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짓지 않는다고 하는 장로님과의 토론 내용입니다. 객관적 판단을 바랍니다!
박진하
작성일시 2023-01-09 14:01:37
카톡으로 토론하신 장로님이 본인의 실명을 그대로 올려도 무방함을 말씀하셨기에 저와 음성 교회에 다니신다고 밝히신 최만혁 장로님의 토론 내용을 실명과 함께 그대로 올려 드립니다.
재림교회 안에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두 견해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매우 중대한 주제입니다.
[브니엘 교회, 명광미디어 성도들의 단톡방에 올린 글]
엊그제 금요일 저녁 예배 전에 충청도에 있는 어느 장로라는 분이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요약하면 "박목사님의 설교를 들어 봤는데, 하나님께 난 자들은 그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고 설교를 해야지 영혼들을 확신도 없는 그릇된 신앙에 안주하고 한다"며 기만적인 설교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마도 생애의 빛이나 개혁교회 사람 혹은 완전주의 사상을 가진 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죄인처럼 살면서 자신들만 의롭다고 확신하는 율법주의 신앙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가진 "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께로 난 의이지 결코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은 것임을 아는 이들은 복있는 자들입니다. 마라나타!
--------------------------
제게 질문하면서 저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설교를 혹평하신 그 장로님과 흥미있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속 이어질 대화를 잘 보시면 '오직 믿음'이 아닌 '행위 완전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기 의(義)에 도취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경험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실행하지도 못하는 것을 이론적으로만 확신하면서 진짜 믿음의 의를 비난하거나 혹평하는 자들의 위선적인 삶을 객관적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최만혁 장로]
목사님. 참된 믿음의 의룰 저는 거듭남이라고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상 그분의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리된 자는 다윗이 말한 고범죄룰 범치 않는데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을 수 없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뿌리잘린 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는 습관화 돼있던 허물들이 벗겨져 나가는 것이 품성변화라고 믿습니다.
[박진하 목사]
장로님의 답변하신 것을 근거로 다시 묻겠습니다.
첫째, 최만혁 장로님은 거듭나신 후에 정말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은 정신과 사상, 그분의 마음처럼 "완전히" 바뀌셨나요?
둘째, 최만혁 장로님은 거듭난 후에 정말 다윗과 같은 고범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나요? 아니면 무수히 넘어지는 경험을 하셨나요?
셋째, 정말 최만혁 장로님은 거듭난 후에 "예수님께서 죄를 지을 수 없음과 같이" 죄를 짓지 않으셨나요?
먼저 간단한 세 가지에 대해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만혁 장로]
네 정신이 완전히 그분께 몰두됨에 관해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범죄란 의도적인 죄는 없습니다.
단지 이런 정도는 죄가 아니야 라는 생각에 향한 것으로 수치를 겪는 것은 한 두번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습성화 돼있던 참지 못하는 버릇은 신속히 걷혀나감을 경험으로 보고, 첫째는 가족이 따라 변합니다. 넘어짐이란 건 성령께서 증인이십니다.
우리가 지금껏 혼란과 미혹을 만들어온 것은 물로만의 침례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시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달콤한 음성을 듣는 큰경험에 이르게 하라셨으나 터무니도 없이 침례 받았으니 거듭났다고 가르쳐 왔고 거듭난자도 여전히 죗된 본성에 의해 죄와 싸운다고 가르쳐 왔다는 문제입니다. 참으로 통탄스런 일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냥 지나가다보면 어느땐가 완성될 거라는 식으로 속여 왔다는 기절할 일입니다.
[박진하 목사]
최만혁 장로님, 제가 다시 질문 드립니다.
질문이 반복되는 것은 질문의 요지를 곰곰히 생각하시라는 뜻이고, 그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심으로 장로님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거듭남 그리고 거듭난 성도들의 성화의 과정 등에 대해 바르게 깨닫고 경험하시라는 목적도 있습니다. 내용이 길면 헷갈리니까 우선 하나만 질문 드립니다.
<질문1>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을 죽인 죄는 다윗이 거듭난 후인가요, 거듭나기 전인가요?
- 사실 이 질문은 하나마나한 질문이지요. 그러나 제가 일부러 질문을 한 것입니다. 다윗이 고범죄(시편 19:13)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정작 다윗이 유부녀인 밧세바와 통간하고 그 남편을 죽인 어마무시한 죄는 다윗이 거듭난 후에 그것도 사울왕의 살해 위협 등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견뎌 내고 왕이 된 후에 범한 죄악이었습니다.
장로님은 "거듭난 후에 정말 다윗과 같은 고범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나요?"라는 제 질문에 대해 '고범죄란 의도적인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이 답변에 저는 경악할 따름입니다.
장로님,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한 죄가 베드로가 거듭나기 전인가요, 거듭난 후인가요?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 제자가 된지 3년 반이 되었을 때 그와같은 엄청난 고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방금 전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상세히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장로님, 이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며 이 마지막 때 기별자로 부름 받은 저 박진하 목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체면 불구하고 감히 고백하건데 제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경험한 후에 지금까지 인생을 살고 목회를 하면서도 알고 짓는 고범죄를 수없이 짓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나 박진하는 그 고범죄까지도 회개하라고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에 순복하여 회개하고 회심함으로 그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지 않음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나는 고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시는 최만혁 장로님은 박진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 왔으면서도 “나는 고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죄까지 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장로님은 고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시면서도 그 말미에 “단지 이런 정도는 죄가 아니야 라는 생각에 향한 것으로 수치를 겪는 것은 한두 번 기억이 납니다.”라는 매우 모순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장로님, 정말 그런 경우가 인생에 한 두 번 밖에 없으셨나요? 한 두 번이라고 인정을 해 드린다고 해도 그 한 두 번은 죄가 아닌가요?
장로님 주장처럼 거듭난 사람은 고범죄를 지을 수 없다거나 예수님과 같은 죄 짓지 않는 완전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장로님은 그 한 두 번의 죄도 짓지 말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의 몇 번의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 할 것도 아셨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수건을 두루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
“이미 목욕한 자”는 곧 침례를 받고 거듭난 자들입니다.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곧 거듭난 자들이 만약 죄를 지을 경우 그 죄를 회개하도록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회개함으로 발을 씻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요일 1:9)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요일 2:1)
위 모든 말씀은 거듭난 성도들의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님처럼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은 죄 지을 수 없다고 한다면 저런 말씀도 필요가 없겠지요?
오히려 성경은 장로님처럼 주장하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10)
최만혁 장로님,
진정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장로님이나 저나 베드로나 다윗이나 모든 인간들은 연약하고 죄 많은 죄인들일 뿐 오직 의로우신 분은 우리 주 예수밖에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죽어버린, 허물과 죄로 죽어버린 우리 모두는 도저히 할 수 없기에 우리 구주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의 모양으로 오셔서 마귀와 싸워 이기시고 죄를 온전히 이기심으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들은 그 예수 안에서 의롭다함을 주시고 그 예수 안에서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가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입니다.
내가 고범죄는 잘 해야 한 두 번 지은 것 같고 나는 고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장로님과 같은 분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구주 예수님은 한 두 번 밖에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나와 같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상시, 항상, 매순간 구주 예수가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예수 안에 사는 자들이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장로님 화잇 선지가가 한 다음 고백이 장로님의 고백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맹세합니다.
베옷을 입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내가 정결하게 될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 원고 15. 1894 (엘렌 G. 화잇이 호주 아본데일 대학의 학생들 앞에서 한 고백)
글이 길어졌군요.^^
[최만혁 장로]
글이 길어서 자세히 읽기도 어렵군요
거두절미하고 다윗이나 베드로가 언제 거듭났는지를 목사님이 모르시는군요. 그리고 내가 한두번이라 한것도 거의 빠질 뻔 한것이지, 최소한 그큰 경험 후에는 말입니다.
만일 다윗이나 베드로 또는 목사님처럼 계속해서 엎어진다면 뱌울이 (히6:4.5.에 말씀한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멸망밖에는 바랄게 없다 한말은 어떻게 보시나요?
그리고 다윗이 범죄한 후에 회갸하는 기도에서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 한 기도는 거듭난 후인가요? 전인가요. 목사님은 내가 볼때엔 너무 자신을 신뢰하는 미혹에 빠져 계신 것으로 보이는군요.
거듭남을 그렇게 싸구려로 보지 않으셔야 헐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진하 목사]
최장로님, 성경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깨닫게 되기 바랍니다. 장로님의 지금 주장처럼, 다윗이나 베드로가 지은 죄들이 거듭나기 전이라고 하는 주장은 기독교에서 상식만 알고 있어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고 사울의 핍박과 박해를 피하여 다닐 때 고백하고 쓴 시편의 그 모든 글과 경험들이 거듭나기 전이라고 믿는 장로님은 정말 기이한 신앙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다윗이 싸구려 거듭남을 경험해서 그런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요?
베드로와 제자들이 거듭나지도 않고 3년 반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예수님은 거듭나지도 않은 자들을 제자라고 하셨단 말인가요? 제가 신학을 하고 목회 40여년을 하면서 듣도 못한 기이한 주장입니다.
나는 수없이 경험해 봤지만, 장로님처럼 믿는 잘못된 율법주의적 신앙에는 약도 없습니다. 장로님의 수준이 이 정도면 더이상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오직 나의 구주 예수님만 신뢰합니다. 너무 자신을 신뢰한다고 하신 최만혁 장로님이 그 말씀을 본인에게 겸손히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재림교회 안에 장로님처럼 율법주의적 신앙에 몰두하여 우리 구주 예수를 놓쳐 버린 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정작 자신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남들에게 짐을 지우고 자신들은 예수님처럼 죄 짓지 않는 삶을 사는 것처럼 가장하는 위선적인 자들이지요.
진정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고 진정 우리 구주 예수님을 아는 참된 성도들은 결코 최만혁 장로님처럼 그렇게 주장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최만혁 장로]
그러시군요. 베드로나 제자들이 눅17:6.에서 예수께서 책망하신 것이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고 책망하신 것은 그들에게 거듭난 산믿음이 없음을 책하셨는데 그들이 그분 승천하심을 보고서야 깨닫고 다락방에 모여 가슴치며 통회에 들어가서 오순절 성령에 입히심으로 거듭남에 들어갔습니다.
3년반 아니라 평생을 헌신해도 주께서 하신 말씀은 무효가 될 수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그런걸 상세히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가르쳐지나요?
[박진하 목사]
장로님, 성경과 예언의 신을 나무만 보질 마시고 숲을 보는 넓은 시야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위의 글이 길다고 읽어보지도 않으신 것 같은데요... 이러한 장로님과 더이상 대화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평안을 빕니다...
[최만혁 장로]
그리고 다윗의 기도에 정한 마음이 창조되는 것은 거듭날 때 채워지는 그분의 정신임울 겔11:19.20.과 36:26.27.에서. 그리고 히8:10.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성경을 꼼꼼하게 살펴 연구해 보심이 좋울거 같군요.
[박진하 목사]
장로님의 주장이 성경적이 되려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지하시게도 거듭남도 모르는 다윗을 택하여 사무엘을 통해 기름을 부으시고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것인데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나요?
장로님의 그 영적 교만의 바벨탑이 무너져셔 진정 성령으로 거듭나실 것 같고 그래야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경험하실 기회가 올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 중 어느 누구도 죄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생애한 사람들, 고의로 악행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생명 그 자체를 희생하고자 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거룩한 빛과 능력으로 영화롭게 하신 사람들도 그들의 본성에 죄악이 충만함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육신을 신뢰하거나 자신들의 의를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였다”(행적 561)
[최만혁 장로]
아 그래요 (다윗이) 왕으로의 기름부음이 거듭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분명히 경험에 의한 말을 교만으로 치부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이 더 겁이 나는군요.
[박진하 목사]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와 같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께 더욱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분의 품성의 순결을 더욱 분명히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더 죄의 극악함을 알게 되고 자신들을 높일 마음이 더욱 더 적어질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계속적인 영혼의 발돋음, 계속적이며 열렬한 죄에 대한 마음을 찢는 회개와 그분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적 경험에 있어서 진보의 매 발걸음마다 우리의 회개는 깊어질 것이다. (행적 56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충분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며 다음과 같은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롬 7:18; 갈 6:14). (행적 561)
기록하는 천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싸움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며 그들의 기도와 눈물을 기록하게 하라. 그러나 인간의 입술에서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거룩하다”는 선언을 발함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리지 말라. 성화된 입술은 결코 그와 같은 참람된 말을 발하지 않을 것이다. (행적 561)
장로님 위 선지자의 말씀을 겸손히 읽어 보십시오. 가장 마지막 글에서처럼 진정 성화된 사람은 장로님처럼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거룩하다'는 참람된 말을 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하다고 크게 공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거울을 들여다 보라. 그들이 율법의 원대한 요구를 깨닫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감찰하는 율법의 일을 깨달을 때 죄없다고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행적 562)
[최만혁 장로]
아멘. 동의합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거나 의롭다하는 말을 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범함에 관해서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일 3:8.9.을 그외에도 제시할 여러 말씀이 있는데 부인하는 그것이야말로 무서운 불신이 아닐까요?
나날이 깊어지는 탄식의 부르짖음은 지난날들의 죗된 삶으로 복음의 광채가 가려졌던 세월이 고통스러워서 가슴을 찢는 것은 강같은 평화가 속으로 흐르는 것뿐이며 겉으로 기뻐 춤추는 모습은 찾을 수도 없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거듭났는지에 대해 물을 때와 죄짓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장 대답하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성경적으로 그러하다는 말씀으로 항상 답해 왔죠. 그러나 거둡남이 얼마나 향복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반드시 증거햐야 하리라 샹각하는 것은 누구든지 몰러서 그경험을 구허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제거 보기엔 너무도 모르는 탓으로 가장 중요헌 핵심기별이 모호하게 가르쳐져서 교회가 캄캄하다는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입니다. 신학교는 뭐하는 곳인지. 박가들은 뭐하는 박사들인지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화잇 여사와 말에 거듭남이란 보기드문 희귀한 일이라고 하신 것이 나는 전에는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럴수가 있나요?
[박진하 목사]
마지막으로 말씀 드립니다. 최만혁 장로님은 아직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경험하지 못하신 분으로 보여집니다. 장로님의 첫글을 읽고 영적으로 분별하였기에 첫글에도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고 대화를 나눠보니 확신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미 목욕한 자는 이라고 말씀하신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서처럼 거듭난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메섹 노상에서 거듭남을 경험했지만, 로마서 7장에서처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죄된 모습을 고백한 것입니다. 최장로님이 그러한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해지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더이상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최만혁 장로]
그렇게 로마서도 거듭난 전후조차 파악을 못하고 제자들이 거듭났다면 예수님의 책망은 거짓인가요? 나에 대해서는 부정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올바로 보셨음 고맙겠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립니다. 제발 경험을 확실하게 하셔서 백성들을 미혹시키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박진하 목사]
장로님과 나눈 대화는 재림마을 게시판에 올려 만인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객관적인 생각을 하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1월 13일 금요일 저녁 이 내용으로 설교하겠습니다. 혹시 장로님의 실명 그대로 인용해도 괜찮겠지요?
[최만혁 장로]
아 그러세요. 좋습니다. 그거 대단히 고맙습니다. 목사님의 말씀하신 것 도 함께 올리세요. 그래야 더 분명한 파악이 되겠지요.
[박진하 목사]
장로님의 교회와 실명 그대로 옮기고 저와 나눈 대화를 하나도 빼 놓지 않고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동의하시는 것이지요?
[최만혁 장로]
그 모든 생각하심에 동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