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희는 단국대학교 Enactus(구 SIFE)에서 '투혼'이라는 팀으로 활동 중인 학생들입니다. '투혼'팀은 기존 일반 종이컵에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시온잉크를 적용, 독립운동과 관련된 이미지나 문구를 넣어 커피자판기용 종이컵을 생산하려고 합니다. 잠시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동안이라도 독립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모든 독립 운동가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길 바라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nactus는 대학생 비즈니스 사회공헌단체로써, 종이컵 판매로 인한 모든 수익금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위해 사용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저희가 도와드리려고 하는 분은 김시진 할아버지 입니다. 경상북도 내앞 마을에서 백 명이 넘는 일꾼들과 50채가 넘는 가옥을 소유하시던 할아버님의 고조부께서는 조선의 일본군들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소유 중인 재산 모두를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기부하셨습니다. 증조부이신 백하 김대락님 또한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셨고 독립운동기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적으셨고 백두산아래의 한인을 뜻하는 '백하'라는 호를 얻게 되셨습니다. 조부 때에는 남만주로 이동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부친 김문로님때 흑룡강성으로 이주하며 조국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이때 김시진 할아버지의 나이는 18세 이었습니다.
생활의 터가 만주에 있었고,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에는 할아버지 가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친의 '너는 조선 사람이니 조선에서 살아라'라는 유언에 따라 2000년 대한민국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일꾼을 거느리던 부유했던 가문에게,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것은 가난과 현실에 맞지 않은 정부의 보조금뿐이었습니다. 할아버님 부부가 한 달 동안 정부에서 받는 기초생활수급은 45만원, 연금과 주거비, 생활비가 포함되어 있지만 매월 내야 하는 월세와 전기비 및 가스비를 제외하고 남는 것은 고작 10만원 남짓한 돈입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폐지를 주우십니다. 폐지를 판매한 금액이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매일같이 문을 나서십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부인과 생을 포기하고 싶었고, 재산을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기부한 선조들을 원망한 적도 있다는 김시진 할아버지께 큰 힘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 달 팀원들과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고 집을 나서는 길에, 마중을 나오시며 색이변하는 종이컵을 하루 빨리 보고 싶다며 저희가 시야에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신 할아버지께 하루빨리 기쁨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 집행하는 모금액은 초기 종이컵을 마련하기 위한 자본금으로 사용될 것이며, 이번 생산을 시작으로 종이컵 사업이 성공한다면 김시진 할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에게도 도움을 드리려 합니다.
첫댓글 연변의 조선족은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손인가요?
그렇다면
많이 당황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