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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왕따
1. 머리말
목사를 계급으로나, 벌어먹는 직업으로나 생각하여 혼적으로 패거리를 만들어 동료 목사나 교회를 어렵게 만들거나 핍박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본다. 얼마 전에 목사끼리 칼부림하여 TV 등에 떠 들썩 하게하는 경우도 보며, 세상에 속하여 갖은 물의를 일으키는 목회자들의 모습에 더욱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복음을 막게 하는 모습이다.
내가 너무나 어렵게 창고교회 예배 중에 같은 노회 소속의 이웃목회자들로부터 왕따 당하여 여러 가지로 핍박을 받는 중에 죽음과 같은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 와 그로 인한 장 폐쇄증과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 더하여 보란 듯이 노회장의 명의로 3년 무임목사 제명공고 광고까지 행하는 신학동문이요, 같은 노회 목회자들로 인한 죽음의 연단의 체험을 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구에서 근년에 친구들에게 왕따 당한 중고교생이 10여명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그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고, 성경에서 예수님은 (미움)은 바로 (살인)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셨음을 이해 할 수있었다.
2. 동기
2004년 창당, 기독 당의 출마 권유로, (내라도)하고 용감하게 출마한 17대 총선(대구 수성갑구)에서 사무실도, 유세차도, 운동원도 없이 오직 주님 영광만을 생각하여 홀로 최선을 다해서 뛰어본 선거전 이였다. 결과에 6명의 후보 중에 꼴찌는 아니라는데 위안을 가져야만 했다. 욕심이나 사심은 없었지만 후유증은 없지 않아 심적인 고통이 있었다. 아내가 경기도 부천의 “말씀으로 놀라운 집회“가 있다고 권하였으나 마침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의 수료 후의 석사학위 논문준비로 한 달 후에 가기로 하였으나, 심적 고통으로 대형버스로 단체로 감에 함께 올라갔다.
부천 광성 교회에서의 1.500여명가량의 꽉 찬 집회 현장에서의 열기와 점심 후의 강사들로 행하는 소위 [아멘]이라는 <불 사역>에 웃통을 벗고 적극 뒹굴며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땀이 범벅이 되도록 뒹굴었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가슴에 뭉처 있던 <심적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부터 일어나는 신비한 기적들을 체험했다. 좋은 일들 이였다. 임마누엘하시는 성령님의 잘 하심을 보고 만지는 기적을 날마다 체험할 수 있었다.
매주 월, 화, 수요일 말씀으로 강의하실 때, 빛이요, 생명이요, 진리요, 하나님이신 <말씀>을 듣고, 먹고, 마시므로 생명이 채워져서 옛사람인 육의 마귀적인 성품에서 새사람의 영적인 하나님의 성품으로의 변화를 훈련하는 집회였다.
<우리 통합 측 교단에서는 이단성이 강하니 출입을 자제하라>고 총회에서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기획팀장, 지역관리부장, 대구, 경북지역장 등등 임원을 맡아서 봉사를 하기도하고 특별히 지도자의 <행정력은 최고>라는 평가와 양복비 등으로 100만 원 등을 하사받는 등 최고지도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새사람>으로의 처리도 많이 되었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가정교회로서 타교회로 부터 후원금으로 생활하는 열악한 환경이라 마침 창원의 배모 목사의 장인어른이 장로로 계시는 대구와 경남의 경계인 현풍에서 가까운 창령의 U교회에 담임목사로의 청빙을 제안하기에 본부에 보고하고 집회시간 전체 참여자들께 앞에서 <결별 인사>하고 떠났다.
농촌의 20여명의 성도에 장로가 3명인데 아내와 사택으로 이사 짐을 옮기고 열심히 전도하며 목회에 전념하여 다소 부흥이 되었다.
3. 농촌교회를 쫓겨나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자 장로들이 지난날 예수님 왕권에 집회에 다닌 걸로 이단에 속한 목사로 설교까지 비판하며 <나가라>고 하여 뜨거운 여름에 짐 보따리를 꾸렸다.
아내는 속이 상하여 대구의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가버리고 혼자서 짐을 꾸리고 있는데 전도한 나이가 비슷한 여성도가 <머슴이라도 이렇게 쫓아내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나가시면 나는 교회도 안 다니겠다>고 하며 수시로 식사대접도하며 마음 아파하였다. 회계 맡은 박 집사도 장로들의 횡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며 “같이 예배드리자”고 했다. 처음엔 아내와 전도한 여성도와 고령군 어느 냇가 정자에서 도시락을 사가지고 주일예배를 드리고, U교회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 비어있는 기도원을 빌려서 짐을 옮기고, 10여명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장로들이 기도원 주인에게 찾아가서 모함하여 주인이 “비워달라”는 것이다. 11월 달이라 추워지고 있었다.
차타고 지나다가 멀리 달성 현풍의 변두리에 논 벌판 옆의 단층 창고가 보여서 가보니 양쪽 문도 없는 정비공장 했던 곳으로 패허 방치된 것 같은 시커먼 기름때가 묻어있는데 우선 여기라도 빌려서 문 걸고 청소하여 전기장판 깔아 예배드리고 잠자면 되겠다 싶어서...
월 30만원에 임차하여 대충 청소하고 고물상가서 헌 장판 구해서 깔고 칸막이하여 전기장판 깔고, 방과 부엌을 만들고..... 뒤마당의 쓰레기더미 폐허터는 철망하여 토끼가 놀도록 하고, 화장실도 만들고....등 등, 우선 임시로 숙소와 예배처소로.......겨울 추위에는 창고의 우풍으로 너무 춥기도 했다.
4. 임시 예배처소와 이웃교회의 핍박
그러나 가까운 곳에 70년 역사의 같은 교단의 목사와 장로가 "가까이 왔다"고, 핍박하기 시작했다. 교회법 전문가 임모 목사에게 문의하니 "임시예배 처소는 거리에 상관없다"고 하는데도 “다른 데로 옮겨 가라”고 난리다. 김 모 담임 목사는 이단, 삼단목사니....또 내가 노회의 재판국장임에도 노회 앞에 나와서 비난일색이다. 영남신학대학교에서 나에게 배운 여 목사들은 노회에서 내 문제로 떠들어대니 안타깝다고....
텃세를 하는 것 같았다. 이웃에의 교회 담임목사는 나와 재판국의 서기임에도 비난에 동참하여 같이 거들고 있었다. 나는 믿는 자들의 삶이나, 목회나, 임마누엘하시는 주님의 감동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순종해 감이지 내가 혼적으로 지, 정, 의로 함은 (육)이라는 세상적, 자기중심적, 마귀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떠한 핍박도 인내하고 있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박집사 등 성도들의 위로와 격려, 단합과 친목은 늘 감사함 이였다.
10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온천도 가고, 가까운 관광 문화유적지도 가보고, 숭어 등 낚시해서 회, 매운탕 등으로 즐기고, 10여명의 성도 중엔 유교 골수로 골자기에서 허물어질 듯한 폐가에서 어렵게 사는 김씨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수발하느라 아내와 집에 가서 태우고 씻고 구역질나는 피폐된 쓰레기더미 치우고, 어느 날 몸이 너무 아파서 밤중에 대구 동산병원으로 수송하여 입원시키는 등과 설교 도중에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하고 떠들기도하고, 40세 된 철이라는 청년은 뇌성 장애인으로 말도 잘 듣고, 재미있어하는데 도벽이 있고.....몇 안되는 성도지만 가족처럼 지나고 있었다.
중심인 박집사는 부인이 베트남인으로 아이들이 4명이나 되었다. 아파트 등 청소업을 하는데 일군이 없을 땐 내가 대신해서 청소를 거들고 일당을 주기도 했다.
전도한 나와 동갑내기 여성도인 신 집사는 주일날 등엔 먹거리를 책임 지고 집에서 준비하여 자가용으로 실어 오고했다.
5. 뱀을 3마리 잡다.
뒷마당에 울타리를 해서 토끼를 두고 키우는데 고양이가 새끼를 잡아먹고, 어느 날 주일예배 마치고 보니 뱀이 기어 다녀서 잡아 죽였는데 며칠 뒤에 교회 방에서 혼자 자고 있다가 밤중에 나가서 창고 문을 여는데 작은 뱀이 한 마리 위에서 떨어졌다. 깜짝 놀랐다. 마루 밑을 기어서 들어가기에 할 수 없이 손으로 꼬리를 잡아서 꺼내어서 죽였다. 교회를 떠나오기 전 가을 어느 날에는 새파랗고 굵은 뱀이 머리와 허리를 처 들고 교회로 달려와서 입구 안에 있는 것을 잡아서 죽이기도 하였다.
6. 동료목사들의 핍박과 공황장애 우울증
창고를 더 수리하고 교회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아들 국이는 군대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하였는데 자주 전화가 와서 돈을 부처 달라고 하는데, 제대로 뒷받침을 못하니 마음은 아프고, 이웃교회 목사는 계속하여 노회에서 떠들어서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조사하게 하고 자기들과 친한 노회장 지낸 노회에서는 힘이있고 큰 소리치는 최모 목사는 편을 들어서 나에게 <노회원으로 자격이 없으니 이명신청하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어느 날 세벽에 핍박하는 이웃교회 세벽 기도에 갔는데 목사 사모가 나보고 “나가라, 우리교회에 왜, 왔느냐, 당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피해가 많은 줄 아느냐”고 고함을 처서 교인들 몇사람 보는데서 쫓겨 나오기도 하고......전에 소속했던 D노회 노회장 이모 목사님께 문의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 하시고(노 회원 자격 있음). 또 내가 속한 S노회 임원목사에게 의논하려고 찾아가서 연락하면 피하고....... 혼자서 사면초가로 왕따 당함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절실히 체험했다.
7. 살기위해서 예수님왕권을 다시 찾다
갑자기 몸과 마음이 <죽음의 세계>로 끌려가는 곤고함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공황장애가 왔다. 추수감사예배를 준비하여 대구에서 내려가서 예배 중에 설교를 하려는데 도저히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예배를 생략하고 기도만 드리고 당분간 교회를 계속할 수 없음을 성도들께 얘기하고 집에 와서 떠났던 예수님왕권에 나 모 목사에게 전화하니 "올라오라"고 했다. “살고 봐야 겠다”는 생각에 오산으로 올라갔다. 최고지도자님께서 반기시며 따뜻한 옷도 주시고 15평의 아파트와 매월 50만원의 생활비를 주셨다. 생활비는 아내의 통장으로 계좌 이체를 하고 아내도 매주 올라와서 같이 집회에 동참했다.
감사함이다, 주신 사랑을 외면하고 떠났던 배신자였는데도.....
심한 우울현상은 허공, 공황 장애라 할까. 언제나 죽음, 지옥 같은 후회와 두려움, 방황으로 남들을 보면, 거지나 노숙자를 보더라도 부럽고, 대구에 두고온 아이들에 대하여 처절한 아픔과 미안함으로 가슴은 아프고.....어느 날은 5천원을 편지봉투에 넣어서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로 부치기도 했다.
본부에서 버스타면 10분 거리이고, 걸어가면 40분의 거리에 있는 아파트 집에도 갈 수 없어서 본부 콘테이너에서 통합 측 선배로 40일 금식 두 번째 하시다가 무리하여 소아장애가 있는 예수님밖에 모르는 쓰레기 분리 전담하시는 국배 목사님 옆에서 한 이불 덮고 잤다. 여름철에는 국배 목사님의 전신이 피부염으로 내가 약을 늘 발라주면서 함께 자곤 하였다. 집회시간에는 빠지지 않고 간절하게 치유를 주님께 기도하였다.
8. 장 폐쇄증과 대장암수술
2010. 12월 추위의 날에 일주일간 변이 막히고 배가 불러오고 고통을 참지 못했다.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장 폐쇄증과 대장암이란다. 수술을 하려면 가족동의가 필요하단다. 아내와 남매가 대구에서 달려오더니 울었다. 먼저 장 폐쇄증 수술을 하고 한참 있다가 대장암 수술을 했다.
피 통을 3개나 달고 배를 갈라서 꿰맨 자리에 염증이 있다며 주치의사가 아침, 저녁으로 핀센트로 열어서 치료를 했다. 내가 아파도 참고 늘 웃으니 간호사가 “안 아프시냐?”고 물었다. “왜, 안 아프겠느냐, 아프다고 찡거리면 내만 손해지요“ 라고 했다.
어느 날 주치 의사를 찾아서 상태를 물으니 “대장암 말기로 임파선으로 전이되어서 살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죽는다니까, 순간 암울했지만 두 가지를 의사께 이야기 드렸다.
첫째는 지금까지 잘못 살아서 이런 모습으로 천국 가겠냐? 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들 남매가 아직 미혼인데 고생만 시키고, 그냥 두고 간다는 게 마음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고 병원 생활을 감사함으로 인내하였다.“죽으면 죽으리라”였다. 본부의 최고지도자님도 두 번이나 오셔서 위로해주셨다.
2011년 2월경에 퇴원하여 본부에서 주신 가수주공에서 생활하며 월, 화, 수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텃밭을 가꾸어 최고지도자님과 찬양단 등을 섬겼다.
대장암 수술 후에 심한 공황 우울증은 치료되어서 정신이 맑아졌다.
2011. 8월까지 8차례의 항암치료는 얼마나 힘든지 수술보다 더 힘들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늘 감사하며 주님께 의지하고 맡기니까 치료 중에 주치의사가 “조직검사 결과 2기 후반으로 임파선으로 전이가 안 되였다고 반가운 소식과 괴롭히던 공황장애 우울증도 치료 되어서 맑은 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2011년 12월에 대구시내 500여 교회의 담임목사 및 장로들께 <죽음의 사선을 넘어서>라는 대장암 투병기 간증신문기사(오산한국병원에의 감사내용 등)를 첨부하여 안부를 보내고 왕따로 인한 심한 우울증 및 대장암수술 등으로의 고통을 갖게 한 목사들에 대하여 분노의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는 표현도 적었다.
9. 결론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에게도 바리세인이나 서기관, 장로라는 교회 지도자들이 율법의 잣대와 자존심과 선한자아로 늘 공격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비난하고 방해하다가, 결국 <신성모독죄><율법모반죄> 등으로 자기들의 잣대로 십자가의 극형이라는 죄없으신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였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고,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하시며 책망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후에 유대인들은 처절하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나라의 폐망과 살생 당함과 죽음을 당하는 처절한 피값을 감수해야만했다.
목사의 <목회>는 나의 혼적인 [지, 정, 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하시는 성령님으로, 나와함께 하시는 주님의 감동과 진리이신 말씀에 순종하고 인도하심을 받아야한다고 사료한다.
나의 혼적인 계산으로 <정치적으로나 조폭처럼 힘이나 권모술수>로 하는 <육적, 지적목회>의 결과는 반드시 심은 대로 심판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목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게 말은 거룩, 거룩하면서 “회칠한 무덤”이다. (장사꾼)이고 (정치꾼)이고 때로는 (사기꾼)이며 (조폭세계)처럼 어울려서 힘없는 교회나 목회자를 힘으로 왕따하여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영적인 목사님도 없진않다. 대게 나부터도 [자존심과 선한자아]로 율법의 지적 잣대로 남을 가르치려든다.
숨기고 싶은 말이지만 신학대학원에서 5명의 경상도 출신으로 <아모스>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재학 중이나 졸업 후 목회 중에도 친목했다. 세월이 지나서 서로의 형편에 세상적인 계산으로 차이가 났다, 개척하여 큰 교회로 멋지게 교회를 신축 입당코 노회나 총회 등등 활동이 대단하다, 또한 신학박사나, 목회학박사도 따고 노회장도 하고 세상말로 <잘 나간다. 성공한 목회>였다, 나이가 제일 많은 나는 옛날의 대학교수나,교목실장 등에서 물러나서 질 질이 실패요, 왕따요, 우울증이나 대장암 수술 등 별 볼일 없는 실패한 인생이 되었다.
어렵게 목회하는 최목사와 실력과 인격과 믿음을 갖춘 배목사는 가끔 변함없는 소통을 한다.
그러나 장과 윤이라는 목사는 아예 10여년이 지나도 전화 한통 없다. 장의 경우 경주에서 장례식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 건으로 유치장에 구속되어서 법대대학원에서 함께 수업한 석사 동기가 사법고시로 검사로 있는 경주지청에 찾아가서 장이 원하는 대로 선처를 요구하여 집행유예처분으로....
윤목사는 교회 입당식 때 먼 거리에서 참여하여 축하하는 등.....물론 개척교회로서 초기에는 후원 등 그들 교회의 도움도 없진 않았다.
신학대학원시절 내가 졸업위원장으로 수고 하였음에도 신대원동기회의 영구협동총무를 맡아서는 내게는 연락조차 안하고 있다.
앞에서 실제로 왕따로 어렵게 죽음과 같은 고통과 암수술 등에 이르게 한 김모 목사 등 3명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없어서 법적, 기타 할수있는 조처를 준비하고자 최고지도자님께 이야기 드렸으나 만류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다. 그들은 노회장의 이름으로 어느 날 기독공보에 나를 [3년 무임목사라고 제명공고]하는 광고까지 내는 악질적 행보를 볼 수 가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크리스챤인 목사나 성도의 삶은 (예수님의 삶-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하고, 더욱이 목회자는 성도위에 군림하는 계급이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삶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사료한다.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로 심판하심으로 (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공의의 심판하심을 볼 수가 있다.
첨부:대장암 수술후 항암치료중과 오산제일신문기사(죽음의 사선을 넘어서) 각1부 2매
첫댓글 신념이 넘치시니 범사가 잘 될 것입니다
목사님들 근엄하지요
젊잖고
그런데 실상 을 들여다 보면
자기 이익에 치열한가 보아요
고맙읍니다 자존심과 선한자아로 무장되기쉽지요 쉽게 비판하고 쉽게 가르치기좋아하고....그게 교만의 죄악인줄 잘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