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후로 북리뇌우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안색은 어느 새 평정을 되찾고 있었으며, 그 상태에서 그는 북리무해의 시신을
한 곳으로 옮겨 놓았다. 그 일을 행하는 그의 태도는 숙연하고도 진중하기 이를 데 없
었다.
잠시 말없이 북리무해의 시신을 내려보던 북리뇌우는 천천히 등을 돌려 세웠다. 그의
눈에 지옥사인의 모습이 새삼 강하게 쏘아져 들어왔다.
"내가 너무 오래 지체했나? 결례였다면 용서하기를."
북리뇌우의 말에 지옥사인은 무심히 대꾸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 어투나 태도는 처음과 비교해도 별 변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리뇌우는 달랐
다. 그의 눈에서는 일시지간 칼날처럼 살벌한 광채가 폭사되었다.
"그대는 이 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가 쏟아 내는 음성도 흡사 지옥의 유계(幽界)에서 흘러나오는 것인 양 섬뜩하기 그
지없었다. 범인(凡人)이라면 아마도 그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금치 못하리라
지옥사인은 물론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입술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기이한 웃음을 흘
릴 따름이었다.
"후후후......."
북리뇌우는 여전히 음산한 음성으로 묻고 있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지저천마유궁(地底天魔幽宮), 간단하게 천마유궁(天魔幽宮)이라고도 부르지."
지옥사인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그에 반해 북리뇌우의 얼굴에는 한 가닥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천마유궁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다. 그것은 질문의 방향을 돌릴 필요가 있어서였다
"왜 날 죽이려 하는가?"
그는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으되 그 음성에는 가공할 살기가 충
만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살기, 그 압박감에 의해 드넓은 석전이 폭풍에라도 휘말린
듯 진동하고 있었다.
지옥사인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도 죽음을 예고하는 강렬한 살기를 전신에서 뿜어내며 북리뇌우의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쿵! 쿵.....!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석전의 바닥에는 매번 움푹움푹 패이도록 깊은 발자국이 만
들어졌다.
그를 바라보는 북리뇌우의 양 팔에 은은한 혈광(血光)이 떠올랐다. 그것은 희대의 마
공인 마염대접인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는 표식이었다.
지옥사인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베어 물었다. 그는 뒤늦게야 북리뇌우가 던진 질문
에 대답했다.
"그것은 너의 운명이라고 보면 맞다. 유화천궁(維華天宮)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어야
만 하는 것이다."
"유화천궁?"
북리뇌우는 반문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휘 자체를 처음 대해 생경하게 느껴
진다는 듯.
지옥사인의 스산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후후, 궁금해 할 것 없다. 죽은 후에 염라전에 가서 물으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줄기 눈부신 섬광이 작렬했다.
츠팟!
북리뇌우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 들어간 그 일 식은 육안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조
차 없는 쾌도(快刀)였다.
그는 미처 피하지 못한 채 흠칫 굳어지고 말았다.
파파팟!
"윽!"
짧은 비명과 함께 북리뇌우는 쾌도식에 가슴을 격중 당하고는 뒤편의 벽면으로 퉁겨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인해 석벽에는 전에 없던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다.
그의 안색은 대번에 희게 탈색되었다.
"대단하군."
북리뇌우는 충혈된 눈에 감탄의 기색을 내보였다.
당황한데 비해 상세는 대수롭지 않았다. 단지 옷자락이 베어지며 앞가슴에 그만큼의
얕은 도흔이 그어졌을 뿐이었다.
지옥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응수했다.
"고맙군."
"그런데 받은 건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이 내 철칙이다. 그 때에도 고맙다고 할 텐가?
북리뇌우의 양 팔을 물들이고 있던 혈광이 찰나를 기해 섬칫하리 만큼 짙은 색채를 띠
었다.
파파파팟!
급기야 혈광은 피무지개처럼 작렬하며 사위로 수천 줄기의 혈환(血環)을 폭사시켰다.
지옥사인의 칼날 같은 눈썹이 한차례 꿈틀 했다.
"제법이군!"
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츠츠츳!
그의 오른손이 휘둘러진 순간, 현란한 도무(刀舞)가 펼쳐지며 북리뇌우의 혈환들을 모
조리 파괴시켜 버렸다.
파파파팟!
"과연......!"
북리뇌우의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응수도 상대에 못지않았다. 혈환의 파편들이 비산하는 그 사이를 뚫고 한
가닥 자광(慈光)이 폭사된 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콰콰콰― 콰쾅!
굉렬한 폭음이 일어 석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크윽!"
지옥사인은 비명을 터뜨리며 석벽으로 튕겨져 나갔다.
쾅!
그도 가슴에 자광이 정통으로 격중되자 별수없이 석벽에 자신의 몸체만한 구멍을 내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쿵!
둔중한 음향과 함께 지옥사인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북리뇌우를 힐끗 응시
하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좋아, 날 실망시키지는 않는구나."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어졌다. 그것은 죽음의 빛깔보다 더 사악해 보이는 웃음이었
다.
지옥사인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도 내장이 약간 진동한 것 외에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이로써 두 사람은 똑같이 일격을 교환한 셈이었다. 그들은 각기 어떤 생각을 품고 있
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기이한 눈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뒤늦게 입을 연 자는 지옥사인이었다.
"어차피 넌 죽게 되어 있다."
북리뇌우는 냉소로 그 말을 받았다.
"그야 당신 생각이지."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운명이다. 너는 지옥(地獄)의 무공으로 죽게 되어 있다.
나 지옥사인에 의해."
말을 마친 지옥사인은 수중의 연도(軟刀)를 하늘로 향해 번쩍 치켜들었다. 길게 휘어
져 반월 모양을 이루고 있는 도신에서는 청옥색의 도강(刀 )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북리뇌우는 침중하게 읊조렸다.
"지옥잔륜도......."
그는 지옥잔륜도에 대해서라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전설의 지옥삼대비전(地獄三大秘傳) 중 유일무이하게 세상에 알려진 절대 쾌도
식이자 북리뇌우와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이 있는 무공이었다.
일찍이 사부, 아니 의부(義父)인 북리무해로부터 전해들은 바도 있거니와 그는 십 년
전 지옥잔륜도가 가슴을 그어 왔던 그 순간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당시의 정황은 잘 몰랐지만 그 때에 느꼈던 감각만은 최소한 죽기 전까
지는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재미있군. 똑같은 도식을 두 번씩이나 구경하게 되다니."
북리뇌우는 오히려 가슴을 쭉 폈다. 이는 그가 지옥잔륜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는 의미로 해석되는 행위였다.
십 년 전에도 그는 두려움 따위에는 얽매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어 가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남다른 운명을 비웃었을 뿐.
"쯧! 무리하지 마라. 만용의 대가는 더 처참한 법이다."
지옥사인은 그를 비웃더니 덧붙여 말했다.
"단 일 초로써 모든 것을 끝내겠다."
그의 어투에는 무한한 자부심이 깃들여 있었다. 그러나 북리뇌우에게는 그것을 인정해
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라! 원하던 바다."
"후후후......."
우우우웅!
지옥사인의 연도가 괴음과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듣는 이의 심중마저 뒤흔들어 놓
는 그 소리는 흡사 십팔 층 무간지옥에서 악마가 울부짖는 듯한 음향과도 같았다.
동시에 뻗어 나온 것은 가공할 살류(殺流)였다.
파파파파팟!
그 무시무시한 살류는 대번에 사위를 뭉갤 듯 휘몰아쳤다. 하지만 북리뇌우의 입에서
는 냉연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콰우우!
북리뇌우의 장심에서 뻗어 나온 눈부신 자광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채 일직선으로
지옥사인을 향해 쏘아져 갔다. 태산이라도 허물어뜨릴 듯한 위력이 내포되어 있는.
콰콰콰콰!
그의 공세는 그대로 지옥잔륜도의 도강과 격돌했다.
그런데 사방을 뒤덮고 있던 지옥잔륜도의 도기가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 일진의 광소
성이 기이한 메아리를 울렸다.
"크하하하, 가라!"
상황은 급전되었다.
쩌저적!
수백 줄기의 청흑색 섬광이 환상처럼 터지며 북리뇌우가 발출해 낸 자광의 덩어리를
무참하게 찢어 버렸던 것이다.
그 현상은 그야말로 의외의 변수랄 수 있었다.
파파파팟!
"크윽!"
운명이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피하지 못하는 것인가?
수백 줄기의 도강은 결국 북리뇌우의 심장 부위에 모조리 쑤셔 박히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그는 폭풍에 흩날리는 가랑잎처럼 무력하게 뒤로 날아가야 했다.
지옥사인은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도 두 번의 실수는 없다. 지난 십 년간 네 놈을 죽이기 위해 지옥잔륜도를 새
롭게 연마해 온 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는 곧 웃음기가 걷혀 나갔다. 그의 눈이 불신과 회의를 담은 채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이럴 수가......!"
첫댓글 즐독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럴수가......!'좋은밤되세요~
감사합니다.
즐~~~~감!
고맙습니다^^
즐감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독입니다
감사
즐감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