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우리 인류는 진보한 것이며 원인(猿人)으로부터 오늘날에로 발전하기까지 이미 아주 휘황하다! 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역사적으로 사전시기(史前時期), 십 만년이전 혹은 더욱 일찍이고 더욱 일찍인 예전, 줄곧 억 년도 넘는 예전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에는 줄곧 고도로 되는 문명이 존재하였던 것이며 다만 부동한 시기에 괴멸되었을 뿐이다. 왜 괴멸하게 되었는가?
바로 그가 물질적으로 아주 빨리 발전이 되였고 기술적으로 아주 빨리 발전이 되였으나 그의 도덕이 따라가지 못했거나 혹은 파괴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더 존재하여 내려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괴멸되었다. 현대과학의 인식으로 물질운동을 이야기하면 규율성이 있다. 그것이 일정한 형식으로 운동되었을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일종 형식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지구는 이 우주의 운행 중에서 어느 한 별나라에 의해 부딪쳐 파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어떤 원인이든지를 막론하고 지금 과학자는 우리의 별나라에 많고도 많은 오래된 문명유적이 존재하였던 것이며 아울러 이런 문명유적은 현재의 시간보다 모두 비교적 먼 것으로서, 어떤 것은 몇십만 년 이전의 것이고 몇백만 년 이전의 것이고 또 몇천만 년 이전의 것이 있음을 확실하게 발견하였다. 매 시기에 존재한 문명이 남겨 놓은 유적은 다 같지 않으며 모두 한 시기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과학자는 이 문제를 사고하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이미 이런 하나의 논점을 제출하여 말하기를, 사전문명(史前文明)의 존재가 있고 사전문화(史前文化)가 있다. 이것은 과학자가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수련계에서는 더욱 똑똑하게 보았다.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우리 이번 기 인류문명 이전에 많고도 많은 차례의 인류의 문명이 존재하였다. 그의 도덕이 부패됨으로 말미암아 물론 우리가 본 것은 이러한 것으로서 나중에 이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괴멸된 고대 희랍문화로부터 당시 인류의 부패, 타락한 유적을 보아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사람은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하여 온 것이다 라고 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은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해 온 것이 전혀 아니다. 다윈이 제출한 이론이 말하기를, 사람은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하여 온 것이다 라고 한다. 그가 당초 이 한 세트의 이론을 내놓을 때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내놓은 것이다. 그의 이론은 흠집백출로서 완벽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줄곧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제출한 원인(猿人)으로부터 사람으로 진화되기까지 이 진화 과정 중의 과정은 천백 만년의 이런 하나의 과정이지만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없다. 왜 사람과 원숭이 사이의 이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가? 기타 물체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그가 말하는 진화된 동물도 중간 과정이 없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존재하는 물종(物種)과 기타 대륙에 존재하는 물종은 왜 같지 않은가? 그는 모두 해석하지 못하였다. 이 흠집백출인 진화론이 오히려 사람에게 받아들여졌다. 이것이야말로 기괴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사람을 보게 되면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하여 온 것이 전혀 아니며 다만 매 한 시기 매 일종의 생물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지구의 대륙판(大陸板塊)은 변이(變移)된 것이며 변경된 것이다. 지질학자는 아세아주, 구라파주, 미주, 남미, 북미의 육지를 대륙판이라고 부른다. 대륙판은 늘 변경되는 것으로서 이 위의 문명이 물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 그러면 혹은 기타 대양 속으로부터 하나의 육지가 올라오게 되는데 바로 이렇듯 끊임없이 변경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도 태평양이라든가, 대서양이라든가, 인도양이라든가, 많은 대양의 밑에 오래된 높고 큰 건축이 있고 문명이 존재했던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조사하여 발견한 데 의하면 모두 몇십만 년, 몇백만 년, 더욱 오래고 먼 연대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우리 현재의 인류는 최저한도로 이 몇십만 년 사이에 대륙판은 변경을 발생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때에 물밑으로 가라앉은 것인가? 그것은 긍정 아주 일찍이며 몇십만 년 전 혹은 더욱 오랜 이전에 가라앉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한 대륙판이 변경될 때, 위의 물종(物種)은 같지 않은 것으로서 진화하여 온 것이 아니다. 비슷한 것이 있지만 한 가지 물종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아니다!
물론 나는 불법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속인 중의 이론과는 같지 않다. 우리는 더욱 높은 인식이며 진정하게 인류를 인식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은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하여 온 것이 아니라 우주 중에서 생긴 것이다. 여러분은 중국에 도가(道家)의 태극학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태극학설은 음양양기(陰陽兩氣)를 이야기한다. 음양양기가 생기지 않았을 때에는 혼돈한 상태이고 그것을 무극(無極)이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그것이 태극을 낳게 되어 음양양기가 있게 되었고 그 다음 음양양극은 만사만물을 낳게 되었다. 이것은 도가의 이론이다.
나는 아주 과학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나는 한 가지 상황을 발견하였는데 물론 이는 또 나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 우주 중의 방대한 물질은 운동 하에서 생명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이 물질을 보아내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 공기를 사람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공기보다 더욱 미시적인 물질이 있는가 없는가? 많고도 많다. 더욱 미시적인 물질보다도 더 미시적인 물질이 아직 많고도 많다. 이런 방대한 물질, 그것이 왜 이렇게 생존할 수 있는가?
사실 모두가 생명의 존재이다. 어떠한 물체이든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 다만 우리 속인 이 공간에 표현되지 않아 당신이 그의 생명존재를 보지 못할 따름이다. 잠시 후 내가 무엇 때문인가를 이야기하겠다. 어떠한 물체이든지 모두 생명이 있다. 이런 방대한 물질은 운동 하에서 생명이 생겼고 이런 생명은 더욱 높은 층차 중에 있을 때, 많이는 무형적인 것이며 소수는 인류의 형태거나 혹은 동물의 형태이거나 혹은 물질의 형태이거나 혹은 식물의 형태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이 한 지경에로 왔는가? 왜냐하면 최초에는 사람의 이 한 지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우주의 물질이 그의 운동의 작용 하에서 생긴 생명은 모두 우주의 특성에 동화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주 중의 이 법리(法理)에 동화되었으며 眞、善、忍에 동화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眞、善、忍 중에서 생겨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생명이 고층공간에서 많이 생길 때면 그의 생존환경은 복잡하게 변해졌으며 그는 그들 사회의 생존형식이 있게 되었다.
마치 우리 인류사회가 사람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 것처럼 그는 그의 사회형식의 존재가 있다. 그럼 그가 그의 사회형식이 있을 때에 이런 생명은 점차적으로 변화를 발생하게 되며 복잡하게 변하게 되었다. 어떤 생명은 이기적인 생각이 생겨 우주특성이 그 한 층에서 생명에 대한 요구에 빗나감으로써 그는 이 한 경지 중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떨어지는 수밖에 없으며 낮은 층차에로 떨어지게 된다. 그럼 그가 낮은 층에서 또 더욱 좋지 않게 변하게 될 때면 그는 또 아래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렇듯 이 생명은 오랜 역사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좋지 않게 변하여 점차적으로 한 층 공간, 한 층 공간씩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곧 인류의 이 한 층 공간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저능생활을 하고 저능방식으로 후대를 번식,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에는 인류의 이 한 층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대각자, 고급생명은 곧 사람에게 다시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하나의 가장 미혹된 공간을 만들어 사람의 요만한 본성을 잃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고 그가 또 되돌아 올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되어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당시에 사람에게, 생명에게 최후 하나의 기회를 주고자 하였으며 더 많은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와서는 오히려 이 공간이 너무나도 특수한 것을 발견하였다.
왜냐하면 이 공간 중의 생물은 모두 기타 공간을 보지 못하고 기타 공간의 생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기타 공간 중에서는 모두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볼 수 있다. 어떤 한 공간의 생명도 그의 신체는 모두 공간 중에서 날 수 있고 날아오고 날아가며 어떤 한 층 공간의 생명도 그는 모두 신체를 크게 변화시키거나 작게 변화시킬 수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의 사유는 물질이며 마치 전파와 같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당신은 물론 전파, 그것이 물질이라는 것을 승인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공간에서 발견하면 그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사상은 당신이 상상한 것을 생기게 할 수 있으며 당신이 생각한 것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은 에너지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생겨서 잠시 후에 그는 곧 흩어져 버리게 된다. 그러나 에너지가 있는 대각자, 천인(天人), 고급생명인 그가 생각해 낸 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고 생각한다면, 생각했을 때를 따라 곧 무엇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예전에 남들은 이야기하기를, 부처는 무엇을 가지려고 하면 무엇이 있다고 하였는데 대단히 자유로운 것이잖은가. 그러한 생명은 모두 이렇게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는 이 공간에로 밀려와서는 곧 이런 존재로 변하였다.
여러분은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으로서 자신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장사를 아주 잘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벼슬을 아주 크게 했고, 어떤 사람은 아주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하여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당신도 아주 고생스럽다! 당신은 당신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종교에서는 사람이 사는 것은 고생스럽다고 이야기한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당신은 분자로 구성된 이런 하나의 물질 신체가 있게 된다. 다른 공간 속의 그는 분자로 구성된 이 한 층 신체가 없으며 그의 가장 표면적인 신체는 원자로 구성된 것이다.
분자로 구성된 표면물질이 이 공간을 조성하였다. 사람의 육체를 포함하여 역시 이 분자로 구성된 것이다. 이 한 층 물질로 구성된 이 신체, 당신은 태어나자마자 당신은 이 육체가 있게 되었다. 당신에게 이런 한 쌍의 분자로 구성된 눈을 줌으로써 당신은 기타 공간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곧 이 미혹 속에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미혹 속에서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하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산다는 것은 마치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데 사는 자체가 이미 아주 가련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람은 이 신체가 있게 된 후, 신체는 아픔을 두려워하므로 추워도 안되고, 더워도 안되며, 갈증이 나도 안되고, 당신이 길을 걸음에 지쳐도 안 된다.
아무튼 당신에게 많고도 많은 불편을 가져왔으며 많고도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존재가 있고 늘 병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당신도 그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에 비하여 좀 낫고 고통이 좀 적은 것 같음에 불과하나 당신은 자신이 아주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바로 이렇게 생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이런 생존의 환경 속에서 점차적으로 사람의 본성을 잃으며 神의 존재를 날이 갈수록 더 믿지 않는다. 게다가 실증과학이 완벽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또 사람의 도덕 표준을 잃었으며 그는 곧 가장 위험한 경지에로 미끄러져 왔다.
하지만 인류사회는 또 하나의 몹시 큰 좋은 점이 있다. 즉, 그가 고생스럽기 때문에 그는 수련할 수 있다. 왜 부처, 그는 늘 그런 부처 경지 중의 부처인가? 왜 그는 더욱 높이 제고하지 못하는가? 왜 그 보살은 부처로 수련되지 못하는가? 당신이 고생을 좀 겪으려 해도 찾을 곳이 없다. 그는 미혹 속에서 그의 이 불성(佛性)을 확고히 해야만 그가 비로소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거기에서 그는 아직 미혹되지 않고 그는 무엇도 다 볼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하자. 무엇이든 다 보면서 하는 수련은 수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련이 선차적이고 깨달음이 선차적이며 보는 것이 후차적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보게 되면 나는 수련하고 내가 보지 못하면 나는 수련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만약 여러 사람들더러 모두 보게 한다면 속인사회는 인류사회가 아니며 바로 神의 사회이다. 백 분의 백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모두 수련할 것인즉 십악불사(十惡不赦)하고 더없이 나쁜 사람마저도 수련하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이 아직도 인류사회인가? 바로 사람이 좋지 못하게 변하여 이 환경에로 온 것이다. 만약 당신이 되돌아가려면 이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 즉, 하나는 고생을 겪는 것이고 하나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예수는 믿는 것을 이야기하고 동방에서는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이러한 것을 잃어버리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하지만 흔히 사람이 수련하고자 하지만 왜 수련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을 느끼게 되는가? 사실 수련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어려운 것이란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기가 어려운 것이다. 역사적으로 무엇이 불법(佛法)인지를 모두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석가모니부처가 이야기한 것을 계통적인 불법으로 여기고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방대한 우주, 그는 무척 완비하고 무척 지혜롭다. 석가모니부처는 다만 부처 이치(佛理)의 한 자그마한 부분을 이야기했을 뿐이며 아울러 석가모니부처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사람에게 전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는 다만 사람이 응당 알아야 할 것만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인류사회에 남겨놓은 불법은 다만 불법 중의 조그마한 한 점, 조그마한 한 점일 뿐이다. 나는 방금 이야기하였다. 나는 인류사회에 아주 많은 것을 남겨놓았으며 나는 앞사람이 여태껏 하지 못하였던 일을 하였다고 말했다. 내가 쓴 이『전법륜』은 언어가 규범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의 규범적인 언어로서는 더욱 높은 층차, 더욱 큰 내포를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구두어 방식으로 쓴 것이다.
이렇게 많이 이야기하였다. 오늘 시간이 아주 충족한 것 같아 나는 여러분에게 좀 더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앉은 어떤 사람은 아마 내가 너무 높게 이야기함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전혀 배우지 못하였으나 아주 좋다고 느끼고 와서 좀 들어보려고 한 것이며, 일부 사람은 아마 어떤 것을 좀 얻으려 하거나 혹은 내가 무엇을 출연하는가를 좀 보려고 온 것으로, 여러 가지 심태(心態)를 품고 온 것이다. 만약 오늘 내가 여기에서 당신에게 출연한다면 당신은 허허 하고 웃으며 마치 마술을 보고 요술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당신은 나와 법을 무엇으로도 치지 않을 것이다.
불법을 전하는 것 역시 이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다만 이 불법을 이야기했을 뿐이며 믿고 안 믿고는 당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그의 위력은 아주 큰 것으로 나는 내가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과 사람에게 주어 능히 수련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그 한 부의 법(法)속에 담았다. 나의 비디오테이프, 녹음테이프와 내가 쓴 이 책을 오로지 당신이 보기만 한다면 당신은 곧 느끼게 될 것이고, 오로지 당신이 보기만 한다면 당신은 곧 신체가 정화(淨化)되며 당신으로 하여금 병이 없는 상태에로 도달하게끔 할 것이고 오로지 당신이 수련한다면 당신은 속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오로지 당신이 수련한다면 당신은 속인이 체험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체험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경지가 더욱더 높아지고 더욱더 미묘함이 모두 그 책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보아내지 못한다. 당신이 나는 한 번 읽고서 다 보았으면 한다고 말한다면 불가능하다! 당신은 다만 당신의 이 경지 중에서 당신이 이해하는 이 정도에서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미묘한 것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여 올라가고 오로지 당신이 끊임없이 깊이 배우고 깊이 수련하며 깊이 보기만 하면, 비로소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고 비로소 보아 낼 수 있으며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한 것이 너무나 높으므로 많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하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2년 간이나 계통적으로 설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에게 남겨놓을 법을 이미 전부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강의할 때 사람들이 녹음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 그는 신기함을 추구하고 있다. 스승님께서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다,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다고 하며 그는 이런 것을 추구하고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에게 수련하도록 준 것은 바로『전법륜』이며 이 책은 계통적인 법이다. 내가 이야기한 기타의 것은 모두『전법륜』을 해석한 것에 불과할 뿐이며 모두 보조적이다. 녹음을 한 후에 사회에서 전하게 되면 실속있게 수련하는 데 교란을 조성한다. 그 한 부의『전법륜』은 낮은 데로부터 높은 데 이르기까지 모두 계통적인 것이고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다만 지금의 사람을 상대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또 한가지 문제를 강조하겠다. 즉, 우리 수련하는 사람들은 전일(專一)을 강구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여러 가(家)의 장점을 취한다는 이 한마디 말은 속인 중의 언어이고 수련계의 언어가 아니다. 기술을 배움에 있어서 누구의 기술이 좋으면 누구의 기술을 배우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고층공간에서 볼 때 인류의 이치는 거꾸로 되었다. 인류가 좋다고 여기는 것은 아마 좋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서 전체가 모두 거꾸로 된 것이다. 당신이 보라, 우리 이쪽은 대낮이나 저쪽은 밤이며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마 옳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나는 여러분에게 간단한 하나의 도리를 이야기하겠다.
여러분 다 알다시피 사람이 고통스러우면 곧 좋지 않다고 여기거나 혹은 누가 당신을 업신여겼다면 곧 불편함을 느끼고 당신은 좋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이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당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당신이 보라.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같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고층공간에 이르면 이 이치는 다 거꾸로 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사람으로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당신이 인류사회에서 고통을 좀 겪음으로써 당신이 전세에서 빚진 업력을 갚아 버린다면 당신은 더 높은 고층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심지어 당신은 당신이 생긴 곳,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설령 제고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한 생에서 업력이 작아졌으므로 하여 시달림이 적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당신이 빚진 업력을 갚지 않는다면 당신은 고층세계에로 갈 수 없다. 바로 내가 이 도리를 이야기한 것처럼, 이 병 속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넣고 이 병 마개를 꽉 틀어막고서 물 속에 던지면 쿵 하고 대번에 가라앉게 된다. 만약 당신이 이 속의 더러운 것을 좀 쏟아내면 그것은 곧 조금 떠올라 오게 되고, 좀 쏟아버리면 좀 떠올라 오게 되는 것으로, 더욱 많이 쏟아버리고 당신이 그것의 마개를 막은 후 당신이 보도록 하라. 당신이 내리 눌러도 눌러 내려가지 않으며 그 자신이 곧 떠올라 오게 된다. 마치 우리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당신 신체의 생생세세(生生世世), 다시 말해서 당신은 아마 매 일생, 매 일세(一世)일 적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거나 다른 사람을 속였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해쳤거나 살생을 했다던가, 하는 등등 일이 다 있었을 수 있으며 더욱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빚진 업력을 갚아야 한다.
이 우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며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고 한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하며 금생에 갚지 않으면 내세에라도 갚아야 하는데 긍정하고 이러하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은 고통을 당하면 곧 우연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그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며 다른 사람이 나쁘다고 여기고 있다.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예전에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업력이 없다면 거리에서 걸어가도 누구든지 모두 당신을 보고 웃을 것이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마저도 주동적으로 당신을 위해 봉사할 것인즉 당신은 그야말로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 그는 보증하고 인류공간에서 생활하지 않으며 그는 곧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사람에게 업력이 있고 사상이 정화되지 못하면 영원히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한다. 바로 내가 방금 이야기한 이 도리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당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당신이 고생을 좀 당하면 업력을 갚아버릴 수 있고 당신은 진정하게 아름다운 곳으로 갈 수 있으며 영원히 다시 고통을 받지 않게 된다. 당신이 인류사회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생활한다고 느껴지며 당신 집에 억만 원이 있고 당신이 벼슬을 아무리 크게 한다 하여도 몇십 년에 불과함이라, 아주 빨리 지나간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전생(轉生)할 때, 당신은 올 때 빈손이며 갈 때도 빈손이다. 당신이 무엇을 갖고 갈 수 있는가? 당신은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한다. 당신은 누구에게 던져 줄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후대에게 주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당신이 다음 번에 다시 전생(轉生)할 때에 그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므로 당신이 그한테 가서 품팔이를 하고 청소부가 되어도 그는 당신에게 좋은 낯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당신에게 일전 한푼 더 주지 않을 수 있다. 정말로 이러하다! 사람은 바로 이 속에 미혹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의 본질적 도리를 이야기한다. 특히 우리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들이 고통을 당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업신여길 때,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시끄러움을 조성하였을 때, 당신이 어떤 물질 이익을 잃어버렸을 때, 나더러 보라고 한다면 무슨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우주 중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며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당신이 얻고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당신더러 잃게끔 강화(强化)하는바, 이것은 우주의 특성이다.
방대한 우주의 일체 물질은 모두 생명이며 일체 물질은 모두 眞、善、忍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물체이든지, 돌이라든가, 강철이라든가, 공기라든가, 인류가 만들어 낸 어떠한 제품, 물질, 미시적으로 구성된 것은 모두 眞、善、忍 이런 특성으로 구성된 물질이다. 이 방대한 우주는 바로 眞、善、忍으로 구성된 것이며 그가 우주 중의 일체를 균형잡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때리고 사람을 욕하고 사람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조성하였을 때, 자신은 아주 기쁘게 생각하는데 그는 얻은 일방에 속한다. 속인은 그에게, 당신은 정말로 재간이 있다. 괜찮다! 당신은 손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손해를 보아도 대단히 크게 보았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가 좋지 못한 일을 하였을 때, 그는 얻은 일방에 속하며 그가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기에 그는 얻은 셈으로 그는 곧 잃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고통을 얻었기 때문에 그는 행복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렇다면 상대방은 응당 얻어야 한다. 어떻게 얻은 것인가? 당신이 그를 한 방 치고 그를 한 마디 욕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심하게 욕했고 얼마나 심하게 침에 따라 당신 신체 주위로부터 한 덩이의 희고도 흰 상등한 수량의 물질이 날아가게 된다. 이런 물질을 德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에게 주게 되며 상대방의 몸에 떨어지게 된다. 상대방 그 역시 사람인지라 그도 아마 이런 도리를 모를 수 있다. 당신이 나를 쳤지, 하고 화가 나서 야단이다. 그가 화를 낼 때면 그는 이 德을 되돌아 밀어주는 것과 같다. 그가 다시 그에게 맞받아 한 방 치며 그를 한마디 욕할 때 그는 이 德을 또 되돌려 던져준다. 두 사람은 모두 잃지도 않고 얻지도 않았으며 누구도 얻지 못하였다. 우주의 법리(法理)는 공정한 것이다.
만약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마음속으로 내려놓을 수 있으며, 당신이 나를 때리고 당신이 나를 욕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태연하며 나는 아무 일로도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속인이기에 나는 당신과 일반 견식을 할 수 없다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람의 도덕표준은 이미 일반사람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온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그를 때릴 때, 그에게 德을 주는 것이 아닌가? 德이란 이런 물질은 오히려 공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 당신의 공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바로 德이 연화(演化)하여 온 것이고 또한 우주 중에서 채집한 일부 물질과 당신의 德을 가하여 비로소 당신의 공으로 연화(演化)되어 나온다.
당신이 이 德이 없으면 당신은 곧 이 공을 수련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당신을 때릴 때에 그가 그의 德을 당신에게 줌으로써 당신은 德이 증가되어 당신은 또 더 높이 수련할 수도 있는데 이런 도리가 아닌가? 당신이 얻은 것은 이 속인이 당신에게 고통을 만들어 주어 얻은 보상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당신을 때리거나 혹은 당신을 욕하거나 당신에게 어떤 시끄러움을 조성하여 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고통을 당하고 당신은 고통 중에서 당신 자신의 몸에 갖고 있는 업력, 전세(轉世)에 빚진 그런 시꺼먼 물질을 업력이라고 하는데 그것 또한 德으로 전화되며 그것 역시 대응되게 일부분 德을 주게 된다. 한 속인으로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당신이 나에게 고통을 좀 만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두 몫의 보상을 받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하나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네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이 일체를 당했을 때, 당신은 그와 견식을 같이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아주 태연한바, 때려도 맞받아 치지 않고 욕하여도 대꾸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아주 태연할 때,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의 心性은 수련하여 올라온 것이 아닌가? 만약 그가 당신에게 이 시끄러움을 만들어 주지 않고 그가 당신에게 고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이 거기에 편안히 앉아서 찻물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면 수련되어 올라오고 얼마나 높게 되려면 얼마나 높게 되는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고난을 겪는 중에서, 시달림 속에서 당신은 비로소 당신의 그 하나의 마음을 제고할 수 있으며 당신은 비로소 높은 표준,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의 心性이 그와 같지 않았다면 당신의 心性이 수련되어 올라온 것이 아닌가. 당신은 일거삼득(一擧三得)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의 연공인으로서 당신은 층차를 제고하여 하루빨리 원만해야 되잖은가? 당신의 心性이 수련되어 올라왔다면 당신의 공도 올라온 것이 아닌가? 긍정적이다! 이런 하나의 도리가 있다. 즉 心性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얼마나 높다고 한다. 이 사람의 心性이 곧 고만큼 높은데 功만 자란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일의 존재가 없으며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어떤 수련하는 사람을 본다면 그의 心性이 나보다도 못한데 어찌하여 그는 공이 있는가? 그가 이 면에는 당신만 못하지만 그는 아마 다른 면에서 당신보다 나을 수 있다. 사람은 수련 중에서 하나의 마음, 하나의 마음씩 제거하는 것이기에 어떤 버리지 못한 마음이 표현되어 나오면 그는 여전히 속인과 같다. 그러나 제거해 버린 마음이 없게 되면 물론 표현해내지 못한다. 한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고통을 받을 때, 당신은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우스개 소리를 한 마디 한다면, 당신은 어디 가서 이런 좋은 일을 찾겠는가?
어떤 사람이 나를 때렸고 나를 욕하였다 하여 자신은 화가 나서 야단이며 마음속으로 격분하여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가 하면, 혹은 다른 사람이 나의 득을 점하고 나의 돈을 벌었는데 그야말로 참지 못하겠다! 라고 한다. 사람은 이런 것을 아주 중하게 여기며 심지어는 파리머리 만한 작은 이익마저도 잃어버릴 수 없어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람은 사는 것이 얼마나 가련한가! 그는 공짜를 조금 얻으면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하고 있는데 곧 그런 조그마한 공짜를 위해서이다. 사람은 지금 이러하다. 그는 그가 진정으로 잃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데 이는 가장 두려운 것이다!
이 德이 왜 이렇듯 진귀한 것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동양인의 노인들은 모두 德이 있으므로 복이 있다고 말한다. 이 복은 몇 개 면을 포함한다. 즉 큰 벼슬을 하거나, 크게 횡재하거나, 집이 있고 땅이 있거나, 행?뮌? 있는 등등으로서 모두 그 德으로 바꾸어 온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 따라 가며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元神을 따라가고 당신이 전생(轉生)하면 그것은 또 당신이 전생함에 따라간다. 德 뿐만이 아니라 흑색물질, 바로 내가 방금 이야기한 업력, 이런 업력도 사람의 생명을 따라간다. 이 두 가지 물질은 모두 사람을 따라간다. 과거에 노인들이 이야기하기를 나쁜 일을 하면 보응을 받는다고 하였다. 누가 당신을 보응받게 하는가? 누가 당신에게 그 한 몫의 장부를 적어 주는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상관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이 德, 그것은 도리어 당신의 몸에 있으며 그것이 당신에게 단단히 붙어있는 것으로 내세에는 곧 이 德을 보아야 한다. 업력이 많으면 당신의 이 일생은 고생이 많고 병이 많고 재난이 많으며, 德이 많으면 당신 이 일생에 돈이 많고 복이 많으며 벼슬을 크게 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으로서 이 德은 더욱 진귀하다. 그것은 공(功)으로 전화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하나의 도리이다. --- - 96년 시드니 설법 중에서 -
우리 또 일부 수련생은 나에게 이런 말을 물었다. “사람의 생명은 어떻게 온 것입니까?” 내가 물질의 본원(本源)을 말했기 때문에 나도 이 문제를 말하겠다. 여러분은 내가 과학을 말한다고 여기지 말라. 불법(佛法)은 일체를 포함한다. 나는 이전에 물질본원을 말한 적이 있다. 본원은 무엇인가? 나는 줄곧 여러분에게 이 물질의 본원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방금 말한, 이처럼 부동한 큰 천체의 본원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우리 이 천체 내의 부동한 경지 중에 존재하는 물질과 생명의 본원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다.
사실 물질의 본원은 바로 물이다. 우주 본원의 물이지, 속인 지구에 있는 물이 아니다. 왜 물질의 본원, 그것을 물이라고 말하는가. 부동한 층차의 가장 미시적인 물질이 일정한 때가 되면 물질이 없어진다. 물질이 없어진 후에는 물질의 과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보면 곧 하나의 문제를 발견한다. 한 물질 입자의 존재를 볼 수 없는 그 조용하고도 조용한, 통상적으로 나는 그것을 보통 사수(死水)라고 부르며 또 본원이라고 부르는데, 생명이 없는 물임을 발견한다. 당신이 한 덩이 물건을 던져도 그것은 잔잔한 물결의 체현이 있을 수 없으며 소리의 진동도 그로 하여금 파동이 발생하게 할 수 없는바, 완전히 정지되어 있다. 물질의 가장 기본적인 조성은 바로 이런 물에서부터 온다.
어떻게 조성된 것인가? 이 우주 중에는 법이 있다. 이 법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眞•善•忍이며, 이런 우주의 특성이 이 물을 가장 초기적이며 가장 미시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물질의 단일입자로 조성하는데, 그것을 가장 원시입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일한 것이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즉 마치 하나의 수포(水泡)와도 같다. 그럼 다시 두 개의 원시적인 입자를 한데로 합쳐 다시 더 큰 원시입자를 조성하고 그 다음 또 두 세트의 양위일체(兩位一體)의 입자로 좀 더 큰 입자를 합성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조합하여 내려가는데 줄곧 부동한 층차의 입자가 각종 물질의 외형, 생명, 물질, 공기와 생존에 필요한 빛, 물, 시간 등등을 조합하며, 입자는 부동한 조합 방식이 있는 것으로 우리는 오늘날 배열순서라고 부른다.
입자의 배열순서, 그것은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 경지 중의 표면적 물질의 부동함을 구성하였다. 이렇게 끊임없이 미시적인 데에서 거시적인 데로 더욱 큰 입자, 더욱 큰 입자로 조합을 이루어 최후에는 우리 오늘날 인류가 인식하는 중성미자, 쿼크, 전자, 중성자, 원자핵, 원자, 분자로 조합을 이루었다. 우리가 인식하는 표면물질에서부터 더욱 큰 천체에 이르기까지 조성한다. 이 표면물질이 이 일보까지 조합되었을 때 그것의 배열순서의 변화가 다양함으로 말미암아 이 표면물질의 차이는 곧 상당히 크다.
그러나 우리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이 나무, 그것은 분자로 조성된 것이며 이 철, 그것 역시 분자로 조성된 것이고 비닐 역시 분자로 조성된 것이다. 우리 이 공간의 물을 포함하여 그것 역시 더욱 미시적인 물로 더욱 큰 입자로 조합을 이루어 물의 분자를 구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한다. 그것이 기왕 더욱 미시적인 데에서 표면물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면,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전반적으로 우리가 능히 인식할 수 있는 이 우주는 바로 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 물은 밀도가 극히 큰 것이며 근본 움직이지 않는 물, 그것으로 구성된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 고대의 어떤 사람이 신화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어떤 수도인(修道人)이 돌에서도 물을 짜냈다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들어보면 마치 우리 지금 사람의 사유 관념, 지금의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는 당신이 신화(神話)를 이야기하며 아라비안나이트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 물질은 모두 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강철마저도 물을 짜낼 수 있으며 심지어는 물로 녹일 수 있으며 더 단단한 물질의 기본 입자도 모두 물에서 온다. 만약 이 입장에서부터 불법신통을 말한다면, 내 생각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으로, 그는 그렇게 큰 위력이 있으며 그는 능히 그것을 원시 물질로 되돌릴 수 있다. 방금 내가 말한 이런 형식, 그것은 하나의 단계적인 것이며 부동한 대층차 중에 부동한 이런 물이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문제를 발견하였다. 방금 내가 말하였다. 우리 이 물 역시 그 아주 미시적인 그 물로 조성된 더욱 큰 한 층의 입자이며 최후에 물분자로 조성되었고 우리 이 세계의 물로 구성되었다. 그렇다면 그 부동한 층차의 본원적인 물은 또 능히 인류 물질세계보다 더욱 큰 한 층 입자를 조성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런 다음 또 그것의 그 물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내가 방금 말하였다. 내가 이 우주를 말한다면 우주의 최종이 무엇인지를 나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다.
부동한 층차 중에는 부동한 물질의 본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부동한 물질본원의 물이 존재한다. 더욱 위로 올라갈수록 그 물의 밀도는 더욱 크다. 그것은 가히 부동한 공간의 부동한 입자, 부동한 물, 부동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체, 강철, 일체는 모두 우리 이 공간의 생명과 물체이다. 바로 우리가 인식하고 사람이 능히 접촉할 수 있는 생명,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명은 사실 역시 이 물에서 온 것인데, 다만 속인세계의 물일 뿐이다. 우리 가장 표면적이며 그 움직이지 않는 본원의 물로 인류의 이 물을 조합했다. 이 거리는 이미 아주 크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보는 생명물질 역시 이 물로 조성된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채소를 당신이 손으로 그것을 꽉 쥐고 비틀고 비틀면 최후에 아무것도 다 남지 않으며 모두 물이다. 과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과학자는 인체의 70%는 모두 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뼈, 머리카락마저도 모두 물분자로 조성되었음을 여전히 모른다. 다만 이러한 것은 더욱 미시적인 물로 조합된 입자로 구성되었을 뿐으로, 사실은 모두 물이다. 단지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우리 이 물질공간의 일체는 모두 물로 조성된 것이다.
이 미시적인 물질은 능히 표면적으로 부동한 물질을 조성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그 입자의 배열순서가 부동함이 조성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능히 마술(魔術)을 할 수 있다면, 물론 과거에 많은 사람은 마술을 할 줄 알았는데 그 물을 얼음으로 변화시키거나 혹은 하나의 물체를 기타 물체로 변화시켰다.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나 사실 조금도 허황하지 않다. 당신이 만일 그것의 분자배열순서를 바꿀 수 있을 때 그것은 바로 다른 물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질 표면형태 모양을 바꾸는가? 물론 형태 모양은 바꾸기가 더욱 쉬우며 형태 모양이 바뀌기만 하면 곧 다른 물건으로 된다. 층차가 더욱 높은 佛, 道, 神일수록 그는 이러한 위력을 더욱 구비한다.(편집자 주 - 과거 신선이나 도인들의 변신술 원리와 같음)
여러분 알다시피 사람은 몹시 저능(低能)한 것이다. 어떤 정도에까지 저능한가?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완성하려고 한다면, 한 가지 일을 하는데 직접 손발을 움직여야 하며 당신의 육체노동을 거쳐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부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부처는 오로지 사상으로 생각만 하면 된다. 부처는 많은 신통이 있고 많은 공능이 있으며 그 자신은 또 강대한 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의 매 미립은 모두 그 본인의 형상이며 그 미립은 또 더욱더 작은 미립으로 조성된 것으로서 모두 그의 형상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가 척 생각할 때에 그 공은 곧 나간다. 극히 미시적인 데서 모두 그 부동한 층차의 입자의 구조를 바꾸며 시간 또한 가장 빠른 공간의 시간이기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부처가 일을 함은 대단히 빠른 것으로 우리 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일순간에 그는 가장 기초적인 데서부터 그 물체를 다른 물건으로 바꾼다. 이것이 바로 불법신통이 작용을 일으키는 원리이다. 왜 부처는 생각만 해도 그것이 곧 변할 수 있는가. 부처가 생각할 때에 공의 무수한 입자와 무량(無量)한 지혜는 곧바로 각 층차에서 동시에 바꾸며, 전반적인 것도 하고자 하는 일체로 바꾸며, 그의 공의 더욱 큰 과립도 그의 표면을 바꾸고 있다. 그는 그 한 가지 일을 일순간에 변화시키며 일순간에 이루게 한다. 없던 데에서 있는 데까지, 그는 가히 공기 중에 존재하는 분자, 입자로 당신이 능히 볼 수 있는 물체를 조성하는데, 이것이 없던 데에?? 있는 데까지이다. 왜 불법신통은 이처럼 큰 힘이 있는가? 인류의 과학기술은 영원히 이 한 점에 도달할 수 없다.
불법의 힘을 인류는 과학기술 수단을 통하여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중에서 도덕 역시 따라서 승화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사람의 이 과학기술이 발전할 때 모두 아주 강한 집착심을 갖고 한 가지 일을 완성함으로써 또 이 우주의 법리를 위반하였다. 그러므로 心性이 그렇게 높이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또한 많고도 많은 칠정육욕, 각종 집착심, 쟁투심, 질투심, 환희심, 탐욕심 등등이 있다.
만일 정말로 그렇게 높은 과학기술 수단이 있다면 이 우주는 곧바로 성구대전(星球大戰)으로서, 우주대전(宇宙大戰)도 정말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佛, 道, 神은 오히려 허용하지 않으며 절대 사람이 우주를 화란(禍亂)시킬 수 없도록 한다. 그러므로 神이 인류를 제약하고 있다. 인류도덕이 제고되지 않고서는 과학기술 수단이 그처럼 높게 도달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늘 말하였다. 인류는 부동한 역사시기를 거쳐 오늘까지 발전하였다. 다시 말해서 많고도 많은 차례의 인류는 부동한 역사 중에서 겁난을 거쳐 훼멸되었던 것이고 그런 다음 또 새로운 인류가 생겼는데, 이런 부동한 주기적 변화를 거쳐 온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수련계에서는 모두 이런 하나의 상황을 발견하였다. 즉 매번 인류가 위험한 경지에 처했거나 혹은 역사에 의해 도태될 때는 모두 인류도덕이 극단적으로 부패해졌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희랍문화가 여차여차하게 좋다고 하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그러나 지금은 희랍문화 중에서 하나의 문제를 발견하였다. 즉 그 희랍문화가 남겨놓은 문화는 보증하고 희랍문명 그것의 발전의 최후시기에 남겨놓은 것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 동성애도 있고 무슨 성적으로 난잡한 것이 있으며 아울러 생활이 몹시 사치하고 부패하며 몹시 타락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인류가 이미 몹시 부패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것이 소실되었는가? 바로 그것의 도덕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란 오로지 사람의 외형만 있다고 하여 그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 그 귀신, 그것을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가? 그것은 당신에 비해 한 층의 입자가 적을 뿐이다. 왜 그 원숭이, 오랑우탄, 그것을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왜냐하면 사람은 다만 사람의 사지를 구비했을 뿐만 아니라 또 사람의 도덕규범, 도덕관념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의 도덕관념을 잃고 사람의 도덕규범을 잃으며 사람으로서 준칙을 잃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인류사회를 나는 솔직하게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다. 神은 이미 그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래도 사람이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정부가 허용하고 국가가 허용하며 민족이 허용하고 심지어 당신의 이 사상 경지 중에서, 당신의 의식 중에서 당신이 인정하지만 그는 꼭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늘 이 사회를 보라. 마약을 피우고 마약을 판매하며 마약을 제조하고 성을 변화시키며 동성애, 성해방, 마피아가 끝없다. 이기적인 것과 욕망은 사람마다 적으로 대하게끔 하며 정념(正念)이 조금도 없다. 인류사회를 부패시키는 각종 현상은 도처에 다 있다. 각 업종 중의 무슨 현대파 예술, 무슨 재즈음악, 축구장에서 마성(魔性)의 대폭발 등등이다. 전반 사회의 여러 분야를 관통하고 있다.
인심(人心)이 나쁘게 변함은 관념으로 하여금 모두 거꾸로 되는 변화를 발생하게 하였다.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여 사람의 관념은 모두 거꾸로 되었다. 금전(金錢)과 명리(名利)를 강제로 취하고, 투쟁철학을 선양하며 마피아의 우두머리가 우아한 자리에 올라앉았다. 당신들이 말해 보라. 이것이 그래도 사람인가?
나는 지금 그 중학생이 입은 그 바지는 허리띠를 엉덩이에 매고, 아래의 다리와 발에는 한 뭉치 너덜너덜한 것이 마치 창자와도 같은 것을 보았다. 그 허리띠는 또 헐렁헐렁하며 그 머리를 깎은 것이 이 양쪽은 반질반질하게 깎아버리고 위에는 마치 집 처마와도 같다. 또 어떤 것은 중간에 다만 한 줄의 머리카락만 남겨 귀신과도 같지만 그는 보기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는 보기가 좋은가 좋지 않은가? 자세히 되새겨 생각해 보면 그는 어떠한 미(美)적 개념이 없다. 여인은 검은색 복장을 입고 마성적인 머리 양식을 남기고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승[陰間]의 귀신과 똑같다. 바로 사람의 관념이 거꾸로 되었으며 마가 장난침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음침하고 어두운(陰暗) 것을 미로 간주하고 있다.
나는 그날 말하였다. 요마귀괴(妖魔鬼怪)의 장난감은 추악할수록, 흉할수록 더욱 빨리 팔리고 그 예쁜 인형은 누구도 사지 않는다. 사람의 관념은 전부 다 변하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인류의 발전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주기성이 있다. 인류가 이런 일의 발생을 피하려고 한다면 오로지 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사람의 도덕을 수호해야 한다. 여러분이 보았지만 지금 사회문제는 끝없으나 어느 정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다. 민족문제, 국가와 국가의 문제, 민족 사이의 모순, 민족 내부의 모순, 많고도 많은 사회적 범죄, 여러 면의 원인을 어느 정부든지 모두 골치를 앓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다.
왜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들의 방법은 모두 단지 이 현상 중에서 이 현상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현상은 억제되었지만 이어서 그것은 또 더욱 좋지 못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다시 그것을 제약하면 그것은 또 더욱 좋지 못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인류가 제정(制定)한 법률은 바로 기계적으로 사람을 제한하고 사람을 봉폐시키는데 법률을 제정한 사람을 포함한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봉폐하고, 봉폐하고, 봉폐함으로써 최후에는 사람을 봉폐함이 조금의 출로도 없다. 이 법률을 정한 것이 너무나도 많아 사람은 모두 마치 동물처럼 통제되고 있으며 출로가 없는데 누구도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인류의 일체 좋지 않은 근원은 바로 사람의 도덕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에서 착수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어떠한 문제든 다 해결하지 못하며, 만일 이 문제에서부터 착수한다면 인류의 어떠한 문제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 이 문제인가 아닌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매 사람이 모두 내심에서 자신을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요구하며 모두 자신을 단속할 수 있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 사회는 어떠한 모양이겠는가. 무슨 법률이 필요하겠는가? 경찰이 필요하겠는가? 사람은 모두 자신을 단속하며 자신이 자신을 책임진다. 하지만 정치선전과 강제로 통치함은 마찬가지로 도덕으로 하여금 되돌아 승화하게 할 수 없으며 반대로 옹졸하게 만든다.
세계가 오늘날까지 발전하여 여러 사람들은 모두 법치가 아주 좋다고 여긴다. 사실 그것은 방법이 없는 방법이다. 몇천 년을 발전해 온 인류는 과거에 모두 그처럼 많은 법률로 사람을 관할함이 없었다. 다만 간단한 왕법(王法)이 있었으며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은 덕(德)이었다. 그러나 옛사람의 도덕은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고상했다. 지금 사람은 옛사람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데 사실은 당신이 지금 사람의 부패된 관념으로 옛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람은 지금 사람에 비하여 총명하지 않은 것이 조금도 아니다. 사람의 대뇌가 쓸 수 있는 그 부분은 여태껏 모두 확대된 적이 없다. 다만 우리 지금의 사람이 자신을 대단하게 여길 뿐이며 자신이 총명하다고 여길 뿐이다.
사회의 발전도 神이 배치한 것으로서 당신이 이 일보까지 발전됨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현대화된 기계, 현대화된 설비, 현대화된 생활도구가 나타났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겠는가? 다만 신이 아직 그 일보에 배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현대인은 옛사람에 비해 조금도 총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물질이 발전할수록 흔히 사람은 이 물질 현실 속에 더욱 빠지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옛날 사람들은 만들어 내지 못하였는데 우리 현대인은 신선도 따라잡았다.’고 여긴다. 비행기를 타고 어제 유럽에서 미주에 도착하는데 이는 신선과도 같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호한(浩瀚)한 우주 중에 이 일체는 일찍이 있었다. 기타 세계 중에 일찍이 있었다. 사람이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졌으며 인류 여기까지 떨어져 왔고 이 지구로 떨어져 왔다. 사람의 사상 중에는 모두 선천적인 의식이 존재하는데 다만 자신이 모를 뿐이다. 무슨 과학기술 수단을 거치는 것이라든가, 무슨 자신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선진적이라든가, 무슨 비행기라든가,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든가, 무슨 현대화된 물건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다만 당신의 의식 중에 예전의 것이 있었을 뿐이며, 이 쓰레기더미 중에서 당신은 또 쓰레기를 쓰며 가장 표면적인 거친 물질을 또 만들어 내고는 사람이 그래도 괜찮다고 여긴다.
물론 인류는 바로 이렇게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그가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이 한 지경까지 떨어져 온 것이므로, 사람은 고생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발전은 사람 자신이 어떻게 발전하려고 생각한다 하여 곧 어떻게 발전하며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편안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절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위험하다. 이 사람이 겁난(劫難)을 말하고 저 사람이 겁난을 말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런 일을 말하지 않았으며 또 소용도 없다. 있든지 없든지, 나 역시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있다 해도 우리 연공인, 좋은 사람과는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사람이 오늘날까지 발전되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 부딪친 번거로움은 인류로 하여금 출로가 없게 했으며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인류 도덕의 부패로 말미암아 조성된 것임을 확실하게 보았다.
방금 생명의 구성을 말하고 공간을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꾸로 인류를 말한 것이다. 물질로 사람을 구성함은 입자가 부동한 물질로 조합될 때 그것은 능히 사람의 부동한 표면 물질로 조합될 수 있다. 그 분자의 배열순서가 뼈의 입자배열 그러한 표면물질이면 곧 뼈이다. 살[肉]의 분자 배열순서로 배열되었다면 그것은 곧 살이다. 무엇으로 배열되면 그것은 곧 무엇이다. 이는 곧 당신의 생명을 구성할 수 있는데 설명하면 아주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