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남녀는 똑같이 땀에 젖은 육신을 축 늘어뜨렸다. 체내의 열기가 모두 소진되자 남
은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아악!"
선우영령은 비명을 토하며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무엇인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막
대한 힘이 작용하여 그녀를 인정사정없이 퉁겨내 버렸던 것이다.
분명 북리뇌우가 그녀를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사(情事) 후에는 여하한 움직
임도 보인 바가 없으므로.
어쨌든 선우영령은 그 충격으로 인해 의식이 되돌아왔다.
그녀는 몸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침상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 실로 놀라운 광
경이 들어왔다.
"아! 어찌 저런......."
그녀는 입을 딱 벌린 채 굳어지고 말았다.
북리뇌우.
그는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죽은 듯 침상에 누워 눈을 내리 감고 있었는데, 그의 몸에
서는 각기 좌우로 나뉘어 자색(紫色)과 청색(靑色)을 띤 기류가 발산되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 두 가지의 기류는 서로 어우러져 그를 감싼 채 무섭게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휘류류류륭!
놀라운 현상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신비경 가운데 북리뇌우의 전신 오대 요혈
에서는 가늘고 긴 금침(金針)들이 소리 없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금침들은 하나씩 그의 피부 표면에서 퉁겨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청색
기류의 소용돌이는 금침이 날아오를 때마다 더욱 짙어졌으며, 압력 또한 가중되었다.
그 바람에 선우영령의 몸은 침상 가에서 주르르 밀려났다.
"이럴 수가!"
그녀는 황급히 옷을 주워 걸쳤다. 그것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뭔가 예측할 수 없는 사
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핏!
북리뇌우의 몸에서 마지막 금침이 솟아오르는 찰나였다.
우우우웅―!
그의 전신에서 자청색 기류가 폭발하듯 솟구치며 엄청난 위력으로 선우영령을 강타해
왔다.
콰쾅!
"아악!"
선우영령은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정실의 문을 뚫고 밖으로 퉁겨져 나가고 말았다. 이
때에 북리뇌우의 모습은 짙은 기류에 가려져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북리뇌우의 입에서 은은한 백색 기류가 뿜어져 나와 눈부신 환(環)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것은 삽시에 무려 수십 개로 불어나 환상인 양 현란한 광경을 연출해 냈다.
스스스스.......
자욱하게 실내를 메우고 있던 자청색의 기류는 반대로 서서히 그의 전신으로 빨려 들
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자청색의 기류는 사위에서 씻은 듯 말끔히 걷혔다.
대신 백색의 환만이 북리뇌우의 호흡에 따라 쉴새없이 분출되고 있었는데, 그 숫자는
이제 수백 개로 불어나 있었다.
스으으―
백색의 환들도 결국은 북리뇌우의 전신 요혈을 타고 거짓말처럼 스며들어 버렸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친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는 섬뜩한 백색 광망
이 토해져 나왔다.
그것은 실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동공이 사라진 채 흰빛만을 무섭게 뿜어내는 그 눈은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는 보여지
지 않았다. 그야말로 죽은 자의 영혼이라도 빨아낼 듯한 악마의 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백색의 광망은 점차 엷어지며 동공을 드러냈고, 그 눈은
본연의 빛을 되찾았다.
이와 더불어 북리뇌우의 몸도 완전히 정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다만 전과 다른 무엇인
가가 그에게서 느껴졌는데, 그것은 한결 냉철해 보이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했
다.
"으음......."
북리뇌우는 꿈에서 깨어나듯 낮은 신음을 발했다.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 앉으며 주위
를 둘러보았다.
"내가?"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보고는 크게 놀랐다.
그 동안 화상은 말끔하게 아물어 있었고, 불에 그을렸던 머리칼도 원상태로 돌아와 있
었다. 그러나 모두 혼몽 중에 일어난 일인지라 그도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사실 그로서는 자신이 그토록 처참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는 것조차도 몰랐다. 단지 왜
이처럼 옷을 모조리 벗은 채 이 곳에 누워 있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따름이었
다.
그리하여 잠시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던 북리뇌우는 어느 대목에 이르자 무섭도록
안색을 굳혔다.
"천마유궁......!"
그의 눈에서 부지불식간 예의 섬뜩한 백색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미간에서는
자청색의 섬광이 떠올라 전면으로 부챗살처럼 번져 갔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중얼거렸다.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처치하겠다!"
그것은 일종의 맹세라 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을 기해 그는 정해진 운명에 본격적으로
한 발을 들이민 것이었다.
결심이야 잔혹한 수단으로 지옥사인을 처치할 때부터 이미 이루어졌었지만 이제 그는
회의도 사절이었다.
천마유궁에 의해 북리뇌우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은 장본인이었다. 애초부터 인생 자
체를 빼앗긴 바 되었으며, 종국에는 친혈육이나 진배없는 두 명의 사부까지도.......
기실 오늘날까지도 자신이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온 불행한 인
물이 바로 그였다.
이 때, 복도에서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와 상념에 잠겨 있는 북리뇌우를 일
깨웠다.
뻥 뚫린 문으로 제일 먼저 초조해 하는 소악의 모습이 보였으며, 그 뒤로 다른 세 사
람의 모습도 차례로 보였다. 그 삼 인이란 선우영령과 화자연, 조소양 등이었다.
그들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형님......!"
소악은 북리뇌우의 건재함을 확인하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
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녀석! 내가 너에게 크게 걱정을 끼친 모양이구나."
북리뇌우는 입가에 훈훈한 웃음을 머금었다.
두 사람 사이에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굳이 말로 쏟아 놓지 않아도 서로의 심
경을 읽어낼 수가 있었으므로.
화자연도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완쾌를 축하해요. 걱정은 저도 적잖이 했었지만 감히 생색을 낼 수가 없군요."
그녀는 제 풀에 얼굴을 붉힌 채 선우영령을 돌아보았다. 이 행동은 다름이 아니라 북
리뇌우와 선우영령 간에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북리뇌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전후 사정을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흐트러진 침상이나 그 위
에 남아 있는 선명한 혈흔(血痕)을 보고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모를 수는 없었다.
단, 대상이 누구였는가는 지금에야 알았다. 그는 화자연의 뒤에서 안색이 핼쑥해진 채
거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영령을 보게 되자 고개를 들고 있기도 미안할 지경이었
다.
그의 심정을 눈치챈 듯 선우영령이 입을 열었다.
"저는 자연과 이 곳을 떠나야 해요."
"흐음?"
그녀는 애써 담담히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공자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갈 수 있어 기쁘군요. 그 동안 신세도 많이 졌
는데."
"소저, 난......."
더듬거리는 북리뇌우의 음성은 그녀에 의해 끊겼다.
"천부금황령(天府金皇令)이 내려졌어요. 이것은 저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죠. 더
지체할 수가 없어요."
선우영령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을 피하
고자 하는 심리가 분명히 내재되어 있었고, 이 점은 북리뇌우도 모르지 않았다.
난감해 있는 두 남녀 사이에 화자연이 나섰다.
"저는 그다지 염려하지 않아요. 인연이 닿는 사람들은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고 믿으니까요."
그 말은 어쩌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제껏 선우영령을 의식한 나머지 내색을 안해 그렇지, 화자연도 따지고 보면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목적이야 엄연히 달랐으나 그녀에게도 북리뇌우와 입술을 나누고 맨살을 맞댄 전력이
있다. 비록 최후의 선을 넘지는 않았다 해도 그 정도면 덤덤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
다.
그러나 두 여인은 여기서 견해 차이를 보였다.
"난 그런 건 기대하지 않아. 원하지도 않고."
"언니!"
선우영령은 피식 웃었다.
"자연은 무척 영리하면서도 일편으론 어리석어."
"네?"
"한 번 생각해 봐. 저 분 공자가 과연 우리 두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지
."
"그렇지만......."
"자고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은 큰 일을 할 수가 없는 법이지. 이건 진
리니까 믿어도 될 게야."
화자연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듣고 본즉 옳은 말이니 항변의 여지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죽을 맛인 사람은 북리뇌우였다.
말마따나 본의 아니게 엮여진 인연으로 인해 그는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두 여인
이 각기 어떤 입장을 고수하건 그로서는 이 병(?)에서 놓여날 자신이 없었다.
그는 두 여인을 향해 탄식하듯 말했다.
"내 두 분 소저에게는 정말로 할 말이 없소. 어찌 처신해야 옳을지도 모르겠고.......
"됐어요."
냉정하게 잘라 말한 사람은 의외로 화자연이었다. 그녀는 선우영령의 확고한 태도에
감화를 입어 달라져 있었다.
"우린 이만 가 보겠어요. 무운을 빌어요."
북리뇌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리지는 않으리다. 하지만 조심하시오, 두 분 다."
"모두들 안녕히......."
선우영령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고, 화자연도 냉큼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두 여인이 밖으로 사라지고 나자 소악이 입을 열었다.
"저 두 소저는 꼭 사내들 같아요."
"네 눈에는 그렇게 보였느냐?"
북리뇌우는 툴툴 웃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어떤 여인들인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쓴 입맛을 다셨다.
조소양이 그를 보며 문득 빙그레 웃었다. 웃음의 의미야 그 자신 외에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좋은밤 보네시길요
즐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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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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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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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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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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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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