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지낼려면 영정사진을 앞에 놓든지 아니면
지방을 서서 붙여야 한다.
나는 아버지한테서 일찍부터 지방 쓰는 법을 배워서
중학교때부터 지방은 내가 써왔다.
지방은 썼지만 의미도 모르고 지나다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제 친구와 산행을 하다가 추석 제삿상 이야기가 나와서
제사 음식 장보는 것부터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경북 출신인데 장보기는 남자들이 한다고 했다.
서부 경남쪽은 제삿장을 대개 여자들이 보는 데 남자들이 도와 주기도 한다.
"지방은 어떻게 쓰나?"고 물었더니 백지에 그냥 볼펜으로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쓴단다.
예전에는 제사를 한 시간 정도 지냈지만 간소화해서 지낸다면서
나더러 "지방을 어떻게 쓰나?" 하고 물었다.
한지에다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쓴다고 했더니 그러고보니 자기는 상놈이라고 했다.
기독교도는 제사를 아예 안 모시고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위패를 절에 모시고 제사도 절에 위임해 놓고
명절때는 가족이 리조트나 해외여행을 가는 추세다.
제사음식도 주문해서 리조트에서 지내거나 집에서 배달받아서 제사를 지내는 집도 많다.
허례허식보다는 간소화 해서 지내는 게 낫다. 제사 안지낸다고 해서 욕할 사람도 없다.
제사는 정성이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이 있다. 집이 가난해서 덕을 할 형편이 못되지만 우연히 떡이 생기면
조상부터 먼저 챙기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는 이야기다. '없는 집에 제사 다가오듯 하다'는 말도 옛날에는
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살기가 나아져 모든 것이 풍족하게 되니 조상도 필요없어졌다.
앞으로 벌초, 제사, 성묘 등의 풍습이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
'현고학생부군신위(懸鼓學生府君神位)'의 현고의 뜻은 존경하는 아버지, 학생은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않으신
작고하신 사람의 존칭, 부군은 고인의 이름대신 적은 것으로 제주보다 윗사람을 뜻하며 신위는 고인의 자리라는 의미다. 어머니의 경우에는 고(考)자 대신 비(妣:죽은 어미비)라고 적고 직위는 유인으로 적는다. 그 다음엔
어머니의 본관과 성씨를 적고 신위를 붙인다.
제사는 제대로 규정을 지켜 지내려면 끝도 없다.
공자도 예는 어려워서 전문가한테 배워야 한다고 했다.
집안마다 제사지내는 방식이 다 다르므로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한다며 괜히 쓸데 없는 간섭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각양각색이지만 큰 틀에는 거의 비슷하다. 지방 바로 앞에는 밥과 국, 둘째줄은 술,셋째줄은어동육서,두동미서로 탕(보통 3탕 혹은 오탕)생선,두부 고기탕류, 넷째줄은 좌포우혜로 포는 좌측,식혜는 우측이다. 나물 소채류,자반고기를 여기에 놓는 경우도 있다, 다섯째줄이 과일이다. 조율이시,홍동백서 순이다. 떡은 밥과 국줄에 놓고,. 경상도에선 문어 오린 것이 빠지지 않는데 과일줄에, 한과 유과도 과일줄에 함께 놓는다. 명절 제사는 아침에 지내며 촛불을 켜지 않고 축문도 없다.기제사는 밤에 지내고 축문도 읽는다. 과일중에 복숭아는 쓰지 않고 생선도 치자가 들어가는 것은 안 쓴다.또 붉은 팥대신 희 고물을 쓴다.
지방과 축문을 쓰다 보니 어디가서 문방구를 보면 탐이난다.
지금 있는 단계벼루는 중국 칭따오 박물관에 갔을 때 산 것이고, 붓은 상해 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산 것이다.
서안 문방구 거리를 둘러보면서 문종이(한지)와 서체교본도 몇권 사왔다.
비림에 가서는 탁본도 몇 장 사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습해 보진 못했다. 늦게 시작한 이과장은 벌써 사범이 되어 구청에 나가서 알바이트를 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