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민들에 의해 발행된 '신한민보'는 1909년 9월 15일자에 '해화(諧畵)'란을 특별히 만들어 시사만화를 실었다. 만화는 두개의 그림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은 일본에서 발행된 '도쿄퍽(TOKYO PUCK)'이란 잡지에 실린 것을 옮겨놓은 것으로 일본 군인이 한국 여성을 모욕하는 장면이다. 왼쪽은 한국인 작가가 그린 것으로 한국 청년이 일본인 침략자를 권총으로 처단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인 만화는 "일본 사무라이의 사내다움'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인이란 계집이 일본이란 사나이에게 반하여 집안 재산을 다 내주다 못해 끝내 발가벗은 몸뚱이가 되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보호하여 주는 보람이 있도다"라며 한국을 조롱했다. '신한민보'는 이 내용을 소개하면서 "아무리 해학의 그림이로되, 한국 사람된 자 응당 생각이 있으리로다"라고 분개했다.
▲ 미국 교민들에 의해 발행된 '신한민보'는
1909년 9월 15일자에 '해화(諧畵)'란을 특별히 만들어 시사만화를 실었다.
한국인 작가 그림에서는 금척(金尺)이라는 한국 청년이 삼천리 강토가 그려진 옷을 입고, 태극 문양의 권총을 머리에 쓰고, 두 손으로는 천도(天道)와 공법(公法)이 새겨진 십자가를 잡고 있다. 태양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일본인 욱일(旭日)은 목에 광물이라 쓴 목걸이를 걸고, 양손에는 법과 무력을 뜻하는 지팡이와 망치를 들었으며, 외교와 철도라는 나막신을 신고 있다. 욱일이 "먹을수록 맛이 좋아 나머지마저 먹으리"라고 말하자 금척은 "옜다. 자, 받아라. 하나, 둘, 셋, 넷"이라고 외치면서 네 발의 총을 쏜다는 내용이다.
'금척'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신인(神人)으로부터 황금의 자를 받았다는 '몽금척'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황금의 자'는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이다. 두 손으로 잡은 십자가는 기독교적 정의와 국제공법에 의거한 심판을 상징한다. 작가는 일본이 '우리가 잠자는 틈을 타서 마음대로 다 빼앗아 갔지만 우리 부여족이 한번 눈뜨고 일어서는 날' 반드시 정의의 심판이 내려질 것임을 경고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사만화는 1909년 6월 2일자 대한협회 기관지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삽화 1'이다. 내용은 창간의 취지를 알리는 것이다.
이후 '삽화'는 매호 연재되어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에 대한 비판·풍자, 국민 계몽 등으로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일제는 신문지법에 의거하여 만화를 삭제하거나 신문 자체를 압수하였고, 이에 국내에서 만화로 일제를 비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던 차에 190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간된 '신한민보'(주 1회 발행)는 항일 논조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재미 독립운동 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이기도 했던 '신한민보'는 바다 건너 러시아와 중국에도 보급되었고, 국내에도 암암리에 들어와 읽혔다. 이 만화가 발표된 지 40여일 후 러시아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안중근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처단했다. 만화가 현실을 예언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