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撞球) 이야기
늘푸른언덕
늦바람이 무섭습니다.
늦게 불기 시작한 바람이 초가집 지붕마루에 얹은 용마름을 벗겨갈 만큼 세다는 뜻으로 사람도 늙은 후에 한 번 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입니다.
인생 나이 늘그막(?)에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당구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사실 인생 백세를 살아야 할 현대판 운명을 전제로 생각해 보면 인생 나이 60대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늦은 편도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시작한 제 인생 후반의 새로운 취미입니다.
55세 즈음에, 평생 다닐 것 같았던 회사로부터 느닷없이 퇴직이란 이별 통보를 받고 남은 인생의 후반을 살아갈 로드맵을 만들어 가는 중에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돌발변수가 생기면서 세상은 또다시 급변했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세상과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질 즈음, 당구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젊은 시절 한때 유행가처럼 성행했었던,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동안 철 지난 유행가처럼 여겨졌는 이 당구가 요즘 레트로(Retro) 문화의 붐을 타고 다시 불붙기 시작한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여 용기를 내어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 다이내믹한 운동을 좋아하고 비교적 취미 부자였던 제가 특별히 당구만은 멀리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당구는 스포츠로 분류되면서도 전혀 스포츠로서의 역동성이 없었고 심지어 다소 지루한 듯 보여서 귀한 시간을 투자할 만큼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당구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가 다소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일단 당구장 안의 담배 연기 자욱한 열악한 실내 환경은 물론, 그 환경 속에서 마치 악의 온상처럼 여겨질 만한 영화 속 장면들이 자주 보였기 때문에 당구장에 접근하는 것을 짐짓 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가까이하기를 꺼려 했던 이 당구가 노후의 삶에서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에 안성맞춤의 도구로 다가와 본격적으로 배우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입니다.
마침 은퇴 후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활동하게 된 교회 공동체의 문화활동 중의 하나로서 당구를 만나게 되어 그 기초부터 배울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곳에서 당구의 가장 기본인 큐를 잡는 법과 자세 그리고 결코 넓지 않은 당구대 안에 놓인 당구공을 치는 요령과 기본적인 기술 등을 배우고 몸으로 습득하기 시작합니다.
가능한 매주 토요일 오후 시간을 할애하여 한 달에 2~3회씩, 2~3시간을 투자하여 시작한 지 이제 어느덧 4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구를 막 배우기 시작할 즈음, 마침 당시 시대적인 흐름도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이제 막 은퇴하여 노후의 생활을 즐기는 중년 세대들 중에서 당구를 선호하는 이들이 증가했고, 각종 친목 모임 후에 주로 찾는 곳이 당구장이어서 개인적으로 당구를 접한 타이밍도 꽤나 적절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생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것 같았던 당구를 가까이하게 되고 이제 막 초보의 단계를 벗어난 상황에서 당구의 본질도 제대로 모르는 서툰 초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당구에 대한 매력을 있는 그대로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여 용기를 내 보기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당구에 처음 입문하는 초보자들의 경우, 대개 4구 (빨간 공 2개, 흰 공 1개, 노란 공 1개)로 플레이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데 저의 경우는 처음 시작부터 3구 (빨간 공 1개, 흰 공 1개, 노란 공 1개)로 하는 경기 방식을 반강제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추세가 4구의 시대는 가고 3구를 즐겨 치는 시대라고 하면서 3구로 하는 방식을 배우기를 적극 권하는 선배들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당구를 배우다 보니 과연 4구 방식보다 3구 방식이 훨씬 어렵고 당구의 심오한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 예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당구를 멀리서 지켜보았을 때는 비교적 쉬워 보였으나 막상 이 세계에 입문해 보니 결코 쉬운 스포츠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일단 당구 큐 대를 맞고 출발한 공이 돌아서 다른 두 개의 공을 맞히되 사각형으로 형성된 당구대의 쿠션을 3회 이상 거쳐야 한다는 절대조건이 수반되는 것이어서 어려운 것입니다.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하여 수많은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당구가 지닌 묘한 매력입니다. 물론 두 개의 공을 치는 방법이 자로 잰 듯이 정확하지 않아도 공의 크기라는 융통성 때문에 운 좋게 미션을 완수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당구도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또한 이 스포츠가 지닌 매력입니다.
우선 정사각형 두 개를 붙여 놓은 듯한 직사각형의 당구대(사이즈는 경기 방식에 따라 다름) 위에 놓인 세 개의 공 중에서 자신의 순번에 맞는 공을 타격함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당구대 안에 놓인 공의 위치는 시작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모양으로 배치됩니다. 때로는 비슷하게 배치될 수 있어도 그 어느 것도 100% 일치하는 공의 배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구의 매력은 이렇게 놓인 공들의 배치를 보고 자신의 공(수구)으로 다른 공 두 개를 쳐야 하는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입니다. 매번 색다른 문제들이 주어집니다. 때로는 풀기 어려운 난제들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쉬운 배치의 문제도 주어집니다. 수학의 정석처럼 많은 예제나 유제들을 풀었던 까닭에 이런 익숙한 문제들을 보통 쉽게 소화하기도 하지만 때론 뜻하지 않았던 돌발변수도 만나게 됩니다.
오랜 시간 당구를 하다 보면 반복된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만나게 될 이러한 돌발변수인 복병들까지도 미리 선제적으로 피하는 요령도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과 일면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어떤 난제도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어떤 난제의 답을 풀이하는 과정도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난제의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가능성과 확률이 높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마치 우리가 살면서 인생의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인 삶의 지혜를 구하는 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당구를 배우면서 발견한 당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독특한 매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면서 당구의 실력 (당구 수지)이 조금씩 향상되면서 더 향상된 당구 수지를 위하여 요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하여 다양한 기술과 시스템을 학습하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다양한 이론을 학습하고 다양한 동영상을 통하여 기술 향상을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훈련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실제 현장에서 실습을 통하여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깨달아 알게 된 사실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많은 이론과 합당한 시스템을 알고도 현장에서 실습을 통한 행함이 없으면 궁극적으로 실력 향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영적인 성장과 성숙의 과정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초심자로 신앙의 첫걸음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과정이 예배입니다.
그 후 다양한 과정을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교회 공동체에서 마련한 신앙 학습과 영적 훈련 시스템의 습득을 통하여 어느 정도 가능해집니다.
신앙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함께 경험하게 되는 것이 믿음의 알파요 오메가인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의 아들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는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삼고 주의 제자가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두 가지 신앙의 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과 그분의 세미한 음성에 소통의 채널을 맞추어 가는 기도 훈련입니다.
그렇게 성장한 신앙은 다음 단계인 성숙의 단계를 사모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마치 우리가 당구에서 여러 가지 시스템과 이론을 알면서도 현장에서 그 이론을 실습하지 않는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우리의 신앙의 성숙은 말씀과 기도의 훈련을 통한 성장의 단계를 거쳐 주의 복음을 들고 세상 속으로 나가 그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 가운데 당신의 진리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에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신 지상명령인 선교와 구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선교와 봉사와 구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신 여러 사명과 난제들을 결코 풀지 못하고 끝나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당구를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이 이론과 시스템을 학습하고 현장에서 실전을 통하여 적용하지 못하여 그 이론과 지식이 피어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6절
첫댓글 당구에도 심오한 방법과 뜻이 담겨져 있군요!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