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 수산나 멜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 리허설 첫 참관의 설레임
이번 공연은 나에게 두 번의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을 선물했다.
하나는 오후 3시 30분부터 진행된 리허설에서,
또 하나는 저녁 7시 30분 본 공연에서였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직접 참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설렜지만,
막상 연습실 같은 무대 풍경을 마주하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신선한 경험이 펼쳐졌다.
무대에 오른 수산나 멜키 지휘자의 의상이 그녀의 금발과 잘 어울리는 살구색 셔츠에 주홍빛 팬츠를 입고 있었다.
고전적인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가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 가는 한 사람의 예술가처럼 보였다. 🥰😍😸😸
단원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셔츠와 청바지, 샌들, 운동화처럼 편안한 차림으로 악기를 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공연장에서만 보던 서울시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무대 위의 긴장감 대신 자연스러운 일상이 흐르고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도 리허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리허설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연주를 멈추며 부분적으로 맞춰 갈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도 끊지 않고 네 악장을 모두 연주했다.
그 후에야 수산나 멜키가 악장별, 마디별로 연주를 멈추며 하나씩 다듬기 시작했다.
직접 “딴따라라라라~” 하고 선율을 흥얼거리며 원하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특정 악기를 향해 음색과 균형을 설명하며
다시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맞춰 나갔다.
하나의 악기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의 소리로 들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화와 조율이 필요한지를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실 리허설에서 들은 슈베르트 교향곡은 조금 의외였다.
특히 1악장 마지막과 4악장에서
금관의 음색은 마치 물기를 머금은 것처럼 선명하지 않았고,
오케스트라 전체도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다소 산만하게 들렸다.
순간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일까?’
‘공연장 컨디션 때문일까?’
‘아직 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탓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솔직히 낮에 들었을 때는
왜 이 작품이 ‘그레이트(The Great)’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 본 공연은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낮에 다소 거칠게 들리던 금관은
놀라울 만큼 맑고 단단해졌고,
흩어져 있던 소리들은 거대한 하나의 울림으로 모였다.
무엇보다 리허설에서 수산나 멜키 지휘자님이
여러 차례 멈춰 세우며 반복해서 맞추던 부분들이
공연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완성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지휘자의 역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리허설에서는 그저 세세한 수정처럼 보였던 지시들이 공연에서는 거대한 음악의 흐름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 있었다.
오후 내내 반복했던 몇 마디가 저녁 무대에서는 관객에게 감동으로 전달되는 장면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은 저녁 공연만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 음악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보았다.
멈추고,
다시 맞추고,
또 한 번 반복하며
조금씩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 뒤
듣게 된 슈베르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낮에는 ’왜 그레이트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작품이,
저녁이 되자 그 이름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는 교향곡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내가 들은 슈베르트 9번 교향곡은
말 그대로 ‘그레이트’ 그 자체였다.
📖🎶👱🏻♀️카리스마와 절제미를 모두 갖춘 수산나 멜키
수산나 멜키 지휘자의 모습도 이번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상포인트이다.
솔직히 여성 지휘자에게 막연히 부드럽고 섬세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멜키의 지휘는 그런 선입견을 단번에 깨뜨렸다.
동작 하나하나는 우아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단호하게 끊어 주었고,
음악의 흐름을 밀어붙여야 할 때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한순간에 앞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절제된 몸짓 안에서도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고,
리허설에서 보여 준 세심한 지도와 공연에서 보여 준 압도적인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직접 만난 여성 지휘자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얀 첸 지휘자님은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스타일이었다면,
여자경 지휘자님은 단정하면서도 힘 있고 절도있는 지휘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수산나 멜키 지휘자님은 절제된 움직임 속에서 음악을 단단하게 조립해 나가는 지휘자였다.
같은 여성 지휘자라고 해서 스타일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편견이었다.
심지어 팜플렛의 사진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우셨다~~
(사진을 다시 찍으셔야할 듯…🤭😄)
✨🎻🎶 “그레이트”를 완성한 네 개의 풍경
✔️ 빛이 번지는 여행의 시간
9번 교향곡은 호른의 흔들림 없는 도입으로 1악장을 시작했다.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호른의 울림은 단단하면서도 따뜻했고,
그 위로 현악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갔다.
과장된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부드러운 호흡으로 점점 넓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해 질 무렵 다뉴브강 위를 따라 천천히 번져 가는 물결처럼, 여유롭지만 거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하는 시작이었다.
✔️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마음의 대화
2악장은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들려주는 주제가 특히나 아름다웠다.
오보에의 맑고 선명한 음색도 매력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클라리넷이 이어받는 순간이 더 마음에 남았다.
대나무를 울리는 듯한 따뜻하고 깊은 음색이
2악장의 선율에 한층 더 인간적인 온기를 더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 위를 현악기와 금관, 팀파니가 빈틈없이 감싸며 하나의 거대한 울림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교향곡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가장 크게 살아났다.
✔️ 모두가 함께 춤추는 스케르초
3악장의 스케르초는 첫 음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첫 음이 시작되자마자 자연스럽게 머리를 끄덕이며 박자를 따라할만큼 경쾌했고 활력이 넘쳤다.
경쾌한 리듬 위로 선율이 하나둘 쌓여 갈수록
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의 무도회 장면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주인공이 노래를 시작하면 무대 위 모든 인물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하나의 축제를 만들어 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각 악기가 저마다의 역할을 맡아 풍성한 무대를 완성하는 모습이야말로 스케르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 ‘그레이트’를 완성한 마지막 질주
그리고 4악장.
이 악장에서는 모든 악기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듯한 추진력이 압권이었다.
어느 한 파트도 튀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고, 서로 다른 악기들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웅장한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중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놀이 노래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를
연상시키는 리듬이 잠깐 들려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 속에서 이런 친숙한 인상을 발견하는 것도 공연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우아함과 경쾌함, 부드러움과 웅장함.
이처럼 서로 다른 매력을 하나의 작품 안에서 모두 보여 준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은
왜 이 작품이 ‘그레이트(The Great)’라고 불리는지를 충분히 납득하게 만든 연주였다.
** 리허설 참관의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