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18년간 유배살이를마치고 57세의 노인이 되어 양주 마제의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지 4년 후 회갑을 맞아 그는 자기 평생의 말과 행동을 정리하여 자찬묘지법 두 편을 지었다.
한 편은 문집에 싣고 한 편은 무덤에 넣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집중본에서 '지난 모든 것들을 거두어 매듭을 짓고, 한평생을 다시 시작하며 하늘의 밝은 명을 살펴서
나머지 인생을 끝마칠 것'이라고 술회하였다.
다산은 이 필생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터득한 바를 네 거지로 요약하였다.
'성이 기호임을 알았고, 인이 효제임을 알았으며, 서가 인을 행하는 방도임을 알았고, 하늘이 내려다봄이 있음을 알았다'
이 네 가지 앎은 그가 도달한 평생 학문의 총결이라할 수 있는 것이다.
다산에 의하면 선을 지향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고, 인간 본성을 실현하는 덕의 총괄체가 인이며,
인간의 착한 본성인 인을 행하는 것이 하늘의 밝은 명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방도가 서이다.
자산의 정신과 사상의 근원을 찾아가 보면 그의 젊은 날 일찍이 하느님과의 만남과 서의 발견이 있었다.
그의 생애 초기에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 큰 분수령의 하나는 16세 때 성호 이익의 저술을 통해
수사학(수사는 공자가 태어난 고향이자 말년에 돌아가 제자들을 가르친 산동 곡부에 흐르는 두강 수수와 사수를 가리키고.
수사학이란 공자가 가르친 본원의 유교를 지칭한다)을 재발견힌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23세 때 서교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난 일이었다.
다산의 학문적 열정이 수사학, 곧 유학의 본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왔다는 것은 다산 자신의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수사의 옛길을 재발견하고 공자의 일관지도인 서를 투득하여 역행한 것이 다산으로 하여금 긴 유배 생활의 간고를 이겨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다산은 공자로부터 맹자, 증자로 이어진 일관지도인 서가 모두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선을 행햄을 의미하는 추서라고 하였다.
그는 유배 생활을 통하여 더욱 깊고 폭넓게 동시대 민중의 간고에 마음을 같이 하였다.
그의 방대하고 철두철미한 저술 또한 이 마음의 길인 소의 역행이었고, 그를 통하여 자신의 개인적 울분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다산이 서를 역행한 것은 수사학과 서교를 통하여 재발견한 상제와의 인격적 만남과 깊은 관계가 있다.
상제는 최고의 인격적 자세로 섬겨야 할 대상이다.
계신공구와 성.경의 마음가짐은 상제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서의 지극함이고, 서로써 상제를 섬기는 것은 지극히 인격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다산에 있어 상제를 섬김은 인륜의 도덕의 원천이 된다.
맹자가 '서를 행하는 것은 인을 행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 한 명제에 대한 다산의 적극적 해석이다.
서는 좁게는 개인이 사적 관계에서 인을 실현하는 원리이고, 넓게는 한 사회가 사회적 인격으로서 공적으로 인을 실현하는
원리이다.
인의 덕은 사람과 만물을 살리고 그 본성대로 생을 온전하게 실현하게 하는 데 있다.
나를 미루어 살펴서 다른 사람을 살리고 그 본성이 실현되게 해주는 것,
이 일을 사회적 관계의 총괄체인 국가의 범위에서 행하는 것이 위정이다.
그렇게 본다면 정치는 서로써 행하는 인술이다.
위정자가 이 서의 마음을 가지면 나라가 되고, 이 마음이 없으면 나라가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극단의 분열과 대결로 치닫고, 정부가 혼란에 빠져 국민을 통합하지 못하고,
무고한 생민이 불시에 떼죽음을 당하는 참사가 잇따르는 현상의 원인은 무었일까?
극심한 양극화로 국민 다수가 고통에 빠져 있는 이 상태를 다산이 본다면 다시 무엇이라고 말을 할까?
한 해를 돌아보면서 다산이 찾은 서의 길을 생각해 본다, 조태영 한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