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많은 경우 마음가짐은 한순간이다. 생각이 오른쪽으로 쏠렸다가 또 왼쪽으로 쏠리기도 한다. 인생의 운도 이처럼 자주 변한다. 마린은 올림픽의 17일 동안 차가운 기운이 발끝부터 목덜미를 차례로 스치는 듯한, 온 몸에 소름이 돋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기자 : 그게 올림픽 어떤 경기에서였습니까?
“한국과의 단체전이었고 상대는 오상은이었다. 스코어는 8대 3이었는데, 단체전 첫 경기 첫 게임이었으니 경기를 잘 풀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내 서비스를 상대가 리시브했는데, 나는 그 공이 탁구대를 벗어날 거라 판단해서 백핸드 드라이브를 하려 했다. 그런데 공이 생각보다 짧아 엔드라인에 걸쳤고, 나는 탁구대 모서리를 치고 말았다. 결국 4cm는 될 만큼 러버가 찢어졌고 정상적이었다면 라켓을 교체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상은이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라켓을 가지러 가기도 어려웠다.”
기자 : 라켓이 망가진 것을 알고 있었나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땀을 닦으러 가서 라켓을 보는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보조라켓으로 연습을 해본 적은 있지만 마땅치 않았고, 문제가 있더라도 메인라켓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나는 평소 라켓을 탁구대 위에 놓을 때 붉은 면을 위로 향하게 놓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그 날은 검은 면을 위로 향하도록 놓았다. 붉은 면이 보이도록 놓으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오상은이 그걸 보면 바로 심판에게 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라켓을 바꿔야만 했다. 첫 게임을 마치고 류 코치의 귀에 대고 러버가 찢어졌다고 말했는데, 그 역시 상대가 알아보지 못한다면야 지금처럼 계속하라고 했다. 사실 8대 3의 그 공 이후 나는 8대 6까지 쫓겼었다. 아마도 라켓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보고 라켓을 바꾸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만 했었으니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원래의 상태로 겨우 돌아왔다.”
그 경기의 세 번째 게임, 마린은 VIP석에 앉아있던 쉬인셩(徐寅生) 주석(譯註 : 중국탁구협회장)이 오른손으로 계속해서 원을 그리는 사인을 보게 되었다. 마린이 이해하기로 쉬 주석은 ‘몸을 더 옆으로 하고 계속해서 변화를 주라’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이 긴장을 하면 변화를 주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낸다. 며칠이 지나 마린이 인민대회당에서 쉬 주석과 마주쳤을 때 물었다. “저에게 사인을 보내는 것을 보았는데 평소에는 그러시지 않았잖아요?” 쉬 주석이 말했다. “조금 마음이 급했었지” 그 경기를 치르는 동안 마린은 차이전화(蔡振華) 국장(譯註 : 중국 탁구대표팀 총감독)의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차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자주 보여줌으로써 긴장을 풀어주려 했고, 마린은 안정적인 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그레브에서의 아픈 기억
올림픽에서의 러버에 대한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니다. 단식 준결승전, 마린은 여전히 경기장에 있었고 문제가 된 러버는 이번에는 그가 아니라 상대인 왕리친의 것이었다.
“왕리친의 라켓이 탁구대를 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경험이 있던 나는 라켓이 훼손됐음을 알았다. 우리 둘 다 힘에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분명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기자 : 그도 당신처럼 잘 숨기던가요?
“막 경기를 시작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처럼 라켓을 가지고 땀을 닦을 시간이 없었다. 아주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인과 중국인의 경기에서는 계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경기의 일부이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왕리친은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각종 오픈대회에서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경기를 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처음이었다. 2005년과 2007년 세계대회에서 연속해서 두 번이나 결승전에서 그에게 졌다. 2005년에 처음 졌을 때는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자그레브에서 졌을 때는 무척 힘들었다. 왜냐하면 내 나이로 보나 전형으로 보나 이후 그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을 따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더 좋은 기회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반년동안 내 머릿속에는 늘 그 때의 경기장 모습이 떠다녔고, 늘 그때 조금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 속에서 살았다.”
“이번 올림픽 전에도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며 망설였었다. 2005년에도 결승전에서 졌고, 2007년에도 결승전에서 졌다. 2008년은 나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로 아마도 최후의 올림픽이 될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준결승전이었으나 연속 세 번의 큰 대회에서 같은 상대에게 진다면 스스로가 받을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더 초조했고 힘들었다.”
기자 : 초조하다는 게 어느 정도였나요?
“경기 전날 밤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두세 시까지 뜬눈으로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났는데 머릿속으로는 2005년, 2007년의 경기장면만 떠올랐다. 만약 리드를 한다면? 첫 게임과 두 번째 게임을 이겨서 2대 0으로 앞서간다면? 3대 0은 없다. 3대 0 리드는 생각조차 불가능하다. 2대 0으로 앞서가다가 세 번째 게임을 내주었을 때 상대가 이를 악물게 만들어서 교착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하지? 상대가 연속 두 게임을 쫓아오도록 허용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경기를 되돌리지? 필사적으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실제 경기에서는 뜻밖으로 3대 0의 리드상황이 전개됐다. 네 번째 게임을 앞두고 벤치에서 설마 이렇게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3대 0의 리드상황은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분명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경기는 완전히 심리적인 것이라는 말을 그때도 나는 정확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히 당시 나는 신중하게 한 점 한 점 따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4게임에서 두 번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10대 9! 11대 10!! 그런데 두 번 다 내 서비스가 탁구대를 벗어났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심리가 안정되지 못했던 것이다. 곧 이길 것 같은 시점에서 손에 열이 나고 떨렸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지금 최소한 그때의 정황을 기억해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자그레브에서의 정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멍할 뿐이다.”
“자그레브에서 지고 난 뒤에는 정말 괴로웠다. 그러나 울고 싶지는 않았다. 경기를 막 마쳤을 때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두세 번이나 왔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상이 끝나고 인터뷰를 준비할 때 엄마에게서 또 전화가 와서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울기 시작했다. 사실 경기에서 지고 나서는 완전히 멍해졌었다.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해도 들리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말하는 것 같았다. 병이 나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셨다는 것이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정말 너무 괴로웠다. 모든 것이 갑자기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자그레브에서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는 대부분 중국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다음날 그들이 내가 울었다고 했다. 울음소리가 정상적인 사람의 울음소리와는 달라서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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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나는 ‘무슨 소리?’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완전히 절망했었다. 다시는 그 같은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2008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였었다. 비록 당시 많은 코치와 팀 동료들이 반드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했지만 그저 위로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마린이 매체를 향해 스스로의 실패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예전엔 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이런 질문들을 대했었다. 극도로 실망한 모습을 감출 수 없었던 자그레브 세계대회 남자단식 결승전 뒤의 인터뷰 때에도 마린은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었다. “가능한 실수는 모두 해봤기 때문에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한 칼만 갈아온 10년의 세월
베이징올림픽 남자단식 결승전 후에 마린은 도핑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실의에 빠진 왕하오와 왕리친, 그리고 그들의 코치인 류궈량이 의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때 류궈량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옆에 있던 준우승자 왕하오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마린이 1999년 세계대회에서 나에게 진 이후 벌써 10년이 됐다. 10년 동안 한 칼만 갈다니 정말 대단하다.”
마린은 올해 불과 29세이다. 그 스스로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인생 1/3의 시간이 다 잘못 보낸 세월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늘이 이 사람한테 무척 후했다는 것에도 감탄할만하다. 10년 동안 그가 실수하게끔 계속해서 좋은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실수는 류궈량과의 1999년 세계대회에서의 결승전이다. 이기고 있었지만 몰아붙일 용기가 없어서 주도권을 내주고 상대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렸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많았다. 두 번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발트너와의 경기였는데 연속해서 그를 몇 번 이겨봤기에 너무 쉽게 보았다. 그러나 올림픽은 다른 경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이미 노쇠한 상대가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결국 졌다. 세 번째는 왕리친과의 2005년 상하이 세계대회 결승전이다. 또 다시 요행을 바라면서 상대의 실수에 묻어가려 했고 결과는 또 패배였다. 2007년 자그레브에서는 크게 앞서 있었기 때문에 승리의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너무 해이하게 운영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2008년까지 나는 해볼 만한 실수는 모두 저질러보았다. 그리고 모든 심리적인 문제도 경기장에서 검증을 받았다. 모든 것이 다 잘못됐었다는 것이 증명됐다.”
마린은 지난해 설날 남자대표팀이 션젼(深?) 롱강(龍崗)에서 합동훈련을 할 때 TV 카메라 앞에서 정중하게 말했었다. “나는 올림픽이 용감한 사람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용감한 사람이 시합을 잘 할 수 있다.” 베이징 올림픽 남자 개인전 이후 다시 그 이야기를 물어 봤더니 그는 짤막하게 한마디만 했다 “나는 스스로를 사내대장부라고 생각한다.”
“정말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온 우승이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딱 10년이다. 우승을 갈망했고, 그중에서도 올림픽 금메달은 꿈에도 그리던 우승이었다. 게다가 실력도 완전히 발휘했다. 십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자 : 얼굴을 수건에 묻고 매우 침착하던데요?
“당시 수많은 기자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방송 중이었고, 전국에서 시청자가 보고 있었을 텐데, 아마 내가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큰 웃음)”
기자 : 하지만 류궈량 코치는 왕하오가 준결승전에서 페르손를 물리치자 둘이 엄청 울었는데 그들도 의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요?”
“류 코치님은 나처럼 자주 울지 않는다(웃음). 나는 이겨도 울고, 져도 울고, 그래서 좀 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10~20%의 확률을 뚫고
그와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얘기를 꺼내니 갑자기 마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1993년 11월 대표팀에 들어왔다. 올해까지 딱 15년이다….”
마린은 그 15년을 계속된 위기의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현대 탁구의 수많은 타법가운데 이면타법, 특히 평면러버를 붙인 이면타법은 난도가 제일 높고 선수의 체력과 능력을 포함해서 많은 제한을 받는다. 몇 년 동안 라지볼, 오픈서비스 등등 이면타법을 구사하는 선수에게는 상대적으로 난도가 더 커졌다.
“2005년 전국체전에서 왕하오한테 졌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마린은 나이가 많고 타법이 노화됐다. 2008년에는 아마 탁구를 할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전국체전 후에 우(吳敬平, 譯註 : 어린 시절부터 마린을 지도해온 은사, 광둥팀 코치) 코치가 나와 왕하오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식사를 하다가 우 코치가 문득, 넌 베이징 올림픽 참석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고 물어왔다. 어? 우 코치가 이렇게 물어본 것은 내가 안 된다는 뜻인가? 그래서 나는 50% 정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때 세계대회에서 2등을 했으니 왕리친 다음엔 나 밖에 없다고 확신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 코치가 ‘뭐라고? 50%?’ 그 말에 내가 너무 자신 없게 얘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60%? 그런데 우 코치는 뜻밖의 말을 던졌다. 너한테는 지금 10~20% 확률도 많은 거야.”
“그 이후 2005년에서 2008년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나는 항상 10~20% 기회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희망이 있어 보이다가 또 어떤 때는 없어 보이기도 했다. 2006년 세계대회 단체전에서도 나는 불안했다. 그 해 말 아시안게임 전에 우 코치가 또 나를 찾아와 아시안게임에서 외국인에게 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정말 다시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07년 말 세계대회 결승전을 앞두고도 우 코치는 나에게 결승전에서 잘하지 못하면 위험할 거라고 충고했다. 2008년 광저우 세계대회 단체전 전에도 우 코치는 올림픽의 첫 번째 예행연습이나 다름없으니 잘못한다면 올림픽 출전은 또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 몇 년 동안 나는 하는 경기마다 위태위태했었다. 못 믿겠으면 우 코치에게 물어봐도 좋다. 그는 정말 나한테 매번 그렇게 말했었다.”
“2000년 올림픽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인원수에 제한이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올림픽에 가기 전에 차이전화 감독이 나한테 한마디 감동적인 말을 했었다. ‘끝까지 버텨라.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당시 올림픽 참가선수들을 차로 보내고 가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앞으로 저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심적으로 매우 괴로웠었다. 이면타법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4년 뒤는 너무 요원했다.”
기자 : 듣자하니 이후에 류궈정과 그 일에 대해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고 하던데요?
“그때는 둘 다 어려서 많은 문제들을 그저 단편적으로 봤다. 경쟁하고 난 뒤에는 적이 되어버렸다. 나와 류궈정은 어려서부터 같이 컸고 샨토우(汕頭)에서 같이 대표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광둥팀에서도 오랫동안 같이했다. 심한 대립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당시에는 그가 내 자리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했었다. 자리를 빼앗는 건 밥그릇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었다. 능동적으로 류궈정과 이런 문제를 말할 정도의 교류도 없었던 데다 그도 내향적인 편이다. 게다가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게 됨으로써 우리 두 사람의 경쟁에서 승리한 셈이다. 그도 나한테 무슨 말을 하기가 좋았겠는가? 말을 많이 하면 진심이 없다고 할 것 같고, 또 적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했다. 몇 년 뒤 그가 나에게 말을 하고 나서야 이해를 했다.”
“나도 사람됨이 예전보다 더 당당해졌고 생각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어떤 일들은 매우 단편적인 면만을 생각했고, 그 폭도 좁았다. 지금 올림픽 단식 우승을 한 뒤로 무슨 일이든 훨씬 넓게 보게 되었고 문제를 대할 때도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꼭 올림픽 때문이 아니라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그 나이에 맞게 성숙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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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마린은 인터뷰 내내 흥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또 불평하거나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의 몸에 고도의 평온함이 퍼져있는 것 같았다. 올림픽 이후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말은 ‘경지’이다. 일찍이 큰 바다를 본적이 있는 사람은 작은 하천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기자 : 올림픽 금메달은 목표를 상실하게 만들 우려도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목표에 다다르고 난 뒤 새로운 목표는 무엇인가요?
“한 발 한 발 차분히 걸어갈 생각이다. 올림픽을 뼈라고 한다면, 이제 뼈는 다 먹었다. 그러나 뼈를 먹고 나니 살코기가 있지 않은가. 살코기는 세계대회다. 남자단식 준우승만 세 번이다. 게다가 그랜드슬램에서 세계대회 우승만 빠졌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세계대회 우승이다. 물론 어렵다. 세계대회 횟수가 올림픽보다 두 번 많지만 경기일수는 올림픽보다 4일이나 적다. 올림픽은 11일이고 세계대회는 7일이다. 그러므로 세계대회는 체력 소모, 올림픽은 정신력 소모가 크다. 이 두 가지의 다른 소모는 각기 다른 대처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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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피드글루가 금지되면서 선수에게 체력과 정신력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평소 쉬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체력훈련도 더 많이 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도 젊은 선수들처럼 그렇게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더 많은 체력단련, 더 많은 코치와의 교류가 필요하다. 팀닥터와도 몸의 보양과 부상방지에 대해 소통해야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라야 운동량을 늘릴 수 있다. 심리적으로 문제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와 경기 중에 어떻게 완전한 수준을 발휘할 수 있는가이다.”
“제로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차분히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올림픽챔피언이라고 자만하기보다 늘 스스로를 다그쳐야한다. 그렇게 해도 해이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늘 긴장하며 엄격하게 스스로를 다그치고 팀 내 모든 규율을 준수할 것이다.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기는 법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마음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결국은 직업 선수인데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본업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져샹은행(浙商銀行, 譯註 : 마린의 슈퍼리그 소속팀)이 산시성(陝西省)의 한 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이동경로를 틈타 이뤄졌던 마린과의 인터뷰는 한중(?中)공항에서 마쳤다. 직후에 마린이 공항 대기실 한쪽에 앉았는데 그의 등 뒤로 광고사진 하나가 보였다. 성공한 남자의 전형인 왕스(王石, 譯註 :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 완커(萬科)의 회장)가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걸고 있는 모습이었다. 등 뒤는 깃발이 휘날리는 구름 덮인 에베레스트! 이렇게 두 남자가 같은 화면 속에 놓여있는 것이 공교롭게도 또 다른 의미가 담긴 것 같이 보였다.
□ 글_조우따오(周到) | 사진_웨이정(魏征)·삐엔위샹(邊玉翔) | 번역_임병진
출처- 월간탁구 http://www.woltak.co.kr/
관리자님께 허락맏고 퍼왔습니다 ㅎㅎ
첫댓글 마린을 좋아하기는 하는데..약간 실망스럽군요... 자신의 러버가 잘못되었다면 바꾸는 것이 스포츠맨쉽이 아닐까요? 그런데 오상은 선수가 눈치채지 못해서 잘못된 러버를 그냥 사용하고, 그것이 마치 전술적으로 잘한 것처럼 말하는 부분이 전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이나 방법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들리는데...제가 너무 편협하고, 확대해석 한 것일까요? ... 그래도 왠지 씁쓸하네요......................
저도 씁쓸합니다......
역시.. 좋아하기는 힘든 선수.. 가끔 놀랍긴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놀랍네요.
이번 세탁의 깔끔하지 못한... 서비스로 더더욱 싫어지는 마린 선수.. 흠
이번 세탁에서 서비스가 어떻게 넣었나요? 궁금하군요. 혹시 비오픈 서비스??
저는 사실 마린의 행동이나, 선수들이 시합시 넣은 서비스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진 않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겪어보진 못했지만 상당히 냉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격을 갖춘 심판이 정확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고요. 자신의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심판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한계치까지 끌어내는 것 또한 프로선수들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심판이 제대로 없기 때문에 스스로 지키는 것이 맞지만. 프로선수 본인의 생존을 위해 한계치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만 '심판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한계치'라는 것의 구분선은 어디까지일까요? 마린의 러버가 찢어졌다는 것은 교체를 해야하는 것을 말하는데 마린은 심판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또 오상은 선수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바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원칙은 바꾸어야 하는데 바꾸기를 지시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음으로 그냥 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것은 명백히 반칙입니다. 십분 양보해서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반칙은 아니라고 해도 이것을 자랑하고, 전술적으로 옳은 것 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포츠는 스포츠 정신이 살아 있을 때 스포츠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픈 서비스도 그렇고, 논스피드 글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들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마추어든, 프로선수든 어떤 선수를 막론하고 지켜야 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범위는 모두가 인정하는 룰을 지키는 가운데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지 반칙을 하면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는 경기에 최선이라는 단어는 오용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린은 명백히 반칙을 범했습니다. 그 피해자는 우리나라 선수 오상은 선수이고 더 나아가 세계 모든 탁구인이 피해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혹 저의 글에 마음이
상하셨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고 좀 더 나은 탁구를 위한 개인의 의견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러버가 찟어졌다고 오상은 선수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게 있나요? 러버 교체를 하지 않은게 왜?
마린이 잘못인가요?
러버가 찢어진 경우 그 부위에 맞게 되면 공이 불규칙하게 튀게됩니다. 이 밖에도 상대방 선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본인 역시 찢어진 부위로 인해 컨트롤 난조를 보일 수 있지만 본인보다는 찢어진 사실을 모르는 상대방은 당황하게 되어 경기를 그르칠 수 밖에 없어 마린이 잘못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규정이 어떻게 되있는지 모르겠지만 찢어진 러버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규정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마린은 자신의 러버가 찢어진 사실을 심판과 오상은 선수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었지만 이것을 위반했습니다. 단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ㅎ 전혀 맘 상하거나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본인의 의견을 적었을 뿐인데요 ^^
인터뷰 내용으로 보면 확실히 좀 실망스런 부분이있네요~ 자신은 오상은 선수와의 시합때 러버 찢어진걸 감추고 진행한 반면 왕리친과의 시합에서는 그걸 지적하며 교체를 요구했던 모습~인터뷰 내용상 경기력에 영향이있는건 분명해보입니다~ 감각적인 부분이라든지~탑 클래스 선수사이에서는 작은 부분이 크게 작용하니까요~ 예전 이문제로 논란이 있었죠~ 경기력에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이번 인터뷰로 그 논란은 결론지어질 것으로보이네요~
그때는 러버가 완전.? 된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완전 나갔던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