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성당은 성목요일 전례에 영성체 후 묵상곡으로 <기억하라>를 거의 매년 부릅니다.
올해도 전례를 위해 연습을 또 시작했구요. 유튜브에서 영어연주를 우연히 들었는데요,
아름다운 연주라서 자꾸 듣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4CCXo8vIiQw
그런데 영어가사(원가사)가 우리말 가사와 느낌이 왠지 좀 다른 것 같아서 좀 찬찬히 살피게 되었습니다.
.영어 원가사는 이렇습니다.
In the night in which our Savior was betrayed
He broke the bread and to His friends
He said: "Take and eat, this is my body given for you
Take and drink, this blood of mine is shed for you
Do this always to remember me Remember me.“
In the night in which our Savior was denied
He bowed His Head and to the Father cried:
"If it be Your will let this cup pass from me
If it be your will, spare me this agony
In my darkest hour will you remember me? Remember me."
In the night in which my deepest doubt are known
You come to me and I am not alone
When I taste your blood and body given for me
When I hear your prayer in dark Gethsemane
Then I know you will remember me. Remember me.
O Lord, remember me. Remember me
영어 원가사를 직역에 가깝께 해석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 배신당하신 밤에
주님은 빵을 떼어 벗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네
“너희를 위해 내어주는 내 몸을 받아 먹으라.
너희를 위해 흘릴 내 피를 받아 마셔라.
항상 이를 행하며 나를 기억하라. 나를 기억하라”
우리 구세주께서 거절당하신 밤에
주님은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께 울부짖으셨네.
“당신의 뜻이라면 이 잔이 제게서 멀어지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라면 제게서 이 고통을 덜어주소서.
제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저를 기억해 주시렵니까? 저를 기억해 주소서”
나의 가장 깊은 의심이 알려진 밤에
당신이 제게 오셔서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제가 당신이 주신 살과 피를 맛보았을 때
제가 캄캄한 게세마니의 당신 기도를 들었을 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기억해 주시리라는 것을요. 저를 기억해 주시리라는 것을요.
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소서.
저를 기억해 주소서.
우리가 많이 부르는 곡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팔리시던 밤에
제자들 불러 모으시고
떡을 떼어 저들에게 주시고
잔을 채워 저들에게 (나눠) 주시며
나의 몸과 나의 피니
기억하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괴롬에 싸여 기도하셨네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
이 고통 거두어 주소서
나의 아버지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의심과 고뇌에 빠진 밤에
내 맘에 주님 찾아오셔서
주의 몸과 피를 내게 주시며
겟세마니 기도 들려 주시니
주가 항상 함께 하심을 기억하라
주를 기억하라 기억하라.
영어가사와 우리가사를 비교해보니 핵심은 같았지만
제 맘에 와닿는 느낌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가사가 더 좋았고, 우리말 가사에서 느끼지 못한 쩌릿쩌릿함을 느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편의상 1, 2,3절로 부르겠습니다)
우선, 우리말 가사에는 ‘기억하라’가 1절은 사도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3절은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또는 교회의 가르침)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2절에는 '들으소서'라는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 기도로 나옵니다.
반면 영어가사는 ‘remember me’가 모든 절에 일관되게 나옵니다. 그리고 1절에서는 사도들에게 주신 예수님 말씀, 2절에서는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 3절에는 변화한 ‘나’의 신앙고백과 청원으로 변주되고 고양됩니다.
또한, 영어가사 3절에서는 ‘나’의 고백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의심과 외로움의 시간 속에 있던 ‘나’가 주님께 기억되기를 갈망하는 믿음의 ‘나’로 변화합니다. 그 계기는 내가 주님의 살과 피를 맛보고, 게쎄마니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나의 간절함과 연결됨을 깨달으면서입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날 기억해 주실 것을 믿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나를 기억해 달라고 더 간절히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당신의 성사를 기억하라고 간절히 말씀하셨 듯이, 또 고통의 시간에 아버지께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셨 듯이, 똑같이 'remember me'하면서 주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영어가사를 새기면서 짜릿한 전율을 느낀 이유는 아마도 이 노래가 저 멀리 누군가의 노래가 아니라 바로 나의 노래로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의 제가 노래 속 '나'만큼 믿음이 굳건하게 변화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아직 그렇지 못하지만, 이 노랫말을 통해서 예수님과 나의 존재가 어떻게 유의미하게 연결되는지 느끼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통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처럼 나의 고통의 시간도 헛되지 않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지금의 나처럼 고통스럽고 외로우셨음을 상기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큰 고통과 고독을 겪으신 주님께서 이런 처지의 나를, 우리를 기억하지 않으실리 없다는 밀알만한 소박한 믿음을 더듬어 움켜잡게 된 것입니다.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늘 듣던 교리 말씀이 담긴 듯 익숙하기만 했던 어떤 찬양이 어느날 문득 죽비처럼 서늘하게 신앙의 굳은 살을 무겁게 타격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 깨어나 주님을 향해서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의심의 밤을 해매며 비몽사몽 하던 제가 말이지요...
영어가사의 뜻이 명확히 살아있는 번역을 시도해 보았으나 제겐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 가사를 번역하신 분도 고민을 많이 하셨지만 우리말 공대법과 운율을 고려하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물론 이미 충실하고 아름다운 번역임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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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생각이라 망설였지만 그래도 나누고 싶어 올려봅니다♡
<글쓴이 바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