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단상 현대인을 집 없는 인간으로 둔탁하게 규정한 것은 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이때 집이 단순한 주거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현대인은 누구나 철학적인 의미에서. 또한 실제적인 의미에서 집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다. 누구도 머무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집과 고향은 우리가 머물고 사는 곳, 즉 삶이 발화하는 공간이다.
장석주, 풍경의 탄생, p.216.
도리섬은 행정구역상으로 안산시 고잔동에 위치한다. 논 한가운데 마치 섬처럼 생긴 마을로, 비만 오면 질퍽해서 나중에 측량하기 위해 도리 시켰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부쳐진 달동네라고 한다. 변두리 외딴 가난의 섬이었던 도리섬은 난곡이나 봉천동처럼 도시 재개발이란 미명하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마지막 모습을 감췄다. 가난과 설움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달동네는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난개발의 역사를 상처처럼 각인하고 있다. 비록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정을 나누고 살을 부비며 가난의 고통과 어려운 처지를 이겨냈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 달동네였다. 사실 60,70년대만 해도 가난은 지척에 있어 늘 곁에서 보고 만질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80년대에 들어와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옹색하게나마 제 집이라고 여기며 살던 많은 영세민들은 또 다른 변방으로 떠밀려 나갔다.
이민숙은 도리섬에서 가난한 시절의 향수와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궁핍과 간난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가난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재현하고 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늘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이 시절의 가난 또한 따뜻한 기억이자 추억이다. 이민숙은 현실의 부조리를 고지하거나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사진을 바라보지 않기에 가난을 냉엄하게 기록하거나 관찰하지 않는다. 언젠가 거주할 곳을 잃어버릴, 떠도는 자들의 현실에 대한 절망과 상실감을 집의 황폐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집은 그들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삶의 온기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집의 부재는 존재 근원의 뿌리 뽑힘인 것이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세계 내에 ‘던져져’ 있는 인간이다. 던져진다는 말은 자기 세계내에 놓이지 못해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라는 공간은 단지 건축적인 구조물이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실존의 공간이기도 하다. 집은 모태에서 이어진 탯줄을 끊고 삶을 시작하는 시원(始原)의 자리다. 산다는 것은 집 속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사건이다. 집을 매개로 함께 관계하며 존재함이 바로 사는 것이다. 사람이 출생이나 죽음과 같은 실존적 사건을 경험하는 곳도 바로 집이다.(장석주, 풍경의 탄생, p.219.) 가족 간의 유대와 보호, 안주와 휴식과 같은 보편적인 삶은 주거, 집에 거주한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집은 뿌리를 내리고 자기 세계를 이룩하는 곳을 말한다. 그래서 집은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중심적인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이민숙의 도리섬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집을 상실한, 집 없는 인간(der unbehauste Mensch)과 다름없다. 시대의 강압과 횡포에 집을 잃고 떠돌아야 하는 그들의 견디기 어려운 냉혹한 삶을 주관적 감정의 통로를 통해 눈이 시리게 표현하고 있다. 가난에 대한 향수 뒤에 숨겨져 있는, 없는 자의 불안감이 화면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그것은 생존의 근거지인 집을 잃고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함과 자괴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민숙은 도리섬 이야기를 통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에 대한 그녀만의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글 / 김남진(전시 기획자/사진가)
작가 노트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은 가난했던 시절의 시간들입니다.
도리섬은 현재 안산시 고잔동으로 지금은 아파트 숲이지만 십년 전 그곳을 찾았을 때는 가난한 시절의 향수가 배어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도시 개발로 사라질 마을은 술렁임 가운데 심란한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그리움의 조각들은 잃어버린 추억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리울 때마다 찾기를 몇 해 고향인양 푸근함을 느끼게 될 무렵 마을은 사라졌습니다.
개발을 위한 소멸이라지만 마지막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릿했습니다.
언제나 약주가 거나해 계시던 할아버님 친절하게 마을을 안내해 주시던 아저씨 더운 날 냉수 한 사발 떠주시며 반기시던 할머님 감자를 쪄주시던 아주머니 모두 그립습니다.
행여 그 시절이 그리우시다면 제가 가진 사진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