했다. 재수가 없어 잡혔다며 억울해 했다. 이 정도가 구속이면 여기 오지 않을 사람 없다고도 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 했다. 거액으로 전관예우 변호사 사면 다 빠져나가고 피라미만 남는다는 것이다.
도적질 할 때 겁나지 않으냐고 물어 보았다. 겁나면 못하지요 하면서 날더러 순지하다면서 웃는다. 거의 대부분 결손가정에서 자라 교육혜택이 없는 것 같았다.
반면에 너무 착해서 나처럼 남의 징역사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천사 같은 마음인 걸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친구 불운한 어린 시절얘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그리워서 도와주다보면 그 여리고 착한 마음을 이용해서 진짜 꾼들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훤히 보였다. 어느 친구는 사기꾼이 애국자라고 했다. 연간 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수조원이고 피해자가 수십만으로 사회악이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철학하는 작가님 자격 없다고도 했다.
자신들이 고생하면서 배운 고급기술에 의해서 장롱속의 잠자는 졸부들의 돈이 시장경제에 편승하기 때문에 기여하는 바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라에서 우리를 당연히 잘 먹이고 잘 먹이고 잘 재워야한다 해서 쓴 웃음이 나왔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도둑이 다 없어지면 열쇠장수부터 나라에서 먹여 살려야 할 판이니 역설 중에 역설이었다. 특히 교도관들에게는 죄수들이 고객인 셈이었다. 20년 징역에 계신 신영복 선생은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인사를 무려 8번이나 받은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 친구는 사기나 도적질이 직업이고 감옥이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깊이 고민해 볼 과제가 문명하다. 범죄란 것이 하루아침에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겁 생의 업보와 습에 의해서 누적되고 성숙되어있다 인연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내가 처한 옥살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들어오지 않을 경우수가 99%였지만 단 1%의 수가 운명을 갈랐다. 지난 40년 동안 감옥의 문을 셀 수 도 없이 두들겼지만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했었다. 인생의 정말 중요한 시기에 특별히 감옥 체험을 하게 되어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특별 휴가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봄 안양의 모 사찰 스님께서 내 사주의 골격을 보시고 지난 3년간은 사문(死門)이라는 경우 수에 걸려 병원 아니면 감옥에 가야한다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전생업보에 의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고는 이런 기회가 올 수가 없었다. 영국의 명문축구단 맨체스트유나이티드의 전 구단주 스티븐버게라는 노숙자 생활 중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10년간 하고 62세에 출소하여 자그마한 인쇄소에 취직을 해서 67세에 사장이 되었다.
사업이 성공하여 거부가 되었고 73세에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고 최고의 명문구단까지 인수하여 그 행적이 참으로 고귀했다. 아마 그분께서 10년간의 감옥이라는 인생학교에서 정신적 비상을 못했다면 그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지위고하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거쳐 가는 감옥이야말로 창조의 공간이 분명했다. 감옥을 직업도둑들의 소유에서 정신적 충만을 위한 수행자의 공부방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 같다. 비록 육신의 자유는 묶여있지만 정신적 자유는 마음먹기에 따라 지상천국이나 마찬가지다.
유리의 육신은 자연으로부터 잠깐 빌렸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돌려주어야 하는 허망한 존재이다. 고기처럼 팔수도 없고 치우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더운 기운은 불이되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 되어 각기 흩어지지만 그 허망한 육신을 요리조리 운전해온 혼은 불생불명의 신성으로 이 우주의 나그네가 되어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나그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생명의 어머니인 자연을 착취하여 채운 욕망은 나그네의 짐이 될 뿐이다. 감옥은 잠시라도 그 짐을 가볍게 하고 내려놓는 순간이다. 그래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정신적 비상이다.
첫댓글 감옥생활은 비록 육신의 자유는 묶여 있지만
정신적 자유는 마음먹기에 따라 지상천국일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