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작가 ; 잭 케루악(1922-1969)
초판 ; 1957
케루악이라는 신비스러운 청년이 3주 만에 써내려간 구두점도 제대로 안 찍힌 소설이 훗날 '타임'이나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에 포함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케루악은 타자지를 길게 이어붙인 40m짜리 종이 위에다 커피와 각성제에 취한 채 주술을 풀어놓듯 작품을 완성했다. 처음 두루마리 원고를 읽은 편집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백도 단락 구분도 없이 기존 소설의 모든 기법을 해체한 이 원고는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여러 출판사를 전전한 끝에 1957년 출간됐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젊은 작가 샐 파라다이스는 아내와 헤어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태양 같은 정열을 지닌 청년 딘 모리아티에게 자극을 받아 뉴욕에서 미국 서부로 향하는 여행을 계획한다. 네 차례에 걸쳐 덴버,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멕시코시티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미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며 길 위의 삶에 도취되는데…. 샐과 딘은 일상에서 벗어나 젊음과 자유를 만끽하고, 짧지만 강렬한 만남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 여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풍경, 어디서나 끊이지 않는 매혹적인 재즈 리듬이 펼쳐진다. 195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당대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깨달음을 찾아 길 위로 나서게 했다.
소설 '길 위에서'는 실패한 젊은 작가 샐 파라다이스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딘 모리아티를 만나 여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들은 뉴욕에서 LA까지, 다시 멕시코까지 약 1만3000㎞를 히치하이크로 여행한다. 그 여정에서 두 주인공은 획일화된 일상을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고 짧지만 강렬한 사랑과 술, 그리고 음악에 빠진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수많은 삶의 모습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주류 세계에 가려진 변방의 쓸쓸함, 아직 산업화에 물들지 않은 서부의 고즈넉함을 만나는 것도 소설의 매력이다. 마치 유장한 재주 연주곡이 전개되듯 소설은 그렇게 음악처럼 흘러간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샐 파라다이스의 눈앞에는 '미친 꿈' 하나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길에 익숙해진 순진한 눈으로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끝없이 으르렁대는 뉴욕의 절대적 광기와 환상적 혼잡함을, 그 미친 꿈을 보았다." 군에서 나온 그는 선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뉴욕의 한 모임에서 작가 앨런 긴즈버그, 닐 캐서디 등을 만나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그 유랑 생활의 기록이 바로 소설 '길 위에서'다. '길 위에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케루악은 전후 미국의 경직된 가치관에 도전해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한 젊은 작가 그룹 '비트 세대'의 상징적 인물이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1940년대 미국의 사회체계에 순응하지 못한, 때로는 소외된, 그래서 길 위에 놓여진 젊음들이다. 그들에게는 내일에의 목적도 희망도 없다. 그렇다고 비관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오늘의 순간을 즐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들은 동쪽 끝 뉴욕에서 서쪽 끝 샌프란시스코를 이웃 동네 가듯 오가고 나아가 멕시코까지 여행을 가곤 한다. 그리고 그 여행은 편안한 여행이 아니라 히치하이킹이 필수인 무전 여행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유랑을 반복할까? 소설의 화자인 샐 파라다이스나 주인공의 느낌이 강한 딘 모리아티는 안정적으로 한 곳에 머무르는 생활을 하다가도 충동처럼 집을 나서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덴버, 샌 프란시스코, 뉴 올리언즈, 뉴욕에 있는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랄까? (사실 그 큰 미국 땅으로 대수롭지 않게 오가는 것도 놀랍지만 그 곳곳에 비슷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냥 그들은 길이 있기에 떠날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떠남에 대해 어느 정도 특별한 구별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결코 자신들을 부랑자와 같은 부류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는지. 실제 샐 파라다이스는 늘 뉴욕으로 돌아오고 딘 모리아티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그들이 돌아오는 곳이 부모가 부재하고 정착할 안정적인 직장도 부재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어쨌건 그들은 떠나고 돌아온다. 그러면서 청춘을 소비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멕시코 여행은 일종의 구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통제된 미국 밖으로의 여행, 남다른 자유를 느끼는 곳으로의 여행의 의미.
이 소설은 잭 케루악이 약 7년간 비슷한 유랑자적인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인물과 관련되어 있다. 샐 파라디이스는 잭 케루악 본인, 앨런 긴스버그는 카를로 막스, 윌러엄 버로스는 올드 불 리 같은 문학 동료들, 그리고 비트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인 닐 캐사디가 열정적인 천사 같은 딘 모리아티로 등장한다. 그 가운데 딘 모리아티는 대책 없는 자유인의 상징처럼 나오는데 그 느낌이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언급했다시피 이 소설은 재즈로 가득하다. 글쓰기 자체부터 재즈의 즉흥 연주를 따라 약 3주 동안 순식간에 써내려 간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재즈를 즐긴다. 그래서 빌리 할리데이, 조지 쉐어링, 와델 그레이, 덱스터 고든, 슬림 갈라드 등의 인물들의 공연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며 그 밖에 스탄 겟츠,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이름도 언급된다. 그런 재즈를 언급하면서 소설은 재즈의 순간적이고 자유로운 열정이 그네들의 삶을 자극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에 언급된 재즈 공연, 인물을 접하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연주여행을 떠나는 당시의 연주자들을 생각했다. 그네들도 어떤 세련되고 우아한 여행보다는 피곤한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로 잭 케루악은 비트 세대의 대변인으로 추앙 받게 되고 소설의 영향을 받아 많은 젊은이들이 길 위로 한 푼 없이 나섰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표면적인 효과일 것이다. 그보다 나는 사회 통제에 대한 젊은이의 반항이라는 것이 이후 다양한 예술적인 소재로 변용되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우리 영화 <고래사냥>도 이런 사회 부적응,소외 인물들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비트 세대, 비트 문화를 넘어서는 파급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 소설은 1957년에 발간되었지만 사실은 1951년에 씌어졌다. 그 뒤 출판까지 이런저런 어려움과 변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두루마리에 타이핑한 첫 버전의 <길 위에서>를 또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그것은 아닌 듯. 아무튼 그래서 이 소설 속 시대는 1940년대 비밥이 한창일 때의 시대다.
그러면서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과 비교하게 된다. 잃어버린 세대는 1920년대 그러니까 뉴 올리언즈 재즈에서 스윙으로 넘어가는 세대였고 세계 대전 전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젊은이들은 물질적인 풍요로 가득한 사회에서 비트 세대처럼 소외된 면이 있었다. 그런데 비트 세대가 어떤 자존감을 갖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잃어버린 세대는 그 소외의 불행으로 빠져들어갔다는 느낌이 강하다. 더 비교해봐야겠다. 또한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에 나오는 재즈의 이미지와도 비교하면 재미있을 듯하다. <길 위에서>는 거칠고 열정적인 재즈라면 <거품의 세월>은 잘 편곡된 우아한 재즈의 이미지가 아닐지. 리바이스 청바지와 에스프레소 커피, 컨버터블 자동차….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로드 무비.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잭 케루악의 각주다.
1957년 가을 <On the Road>가출간된 이 후 60년대의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예견했다. 자유분방한마이너리티와 여성성은 60년대 히피 세대의 바이블이 되었다. 히피문화와 포크와 재즈, 싸이키델릭 음악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는 60년대반전운동과 반문화 운동의 중심지였다. 잭 케루악과 비트세대의 작가들(특히시문학의 앨런 진스버그와 소설에서 윌리엄 버로우즈)은 밥 딜런, 짐모리슨, 존 바에즈, 제니스 조플린 등의 히피 가수들에게시적인 은유의 가사를 제공했다. 뉴욕은 재즈와 아방가르드의 복합적인 문화에서 비트세대들의 감성이 녹아들었다. Velvet Underground 에서부터 70년대뉴욕 언더그라운드 씬까지 약물, 동성애, 전위, 재즈, 하위문화로 잭 케루악의<On the Road>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작가 - 잭 케루악)
잭 케루악(1922-1969)은 은 미국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이다.
매사추세츠 출신으로,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다가 시인이 되기 위해 남부를 방랑하고, 해군에 입대했다가, 2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하는 등, 젊은 시절을 파란과 방랑으로 보냈다. 특히 세계대전 중에는 상선을 타고 대서양과 지중해를 방랑하고, 도보로 서부와 멕시코를 여행하였다.
이런 생활 속에서 질서도 의미도 상실한 사회의 획일적 부품에 지나지 않는 인간생활에 반발하여 현재의 감각적 도취에서 자아(自我)의 충족을 포착하려는 전후 미국 젊은 세대를 주제로 하여 《마을과 도시》(1950)를 발표했다. 그 후 7년간의 방랑생활을 결산하는 《길 위에서》(1957)는 케루악 자신의 자전적(自傳的) 소설이며, 도취의 세계를 찾아 전국을 표류하는 비트족의 바이블로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S. 버로스, 닐 캐서디, 루시엔 카 등과 교류하면서 비트 문학의 대변자가 되었다.
청년시절 집필한 ‘길 위에서’는 1957년 뉴욕에서 출판되자마자 미국 중산층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고 방식과 틀에 박힌 삶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에게 마치 교과서 같은 존재가 됐다. 당시 미국 젊은이들은 “국가가 젊은이들을 억압한다”고 반발했다. 동시에 미대륙 전역에서 젊은이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사회생활과 그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는 위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비트 집단 혹은 히피 운동이 생겨나며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인도나 네팔 등 동양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양 철학과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밖의 작품으로 《다르마 행려》(1958), 《지하생활자》(1958)로부터 《닥터 색스》(1958), 《매기 캐시디》(1959), 《트리스테사》(1960), 《빅서》(1962), 《제러드 비전들》(1963), 《폐허의 천사들》(1965) 등이 자연 발생적인 문장으로 구성과 체계를 갖추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시집으로는 《멕시코시티 블루스》(1959)가 있다.
<비트 세대>
비트’란 단어는 마치 비트 세대에 대한 세간의 평가처럼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재즈 뮤지션들에게 있어 비트는 ‘낙오자(dead beat)’ 혹은 ‘빠른 박자(beat up)’를 의미한다. 반면 작가들은 비트란 단어를 ‘지침, 불면, 놀람, 사회 낙오자, 개척’의 의미로 사용했다. 비트 제너레이션(비트세대)은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현대의 산업사회를 부정하고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거부하며 문학의 아카데미즘을 반대한, 방랑자적인 문학가 및 예술가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비트 제너레이션이 등장했을 때 사회 주류층은 이들이 관습에 저항하는 글을 쓰는 것에 반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비트’에 동조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이들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졌고,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이들이 문학사에 남긴 가치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는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음악을 즐기며 산업화 이전시대의 전원생활, 인간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의 '상실세대(Lost Generation)'처럼 기성 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 하였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힙스터(Hipsters)'로서, 혁명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비트닉(Beatniks)'으로서, 방랑자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기성 사회를 떠나 시를 쓰고,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동방의 선불교에 빠진 사람들을 칭한것이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앨런 긴스버그, 잭 케루악과 루시엔 카가 만나면서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타임스 스퀘어 암흑가에서 활동했다. 1950년대말에는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주로 활동했고 이후 이들 비트족(Outsiders)은 샌프란시스코나 뉴올리언스에 모여 살았다. 또한 브니스 웨스트와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의 중심부로부터 노스 비치, 캘리포니아, 맨하탄 남동부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트에시버리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그 후 하시버리(Hashbury) 지역으로 진출했으며 이후 보헤미아니즘의 새로운 요람으로 성장하여 히피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대인 출신의 시인이며 동성애자인 앨런 긴즈버그가 그들을 대표하였으며, 그들은 자기들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하고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 같은 '반항적인 배우들'을 숭배하였다. 또,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을 '인습적인 사람들'이라고 경멸하였다.
그들은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에 나타난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어떻게든 쉬지 않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랑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획일성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책임으로부터 도피해 보려고 하였다. 그들은 기성 사회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