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 하기전에 미리 다녀오기로 한 남도 여행을 저번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용산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익산까지 가면 거기서 친구가 타기로 했었습니다.
KTX가 생긴 이후로 처음 타본 새마을호..
넓은 의자간격이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잠도 자보고, 창밖도 열심히 보고, 한겨레 21도 읽고 했는데도 익산은 쉽게 다가오지 않아 조금 지루했었습니다.
대전역을 조금 지나 고무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 기차는 이내 냄새도 진해지고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급하게 뛰어다니던 승무원들...갑자기 앞차에서 연기가 폴~폴~ 나는게 아니겠습니까?
'어쩌지? 엄마한테 전화해야하나? 친구한테 전화해야하나? 사랑했다고...미안하다고 전화해야하나?'
ㅋㅋ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잠깐 30년 좀 넘은 제 인생을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간이역에 정차한 기차는 앞칸의 제동장치에 문제가 생겨 고치는 중이라는 방송만 내보내고는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익산역에서 대기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내 기차는 다시 출발하더군요.
가다가 갑자기 무슨일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잡지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익산역에 도착해서 친구가 타자마자 우린 짐싸들고 카페칸으로 향했습니다.
뭐...무슨일이 생겨도 친구와 함께하는 기차여행의 즐거움은 누려야죠^^
구례역까지 가는 내내 즐거운 대화를 하며 창밖의 푸르름을 즐겼습니다.
구례역에 도착한 우리들.
(친구의 초상권문제로 사진 조금 잘랐습니다^^;)
역에서 빠져나와 버스를 타야하는데...알 수가 있어야죠..
또...그냥 걸었습니다. 하..하..
다리를 건너가니 버스 정류장이 보였습니다.
이번엔 잘 찾았구나 싶었습니다. 하..하..
한참을 기다려 구례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비는 1000원.
구례 터미널 근처에는 시골대형마트도 있고, 편의점도 있었습니다.
시골대형마트에서 컵라면도 사고, 녹차도 사고, 물도 사고, 맥주도 좀 사고 양손 가득 들고 터미널로 돌아가 화엄사 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물어물어 타게 된 버스. 동네 할머니들이 새로 오르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과 양손을 붙잡고 반갑게 인사 하시는 모습을 보며, 500미터 1키로미터만 떨어져도 저분들에게는 먼 거리라 이렇게 반가우시겠구나..했습니다.
(지도보느라 정신없는 친구, 얼굴이 별로 안나와서 올려 봅니다)
몇년전 여름휴가차 갔다가 우연히 쉬었던 민박집을 기억해 가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전화를 해보니 아주머니는 일터에 계시더군요.
열쇠를 어디다 두셨는지 설명해주시며 들어가 쉬고 있으라고 해주시는데...시골이라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싶어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하지만 더 감동적인건 앞집 아줌마가 뛰어오시더니 문열어주시고 민박집 방들 중에 가장 따뜻한 방을 체크해주시고는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노곤노곤한 방바닥에 앉아 우린 저녁 먹으러 갈 생각도 잊고 수다를 하며 누워서 오후를 보냈습니다.
토요일 아침.
화엄사를 올라가보았습니다.
진입부에 공사를 너무 많이 해놔서 약간 찌푸려졌지만 고색찬연한 각황전은 그대로였습니다.
눈길 두는 곳마다 보물로 가득한 화엄사.
아름다운 것, 특별한 것들을 마치 누가 수집해 놓은 듯한 곳이 화엄사입니다.
각황전은 조선초기까지 올려보고, 오른쪽 탑은 고려시대 유물입니다
각황전은 새로 단청을 하지 않아 너무 아름다운데요, 목재에겐 좋지 않답니다.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로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 석등 중 백미로 꼽는 작품입니다.
천천히 둘러보고는 화엄사의 또 다른 보물, 4사자 석탑을 보러 올라갔습니다.
4사자석탑은 우리나라에 단 두개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대는 통일신라시대이구요, 사자 네마리가 탑신을 받히고 있고 가운데 승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보는 것이 기존 의견이구요, 젊은 학자들에 의해 좀 더 자세하고 참신한 논문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맞은편의 공양하는 승상은 기존 의견에서는 연기조사입니다. 조선 이후 효를 중시하는 문화가 연기조사와 어머니 설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반성에서 새로운 연구의 출발이 시작된 듯합니다.
부끄러워서 좀 자르고...^^; 반만 올려봅니다. ㅋ
화엄사를 돌아나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써 놓은 길을 따라 하동으로 넘어 갔습니다.
화개장터엔 너무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했습니다.
길을 따라 쌍계사까지 가 보았습니다.
여기오면 언제나 생각하지만 시중에 파는 지리산녹차는 아마도...차로 옆의 차밭에서 딴 것이 아닐까...매연먹은...벚꽃피는 계절엔 완전 매연에 쩔게되는...이걸로 만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또한번 해보았습니다.
쌍계사 주차장 앞에는 농아부부가 호떡과 풀빵을 파는 노점이 있습니다.
전에 한번 먹어봤는데 맛이 최고라 이번에도 날름 사 먹었습니다.
하나씩 들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습니다.
쌍계사엔 진감선사대공탑비가 남아있습니다. 통일신라 하대의 학자 최치원이 직접 쓴 비문이 아직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탑비 입니다. 1000년의 세월을 견딘 이 탑비는 언제봐도 대견합니다.
불일폭포까지 가보냐 마냐를 의논하다...좀 춥기도 하고...물도 없을꺼야~ 하고 위안하고는 성보박물관에 가서 작품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쌍계사의 성보박물관은 또 하나의 보물창고 입니다.
조선시대 최고 불화화승의 작품과 그 제자들의 불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감로도 중에 가장 수작도 그 박물관에 걸려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몇가지 얘기해 주며 전시물을 꼼꼼히 보고 있는데 관리하시는 분이 늦었다고 내쫒습니다.ㅠ.ㅜ
마지막 행선지인 남해로 가는 길은 한참을 섬진강을 끼고 갔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강. 이 강마저 망가지면 어쩌나...잠시 시름에 빠져보기도 했습니다.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섬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더 확연한 듯 느껴졌습니다.
고교시절 첫사랑의 아픔을 남해대교 아래 바다에 띄워보낸 제겐 새롭기도, 아릿하기도, 너무 정겹기도 한 섬입니다.
미조항까지 달려가 민박집을 찾아보았습니다.
애써 찾은 작고 아담한 2층집.
여기도 사람이 없어 한참 서있으려니 한 아주머니가 막~ 뛰어오셨습니다.
방을 보여주시며 옆집아줌마와 고스톱 중이었다고 머쓱해하셨습니다.
횟집까지 추천해주시고는 마저하러 달려나가신 아줌마...우리가 준 오만원을 밑천 삼아 많이 따셨기를..ㅋㅋ
횟집에서 회를 뜨는데 우럭 3마리와 도미 한마리 해삼까지해서 5만원 달라고 합니다. 셋이 먹기 많을 듯 했지만 매운탕 끓여먹을 뼈까지 챙겨왔습니다.
마트에 들러 무도 한뿌리 사고, 마늘도 사고, 청양고추도 사고, 소금도 사고 해서 민박집에 돌아와 고추가루 없는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남해 회는 역시 맛있었습니다. 고향이 근처기 때문인지 제 입맛엔 딱 입니다. 좋은 안주와 먹는 맥주도 최고였습니다.
매운탕도 너무 맛있었는데 남은 회랑 해삼까지 넣고 다음날 아침에 해장국으로 먹었는데...잊지 못할 맛이었습니다...
금산 보리암이 마지막 코스였는데 주차장 근처 무렵에는 차가 너무 많아 정체가 심했습니다.
금산으로 올라가는 길.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등산객, 기도객, 우리 같은 여행객....아....정말...조금...힘들었습니다...하..하..
하지만 오르는 길 곳곳에 내려다 보이던 남해바다와, 금산의 아름다운 바위는 가슴을 탁 틔워주기도, 설레게도 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석양과, 아쉬움이 뒤섞여 왠지 조금은 울적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여행을 계획하긴 했지만...또 시간이 언제 갈런지...합니다.
첫댓글 울카페에 마스코트 카노님의글 사진 정갈하고 깔끔한 글솜씨 역씨 작가 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시네요
회원님들이 많이 기다랄것 같네요 글솜씨 여전 하십니다 감사 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번 캄보디아 여행도 어서 노력해서 올리겠습니다~
반가워요 ^^* 역시나.... 반쪽만나온 얼굴 이젠 길가다가도 알아볼수가잇을것도 같네요 얼굴도너무예쁘시고요 어쩜피부도곱고요ㅎㅎㅎ 남도여행 우리고향에갓다오셧네요 어디냐고요 남원임니다 ㅎㅎ. 구례엔 우리고모님 집이있고요 서울에서 학교을 다녔기에 방학이면 구례많이다녓지요 섬진강의 햐얀모래사장 나룻배 은어고기 화엄사 천은사 쌍계사 벗곳길 산수유 하게장터 하동포구 정말아름다운고장입니다 산이좋아 지리산종주 5번정도했지요 남해로해서 금산까지 일주하셨네요 역시 여행하면서 여행후기가 더욱빛을 바라네요 수고많이하셧습니다 그리고 항상감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남원, 구례 너무 아름다운 곳이지요. 지리산 종주는 언젠가 한번은 해봐야 할텐데....
아주 잘 보고갑니다. 우리카페가 습작의 장이 되어 나중에 훌륭한 여행가가 되시는것도 괜찮을것 같네요. 자랑스럽습니다.
미천한 글실력으로 엄한 꿈을 잠깐 꿔봤습니다..^^; 관심있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차와 시골버스...걸으며 이야기하고 사진등을 남기는 여행...차가 있으므로 가려고 하는곳까지 어떻게든 가까이 가서 거기서부터 여행을 느끼다가 시간을 잠깐 보낸후 다시 떠나는 여행으로는 이런 맛을 느낄수가 없었음을...오랜 시간이 지나서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아는만큼 느낀다는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처럼 준비도 해야겠지만 실제로 떠나는 과정 또한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떠날수 있을것 같군요 20여년전처럼......
작년 후반부터 친구랑 이렇게 여행하고 있는데 참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소미산님의 여행도 풍요롭고 행복하시길 바래봅니다.^^
사진 보니 갑자기 등산가고 싶어 지네요.
^^ 힘들지 않은 산으로 내일 다녀오시는게 어떠세요?
제 고향쪽을 다녀오셨군요..남도 화개장터쪽..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참 좋은곳이랍니다...
고향이 참 좋은 곳이네요^^ 몇백미터 안갔는데 사투리가 확~ 달라지는 느낌...참 재밌는 동네인듯합니다^^
키노님의 직업이 뭔지 모르지만...님은 정녕 '자유인'인듯 합니다...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다양하고도 값진 여행의 기록들이 님 만의 소중한 보석으로 항상 함께 자리하길 바랍니다...잘 보고 갑니다
네이버까페에 직업 공개했습니다.^^; 자유인이 되고 싶었고, 어느날 갑자기 내게 떨어진 자유를 지금은 즐기는 중입니다. 좋은 말씀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