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외 1편)
심수자
내린 함박눈 한 줌 뭉쳐
데굴데굴 굴리면서
겨울까치에게 말해야지
뒤를 따라온 발자국이
덩달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슬픔이었던 구간도 기다림이었던 구간도
모두 딸려와 실타래처럼 둥글어지라고
뭉친 눈 굴리다 더 이상 굴러가지 않으면
거기가 설 자리인 듯
눈사람으로 세워 놓아야지
발자국이 끌고 온 길들
둥근 몸속으로 밀어 넣어야지
길 위에서 만난 눈빛들도 죄다 박아 둘 거야
언 가슴에 함박 쌓여 있는 눈
그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발자국 쿡쿡 찍으면
투명유리처럼 반들반들해질 거야
내 안의 길 미련 없이 다 보여 주어야지
몸속에 가둬 둔 눈빛들도
겨울 볕 아래서 녹아 흔적 없어진 뒤에야
나, 온전히 흘러
당신에게 닿을 수 있겠지
돌꽃
웅크린 돌의 표면을 핥는다
지나간 물살의 흔적이 물컹
수없는 꽃, 몸 밖으로
피워내게 했던 거다
운문천 수몰 직전까지 까무룩 젖어 있던 몸
배낭 메고 물살 흔적 찾아 헤매던
나의 노고에서 너와 나
예측 못 했던 만남이 이루어졌지
생도 꽃도 예측 밖에서 피는 것이기도 해서
무기 같은 긴장 몸속에 감추고
물살 기다리며 우리는 살아가는 거지
살며 삼킨 눈물이 냇물이 되고 강이 되더니
꽃을 피워 그리움으로 흐르고 있었지
어색했던 몇 날의 밤이 지나고 난 뒤
이제는 내 품에 잠들고 싶은 듯
목이 마르다 하여, 물을 주고
앉은자리 불편하다 하여, 좌대에 앉혀주니
이미 꽃잎 닫아 건 늙은 매화나무인 내게
꿈틀꿈틀 수액을 나눠 준다
수줍어 배시시 웃으니
돌꽃 너도 덩달아 웃는다
⸻시집『구름의 서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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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자 / 충남 부여 출생. 2014년 〈불교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술뿔』『구름의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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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외 1편)/ 심수자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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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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