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는 지은 업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결과다.
그것이 업보라면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이나 운명론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잰가 부처가 될 수 있다 또는 우리는 영원히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게 아닌가?.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존재라면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다.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 바뀌면서 나온 철학과 과학은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었다.
처음 의도는 그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해도.. 그 안에는 결정론이나 운명론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
현대 과학도 결정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된 게 아니라면 미래를 예측하는 자체가 불가능이 되므로..
업에 의한 업보가 전부라면..
업보는 새로운 미래의 업이 되는 것이니 업론은 운명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업은 인이나 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과 연에 의해 생긴다.
만일 업이 인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라면 콩 심은 데 콩 나듯.. 결정론으로 끝나지만..
업은 인과 함께 연이라는 환경이나 조건에 간섭을 받아 발생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코비드19 공포를 겪으며 요즘처럼 불안해 한 적이 없었다.
코비드19는 문명은 우리를 편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한순간에 부셔버렸다.
그후 AI 사회 참여가 가파라지면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 같은 불안을 키우고 있다.
누구는 불안과 불안의 원인을 직시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불안을 면밀히 검토한다.
그러나 불안은 들여다 보면 볼수록 더 불안해질 뿐이다.
마치 제법 너른 길을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낭떨어지 좁은 길을 걷고 있듯이..
불안은 불안으로 치료할 수 없다.
윤회 안에서 윤회를 벗어날 수 없듯이..
불안을 벗어나려면 제3의 길을 보아야만 한다.
제3의 길이 있기는 한가?.
수행자 석가가 부처인 석가로 태어날 수 있던 것은 일체 존재가 실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12연기법에서 무명이 일어났다는 것은.. 본래 비존재인 것을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체는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만남으로 생긴 것이지..
본래 그렇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무명의 자식인 우리는 존재하는 일체를 내가 접촉하는 것으로 안다.
양자역학을 공부한 박문호 박사는 주장한다.
"'나'는 뇌가 만든 0.025초 짜리 착각" 이라고..
위 말 뜻은 '보는 자'에 의해 '보는 나'는 뇌에서 0.025초 후에 생긴다는 것.
이해가 되시는지?.
이해가 되었다면..
보는 자[안처]와 보이는 것[색처]이 접촉하기 전까지.. 나와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무명을 멸한다' 는 말을 바르게 볼 수 없다.
곧 8정도의 정견이 불가능이라는 것.
므로 불안에서 도망이 아닌 극복하려 한다면..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뇌 안에서 접촉하여 '나'와 대상인 '일체'가 생긴다는 말을 우선 분명히 이해해야만 한다.
만일 불안이란 업이 존재에서 생긴 것이라면 줄일 수는 있어도 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업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면 줄이는 것은 물론 멸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시인 김춘수님은 불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무명 밖에서 무명 안으로 걸어와 있다.
그는 아마도 무명 밖 평온을 모르고 있으리라..
첫댓글 사람은 밥(빵)만 먹고 살 수 없다고 합니다.
해서 반찬이 있고, 간식이 있고.. 가끔 중식과 서양식도 즐깁니다.
불자라 해도 불교만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이웃 종교도.. 트로토 음악도.. 영화와 여행도.. 친목도 해야합니다.
그런데
외도가 주인이 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