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남 소망의 집' 내달 적용
획일적 복장·머리모양 금지
사생활 최대한 보장 명문화
위원회 설치 침해여부 감독
“수용 장애인 10분의 1 이상이 똑같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옷 입는 것 하나도 인권의 잣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한 민간 정신지체장애인 수용시설이 장애인시설 가운데 처음으로 ‘장애인 인권 규정’을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교남 소망의 집’(원장 황규인)은 12일 “지난 3월부터 장애인들을 직접 보살피는 생활교사들과 변호사가 공동 작업해 ‘교남인권규정’을 만들었다”며 “장애인단체들의 의견을 들어 최종안을 확정한 뒤 이르면 10월부터 적용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교남인권규정은 유엔인권규약의 틀을 따라 주거·종교는 물론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수용 장애인이 개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자유권’과 노동·참정·정보접근권 등 사회생활에서 누려야 할 ‘사회권’으로 나눠 설계됐다. 특히 추상적인 인권선언에 그치지 않고 집단생활에서 무시되기 쉬운 ‘생활 인권’을 꼼꼼히 짚어내, 장애인 정책 전문가들로부터 “실제 적용이 가능한 장애인 인권 매뉴얼의 모범”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인권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획일적인 의복 착용과 머리 모양을 금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류회사 등에서 기부받은 (똑같은) 옷을 한꺼번에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으로 명문화했으며, 10분의 1 이상이 같은 옷을 입지 못한다는 조항도 두었다. 머리를 깎을 때는 1차적으로 외부 시설을 이용하도록 했다.
장애인들의 목욕 장면이 타인에게 노출돼서는 안 되며, 성생활 보장을 위해 사적 공간을 확보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도 생겼다. 격리 조처 등 신체적 제약이 필요한 경우에도 반드시 의료진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배려도 세심하다. 소망의 집은 인권규정에 따라 “입소 전 장애인에게 소망의 집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반드시 공지”해야 하며 장애인이 종교활동을 거부할 때 이를 강요할 수 없다. 이밖에 △선거 때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 강요 금지 △선거교육 및 투표지원 △정보매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등을 규정했다.
이와 함께 생활교사들과 외부인사로 구성된 기관장 직속의 ‘교남 장애인 인권보장위원회’가 설치돼 매년 인권 실태조사를 벌이고, 침해 사실이 발견될 경우 기관장에게 행정조처를 권고하게 된다.
교남인권규정이 이처럼 장애인 생활인권 대책을 세심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재단’의 공익변호사 지원 사업으로 파견 나온 염형국 변호사와 소망의 집 생활교사 6명이 지난 3월부터 머리를 싸매고 연구에 매달린 덕분이다. 이들은 다른 기관의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하는 한편 소망의 집에 대한 부문별 인권 실태조사를 벌였고, 19차례에 이르는 회의 끝에 시안을 마련했다.
박숙경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장은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집단생활을 하면 구조적으로 인권침해가 잦을 수밖에 없다”며 “이 인권규정이 다른 장애인시설로도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남 소망의 집은 72명의 정신지체장애인이 살고 있으며, 1998년부터 장애인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그룹홈(공동생활가정)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