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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사순 시기, 유대감을 갖고 사랑의 과제 찾아 나가자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40일간 이어지는 기도와 참회의 기간이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 의미를 가진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에서 준비한 기간이 40일이고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 산으로 가면서 40일 동안 단식했다. 예수님 역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다. 전통적으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사순 시기는 이마에 재를 얹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된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참회와 속죄의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다. 참회와 속죄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5주간 지낸 후 사순 제6주일에 해당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이한다.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주간인 성주간이 시작되는 시기다.
성주간 중 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는 신비를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로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목요일에는 미사의 유일성과 사제직의 일치성을 드러내는 성유 축성 미사와 성체성사 제정을 기념하는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된다. 성금요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집중적으로 기억하며 성사 거행도, 미사 집전도 하지 않는다.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구성된 수난 예식만 거행한다. 성토요일에는 예수님 무덤 옆에 머물러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제대도 벗겨진 상태이고 미사도 없지만, 곧 다가올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마침내 이뤄질 주님 부활을 기다린다. 이날은 1년 중 유일하게 시간전례 외에는 아무런 전례가 없는 날이다. 성토요일 해가 진 후,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성야 예식이 거행된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이러한 성삼일의 특별함을 살리기 위해 사순 시기에서 파스카 성삼일을 제외했다. 따라서 오늘날 사순 시기는 주일을 제외하고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정확히 40일이 아닌 38일이다.
사순 시기 전례의 특징은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기쁨을 노래하는 알렐루야와 대영광송, 사은 찬미가를 바치지 않는다. 제의는 회개를 의미하는 보라색으로 바뀌고, 성인들의 축일도 이 시기에는 삽입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 미사 전례를 통해 신자들에게 신앙을 심화하도록 이끈다.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한다. 또 하느님과 화해하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다시 결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해성사를 자주 보도록 권고한다.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사순 시기 중 모든 금요일에는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고행과 단식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이웃에 대한 자선과 나눔, 수난과 죽음 끝에 위치하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깊이 연결돼 있다.
[기획] ‘재의 수요일’ 의미와 전례
먼지에서 생명으로 가는 그리스도인의 여정 되새겨
2월 22일은 사순 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다. 사순 시기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시기다. 동시에 주님의 부활을 합당한 자세로 맞이하기 위해 죄를 씻고 내면을 정화하는 은혜로운 때다. 사순 시기를 여는 재의 수요일. 이날의 의미는 무엇이며 재의 예식을 거행하는 전례에는 어떤 뜻이 담겼을까.
재의 수요일 기원과 의미
성경에서 재(灰)는 참회를 상징한다. 구약에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자 백성들과 임금이 단식을 선포하며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 3,4 참조) 신약에서 예수님도 죄인들에게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마태 11,21)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유다인들에게는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후 예를 갖춰 참회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를 받아들여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머리에 재를 바르는 일을 참회 예식으로 거행했다. 여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재의 수요일을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순 시기 첫날로 제정했고,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모든 신자가 재의 예식에 참여토록 권고했다.
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재는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된 ‘슬픔’을 상징한다. 물질이 타고 남은 잔재물인 재. 이는 인간이 지은 죄의 잔재로서, 지은 죄에 대한 ‘보속’ 행위도 기억하게 한다. ‘열정’을 뜻하기도 한다. 불로 단련 받아 자신을 모두 태워버린 재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항한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남은 재에는 불순물이 없다. 재를 머리에 얹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빚었던 처음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돼야 한다는 의미도 함축한다.
성 바오로 6세 교황 때, 교회는 재의 수요일에 금식과 금육을 실천하도록 규정했다. 신자들은 이날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야 한다. 금식은 하루 한 끼 식사만 거르면 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금식재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날까지 지킨다. 금식과 금육은 절제와 극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단식과 금육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봉헌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실천 과제도 내포한다.
회개 이끄는 전례 구성
각 본당은 전년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신자들에게 나눠준 나뭇가지(聖枝)를 다시 거둬들여 태우고 재의 예식에 쓸 재를 마련한다. 사제는 재를 축복하고 성수를 뿌린 뒤, 신자들의 이마에 십자 형태로 바르거나 머리 위에 얹는 예식을 거행한다. 이때 신자들은 사제에게서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을 듣는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삶과 죽음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회개를 요청하는 말씀이다.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은 재를 얹는 행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운명, 하느님의 자비를 통한 구원의 필요성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125항) 이처럼 재의 예식은 인간 존재의 허약함을 드러내며 회개를 촉구하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죄보다 더 큰 하느님의 자비를 부각한다.
사제는 재의 수요일부터 통회와 속죄를 나타내는 자색 제의를 입는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인 이날부터는 기쁨을 상징하는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않는다. 말씀 전례는 참회, 단식, 자선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제1독서(요엘 2,12-18)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강조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제2독서(2코린 5,20-6,2)는 성찰과 회심으로 하느님과 화해할 것을 권고한다. 복음(마태 6,1-6.16-18)은 자선과 기도, 단식에 담긴 올바른 정신을 배우도록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재의 수요일 미사에서 “우리의 비참한 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용서를 청하며 먼지에서 생명으로 가는 여정을 거칠 것”을 요청했다.
재의 수요일 전례 참여는 의무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는 우리가 이 회개의 날을 거쳐 엄숙한 마음으로 사순 시기에 들어가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쁘게 기다리도록 초대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36. 미사 해설 - 말씀 전례 (12) 말씀 전례 중 보편지향기도
미사는 하느님 백성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동시에, 하느님 백성들이 하느님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나아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신앙고백 이후에 이어지는 보편지향기도는 말 그대로 보편적인 선을 지향하며,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 시간입니다. 보편지향기도는 모든 이의 지향을 모아 특별한 기도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이가 함께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보편지향기도를 바치는 이들은 독서자들과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보편교회에서 보편지향기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 때 받은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하느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9항)이라고 정의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기도로 응답”(전례헌장 33항)함으로써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라고 설명합니다. 보편지향기도는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이 필요한 곳을 함께 살펴보고, 간절히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말씀 전례를 마무리하면서 성찬 전례를 연결해주는 보편지향기도는 인류구원을 위한 예비 봉헌이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바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공동체의 이름으로 결합되어 일치된 하느님 백성의 모습을 드러내주는 것이 보편
지향기도의 목적입니다.
보편교회는 보편지향기도의 지향방식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만, 기도문은 공동체에서 준비해서 바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즉, 보편지향기도의 지향 방식은 4가지(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0항)로 봉헌되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1) 교회 2) 위정자와 온 세상의 구원 3)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이들 4) 지역 공동체
우리가 보는 매일미사 책, “보편지향기도” 옆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내용처럼 보편지향기도는 신학적인 의미를 풍부히 담고 있는 형식화된 기도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과 삶 속에서 공동체가 공감하고, 함께 기도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하여 준비하는 것이 이 예식의 의미에 더 알맞은 모습입니다. 보편지향기도는 주례사제가 주례석에서 이 기도를 이끌며, 기도 지향은 독서대나 알맞은 다른 곳에서 부제 또는 선창자, 또는 독서자나 다른 평신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공동체가 함께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이므로, 서 있는 자세로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합당한 자세입니다.
말씀 전례의 핵심은 “거룩한 대화”, “거룩한 소통”입니다. 말씀 전례는 하느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받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 응답하고 기도하는 예식입니다. 말씀 전례 이후 이어지는 성찬 전례, 다음 시간부터는 “성찬 전례”에 대한 설명이 시작됩니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43) 마침 강복과 파견
어느 신자분이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전에 계시던 신부님은 신자분들을 배려하셔서 영성체 후에 신자분들이 앉아 계실 때 공지사항까지 다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영성체 후 기도’를 위해 일어나라고 하셨죠. 그런데, 이번에 오신 신부님은 ‘영성체 후 기도’를 먼저 하고 나서 다시 앉으라 하신 다음 공지사항을 말씀하신답니다. 공지사항 때문에 금방 다시 앉을 텐데 왜 번거롭게 그러실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영성체 후에 바로 이어서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신 성체의 은총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함께 청하는 기도가 ‘영성체 후 기도’이고, 이 ‘영성체 후 기도’는 방금 전에 행한 신자들의 영성체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체를 모신 후 일상에서 성실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한 성체의 은총을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 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 다음 사목적으로 필요한 경우 공지사항을 안내합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166항 참조).
그리고 마침 강복과 파견으로 미사를 마칩니다. 강복을 할 때 십자가의 형태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기억하면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느님 사랑의 가장 뚜렷한 표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돌보심과 사랑이 우리 모든 삶의 모습들 안에 머물길 청하며, 우리는 강복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습니다.
이러한 마침 강복과 파견을 통해 미사를 마치면 우리는 미사 때 받은 은총을 지니고, 다시 우리 각자의 삶으로 파견됩니다. 이때 마치는 성가를 퇴장 성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파견 성가라고 해야 할지 혼동하실 수 있습니다. 입당 성가가 있으니 당연히 짝을 맞춰 퇴장 성가라 하는 것이 맞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미사의 신학적 의미를 고려하자면 파견 성가가 더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미사의 은총을 통해 성화된 우리는 이제 세상에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성화하는 사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세례 때 받은 보편 사제직을 일상 안에서 살아가며, 그 직무를 수행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각자의 삶은 하나의 제단이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주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받은 보편 사제직을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지난 시간 동안 ‘전례와 미사의 영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례가 단지 하나의 형식화된 오랜 예식이 아니라 우리 구원이 ‘지금 여기서’ 현재화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언어와 상징, 동작들을 통해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전례가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 헌장 10항)임을 깨닫고 그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으며 기쁜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35. 미사 해설 - 말씀 전례 (11) 말씀 전례 중 신앙고백
성경과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하느님 백성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흠숭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미사 중 “신앙고백”이라는 예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신앙고백문에는 니케아(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사도신경 두 종류가 제시됩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특정한 날에만 신경을 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일과 대축일에 사제와 백성이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하며,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미사 때에도 바칠 수 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7항). 한국교회는 니케아신경보단 사도신경을 자주 사용하지만, 서구 교회 대부분은 니케아신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두 신앙고백문 중에 선택권은 온전히 지역교회의 판단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의해야 하는 점은 단지 니케아신경이 길다는 이유로 사도신경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편교회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니케아신경은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이단을 배격하고 정통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채택한 기도문입니다. 니케아신경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밑바탕이 되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는 교회 정통 신앙고백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고백문으로 니케아신경보다 간단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예비자들을 위한 일종의 길잡이이며 교육 지침 기도문입니다. 특별히 사도신경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심으로 믿고, 고백하는 기본적인 신학적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행 로마 미사 경본의 전례 규범에서는 신앙고백문을 바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18. 강론이 끝나면, 규정에 따라 신앙고백 곧 신경을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19.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대신에, 특히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는, 이른바 사도신경 곧 로마 교회의 세례신경을 바칠 수 있다.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을 실현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신앙고백 후에는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잔치인 성찬례가 시작됩니다. 이 성찬례가 시작되기에 앞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경건한 고백을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거룩한 대화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은총을 받고, 우리 입장에서는 하느님께 믿음과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친교는 미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보편지향기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슬기로운 ‘전례상징’] 전례에서의 색깔
계절마다 자연은 다양한 색깔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봄에는 새싹의 연두색, 꽃이 피는 시기에는 다양한 색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자연을 만납니다. 짙은 녹색이 인상적인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대표되는 빨간색과 은행잎이 드러내는 황금빛 노란색 등이 초록색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며, 겨울에는 아무래도 눈이 쌓인 하얀 세상이 떠오르지요.
이러한 자연의 색깔들은 빛이 있어야 구분이 가능합니다. ‘색’과 ‘빛’은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림에 푹 빠져 있단다. 그러니까 나는 색에 빠져드는 중이야”. 그림과 색은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화가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색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자신들을 상징하는 색을 통해 팬들을 하나로 만드는 경향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색에 빠져있나요?
그리스도교는 오래전부터 전례에서 색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교회는 제의에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하여 “거행하는 신앙의 신비의 특성과 전례주년에 따라 진행하는 그리스도교 삶의 의미를 겉으로도 더욱 효과 있게 드러내려”(로마미사경본 총지침, 345항)고 합니다.
성서적 배경에 따라 전례 색깔을 정리한 인노첸시오 3세 교황
인노첸시오 3세(재위 1198~1216)는 ‘제대의 거룩한 신비 De Sacro Altaris Mysterio’에서 전례 시기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구분해야 하는 제의의 네 가지 기본 색깔을 정리합니다.
네 가지 색, 즉 흰색, 빨간색, 보라색, 초록색은 로마 교회가 그날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거룩한 제의를 구분하는 색이다. 우리는 사실 율법서에 나오는 사제복의 색이 네 가지, 즉 금색, 자주색, 자홍색과 다홍색(탈출 28장 참조)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흰색 제의는 증거자와 동정녀 축일 때 입고, 빨간색 제의는 사도들과 순교자들 대축일 때 입는다. 이점에 대해 아가서의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연인은 눈부시게 하얗고 붉으며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랍니다”(아가 5,10) 주님은 증거자들과 동정녀들에게는 순수하고 사도들과 순교자들에게는 빨간색과 같다. 사도들과 순교자들은 붉은 장미의 꽃송이들이며 증거자들과 동정녀들은 들녘에 핀 흰 백합들과 같다. 그러므로 완전무결함과 무죄함을 드러내기 위해 증거자와 동정녀의 축일 때에는 흰색 제의를 사용해야 한다. 사실 나자렛 사람들은 순수하며 항상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묵시 14,4)
그리고 흰색 제의를 사용해야 하는 축일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천사들의 축일, 주님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 주님 공현, 마리아 정화의 날(현재의 주님 봉헌 축일, 2월2일), 주님의 만찬, 주님 부활, 주님 승천, 주교 서품 등입니다. 빨간색 제의는 십자가 현양, 성령 강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축일, 바오로 회심 축일, 동정녀인 순교자 축일 등입니다.
보라색 제의는 범한 죄와 죽은 이를 위한 고통의 날과 금욕의 날에, 곧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사용합니다. 특이한 것은 대림 제3주일과 사순 제4주일에는 장미색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전해줍니다. 초록색은 “나르드와 사프란 향초와 육계 향 온갖 향나무와 함께”(아가 4,14)라고 말할 때의 색을 의미하며 평일과 연중 시기에 사용한다고 알려줍니다.
현재의 거룩한 옷인 제의 색깔은 어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현대화와 함께 전통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인노첸시오 3세가 정리한 내용들을 많이 반영하였습니다. ‘로마미사경본 총지침’ 346항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ㄱ) 흰색: 주님의 부활 시기와 성탄 시기의 시간 전례와 미사 때 쓴다. 그 밖에 수난에 관계되는 거행을 제외한 주님의 축제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거룩한 천사들, 순교자 아닌 성인들의 경축일, 모든 성인 대축일 … 등에 쓴다.
ㄴ) 빨간색: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주님의 수난 전례,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의 천상 탄생 축일, 그리고 순교 성인들의 경축일에 쓴다.
ㄷ) 초록색: 연중 시기의 시간 전례와 미사 때 쓴다.
ㄹ) 보라색: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쓴다. 죽은 이들을 위한 시간 전례와 미사에도 쓸 수 있다.
ㅁ) 검은색: 관습에 따라 써 온 곳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에 쓸 수 있다.
ㅂ) 분홍색: 관습에 따라 써 온 곳에서 ‘기뻐하여라’ 주일(대림 제3주일)과 ‘즐거워하여라’ 주일(사순 제4주일)에 쓸 수 있다.
ㅅ) 더욱 성대하게 경축하는 날에는 그날의 색깔이 아니더라도 축제일 색깔이나 더 품위 있는 색깔의 거룩한 옷을 입을 수 있다. 한국 교구들에서는 특별히 성대하고 기쁜 전례 예식 때는 황금색을 쓴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와 시간 전례에서는 흰색을 쓴다.
다양한 전례 색깔의 바탕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있다
거행하는 신비의 특성과 전례 주년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제의 색깔의 바탕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있습니다. 보편 교회는 사제 복장에 대해서 “주교회의에서 제정한 규범과 그 지방의 합법적 관습에 따라 적절한 교회 복장을 입어야 한다”(교회법 제284조)고 규정하고,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모든 공식 행사에 “수단 또는 로만 칼라”(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제15조)을 착용하라고 정했습니다.
수단의 경우, 사제는 수도복에서 유래한 ‘검은색’을 사용하는데, 이는 금욕을 뜻하는 고행과 속죄의 표식으로 이 세상의 헛된 욕망들을 포기하고 저 세상에서 영광의 옷을 입게 되길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사 거행에서 주례 사제가 입어야 할 고유한 옷인 제의를 입기 전에 먼저 장백의와 영대를 합니다. 여기서 장백의는 라틴어 alba에서 알 수 있듯이 ‘흰색’이어야 합니다. 이 흰색은 거룩한 변모 때 예수님이 “새하얗게”(마르 9,3) 빛났다는 것과 무덤에 묻힌 그리스도의 몸을 감쌌던 흰 아마포(요한 20,6 참조)에서 알 수 있듯이 부활의 상징입니다.
수단과 장백의에서 드러난 검은색과 흰색은 죽음과 부활로써 어둠을 이기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살아야 하는 사제적 삶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42) 영성체
첫영성체를 하는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뭘까요? 아마도 성체가 어떤 맛일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성체를 모신 후 자신들의 기대와 사뭇 다름에 살짝 당황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말 정성스럽게 성체를 모시고 두 손 모아 정성 어린 기도를 바치곤 합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모신 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죠. 그런데 이미 이전부터 성체를 모셔 온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경건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영성체를 하고 있나요?
나 자신이 얼마나 정성되이 성체를 모시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는 하나의 유용한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공심재(공복재)를 지키는 모습입니다. 공심재(공복재)는 영성체하기 한 시간 전에 음식을 먹지 않고(물과 약은 제외)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나 자신을 비움으로 주님을 모실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움이란 신체적인 공복 상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준비시키는가가 더 중요한 모습이 됩니다.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은 욕심과 미움, 삶에 대한 불평들을 비워낼 수 있는 모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심재의 기본 정신은 성경 말씀처럼 깨어 기도하는(루카 21,36 참조) 가운데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간혹 경건한 영성체를 위해 손이 아닌 입으로만 성체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손으로 성체를 모시는 방식과 입으로 성체를 모시는 방식, 둘 다 가능합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161항 참조). 그러니 꼭 입으로 모시는 방식만이 성체를 경건하게 모시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영성체와 관련하여 특히 사제가 모신 큰 성체를 본인도 모실 수 있는가에 유난히 신경 쓰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성체는 그 크기와 모양에 상관없이 항상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니 사제가 모신 큰 성체 조각에 더 큰 은총이 깃들어 있고, 작은 성체에 작은 은총이 깃든 게 아닙니다. 모두 똑같이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성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체를 받아 모시는 내 존재의 모습입니다. 성체의 은총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얼마나 준비된 모습으로 성체를 모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영성체에 참여하는 모든 이는 같은 성체를 나누어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룹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83항 참조).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수직적 측면), 같은 성체를 받아 모신 다른 이들과도 사랑 안에 일치하는(수평적 측면) 신앙의 신비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정성되이 기도합니다. “주님, 이 세상에서 저희가 주님의 보배로우신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주님과 하나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영성체 후 기도’).
전례와 미사의 영성 (41)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전에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또한 사제도 영성체 전에 성체를 신자들에게 들어 보이면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미사 때 우리는 왜 성경의 여러 다양한 상징과 표상들 중에서 특별히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할까요?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가 고난받는 ‘야훼의 종’과 연결하여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를 염두에 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라고 언급한 것과 연관되기도 하며(이사 53,7),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이야기한 것과 연관되기도 합니다(요한 1,29). 또한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것처럼 죽임을 당하여 자신의 피로 값을 치러 만백성을 구원한 어린양과 연결되기도 합니다(묵시 5,8-12). 이처럼 어린양은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희생 제물의 상징적 의미와 주로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린양이 가진 이러한 희생의 측면과 연관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참된 파스카의 어린양이자 구세주이심을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희생의 모습이 희생 제사인 미사 안에서 재현되고 현재화되기에, 우리 삶의 참된 어린양이신 주님께 자비를 구하면서 우리는 구원의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게 됩니다.
사제는 성반이나 성작 위로 성체를 받쳐 들어 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들은 복되도다.”라고 말합니다. 쪼개진 성체를 들어 신자들에게 보이는 이유는 그렇게 쪼개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사랑을 다시 주님께서 거둬 가지 않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런 성체를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 자신의 노예를 고쳐 주길 청하였던 백인대장의 믿음과 연관된 것으로(루카 7,1-10) 우리 또한 지존하신 주님을 모실 자격은 없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에 이르는 영광을 얻을 수 있기를 청하는 모습이 됩니다. 이 고백 안에 세 가지 중요한 신앙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분께 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의탁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합당치 않다’라고 스스로 낮추어 고백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하느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게 되는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내가 인간적으로 바라고 원하는 그런 은총이 아니라 ‘한 말씀’이라고 하는 ‘은총의 본질을 청함’입니다. 이런 신앙을 통해 참된 영혼의 치유가, 즉 우리의 구원이 이뤄지길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사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참된 어린양이심을 고백하고 감사드리며, 정성스레 영성체를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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