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의 자제
성경 말씀: 창세기 3:1-11; 마태복음 16:21-28
요약
성령님의 열매로 자제는 개인의 덕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로 보입니다. 개인을 자제하는 이가 자신이면 자제하는 자신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를 자제하는 이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면 함께하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자제하심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인도하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제는 영적 열매로 맺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 자신의 자제가 아닙니다. 아무도 십자가 죽음으로 자신의 덕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아가 아닌 자제
자제는 개인이 추구할 하나의 덕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추구하는 다른 덕에도 자제는 수반됩니다. 자제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덕도 보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방종한 사람이 무슨 덕이든 지닌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으로 자제할 때 자제하는 개인이 세워집니다. 개인이 의지로 스스로 자신을 제어합니다. 자제는 물론 쉽지는 않지만 수련을 통해 증진되게 됩니다. 그것은 개인이 수련으로 성취하기 때문에 자신을 증진하는 덕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제하는 자아가 형성됨으로 덕을 갖춘 사람이 됩니다.
자제는 자아의 고양입니다. 즉 자제함으로 자아가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게 됩니다. 자제로 자아가 덮여지지 않고 정제됩니다. 그러므로 자제는 성숙해지는 자아의 모습입니다. 이 점에서 자아는 덕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열매로 자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아집니다. 그것은 자아의 양도 혹은 폐기를 뜻합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자제가 맺어지면 자아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자아의 성숙이 아닌 자아의 양도를 뜻합니다. 성령님의 열매가 맺어지니 자아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에 의한 인도는 자아의 양도를 수반합니다. 자아가 드러난다면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되지 않습니다. 자아는 언제나 자신의 주인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자아를 지닌 채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자제는 자아의 소진을 뜻합니다. 바울은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합니다(롬 6:6). 그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이전 자아는 죽었다고 합니다. 이 점을 다음 인용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자제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한 자아의 죽음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은 이전 자기중심적인 자아의 죽음을 뜻합니다. 바울이 이전 자아의 죽음이라고 강하게 표현하는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제는 예수님으로 말하여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자제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삶에서 자제가 열매 맺어집니다. 예수님의 자제가 열매 맺어집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자제로 서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어 유혹을 받습니다. 복음에 서사된 예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유혹을 이긴 길로 가신 것을 보입니다. 그 길의 종점은 물론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는 유혹을 이긴 길로 가신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혹을 이김은 자제의 표현입니다. 창조된 사람은 유혹되어 타락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충동으로 빠지게 됩니다. 자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충동에 빠집니다. 유혹은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충동으로 빠지게 합니다.
언약의 자제
예수님의 유혹과 십자가로 자제를 생각할 때 궁극적인 자제는 자기 고양이 아닌 자기 부정을 뜻합니다. 도덕이 자기 고양을 가르치고 종교는 자기 성찰로 해탈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도덕이나 종교는 자아의 고양이나 성찰에 의한 자아 완성으로 이끕니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으로 전개됨으로 자아를 유혹된 것으로 다룹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자아를 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아의 계발로 살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언약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성경에서 다룬 뜻입니다. 성경이 보이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삶이지 지어진 자아의 성향을 따른 삶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창조를 배경으로 사람의 성향의 타락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삶, 곧 언약의 삶에서 볼 때 자아의 삶은 유혹된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는 삶은 세상을 사는 자연적인 삶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삶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삶에서 볼 때 자아의 자연적인 표현은 타락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언약의 삶에서 볼 때 자아는 자제되어야 합니다. 자아가 드러나면 날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순종은 자아가 아닌 자제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자아가 아닌 자제로 서사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자아의 죽음은 예수님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님의 자아가 아닌 자제가 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삶을 서사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아가 아닌 자제로 서사됩니다. 성경에서 자제는 자아의 자제가 아닌 말씀으로 자제입니다. 즉 자아의 자제가 아닌 순종의 자제입니다. 순종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이듯이 자아의 죽음입니다.
자아의 죽음은 구약의 율법에서 보일 수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결과적으로 자아의 성취를 보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는 율법으로 정제된 자아를 보입니다. 즉 율법은 율법으로 다듬어진 자아의 실현을 보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순종을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을 도덕이나 종교로 풀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경은 자제를 보이지만 도덕이나 종교는 자아를 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출발하지만 도덕이나 종교는 개인의 성향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루어짐은 자제로 보이지만 개인의 성향은 자아의 고양이나 성찰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이 지킨다고 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같이 됩니다. 이 점은 구약의 율법에서 보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려고 할 때 일반적인 세상의 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법을 지키는 것은 자아의 성취입니다.
영적으로 인도된 자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지켜야 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유혹되기 쉽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지켜야 할 바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말씀의 이루어짐보다 지키는 그들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루어짐과 사람이 그 말씀을 지킴으로 보이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루어짐에는 사람의 성향이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에는 당사자의 성향이 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 보다 사람이 한 것이 되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 본위로 가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이 무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자신이 무얼 해야 된다고 여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과 무관해진다고 여깁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루심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람이 스스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열매로 맺어집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자제를 말하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 자아를 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더라도 성령님은 그분 말씀을 열매로 맺습니다. 자아가 아닌 자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복음서를 예수님이 하신 것으로 읽으려고 하기에 문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자신이 하려고 하기에 문제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으로 이루어진 것을 서사합니다. 예수님의 자제가 서사됩니다. 예수님의 유혹됨에서 십자가 죽음 사이에 이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자제이지 자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자제는 하나님과 함께를 뜻합니다. 그래서 자제된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서사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은 자제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로 서사됩니다. 복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제되어 읽어져야 합니다.
복음은 자제되게 읽어져야 합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진 자제로 읽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제가 자제되어 읽어짐으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됩니다.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된 예수님은 자제된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아에 고정된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시각으로 자아의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능을 생각합니다. 권능을 지닌 예수님이시지만 유혹을 이기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혹을 이기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자아를 그립니다.
예수님을 자아의 모델로 세우는 한 종교적인 예수님이지 언약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자신이 따라야 할 롤 모델로 세우는 한 예수님은 종교의 창시자일 뿐입니다.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유혹에 언제나 빠져듭니다. 자신의 훌륭한 모습을 그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엔 자아가 아닌 자제가 수반됩니다. 언약의 삶은 자아가 아닌 자제로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열매로 자제가 맺어짐으로 언약의 삶은 열리게 됩니다. 자제의 열매로 언약의 삶은 번성합니다. 자아는 열매일 수 없습니다. 존속과 소멸로 특징지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은 세상을 자아로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저희는 자제로 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예수님께서 자제로 아버지와 함께하셨습니다.
십자가로 가시며 아버지와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제로 세상의 자아를 극복하게 하옵소서.
자제를 아버지의 영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