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리뇌우의 관점은 이 때에도 별개였다. 그는 청의장한이 지껄이는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독각청년만을 계속하여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런 그의 눈가에는 가늘게 파랑이 일고 있었다. '왜인가? 나는 분명 저 자를 처음 보았거늘, 마치 나와 어떤 끈으로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드니.......' 그는 어쩌면 독각청년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일부를 발견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때마침 독각청년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북리뇌우에게로 향해졌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 친 순간, 청년의 눈에서는 불길이 일듯 기이한 빛이 확 솟았다. 그러나 그 빛은 찰나적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며 독각청년은 무심으로 되돌아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청의장한이 손을 치켜들면서 외치고 있었다. "자! 어떤 놈을 고르든 가격은 황금 일천 냥이오.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니 다들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중인들이 노비들을 잘 볼 수 있도록 옆으로 쓰윽 비켜섰다. 그것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다. 그가 부른 금액은 통상 거래되는 노비 들에 비해 이십 배가 넘었다. 이렇다 보니 중인들은 저마다 고개를 내두를 뿐 선뜻 사려 들지 않았다. 아무리 튼튼 한 노비라 할지라도 다른 노비 이십 명에 준하는 가치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이 때, 중인들 가운데서 비대한 화의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노비 한 명을 골라잡았다 "이 놈을 사겠소." 청의장한은 짐짓 인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좋소, 우리가 보물처럼 여기던 놈인데 내드리리다." "보아하니 무예를 좀 할 줄 아는 듯한데?" "그렇소이다. 다들 정식으로 배운 바는 없으나 무림세가 출신이라 한가닥씩은 하오." "아! 그렇다면 비싼 가격도 아니로군." 화의중년인은 매우 만족한 얼굴로 황금 일천 냥을 지불하고는 십여 명의 노비 중 자신 이 고른 한 명을 사들였다. "흠, 데리고 가서 잘 먹여 놓으면 쓸모가 많겠군." 그로 인해 장내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중인들은 언제 망설였냐 싶게 우르르 노비들의 앞으로 몰려들더니 새삼 요모조모 뜯어 보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 광경에 소악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바람잡이가 나서니 효과가 있기는 있군." 그랬다. 화의중년인은 청의장한들과 한 패로써 중인들 속에 섞여 있다가 고객을 가장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군중심리를 유도하는 그 얄팍한 상술을 소악은 환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떠들어대지는 않았다. 그나마 노비들은 여기서 팔려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므로. 일렬로 세워져 있던 십여 명의 노비들은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화의중년인이 산(?) 그 노비는 예외였겠지만. '그 자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심 무척이나 걱정이 되는 소악이었다.
예외는 또 있었다. 정말로 팔리지 않은 한 명의 노비, 그는 다름 아닌 독각청년이었다 . 신체적 조건 탓인지 매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우두커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청의장한은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채찍을 쳐들었다. "네 놈은 여기서도 팔리지 않는구나. 그 연유는 네 놈이 살기(殺氣)를 품고 있기 때문 이다." 촤악! ㅊ......! 섬뜩한 음향과 함께 피와 살점이 허공으로 마구 튀었다. 청의장한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독각청년의 비쩍 마른 몸에 채찍 세례를 퍼부어 댔다. 그는 방금 전 청년을 좋은 선전 도구로 이용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듯했 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독각청년은 의외로 꼿꼿이 버티고 선 채 모진 매질 을 감당해냈다. 심지어 그의 입에서는 비명 한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취잇! ㅊ......! 청의장한의 채찍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휘둘러졌지만 독각청년의 기세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청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일까? 아니다. 그도 여느 인간들과 똑같은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바, 여하한 아픔도 동일하 게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시무시한 증오로 화해 남다르게 표출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점은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채찍질이 가해질 때마다 그의 눈은 새파란 독 기(毒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주위는 깜깜해져 있었다. 명색이 석인시여서인지 날이 완전히 저물어 버리자 공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흩 어져 돌아가고 없었다. 남은 것은 청의장한들, 즉 인매상(人買商)과 그 때까지도 팔리지 않은 늙고 힘없는 노
비들 뿐이었다. 북리뇌우. 그는 줄곧 아무 말도 없이 장내를 지켜보고 있다가 인시가 파장이 난 후에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독각청년에게 채찍질을 해대던 청의장한을 향해서였다. 청의장한은 한창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북리뇌 우를 보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요?" "저 자를 사고 싶소." 북리뇌우는 눈짓으로 독각청년을 가리켰다. "지불할 대금은 있소?" 청의장한은 눈을 아래위로 굴리며 대뜸 그렇게 물었다. "물론." 북리뇌우는 씨익 웃었다. "단, 저 자의 몸값은 스스로 결정하게 하겠소." "흐흐, 좋아! 그렇지만 황금 일천 냥 이하는 안되지." 청의장한도 조건을 달며 힐끗 독각청년을 응시했다. 골칫덩이를 팔아 넘기면서도 값은 최대치를 받고 싶었는지 그토록 학대를 하다가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북리뇌우는 그 자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각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대를 사는 대가는?" 독각청년이 처음으로 웃었다. 먼지가 잔뜩 낀 데다 핏물까지 퉁긴 그 얼굴에 나타난 웃음이란 차라리 섬뜩했다. "약간 비싸고 지불하기도 힘들 텐데, 그래도 괜찮소?" "상관없다."
북리뇌우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독각청년은 자신을 이 곳으로 데려온 다섯 명의 청의장한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그 러더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 자들의 목숨." "뭐, 뭣이?" 듣고 있던 청의장한이 눈을 크게 휩떴다. "이런 우라질 놈!" 그는 거친 욕설과 함께 면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수중의 채찍을 휘둘렀다. 쉬익! 하지만 채찍이 독각청년의 몸에 채 이르기도 전, 한 줄기 자청색 섬광이 허공을 가르 며 그에게로 쏘아져 갔다. "큭!" 짧은 비명과 더불어 청의장한은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그의 이마에는 콩알만한 혈 흔이 남아 있었다. "아니, 저런!" 나머지 네 명의 장한들은 느닷없는 사태에 기겁을 했다. 그들을 위해 이번에는 네 줄 기의 섬광이 쏘아졌다. "크윽! 컥......!" 각기 다른 네 마디의 비명이 그 다음 순간을 장식했다. 네 명의 청의장한들도 모두 앞 서 죽어 간 동료와 마찬가지로 이마에 똑같은 혈흔을 달고 절명했던 것이다. 그 사태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장내에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은 얼떨떨 한 표정이었다. 독각청년만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매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때, 여타의 인매상들이 북리뇌우를 포위해 왔다. 그들은 살의(殺意)가 깃든 눈으로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것은 일편 이해가 가는 현상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동류(同流)끼리 상호부조의 원칙 이 작용했을 테니까. 그들의 행태에 북리뇌우는 내심 중얼거렸다. '잘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매상들을 내 손으로 처치할 수는 없지만 우선 이 자들이라도......!' 그는 독각청년을 향해 간단히 한마디 했다. "그대에게 덤을 얹어 주겠다." 츠파앗! 자청색의 섬광이 쏘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위력 면에서 볼 때 방금 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눈부신 광휘가 허공을 메우는가 싶더니 그를 포위하고 있던 인매상들은 미처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즉사하고 말았다. 일을 마친 북리뇌우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소악! 이리 와라." "네, 형님." 그는 쏜살같이 내달아 온 소악에게 명했다. "너는 죽은 자들의 품속을 뒤져 보아라. 열쇠가 있을 테니 속히 노비들의 족쇄를 풀어 주도록." "넷!" 소악은 신명이 오른 듯 크게 대답했다. "이건 내 생각이다만, 저들을 낙양에 있다는 네 아우들에게 보내 보살피게 하면 어떻 겠느냐?" "헤헤, 저도 방금 그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지요." "녀석......."
그렇게 하여 팔리지 않은 노비들, 즉 늙고 힘없는 자들은 인매상의 마수에서 놓여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되었다. 소악이 열쇠를 찾아내 그들의 족쇄를 끄르고 있는 동안 북리뇌우는 독각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처음 보는 순간부터 왠지 나와 무관하지 않은 존재 라는 느낌이 들었다." "으음......." 독각청년은 신음을 흘리더니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도 당신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소. 마치 오래 전에 만났어야 했을 사람을 이제 야 대한 것 같은." 북리뇌우는 빙긋 웃었다. "우리에게는 좀더 대화가 필요하겠군."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몸을 돌려 마차로 갔다. 잠시 후. 독각청년이 형벌(刑罰)과도 같던 족쇄와 쇳덩이가 제거된 상태로 소악에게 의지하여 마차로 다가왔다. 마차 안에서 북리뇌우가 물었다. "다른 노비들은?" "염려 놓으십시오. 죽은 자들의 유산(?)을 몽땅 털어 일부를 나누어 주고, 아우들의 거처도 친절히 알려 주었습지요." "네 수입도 짭짤하게 챙겼겠구나?" "물론이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좋은 일을 했는데 그 정도의 대가는 아무것 도 아니지요." "후후후......."
북리뇌우는 소리내어 웃고는 독각청년을 가리켰다. "그를 이 안에 태우도록 해라." "네, 형님." 소악은 그를 마차에 오르게 하고 마부석으로 가 앉았다. 두두두두―! 북리뇌우의 마차는 곧 그 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만월(滿月)이 내리비치는 가운데 한차례 파란이 휩쓸고 간 석인시의 공지는 금세 괴괴 한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밤은 소리 없이 깊어 가고 있었다. |
첫댓글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연이 이어지는군요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8월에 첫날도 무탈하세요
즐독 합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