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방송작가가 꿈인 스물 아홉살 꿈 많은 노총각이다. 내가 은행일을 때려 치우고
작가학원을 등록한 지 백일이 지났다. 아직 나에게 빛이 보이지는 않지만 창작활동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하루가 힘들지만 무료하지는 않다.
4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고 짤리는 대가로 받은 1300만원, 그리고 그 동안 모은 돈
700만원. 이 돈으로 내가 꿈 꿀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이년이다. 이년 안에 내 꿈을
이룰 수 없다면, 나는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고 예전처럼 내 시간은 어디에 있는지
하늘도 못 본 채 이름 없는 어느 회사에 몸을 받쳐야 한다. 학원비 30만원이 달이 바
뀔때마다 나간다. 하숙비가 또 35만원씩 꼬박 나간다. 한 달에 버는 돈 없이 100만원
가까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난 하숙을 한다. 둘이서 쓰는 방을 구하려고 생각을 했었지만 아무래도 창작활동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독방을 쓴다. 두 평 가까운 독방이다.
아직 난 구성작가 단계이다. 언제쯤 버젓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
제는 새벽까지 에이포지 열장 가까이 되는 작은 글을 썼다. 오늘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아침 해가 유난히 밝다. 또 늦잠을 잔 모양이다. 오늘 아침은 짤없이 백수와 같이
밥을 먹어야 겠구나. 오늘은 또 무슨 소릴 지껄이는 지 내 두고 볼 것이다.
"쾅. 쾅!"
참 방문 노크하는 소리 대단하다. 저런 걸 딸이라고 낳은 하숙집 아줌마가 불쌍하
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하숙집 아줌마 환갑이 내년 인 오십대 후반의 아줌마다. 딸
만 둘을 가진 과부시다. 큰딸과 작은딸의 나이 차가 9살이나 난다. 큰딸과 작은 딸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십 년 전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큰딸은
시집을 갔다. 먼 나라로. 바깥 분도 사 년 전에 환갑 잔치를 하고 몇 개월 뒤 심장
질환으로 삶을 달리 하셨다고 들었다. 하숙 치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친
척도 없고 피붙이라고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작은딸이 전부다. 그런데 하숙집 아줌
마 요즘 고혈압으로 고통을 받고 계시다. 간혹 병원을 가시면 이 집 딸이 밥을 해주
는데 그러면 하숙생들은 대부분 중국집에 전화를 하거나 다이어트 한다는 핑계를 대
곤 한다.
"백수씨. 밥 안 먹어요?"
"일어 났어요."
제발 문은 열지는 말기를... 나 이집 딸에게 못 볼 꼴 많이 당했다. 팬티만 입고
있는데 그녀가 문을 연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처음엔 좀 놀라는 척을 하더니 요즘은
그냥 멀뚱한 표정으로 한 참을 쳐다 본다. 난 지금 반바지 같은 드렁크 팬티를 입고
있다.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이불위에 앉아 있는데 그녀가 또 문을 열었다. 왜 잠그
는 장치가 고장이 난겨.
"그 문 좀 홱 열지 말아요."
"빨리 나오면 이런 일 없잖아요. 다들 먹고 학교 갔는데 백수씨만 남았어요. 빨
리 나와요."
그녀는 날 항상 백수라 부른다. 백수인 것이 사실이라서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
다. 자기도 백수이면서... 집에서 추리닝을 껴 입고는 방을 나갔다. 널찍한 주방의
식탁엔 아침에 학생들이 먹고 간 반찬 그릇들이 어지러히 놓여있다. 저걸 먹기가 그렇
다. 난 저걸 먹지 않는다. 우리 하숙집 백수 아가씨가 마음에 드는 한가지가 내 상을
따로 차려 준다는 것이다. 물론 날 위한 것은 아니다. 자길 위해서 차린 밥상에 난
밥하고 숟가락을 챙겨 가지고 눈치보며 아침식사를 한다.
그녀는 아주 고고한 척 하는 게 취미인 여자다. 하숙집 아줌마와도 같이 먹을 때가
많은데 요즘 아줌마는 아침상을 차리고 난 후에 바로 병원을 가신다. 병세가 안 좋아
지시지만 아직 혼자서 병원을 찾으실 정도는 되신다. 오늘 아침도 아줌마는 보이시질
않는다.
"백수씨 좀 일찍 일어나서 학생들하고 같이 좀 식사해요."
아직 치우지 않은 큰 식탁의 아래서 작은 밥상을 떡하니 차려놓고, 그 앞에 양반처
럼 앉아서는 나를 꼬아 보는 눈빛이 무섭다.
"그 백수씨, 백수씨 그러지 말아요. 자기는 백수 아닌감?"
"뭐에요? 난 대기 발령자에요. 백수씨하고는 차원이 틀려요. 밥 먹기 싫어요?"
돈 내고 먹는 밥인데 참 생색을 낸다. 말은 좋다 대기 발령자. 그렇다 그녀는 대기
발령자다. 임용 고시까지 떡하니 합격한 대기 발령자다. 올해로 삼년째 무소식인 대
기 발령자다. 하기야 요즘 생물 선생을 찾는 학교가 몇이나 될까? 내년에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교직원 정년이 단축됐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말이다.
그릇에다 밥을 퍼 가지고 그녀 앞에 앉았다. 밥숟갈은 펐으나 아직 반찬에 손을 못대
고 있다. 그녀가 젓가락질을 하고 난 다음에야 반찬에 손을 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뭘 고민하냐? 아무거나 먹지.'
밥상에 있는 반찬이래야 아침에 학생들 먹고 간 반찬 가지수보다 훨씬 적은데 참
고민도 많이 한다. 숲 속에 혼자 살면 일곱 난장이를 분명히 찾아다닐 것 같은 모습
이다. 드디어 달래 무침에 손이 갔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밥 먹는 속도가 상당히 늦다. 음미하면서 먹기 때문이다. 나야 뭐 배고픈데
그런게 어딨냐? 계속 음미하쇼. 햄 조각은 내 차지다. 그녀는 칼로리가 많은 음식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으... 크억."
트림이 나왔다. 아직 공기의 밥을 반도 못 먹은 그녀 앞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
다. 표정이 심상찮다.
"백수씨? 여자친구 없죠?"
"그래요 없어요."
"여자하고 밥 먹을땐 말이죠. 먹는 속도를 맞추어 줘야 하구요. 또 트림 같은 건
되도록이면 어디 가는 척 일어서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에요. 저러니 백수에다가 솔로
지. 쯔쯧."
참내. 우리집에선 내가 참 귀한 자식인데, 트림을 하던 배를 긁던 아무말 않던데..
.집 나와서 설움 참 많이 받는다.
'야이 이뇬아. 나에게 너하고 나이 같은 여동생이 있다. 내 동생이었으면 넌 벌
써 맞아 죽었다. 씨.'
"잘 먹었습니다."
"늦게 일어났으니까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씻어 놓고 가세요."
"학생들 그릇도 아직 안 씻었잖아요?"
괜히 따져 보는 것이지요. 항상 제 밥그릇은 제가 씻지요. 괜히 게기는 겁니다.
"이제 늦잠 자면 밥 없어요?"
"왜 나만 갖고 그러세요?"
"우리집 하숙 친 이후로 백수는 동엽씨가 처음이에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무이에요?"
"딴 이유가 필요해요? 그럼 만들죠 뭐."
"됐어요. 내가 아예 학생들 먹은 것 까지 다 설거지 할게요."
"그러세요. 그럼 난 음악을 들으며 커피나 한 잔 할까? 커피 한잔 할래요?"
"싫어요."
~~안냐세여.'지후의 사랑이야기'의 저자 지후임다^^
그 동안 많이도 쌓여있네여..야기들이..
읽느라고 혼났네.
이제 또 얼마만큼 야기들이 모여서 다시 보내려구해여.
많이들 읽으시고 행복한 하루되시길...
수비여러분과 이번에 들어온 14기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지후가 보냅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