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맞는 말이라도 우리의 입으로는 말자
삼상 26:9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이 자신의 장인어른인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장면입니다.
이 때 다윗이 사울을 간단히 죽이면 자신과 가족들과 부하들 모두가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아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자신이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으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에 대한 처분의 권리역시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즉 왕을 세우는 일도, 폐하는 일도 전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사울을 죽이는 일을 금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을 철저히 경외하고,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한 때 성령으로 충만했고,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이제는 악인이 되어버린 자‘의 처분역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전부 맡기는 겸손한 모습을 가진 자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가족과 부하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막강한 대적을 죽이고
확실하게 안전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좋은 기회’라고 착각하지 아니하며,
오로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모두 맡기는 지혜를 가진 자였기에
그토록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삼상 26:23
(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오늘날의 문명사회에서는
(전쟁이나 범죄를 제외하면) 상대를 죽이는 일까지는 없지만
판단과 비난과 정죄를 하는 경우는 허다하게 많습니다.
다시 말해 뭇사람들로부터(주변인들로부터) 비난과 정죄와 미움을 받게 되는
‘사회적 죽음’을 상대에게 주는 일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교계에서 예를 들어 본다면
한국을 대표한다는 유명 대형교회 목사의 악한 행태를 본 사람들은
분노를 품은 비난을 하거나 공개적으로 폭로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본 것을 서술하자면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한국의 영적지도자로 불리는 대형교회의 어떤 목사는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할 때 “내가 부유한 강남에서 목회를 했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가난한 동네에서 목회를 하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한다.
따라서 모든 교인은 건축을 위한 작정헌금을 하라.
대출을 받아서라도, 각 가정의 신생아도 빠짐없이 해야 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며 헌금을 강요했고,
성도들은 목사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말에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목사를 나쁘게 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성도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담임목사를 만나면 마치 하나님을 대면한 것처럼
굽실거리며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 목사의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거액의 헌금들은 교회건물 건축과 담임목사의 화려한 생활과
한국기독교총회장 자리를 돈으로 사기 위해
목사들에게 돌린 용도 등으로 쓰였다고 알려졌습니다.
담임목사 전용차량, 1억이 넘는 고급승용차를 운전하는 기사 자리가 공석이 되자
제 아버지는 군대에서 알게 되어 평생 친구가 된 분을 그 자리에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가 고가의 금목걸이를 잃어버린 일이 있는데
그 목사는 새로 온 운전기사를 의심했고,
“지금 순순히 내놓는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며 계속해서 추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운전기사는 자신이 훔치지 않았고, 도둑으로 의심 받으면서는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다며 그만두었습니다.
그 분은 결국 상한 마음을 품고, 크게 실족하여 교회도 그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금목걸이는 목사가 앉던 뒷좌석 시트 사이에서 나중에 발견되었지만
그 일은 유야무야 넘어갔으며, 실족한 그 분이 다시 교회에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목사가 입다가 난로에 가까이 가는 바람에 녹아버려서
옆구리 부분에 흉하게 구멍이 난 고가의 거위털 점퍼는
매주일 새벽부터 누구보다 먼저 교회에 가서
헌신적으로 차량 봉사 등을 하던 제 아버지에게 입으라며 주었고,
자신은 수 십 만원에 달하는 새로운 점퍼를 사 입는 모습도 봤습니다.
(저의 큰아버지가 그 목사와 신학교 동기였기에
동기의 동생을 잘 챙겨준다면서 건넨 구멍 난 점퍼입니다.)
실적(?)이 좋지 않은 부목사, 전도사들은 그 목사로부터 구둣발로 폭행을 당했으며,
장로나 권사 후보로 이름이 올라간 이들 중에 수 백~수 천 만원의 고액 헌금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전도사들, 교구목사들로부터 독촉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고,
가난하여 끝내 헌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이유 없이 후보에서 제외하는 등
돈이 많은 성도와 그 자녀들은 목사로부터 매우 좋은 대우를 받고,
가난한 성도와 그 자녀들은 공손히 인사를 해도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등
대놓고 멸시를 하는 목사가 이끄는 교회였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아들목사에게 세습을 하여 큰 분쟁이 일어났지만
목사를 충직하게 따르는 교인들에 의해 지금도 운영(영업?)되고 있고,
목사는 은퇴하여 부유하게 지내며, 기독교 방송국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고,
교계에서는 여전히 그 목사를 한국의 영적지도자로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요일 4:1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딤전 6:3-5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때 교회를 다닌 적이 있지만
방금 예를 든 것과 같이 목사들과 성도들의 앞뒤가 다른 표리부동의 모습,
변명과 궤변으로 말을 바꾸는 모습,
자신이 분명히 말한 것도 지키지 않으며, 지키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모습,
돈을 가장 사랑하는 모습, 이기적인 모습 등의 기만과 위선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사람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초신자들은 크게 실족하여 신앙을 버릴 확률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마 18:6-7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후배 목사들과 젊은 성도들이 볼 때는
마치 선배들이 싸질러놓은 악취 나는 대변들 때문에
천국복음을 전하여 열매 맺는 사역이 꽉 막혀있고,
이미 오래전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을 잃은 채 심각하게 오염된 모습일 것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고, 사이비와 이단에 빠지며,
목사가 되겠다는 신학생들도 극단적으로 줄어든 원인,
또한 오늘날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비난과 미움을 받는 원인 중 가장 큰 이유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누가 보더라도 신뢰를 크게 잃은 모습이며,
한 때 교회에 다녔었지만 실족하여 떠난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닮을 생각이 없다.”며 비난하는 세상 사람들,
또한 현재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점점 변질되어가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탄하는 사람들은
한국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을 판단하며,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들의 세습, 돈과 건물을 가장 사랑하는 모습,
돈을 숭배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도둑질과 사기/횡령
(예를 들어 자전거를 상습적으로 훔치다가 적발된 목사, 교회재정 횡령,
성도들로부터 유치한 투자금 횡령 등) 불륜, 성폭행, 성매수, 몰카촬영 등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의 입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셔서 설교자로 세우셨고
한 때 사용하신 적이 있지만 지금은 타락해버린 모습,
마치 사울 왕의 일생과 같이 지금은 변질된 모습이라 해도
우리가 심판자 자리에 스스로 올라가 앉아서 그들을 판단하여 비난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이 될 수도 있기에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미입니다.
마 7:18-23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다윗이 보여줬던 모습을 본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감히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고,
그저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심판과 정죄의 주권역시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모습에 머물러 있어야
우리의 영혼에 도움이 된다는 권면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며 판단과 비판을 하여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해도
저와 여러분들의 입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명을 받아 영을 분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역을 하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우리 모두가 심판의 자리에 올라가는 건 분명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 7:1-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저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때부터 청년이 되기까지
어머니를 따라 기도원이나 부흥회에 정말 많이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에 기도원도 많았고,
대부분의 교회에서 평일에도 부흥 집회가 끊이지 않고 진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주 이어지는 구역예배에서도 예배가 끝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어른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었기에
기특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으며 칭찬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도원 집회나 부흥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훌륭한 목사님들도 많았지만
어떤 목사들은 기복주의에 절여져서
기도하면 배우자의 불륜문제,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문제, 취업, 결혼 등
삶의 모든 골치 아픈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질병도 낫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등
여러분들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기도의 능력을 믿고, 오늘 해결된다고 믿으면서 부르짖어라.
헌금을 많이 하면 여러분들의 문제들이 다 사라지고 부유해진다.
담임목사를 정성껏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등
잘못된 설교를 하는 자들도 너무 많았습니다.
(아예 대놓고 말하는 목사들도 있고,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옳은 말들을 늘어놓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결국 이 땅에서 누리고 받는 복을 위한 신앙생활로 귀결시키는
잘못된 설교를 하는 목사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면서 “엄마, 저건 아니지 않아요? 예수님 말씀과 다르잖아요?
듣기가 너무 불편했어요. 저 사람은 목사가 아닌 거 같아요. 오늘은 괜히 온 거 같아요.“하며
판단과 비난과 정죄를 많이도 했습니다.
제가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경훈아, 네 말이 옳다 해도 그걸 네 입으로는 하지 않는 게 좋아.
판단과 정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너한테 안전해.
우리는 저 설교에서 올바른 내용만 취하고, 버릴 건 버리자.“라며 저를 다독이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일을 하는 사역자들,
성도들에게 성경적으로 올바른 길을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 무거운 사명을 맡은 분들은
영분별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되지 않도록 알려야 하는 입장에 있지만
그런 사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굳이 위험하게 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는
중요한 안전의 권면입니다.
바울이 베드로의 위선적인 모습(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오자
자신이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식사를 그만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났던 일)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초대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지도자들인 베드로와 바나바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고, 교회전체를 정화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호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울의 이 공개적 폭로는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워하면서 판단하고, 정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중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촌철살인과 같은 말 한마디,
하지만 마음속에는 그 사람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한 마디의 말이
영적으로 죽어가던 사람을 되살리는 사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듯 예수님께서도 많이 사용하시던 사랑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특정 임무를 받은 사람들은
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여, 무엇보다 사랑의 마음을 품고
이런 종류의 중요한 임무를 해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랑의 충고를 들을 귀가 준비된
겸손한 자에게만 유효합니다.
탐심과 죄와 영적교만에 사로잡힌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마저 무시하는 자들이기에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모습이 없고, 회개하여 돌이키는 일도 없이
오히려 반격을 모색하면서 표독한 증오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자들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특수한 사명을 맡은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모두는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모양새’로
스스로에게 판단과 정죄라는 올무를 씌우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삼상 13:13-14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기에
타락해버린 사울을 죽이지 않는 모습으로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다윗을 보시고
하나님께선 흡족해하시며, 그를 새로운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사울의 타락과는 완전히 별개로
다윗의 마음속 최우선이 바로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순종의 사울은 버리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건 진짜 아닌데... 저건 욕을 먹어도 싸’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모두가 아실 겁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스스로 심판의 자리에 올라가서 앉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함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다윗처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있으십시다.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타락하여 악한 일을 자행해도 나쁘게 말하지 않고,
무조건 옹호만 하는 눈먼 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늘 예민하게 영을 분별하되
문제가 많은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성도든, 목사든
그 누구도 함부로 내가 가진 의로 판단하여 비난/정죄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전부 맡김으로서
우리는 굳이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가진 마음의 생각들을 사람 앞에서 입 밖으로 내는 것과
말하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께만 말씀드리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영혼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구원의 길로 나아가십시다.
눅 6:37-38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누가 봐도 인정되는 마지막 때인 지금,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여 그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다.
말씀에 기록된바 우리가 하는 판단으로
우리도 판단 받게 된다는 두려운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또한 우리도 예수님 없이는
‘행위로선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었던 죄인들’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 앞에선 우리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처럼
크게 다를 바 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이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선
우리 모두가 부끄러운 자범죄를 범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심판의 주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자들이라는 이 명확한 사실을 늘 잊지 않음으로서
겸손히 각자 자신의 모습만을 돌아보며,
자신의 회개할 것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십시다.
그렇게 그저 겸손히, 묵묵히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알아가며, 그 마음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우리가 선택한 길,
예수님을 따라가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십시다.
참고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이 끔직한 결말을 맞이하여 사망했을 때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금식하며, 애도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한 것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함이었습니다.
사울을 장사 해준 자들에 대해선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될 것이라며 축복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그 누구를 대하든지
‘나보다 낫다고 여기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서 안전하게 지내십시다.
‘솔직히 나보다 낫진 않지만 그냥 나보다 낫다고 여겨야지...’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나를 비롯한 각 사람의 모든 것을 아는 분이시고,
반대로 나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피조물이기에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 마음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잔인하게 죽인 장본인이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는 그저 엎드린 채 모두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옳다.‘하며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에 가장 좋다는 지혜의 권면입니다.
빌 2:3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죄인들임을 늘 인지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그저 각자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며,
모든 판단과 정죄는 유일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다 맡기는
다윗이 품었던 지혜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저와 여러분들 모두 각자의 자리를 지키십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해 주실만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하며, 가장 사랑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지키십시다.
롬 14:10-13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각자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서
영적으로 심히 혼탁하고, 타락한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으며,
또한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는 오늘날,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할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지혜를 품고,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다윗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경외하는 태도,
모든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에 전부 맡긴 채
그 누구도 판단/정죄하지 않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의 그 날이 이르면 감사와 기쁨 가운데 축제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벧전 2:1-10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6.04.19.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354장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1.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힘과 정성 다하니 나의 온갖 언행 심사 주를 위한 것일세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바치리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바치리
2. 나의 손과 발을 드려 주의 명령 행하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주만 찬양하겠네
항상 주를 찬송하며 주께 바치오리다 항상 주를 찬송하며 주께 바치오리다
3. 내가 주를 바라보니 나의 영혼 밝아져 십자가를 지신 주만 항상 바라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만 따르오리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만 따르오리다
4. 신기하고 놀랍도다 영광스런 왕의 왕 나를 친구 삼아 주사 편히 쉬게 하시네
주의 날개 아래 숨어 영원 안식 얻겠네 주의 날개 아래 숨어 영원 안식 얻겠네

첫댓글 아멘.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의 존경과 명예를 지킨 다윗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한 자세로 신앙생활에 임하겠습니다.. 어머님의 신앙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비난, 판단할 거리가 참 많은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되어 겸손히 생명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참으로 지혜의 말씀 입니다.
때로는 부부 관계에서도 옳은
말 보다 지혜의 말이 더 중요하다는
상식을 깨닫곤 하는데 오늘 말씀을 다
시한번 명심하여 어린 자녀들을 대할
때라도 옳고 그름을 떠나 실족 여부를
염두에 둔 지혜의 말씀으로 훈계 할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옳은 말보다 지혜의 말이 더 중요하다는 에녹님의 말씀은
우리 가장들이 특히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을 때도 많지만 항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수시로 환기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택을 하십시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앞으로만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