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폐회원 여러분!!!
이 시간은 항상 쉬어가는 코너......오늘도 재미있는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 할 시간이 돌아왔군요
오늘은 강의에 앞서 잠시 시국에 관해서.......
요즘 "국정원" 에서 큰거 한 건 했죠 ? !
중국,일본,미국에서도 알지 못하는 것을......대박 !!!
그런데도 종북주의자들, 쉽게말해 빨갱이들은 국정원 해산하라고 ?
거기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미, 일, 중 세계 경제 1,2,3 등 국가간에 영공을 두고 국력경쟁이 심각하지 않습니까 ? 그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이어도" 는 물론 심지어 "마라도" "홍도"까지 방공식별 구역을 침범 당하였는데도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무얼하고 있습니까 ?
이에 대처할 논의는 고사하고~ 이외 부동산 활성화 대책 법안,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 산적해 있는 각종 처리 할 법률안 은 그대로 두고~ 국정원 댓글에만 매달려 국정원 해산하라느니, 국정원 개혁하라느니, 국정원 특검하라느니 하면서....세월만 낚고 있으니.........
도대체 세계 어느나라에서 국회 본연의 업무인 입법활동은 하지 않고, 년중 싸움질만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그 비싼 국민의 혈세인 세비를 주고 있습니까 ?
그리고 이건 내 개인 생각입니다만~ 지금의 국회의원 수를 한 100명 줄여서 200명으로 하여도 입법활동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지않을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하도 답답하여 강의에 앞서 잠시 푸념아닌 푸념을 해 보았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전편에 이어 바로 2부를 기술토록 하겠습니다
이 때 서울을 점령한 이괄은 과연 정충신의 예견대로 더 남쪽으로 추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조의 열째 아들 흥안군을 세워 왕위에 앉히고, 조정이라는 명색을 갖추기 위하여, 실세한 벼슬아치와 그의 친구들을 불러 각기 한 자리씩 맡기었다. 그리고는 심지어 과거령까지 내리어 선비들을 뽑아 썻다
그가 그런 일을 하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정충신은 이미 그의 계략대로 서문 밖 안재를 취해버렸다. 이괄은 이 소식을 듣자 대경실색하였다.
"도원수 장만쯤은 가소로운 존재이지만, 만약 정충신이라면 이는 강적이다. 그가 만일 북산에 웅거한다면 우리 편은 낮은 지대에 있게 되니 심히 불리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북산에 웅거하자. 그리고 나서 파주의 장만을 깨뜨린다면 정충신도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는 황급히 군사를 소집하였는데, 그 때 어떤 군교가 달려 와서 이미 안재에 관군이 올랐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괄이 대경하여 바라보니 과연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으나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저편 군사가 얼마 안 되니 일제히 돌격하여 탈환하자." 그의 이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 수천 명과 3백명의 왜병들은 일제히 안재로 공격해 올라갔다.
마침 동남풍이 불어 이괄의 군에게 크게 이로웠으므로 선봉을 담당한 왜병들은 일제히 조총 사격을 맹렬히 가하였다. 그리하여 관군의 진지를 강타하자, 관군 중에서는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는 자들까지 있었다. 정충신은 대노하여 남이홍을 시켜 물러선자 몇 명을 목베게 한 다음, 친히 칼을 잡고 기를 휘두르며 독전하였다. 격렬한 싸움이 묘시부터 오시까지 계속되었으나 승패는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시가 넘어서자 바람이 북풍으로 변하여 모래와 티끝이 이괄의 진으로 날리어 전세가 크게 불리하게 되었을 때, 정충신은 군사를 시켜 매운재 여러 섬에 고추가루를 섞어 뿌리게 하니, 눈코를 뜰 수 없는 이괄의 군사는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정충신이 거느린 군사들은 돌격을 감행하였다. 이괄의 군대는 그래도 잘 싸워 물러서지 않았는데, 이 때 별안간 뒤편에서 꽹과리와 징 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이괄이 패하였다." 하는 소리가 산천이 진동하도록 울려왔다. 이에 사기가 저하된 이괄의 군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이것은 정충신이 계교를 써서 남이홍으로 하여금 적군의 후방으로 돌아가 꽹과리와 징을 치며 이괄이 패하였다고 소리치게 한 것이었다. 속담에, "장만이 불만이요, 이괄이 꽹과리다." 함은, 장만은 이 때 파주에 유진하여 불만하고 있었고, 이괄은 꽹과리 소리로 대패하여 그만 목숨까지 읽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충신의 군에게 산산히 분쇄된 이괄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도망하여 성중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성 위에서 싸움을 관망하던 백성들이 그가 대패함을 보고 성군 작당하여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다. 이괄은 하는 수 없이 초라한 군대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 도망하였다. 남이홍이 그것을 보고 군사를 몰아 쫓으려 하였으나, 정충신은 그를 만류하였다. "궁한 도적이 어디까지 가리까. 내버려 두어도 스스로 깨어져 목을 들고 오는 자가 나타나리다. 이제 저 하잘 것 없는 몇 명을 잡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여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느니 도성 안에 들어가 백성을 안도케 하고 뒷수습이나 하십시다." 그리하여 두 장수는 성안으로 들어가 군사를 광통교에 포진하여 백성을 안심시키고 있었는데, 과연 정충신의 말은 적중하였다. 패군의 장수가 되어 달아나는 이괄의 뒤를 따르던 군사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여, 이천에 이르러서는 여섯 사람 밖에는 남지 않았다. 괄과 한명련, 기익현, 이수백 그리고 군졸 두명, 이들은 익헌과 은밀히 상의하기를 살기는 살아야 한다..... 어쩌고 쑥덕거렸다. 그리고는 그날 밤 이괄과 명련이 잠든 틈을 타서 그들을 배반하고 목을 베었다. 이리하여 잠시 일대의 영웅으로 팔도를 뒤흔들었던 용장 이괄은 부하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마치었다.
이 때 공주 행재소에 전좌하고 있던 인조는 이괄을 격파하였다는 정충신의 첩서를 받고 크게 기꺼워하던 차인데, 또 수백과 익헌이 군복에 싼 괄의 머리를 가져와 바쳤다. 그리하여 두 수급을 검증한 다음 팔도 각 고을로 돌리게 하고 익헌과 수백의 죄는 용서하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급박했던 이괄의 난리는 평정되고 인조는 다시 환도 하였다
이괄의 난이 비록 단시일에 끝나기는 하였지만, 그 질풍신뢰와같은 행군과 수도의 점령, 국왕의 몽진 등 실로 근세 조선 개국이애 일찌기 볼 수 없었던 큰 내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