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선사박물관을 혼자서 둘러본 뒤, 박물관 밖으로 나온다. 현관 밖에는 낯익은 놀이판이 보인다.
어릴 적 놀던 놀이들 사방치기, 8자놀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일제시 이름 '가이센'
민속놀이 속에 우리의 말과 얼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며 박물관 뒷쪽 언덕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돌아서니 웬 목달동에서 옮겨온 문인석 안내판과 문인석외 몇 점이 보인다.
저승에서도 살아있을 때처럼 이승의 판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 - - - -
은구비공원에 올라서니, 왼편으로, 바로 대전선사박물관 뒤켠쪽으로 선사시대 움집 터들이 나타난다.
사진부터 찍고 둘러본다.
안내표석을 들여다 보면서 이해해간다.
대전 상대동 중동골 양촌 유적 5호 주거지 :
안내 표석이다. (상대동은 유성구 상대동일테이고, 上垈(상대)는 장터 윗쪽 마을이라는 뜻일텐데.. )
청동기 시대.해발 76m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것이란다.
거기서 발굴된 주거지를 옮겨 놓은 모양이다.
또다른 청동기 이른 시기의 주거지 : 관저동 ?9 호 주거지터 보기
화재로 타버린 것 같다는 해석도 보인다.
관저동 8호 주거지 안내 표석 : 역시 청동기 시대 주거지이다.
움집 깊이가 0.6m. . 반 지하식 움집 형태 상당히 큰 규모.대가족이 살았었다는 추정도 해보고,
모계중심 사회였을까? 괜한 상상을 해본다.
대전 원신흥동 유적 주거지와 노지 설평 안내판 보기
발굴 체험 학습장도 보이고...
주거지 실물 모형 보기 : 실물 모형은 이것 한 집뿐이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란다.
예전에 들렸던 송국리 유적,환호와 방책 등 안전 시설들이 잘 드러나있는 주거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 참고)
안내석의 설명을 대충 훑어보고는 움집 내부를 들여다 본다.
가족 형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떻게 살며, 죽으면 또 어떻게 장사지내고,,,
그런 것들이 오늘날까지 어떤 변화를 겪으며 내려 왔을까 ?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의 선조들의 고단했던 모습들..
자연의 기후 변화, 맹수, 온갖 물 것들, 전염병. 외침... 원시 국가의 시작, 성씨의 발생.. 제사 의식...등등..
그 역경을 견디고 내 생명까지 이어져 온 것이 신비스럽기도 하고.
- - - - -
은구비공원 잔디밭을 평화롭게 거니는 모녀 한 쌍에게서 역사의 의미를 덧씌어 본다.
( 갑골문자 등으로 보는 주거 형태 )
: 가 家. 혈 穴. 굴 窟 속에서 그 흔적들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 2025.05.29 카페지기 올림)
( 다음에는 5월 27일(화)에 들른 '(전남 곡성) 동악산 도림사 계곡 나들이' 편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