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볼은 노랗게 칠하고 다닌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넘어져 다쳤는데, 노란색 볼 터치가 저랑 안 맞아서 그런 일이 빚어진다는 소리를 듣곤 화장법을 바꿨죠.”
독창적인 구두 디자이너로 유명한 이홍겸비 씨. 그는 ‘구두’를 소재로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가 만드는 구두 브랜드만 세 가지. 최첨단의 아방가르드한 구두부터 도매시장에서 팔리는 것까지 컨셉트도, 대상이 되는 시장도 각각이다. SF 영화 〈예스터데이〉에서 김윤진과 김선아가 신은 구두를 만든 것도 그였다.
그는 신지 못하는 구두를 만드는 일에도 열심이다. 지난해 말에는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 분홍색의 거대한 하이힐로 만든 욕조를 선보이더니, 올해는 5월 말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앤 쿡’전에 젤리로 만든 신발을 내놓았다. 요즘은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할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각기 다른 성격의 구두를 내놓으면서 마케팅 공부를 하다가, ‘구두’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 때는 상상력을 폭죽처럼 폭발시키고 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일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그의 활동 범위를 보자면 자신의 이름인 겸비(兼備) 수준을 능가한다. 이것과 저것을 겸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을 분화시켜 서로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영역을 넘나들면서 살고 있다. 그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일들을 할 때 나의 다중인격적인 욕구가 해소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혈액형이 B형이라면서 그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산만하다”고 스스로를 분석했다.
서울 성수동, 그가 디자인한 구두가 만들어지는 공장 근처에서 만났을 때 이홍겸비 씨는 비즈와 레이스가 달린 옥색 상의를 입고 나타났다. 그러면서 “이거 아버지 한복의 속저고리를 뜯어 만들었어요”라고 자랑한다. 있던 것을 전혀 다른 용도와 느낌으로 바꾸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 그에게 그것은 일상이자 생활이며, 일이자 작품이었다. 모자도 귀걸이도 그런 식으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낸다.
외동딸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 잡지나 전단지에 실린 상품 사진들을 오리곤 했다. 제일 좋은 것, 그 다음 것, 별로인 것 등으로 순위를 매기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따로 스크랩했다.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어릴 적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홈페이지 속 일러스트로 그려진 겸비는 벽을 바라보고 앉아 사브작 사브작 무언가를 만든다. 그러다 창 너머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팔을 죽 뻗어 기지개를 켠다. 발은 내내 까닥까닥, 몸에서 음악이 흐르는 것 같다.
아래-겸비 씨가 직접 꾸민 자신의 홈페이지(www.kyumbie.com) |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프랑스 의상디자인 교육기관인 에스모드가 한국에 세운 학교 ‘에스모드 코레’에 3기생으로 들어갔다. 대학 학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라 사회적 차별이 예상됐지만, 상관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곳이니까.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나온 어머니도 그를 지지했다. 1994년 이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내내 구두 디자이너로 살았다. 그에게 구두는 ‘유혹’을 의미한다. 그는 그 ‘유혹’이 한껏 매력을 발산하도록 디자인하면서 그걸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하이힐의 뒷모습이나 옆선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섹시한 여성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성격과 브랜드 각기 다른 구두 디자인
처음 디자인을 시작한 곳은 디자이너 브랜드 ‘이신우 컬렉션’에서였다. 제일 가고 싶었던 직장이었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그곳에서 구두 등 잡화 디자인을 맡았다. 파리나 오사카 컬렉션 등 독창적인 디자인 세계를 펼쳐 보여야 하는 무대에서 그는 슈즈를 담당했고, 구두 디자이너로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후 빈치스벤치, 쌈지, 오브제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일한 그는 2년 전 독립해 게릴라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만든 구두들은 어쨌든 튄다. 색상이 파격적이거나 비단 천과 펠트같이 전혀 다른 소재를 믹스하거나 어딘가 유머러스한 느낌이 난다. 홍대 앞 옷가게 ‘freak’에 들어가는 구두가 아방가르드적인 디자인을 지향한다면 도매유통망을 통해 팔리는 ‘교교’는 보다 대중적이다. 쌈지와 손잡고 만드는 구두 브랜드는 ‘쌈지 VS 겸비’로, 싸울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제가 붙인 이름인데, 다들 ‘쌈지 사장님이 불쾌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예요. 사장님은 오히려 ‘그 이름 좋다’고 하셨대요.”
‘이신우 컬렉션’의 이신우 씨나 쌈지의 천호균 사장 모두 젊은 사람보다 더 감각이 젊고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그는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2004년에는 1년간 LG 홈쇼핑과 손잡고, ‘마젠타 퀘스천 바이 겸비’란 이름으로 구두를 만들었다. 코드가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놀다 각기 이미지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을 때 그의 이름이 ‘교교 마젠타 퀘스천’이었다. 그에게는 달빛의 교교함과 마젠타의 빨강색, ‘도대체 모르겠다’는 퀘스천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이 만드는 구두 이름에 그것들을 갖다 붙였다.
대학 대신 디자인학교를 선택하면서 ‘10년 후쯤이면 빛을 볼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짐작은 맞았다. 대학 다닌 적 없는 그가 홍익대와 동덕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니까. 외국 유학을 생각해 본 적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국제 신발박람회에 가면서 제가 디자인한 신발을 신었어요. 춘화집을 뒤져 찾아낸 그림을 프린트한 일명 ‘어우동 운동화’였죠. 그런데 외국인들이 ‘어디 신발이냐’며 제 발을 볼 때마다 촬영해 가는 거예요. 국내에서는 너무 튀는 디자인이 외국 시장에서는 승산이 있겠다는 감이 왔죠.”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디자인을 팔기 위해서 외국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는 것. 에스모드 코레에 입학할 때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뭘 모르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급하게 서두르지는 않는다. 차근차근 필요한 부분을 채워 가고 있는 중이다.
겸비의 상상 발전소
복잡다단한 일을 하면서도 창의적 상상력을 잃지 않는 겸비 씨만의 비결은 없을까? 그는 “피곤과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20~30분 정도 목욕을 하면서 긴장을 푼다”고 한다.
목욕방법은 다양하다. 거품 목욕을 하거나 욕조 물에 녹차나 술, 우유, 아로마 향의 소금을 섞는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 상쾌한 느낌, 뼛속까지 시원한 느낌 등 각각의 느낌과 몸이 반응하는 게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디자인 등 창의적인 발상은 이렇게 풀어져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을 때 번뜩번뜩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