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필연적(必然的) 만남
[1]
제양(齊陽).
이 곳은 하남성(河南省)과 산동성(山東省)의 경계로써, 연경(燕京)을 중심으로 중원의
거산인 태산(泰山)의 산맥권 내로 진입하는 요로다.
또한 산동성의 태산역에 웅좌한 십방무림통사단의 세력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최초의 지역이기도 했다.
숭산(嵩山)의 소림, 소호의 천라무궁, 태산의 십방무림통사단, 그 삼 개 세력의 삼각
지대가 바로 제양이었다.
석양 무렵.
산천은 타오르듯 짙은 홍광(紅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제양의 거리는 이 시각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군상(群像)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따각, 따각......!
북리뇌우의 마차가 석양빛을 뚫고 성내로 들어섰다.
대로는 사람들의 물결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남방인과 북방인, 심지어는 만몽(滿蒙)이나 변경(邊境)의 이족(異族)들까지도 성시를
이루며 활보하고 있었다.
인종이 다양하다 보니 사람들의 복장도 가지각색이었지만 나름대로 특색은 유지되고
있었다.
남방인들은 대개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다.
출신지가 같아도 상인들은 여기서 예외였다.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그들로서는 치장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북방인들은 문사(文士)로 보일 만한 복장을 즐긴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거의 깨끗
한 유삼(儒衫)이었다.
그런가 하면 만몽 등의 이족들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 있기 일쑤였다.
그들은 중원으로 이주를 해 와도 본래의 습성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피의(皮衣) 위에 길고 짧은 피풍을 두르기도 하는데, 이것도 그
들만의 특색이랄 수 있었다.
어쨌든 대로는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로 정신 없이 붐비고 있었으며 곳곳에서 상인들의
외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부석에서 소악이 좌우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음! 이제야 사람 사는 곳에 온 것 같군."
그는 오랜만에 긴장을 풀며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시름을 잊게 해 주었기 때문으로, 그는 이런 곳에 와야 살맛이 나는 위인이었다.
반면에 북리뇌우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붕이 떨어져 나간 마차 안에서 외부의 소요를 모두 접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
는지 말이 없었다.
준수한 외관 탓에 종종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으나 그 방면에도 그는 신경을 쓰
지 않는 듯했다.
"형님."
소악의 부름에는 응해 주었다.
"왜?"
"사람들이 참 많다구요."
"녀석, 싱겁긴."
"길도 무척 복잡하군요."
북리뇌우는 문득 정색을 하고 소악을 응시했다.
"소악."
"네?"
"네가 말하려는 요지가 뭐냐?"
"심심해요."
"뭐? 아까는 사람 사는 곳에 왔다며 좋아하더니."
"그러면 뭘 해요? 말을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는 걸. 공연히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
비를 걸 수도 없고."
"후후, 지금은 어떻느냐?"
소악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느냐니, 무엇이요?"
"나와 이렇게 근사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크으, 형님께는 도저히 못 당하겠군요."
북리뇌우는 소악의 어깨를 툭 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네게도 그렇게 겸손한 면이 있었더냐?"
"그 정도야 고매한 제 인격의 일부일 뿐이지요."
두 사람의 농은 이후로도 잠시 더 이어졌다.
소악은 그런 식으로 가끔씩 북리뇌우를 부추기곤 하는데, 그것은 주로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늘이 발견될 때였다.
북리뇌우는 내심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착한 녀석! 네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는구나.'
이 때였다.
그들을 태운 마차 뒤에서 소란한 움직임이 일더니 일단의 행렬이 다가왔다. 그것은 세
대의 사두마차였다.
그 마차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과는 형태가 판이하게 달랐다. 바닥을 제외한 삼 면
이 모두 굵은 쇠창살로 이루어진 옥거(獄車)였던 것이다.
마부석에는 건장한 청의장한들이 고삐를 잡은 채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인상은
하나같이 흉험하기 짝이 없었다.
마차 안에는 양 손에 족쇄가 채워진 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은 남녀노소의 구별도
없이 아무렇게나 뒤섞인 가운데, 그저 마차가 움직이는 대로 이끌려 가고 있는 중이었
다.
그들의 행색은 실로 처참지경이었다.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 군데군데 찢어져 나가 살갗이 다 드러나 보이는 남루한 옷
차림, 땟국물이 절어 있는 꾀죄죄한 얼굴 등 그야말로 짐승이나 진배없는 몰골이었다.
처지가 그쯤에 이르니 체념의 도를 터득한 것일까?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 일색이었다.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그들
에게는 거개의 인간들이 가진 감정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을 실은 마차의 행렬이 대로상에 나타나자 행인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들에게로 쏠
렸다.
북리뇌우도 그 쪽으로 시선을 향한 채 입을 열었다.
"쯧, 봐줄 만한 정경이 아니구나. 팔려 온 노비들인가?"
소악은 그들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그렇게 보이는군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슨 소리냐?"
"뭐, 별로 신기한 구경거리도 아니지 않습니까?"
태연한 척 말하고 있었으나 소악의 음성에서는 어쩔 수 없이 씁쓸함과 더불어 진한 연
민이 묻어 나왔다.
예로부터 노비를 사고 파는 행위란 의당 있어온 일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물건
이나 도구로 취급되므로.
작금에도 그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소악만이 유달리 그들에게 동정적이었는데, 이는
그 자신도 밑바닥 인생을 살아왔는지라 그들을 웬만큼은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노비들의 신세는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무조건 주인의 명에 따라야 하며 말썽을 부리거나 힘이 없어지면 가차 없이 다
른 곳에 헐값으로 팔아 넘겨진다.
이런 식으로 일단 팔려 다니기 시작하면 그 노비는 어떤 곳으로 가던 최악의 대우를
받게 마련이었다.
각지를 전전하며 혹사당하다가 종국에는 인적 없는 곳에 버려져 죽게 되는 것이 상례
였다.
삐그덕, 삐그덕......!
각기 수십 명씩의 노비들을 실은 옥거들이 차례로 북리뇌우의 마차 곁을 스쳐 지나갔
다.
"으음, 저들도 인간일진대......."
북리뇌우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불어냈다. 긴 역사가 만들어 놓은 악습(惡習)을 뜯
어고칠 힘은 그에게도 없었기에.
한 늙은 노비와 눈길이 마주치자 그는 일시지간 몸을 가늘게 떨기도 했다. 그는 보았
던 것이다. 그 주름이 가득한 얼굴 위로 허옇게 말라붙어 있는 눈물 자국을.
그러나 다음 순간에 그의 안면은 뚝 굳어졌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악, 저들을 따라가자."
"네?"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무슨 짓이든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니
까."
소악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옥거들을 따라 방향을 잡으며 나직이 말
했다.
"낙양(洛陽)에 있을 때 들은 소린데, 저들은 아마도 석인시(夕人市)로 갈 겁니다."
"석인시?"
북리뇌우가 되묻자 소악은 아는 대로 설명했다.
"이 곳 제양에서는 보름마다 인시(人市)가 열린다고 합니다. 한가한 저녁 시간에 열리
곤 해서 석인시라 불리우지요."
"음!"
"일반 부호들은 물론 무림의 제문파에서도 잡역을 시키기 위해 노비를 사 간다고 하더
군요."
"우리도 그 곳으로 가 보도록 하자."
북리뇌우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그를 재촉했다.
따가닥...... 따각......!
마차는 옥거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북리뇌우는 한동안 무엇인가 상념에 잠겨 있
더니 불쑥 물었다.
"저 노비들 중에는 무림의 세가(勢家)에서 팔려 나온 노비들도 섞여 있겠지?"
"당연하지요."
북리뇌우는 전면의 옥거를 주시할 뿐 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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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에 마지막 월욜밤도 행복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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