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언론에 보도되어 잠시나마 주목받은 기억이 있는 상도2동을 떠올려 봅니다.
사제총 논란에 휩싸여 무자비한 건설자본에 맞선 민중들의 생존권을 건 싸움보다는
그저 선정적이고 가십적인 보도로 사람들의 뇌리에 그저 폭력배 집단정도로 인식
되었을 상도2동 철거촌/철거문제 를 말입니다.
경기도 일산 근처에 風동이라는 동네는 야트막한 뒷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여름에도
시원하게 해준다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수 십년간 이곳에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닦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부의 서울인구 분산정책에 의해 신도시 개발열풍이 불때도 땅값이 하루아침에 올라 부자가 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소박한 자신들의 일상을 지키며 정당한 노동으로 얻은 댓가로 부유하지는 않아도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이들의 일상은 3년여 전부터 크게 달라졌습니다. 재개발이라는 폭풍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서민 주택공급에 힘써야할 주택공사가 풍동지역을 재개발 지구로 공시하면서 부터 이들의 삶은 전쟁이 되었습니다. 수십년간 살아왔고 또 남은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던 이들은 단지 땅주인/집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입자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수십만원에 불과한 터무니 없는 이사보조금을 제시하고 무작정 나가라는 주택공사를 상대로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세입자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생존의 기본요소인 의식주마저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한 건설사의 논리앞엔 무참히 짓밟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한 마을에 흩어져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이들의 삶의 모습은 건설자본의 폭력에 보다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연립주택 한 곳에 모여살며 방어탑을 쌓고 골리앗이라 불리우는 망루를 쌓았습니다. 이렇게 저항의지를 보이자 정부와 주택공사는 공권력과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이들이 최후로 내몰린 곳까지 침탈하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강제철거에선 주택공사가 화염병을 제작해 철거민들에게 던지는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풍동 철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의회에 화려하려 등장한 열린우리당과 그에 발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복권된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해 봅니다. 그 개혁적이라는 열우당 내에서도 더 진보적이라는 '개혁당 출신' 유시민 의원의 지역구가 바로 고양시 일산입니다. TV 토론에 나와서 달변으로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데 바빴는지 자신들이 이야기 하는 '민생정치' 는 어디로 갔는지...총선전에 잠잠했던 강제철거가 왜 4.15 총선이 끝나자 마자 다시 시작되었는지... 그것이 개혁하느라 바쁜 유시민 씨의 지역구 이기 때문에 시끄러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 동안 참았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17번째 사회대 학생회 숨은그림 찾기에선 올해 2월에 겨울 현장활동으로 빈민연대활동을 풍동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가장 정세적이고 연대의 참의미를 찾을 수 있는 현장에 찾아감으로서 미약하나마 무너진 연대활동의 기풍과 복원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습니다. 6월 18일에 있는 풍동 문화제에 더 많은 분들과 연대하고 싶습니다. 작년 뜨거운 감자였던 부안문제처럼/부안주민처럼 풍동 철거민들 처음 또한 본능적이고 자신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안군민들이 핵폐기장 건설발표 전에는 대다수가 찬성했던 새만금 간척사업에 자신들의 문제의식으로 전체사회에 접근하면서 집단이기주의를 넘어 친환경적으로 정치화 되었던 것처럼 풍동 철대위 주민들도 이제 철거가 자신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전체사회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싸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싸움과 철거민들의 싸움, 이 동일한 싸움에 서로 연대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전망과 가능성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대 학생회; 02-3408-3371 다산관 113호
첫댓글 풍동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빈활에 참가했던 신방과짱님과 곽노을 양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