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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새벽달
우리 역사에 518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사건이 또 있었을까?
도대체 일어난지 30년도 넘은 사건을 가지고 이렇게 엇갈린 주장을 하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좌. 우로 나누어 마치 원수처럼 싸워대는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분명 이런 논란의 와중에 있는 사람들중 다수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사리분별도 못하던 어린 나이였던 세대라는 것이다.
5.18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이런 젊은 세대들이 518에 어떤 원죄를 지고 태어났기에 서로를 물고 뜯으며 비난해야 한단 말인가?
518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순리대로 풀어 나갔더라면 과거의 수많은 불행했던 사건들처럼 지금쯤은 그 상처를 딛고 서서히 잊혀갔을 것이란 점이다.
물론 피해 당사자들이야 언제까지나 잊을 수가 없겠지만 지금처럼 온 나라가 518로 두패로 나뉘어 논쟁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백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지만 동족상잔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간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도 30년이 흐른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상처를 회복하고 서서히 잊혀져 갔었는데 한반도의 한쪽에서 30여년전 단 1주일간에 걸쳐 일어났던 사건으로 인해 전국이 갈갈이 찢어져 있고 국민이 분열되어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하는 비극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고 더러운 이기심이 불러온 인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5.18이 일어난지 거의 10년이 지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서서히 그 상처와 아픔이 아물어 갈 때 518의 아물어가는 상처를 후벼파고, 칼로째고, 소금을 뿌리고, 고춧가루와 양잿물을 뿌려 다시는 치유될 수 없는 민족의 상처로 만든것이 바로 김영삼이었다.
바로 정치적 야욕과 추잡한 아집으로 똘똘뭉친 더러운 개인적 복수심으로 인한 것이었다.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았어서도 안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른 것이 바로 김영삼이 주도했던 518 청문회와 518 특별법이었다.
그 시대에 일어난 사건은 그 시대의 법으로 판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2천년전 “악법도 법이다.”며 스스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법정신을 숭배한다는 법조인들이 5.18직후 대법원의 판결까지 완료된 결과를 억지로 뒤집기 위해 일사부재리의 법도 뭐도 다 팽개치고 인민재판식 떼법을 만든것이 바로 5.18특별법이었다.
지금이 중세유럽의 암흑시대도 아니고 사람들이 갈릴레오처럼 자신의 소신을 저버리고 현실과 타협한 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리는 시대도 아니다.
그런데도 김영삼은 그런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러 놓고 518이 정상적인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구속하고 고소하고 테러까지 저지르는 등의 만행을 이어왔다.
이것이 바로 5.18이 오늘까지 우리나라 동서화합을 가로막는 아킬레스건이 되어 있는 이유다.
당시 광주시민들이 시도하고 행동했던 518시위의 민주화요구를 무시하고자 하는것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서울의 봄”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대통령 시해라는 충격 속에서도 사람들은 누구나 좀 더 나은 사회, 인간이 인간답게 억압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를 열망하고 있었고 그 열망에 맞추어 박대통령의 남은임기를 맡은 최규하 대통령과 정부가 제시한 민주화청사진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따르면 민주적인 방식에 따른 자유총선거를 비롯한 국민의 여망을 여러 가지로 반영한 계획들이 들어 있었고 대통령을 꿈꾸어 오던 3김(김종필, 김영삼,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고 날아오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준비없이 맞은 현직대통령의 유고로 인해 3김중 당시 야당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권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이었고 당시에도 사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던 김대중이 대권과는 가장 먼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때 터져 나온것이 폭동에 가깝던 사북탄광사태를 비롯한 전국적으로 산발된 시위였으며 5월17일에는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계획되어 있었으나 군경의 사전 차단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당시 시위를 배후조종한 혐의로 김대중이 긴급 체포되었다.
이렇게 체포된 김대중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어나게 된 것이 광주사태(민주화시위)였다.
당시 정부에서 정확한 첩보를 가지고 김대중을 구속하게 되었겠지만 이 문제로 인해 지금도 518과 광주측에서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위해 5.18을 유도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지금도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광주시민들의 행동에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인재를 아끼는 애향심, 그리고 오랫동안 지역출신 대통령을 배출해 보고자 하는 열망외에 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는 목적은 애초 전혀 없었으리라
적어도 5월 18일부터 20일 사이에는 진압부대와 시위대간에는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어도 끔찍한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었다.
출처를 알 수없는 유언비어 즉,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 경상도 군인들만 모아서 왔다.” “임산부의 배를 군인이 군화발로 차서 낙태시키고....” “여학생의 가슴을 군인들이 대검으로 ...”이 퍼지기 전까지 어쩌면 진정한 민주화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까지도 수긍한다고 하자.
이런 소리를 듣고 당연히 흥분을 하는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사항에 대해서는 광주시민들의 분명한 답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광주사태가 분명한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20사단 지휘부를 습격하여 짚차와 트럭을 탈취한 300명의 시위대는 어디서 온 누구였는가?
2. 탈취한 차량을 몰고 아시아자동차로 달려가 4대의 장갑차와 기타 군용트럭을 탈취하여 몰고가 장갑차로 군인을 깔아 죽인 사람은 누구였으며 이를 지휘한 사람은 누군가?
이로인해 공수부대와 시위대간에 우발적인 총격전이 발생 하였다.
시위대의 누군가라고 답변하지 마라.
당시 한국형 장갑차는 수방사를 비롯한 일부 부대에만 보급이 되어 이를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나 군에서 장갑차를 운용했던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3. 38개소에 달하는 무기고와 광산 폭약고를 일시에 습격하여 탈취한 자들은 누구인가?
시민군이라고, 시위대라고 얼버무리지 마라.
포병에 TOT 사격이라는 것이 있다.
일정한 시간에 지역내의 전 포병이 사격을 하는것이 아니고 지역내의 각 포병이 지정된 시각에 지정된 표적에 동시에 포탄이 떨어지도록 사격하는 것으로 상당한 훈련과 숙달을 요하는 사격이다.
사거리에 따라서, 고도에 따라서 장약과 사격각도를 달리 하면서도 동시에 포탄이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포는 몇초~몇십초 먼저 쏘고 가까운 포는 나중에 쏘아서 주어진 표적에 일시에 떨어지도록 하는 기술이 단순히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보다 더욱 힘든것이 38개소에 달하는 표적을 동시에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하는 것이다. 만약 시간차가 발생한다면 총기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포탄이 동시에 떨어지도록 사격하는 일은 변수가 별로 없지만 38개소에 달하는 표적을 일시에 습격하는 것은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유사한 지역에서, 혹은 유사한 표적을 미리 만들어 놓고 수많은 연습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만약 광주 시민들이 한 일이라면 광주 시민들은 모두 알카에다 테러단보다 더욱 숙달된 테러집단이란 말인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 외에도 납득못할 상황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북한의 특수군이 미리 유사한 지역을 만들어 놓고 수많은 예행연습을 거쳐 광주에 들어와 저지른 일이라면 타당성이 있는 얘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북한특수부대의 개입을 부정하고 있다.
600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침투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북한이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난 사실을 알고나서 침투하려 했다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역주민이나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협조하고 안내를 한다면 해안으로 침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조갑제 기자같은 사람도 1.21사태와 울산삼척 무장공비침투등 과거 무장간첩의 침투 예를 들면서 침투가 불가능 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에 침투했던 예도 지역내 고정간첩의 안내로 이루어 졌고 침투간첩을 발견하여 신고했던 것도 거의 대부분 지역주민들이었다.
제한된 병력으로 모든 해안을 빠짐없이 감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전에 모든 사태가 계획도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특히 광주사태와 같은 경우는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혹은 누구들에 의해 수개월 혹은 수년 전부터 준비되고 계획되고 연습이 이루어져 일어나게 된 사태로 봐야 한다.
즉 누군가 광주시민들의 애향심과 지역인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획되어 이루어진 사건으로 봐야 한다.
도대체 광주시민들이 무엇 때문에 북한군의 개입설을 부정하고 있는가?
북한군이 개입된 사건이라면 애초에 광주시민의 민주화정신이 퇴색되기라도 하는가?
북한군이 순수한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시위에 개입되어 유혈사태로 변한것이 왜 불명예인가?
이것이 밝혀지면 이미 받은 보상금을 토해내야 하고 민주화투사라는 호칭이 박탈이라도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518광주항쟁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까지 등재되었다.
광주사태(혹은 민주화운동)는 이미 광주시민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국민 모두의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518의 모든 진실을 밝혀 길이 후손에 물려줄 책임이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이미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왔었다는 사실이, 그때 직접 광주사태에 참여했었다는 탈북자가 공영 방송에 까지 나와서 명백히 밝힌바가 있다.
언제까지 진실을 숨길 것인가?
이렇게 숨기다 진실이 명백히 밝혀져 국제사회에 공인되는 순간을 생각해 보았는가?
지금도 오직 광주 518문제로 인해 전라도, 광주사람은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어떤 인사는 아예 전라도를 떼어내서 북한에 붙여버리자고 공공연히 말하며 전라도 사람들 전체를 통털어 “빨갱이”로 취급하고 있으며 각종 포털에 홍어니 뭐니 하며 차마 입에 담지못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살을 맞대는 부부간에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실정이 아닌가?
518이 진정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광주시민 스스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지금의 사태는 진정한 시민정신이 아니다.
80년 518사태가 마무리될 당시 도청 지하에 설치된 폭약의 뇌관을 스스로 제거하여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것도 광주시민이었고, 너무 격화되어가는 시위를 마무리하기 위해 진압군과 협조하여 인명피해를 최소화 한 것도 광주시민이었으며, 시위가 마무리된 이후 수천정에 달하는 총기를 스스로 회수하여 더 이상의 무고한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방지한 것도 광주시민이었다.
바로 이것이 광주시민들의 진정한 시민정신이다.
여기에 전 국민이 박수를 보내며 광주의 아픔을 같이하기 위해 수많은 구호물자를 보내고 스스로 복구대로 나서 광주의 피해를 복구했었다.
한때나마 전국민이 광주를 중심으로 아픔을 같이하고 하나로 뭉치기도 했었다.
그때의 모습을 잊고 광주는 거짓에 취해 시위를 조장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무리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광주시민의 드높은 기상을 버렸는가?
누가 광주의 아들과 딸의 목숨을 앗아간 진정한 원수인가?
5.18 직후 이루어졌던 총상 흔적에 대한 조사는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총상의 흔적은 숨길 수 없는 과학이다.
당시 진압군은 M16만 보유하고 있었고 M16 총상의 흔적은 들어간 곳은 바늘끝만 하지만 나온 곳은 거의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흔적이 남는다.
이런 흔적을 남긴 시체는 불과 열여섯구 뿐이었다.
그것도 교도소를 습격하다 죽은 시체가 대부분 이었다.
도대체 민주화 시위에 교도소는 왜 습격하는가?
이것도 광주시민 스스로 저지른 민주화 시위라고 떳떳하게 주장하려는가?
광주시민들이여 진실의 눈을 떠라.
광주의 아들 딸들을 죽이고 죽게한 진실한 원수가 누구인지 스스로 밝히고 불행했던 과거는 잊고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죽은 영혼 부여잡고 미련에 젖어 있을 것인가?
광주시민은, 전라도인들은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의 사랑을 보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동참하여 광주의 꿈을 다시 키워나갈 새로운 인재를 ?아내어 미래를 가꾸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더 이상 광주를 이용해, 전라도를 이용해, 518을 이용해 추악한 야욕을 채우려는 무리들에게 이용당하지 마라.
지금 518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움직임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그 불길에 휩싸여 차갑게 식어버린 재가되어 버려질 것인가? 아니면 그 불길에 동참하여 불의를 태워버리고 자랑스런 광주시민으로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나 미래를 향해 같이 나갈 것인가는 바로 그대들 광주인들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