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춘 시간 속
잠든 너를 찾아가
아무리 막아도
결국 너의 곁인 걸
길고 긴 여행을 끝내
이젠 돌아가
너라는 집으로
지금 다시
Way back home
네 숀의 <way back home> 가사의 일부입니다.
도입부와 후렴구이기도 하죠.
잔잔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가 조화로운 이 노래가
왜 등장했을까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조용호 선수의 응원가이기 때문입니다.
노래 가사에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젠 돌아가 너라는 집으로 지금 다시
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말처럼
잠깐 야구라는 집을 잊고 살았지만
끝내는 다시 야구라는 집으로 돌아온
조용호 선수에게 참 알맞은 가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용호 선수는 어떤 선수일까요?
# 아마추어 시절
조용호 선수의 부모님은 모두 운동선수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하키 선수로 신장 182cm에 국가대표 경력까지 있고
어머니는 신장 165cm에 실업배구 경력이 있지요.
이런 운동선수 DNA를 물려받아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그는
일찌감치 진로를 야구로 결정하게 됩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11&aid=0000233004
아마추어시절부터 그의 약점은 작은 체격이었습니다.
신장이 큰 부모님에 비해 그의 신장은 성인이 되어서도 170cm로 고정.
그 이상은 더 자라지 않으면서 아버지보다 12cm가량 작은키로
선수생활을 해야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는 작은 신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전 만족해요. 물론 타격에서 홈런을 펑펑 칠 수 있을 정도로 파워가 좋지 못하다는 건 아쉽지만 타이밍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수비를 보거나 달리는 거와는 전혀 관련 없잖아요. 그런거보면 야구는 꽤 평등한 스포츠가 맞는거 같아요."
잠신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로 진학한 그는 1년 뒤 야탑고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 이유도 야구때문이었는데요.
"오지환이 경기고에 오면서 부모님이 시합에 뛰지 못할 거 같다면서 전학을 선택하셨죠. 당시엔 그래야 하는 걸로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자존심 상한 일인데 그 땐 몰랐죠.(웃음) 그런데 (오)지환이 타격 보면 휴~ 굉장하죠. 하지만 수비는 저도 그 정도는 자신 있어요."
고교 졸업후 단국대로 진학한 그는
줄곧 맡았던 유격수가 아닌 2루수로 경기를 소화하게 됩니다.
비록 고졸 선수들보다 나이많은 대졸 선수였지만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 안정된 수비가 장점이었던 그는
스카우트들에게 분명 주목받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시련이 다가오고 마는데...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18&aid=0000000604
"연습경기를 할 때였습니다. 1루수와 부딪히면서 발목을 다쳤는데 인대 2개가 끊어지고 뼛조각이 7개나 나왔어요. 지금도 뼛조각이 남아 있습니다"면서 "수술은 안하고 두 달 동안 병상에 누워만 있었어요. 가을쯤 나았는데 이미 드래프트가 끝나 2개 구단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지요"
드래프트직전 연습경기에서 당한 불의의 부상으로 그는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하게 됩니다.
고졸 선수들이 지명받지 못하게 되면 대학진학이라는 루트가 있지만
이미 나이가 꽉찬 대졸 조용호에게는 사실상의 야구인생 종료라는 시련으로 다가왔지요.
때마침 등장한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는 조용호 선수에게 구세주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그는 중국음식점 요리사 일을 배우다가 공개테스트에서 합격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다시 같은 부위에 2차 부상이 재발하며 입단 한달만에
다시 유니폼을 벗게 됩니다.
그 이후 바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시작하게 되죠.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29&aid=0000035224
"고양 원더스에서 나온 뒤 바로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야구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죠. 마지막 기회로 여긴 곳에서조차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까.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하면서는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어요. 근무하는 곳에 허락을 받고 우유, 피자 배달, 중국집 주방 아르바이트 등을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거든요. 다시 야구를 한다는 꿈을 꿀 여유가 없었죠. "
"소집해제 한 달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평범한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겁니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죠. 그때부터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스트레스가 심해서 1시간 이상 숙면을 한 날이 없었죠. 딱 한 달 사이에 무려 10kg이 빠졌습니다."
# SK와이번스 시절
군복무를 마친 조용호의 선택은 다시 야구였습니다.
남들보다 많이 늦은 만 25세라는 나이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한 그는
성남고에서 후배들과 훈련을 하며 때를 기다렸고
때마침 SK 김용희 육성총괄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께서 당장 계약을 하는게 아니라 테스트하고 싶은데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물불을 안 가릴 때였으니 감독님 말씀을 듣고 바로 오게 됐죠." 당초 테스트는 3개월 예정이었지만 조용호는 한 달만에 통과했다. 죽을 힘을 다해 치고 던지고 달렸다. 비록 신고선수였지만 와이번스 유니폼을 받아들 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육성선수로 SK에 입단한 조용호 선수는
외야수로 2015년 정식선수로 프로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6세.
고졸 선수들 기준 프로 8년차에
프로 1년차로 KBO리그에 뛰어든 그는
SK의 쟁쟁한 외야진 속에서 좀처럼
1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2017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에 데뷔하는
기회가 주어졌는데요.
4월 28일 삼성전에서 프로무대 첫 안타를 신고한 그는
5월 4일 한화전에서는 4타수3안타1타점2득점을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 경기 전까지 20타수2안타로 타율 1할에 불과한 선수의
극적인 반전이었죠.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9242139
승리의 주역은 4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을 한 '1번타자' 조용호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조용호는 20타수 2안타, 타율 0.100에 그쳤다. 타점은 없었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1번타자 중견수로 조용호를 기용했다.
조용호는 "감독님께서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데 오늘도 못 치면 다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경기 중에도 힐만 감독은 조용호에게 기회를 줬다.
희생번트 상황을 떠올리던 조용호는 "감독님께서 정말 나를 믿어주신다는 걸 또 느꼈다. 무척 중요한 상황인데도 '부담 느끼지 말고 자신 있게 치라'고 조언해주셨다"며 "그동안 너무 조급했다. 2군에서 보여준 스윙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스윙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적시타가 나왔다"고 웃었다. 안도감이 담긴 미소였다.
그는 이날 1회말 유격수 옆 강습 안타, 7회 우익수 쪽 2루타도 쳤다. 1군 무대 개인 첫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였다.
조용호는 "이제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다"며 "더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렇게 SK에서 자리잡을것만 같았던 그였지만
프로무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2018년 크게 부진하고 맙니다.
13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1할도 못넘는 타격을 보인 탓이죠.
외야진의 주전경쟁에서도 밀려 경기 출전을 장담할 수 없었던 그때
SK와이번스의 신임감독 염경엽은 조용호 선수를
KT로 무상 트레이드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를 두고 당시 SK팬들은
기껏 5년동안 육성해온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를
왜 무상으로 트레이드 하냐는 말들이 많았으나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배영섭과 고종욱이 들어온 SK의 외야진에
1군에서 보여준게 많지 않은 조용호 선수의
자리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단순 방출보다는 조용호가 꼭 필요한 팀에
무상으로 트레이드한 것이었습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09&aid=0003910193
조용호는 2017년 1군 69경기에서 타율 2할7푼2리, 10타점, 11도루, 출루율 3할6푼5리를 기록하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끈질기고, 출루율이 높은 리드오프가 부족했던 당시 SK 상황에서 차별화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17년 시즌 경기 중 부상이 상승세를 가로막았다. 올해는 팀 내 경쟁에서 밀리며 1군 16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것도 대부분은 대주자였다.
염경엽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은 조용호가 1군에서 활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시즌 뒤 조용호를 무상 트레이드 시장에 내놨다. 조건 없이 내주겠다는 뜻이었다.
염경엽 감독은 평소부터 “자리가 없는 선수들은 길을 터줘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감독이나 야구 선배로서의 예의라는 것이다. 넥센 감독 시절에도 팀 경쟁에서 밀린 서동욱을 KIA로 무상 트레이드했던 사례가 있다. 넥센에서 선수 생활의 불꽃이 꺼져가던 서동욱은 KIA 이적 후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선수 생명을 연장했다.
무상 트레이드 방식을 택한 것도 이유가 있다. 염 감독은 이에 대해 “그냥 방출하면 영입하는 팀도 아무렇게나 쓸 수밖에 없다”면서 “공식적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전지훈련에도 데려가고 그러지 않겠나. 우리 선수가 거기에 가서도 좀 더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조용호는 이런 SK와이번스의 배려 덕분에 KT에서 재기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습니다.
# KT위즈 시절
"꿈을 이뤄주고 야구를 계속할 수 있게 도와준 SK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군 무대를 누빌 기회를 준 KT에도 감사하고요. 이 트레이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KT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짧았던 프로야구 선수의 삶도 끝나겠구나 싶었죠. 이를 악물었습니다. "
이를 악문 그는 2019년 5월 11일 1군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초반에는 주로 대타, 대수비로 출전했던 그는
6월 25일 강백호가 롯데와의 사직 원정경기에서
외야수비도중 손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주전으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장타툴이 없는 그에게 KT 이강철감독은
3번타자라는 중책을 맡기게 되었는데요.
시즌 전체적으로 중간중간 아쉬운 모습이 있었지만
강백호의 부상공백을 메우면서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2020년 드디어
타율 3할대를 꾸준히 유지하며
완전한 KT의 1번타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76&aid=0003597354
KT 위즈 외야수 조용호(31)는 7일 현재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타석당 투구수' 1위(4.46)다. 한 타석당 상대 투수가 평균 4.46개의 공을 던지게 만든다. 이 부문 2~5위 박경수(KT), 권희동(NC·이상 4.32), 이용규(한화), 박병호(키움·이상 4.31)를 크게 웃도는 기록이다.
톱타자의 역할 중 하나는 많은 공을 보는 것이다. 상대 투수에게 피로감을, 다음 타자들에겐 예행연습 기회를 제공한다. 선구안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조용호는 공을 잘 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커트해 상대 투수를 짜증나게 만든다. 상대 더그아웃은 이런 '악마의 재능'이 싫을 수밖에 없다.
5월 27일 수원 KIA 타이거즈전에선 조용호는 상대 마운드의 혼을 빼 놓았다. 세 명의 KIA 투수(임기영 홍건희 김현준)로부터 무려 24개의 공을 끌어냈다.
조용호는 "커트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타구를 안으로 집어 넣고 싶은데 안 들어갈 뿐이다(웃음)"면서 "볼카운트 2B에 안 치려 하고, 3B-1S 때 안 치려고 한다. 안 친다기 보다 신중하게 공략하려고 한다. 그 카운트 때 치면 망설이면서 방망이를 휘둘러 결과가 좋지 않았다. 2B보다 2B-1S가 편하고, 3B-1S보다 3B-2S이 편안하다"고 했다.
KT에서 조용호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은 '리드오프'다. 조용호도 "리드오프가 가장 편하다. 지난 시즌에도 1번 타자로 가장 많이 출전했다"고 설명했다. 조용호는 올 시즌 3번 타자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고, 간헐적으로 리드오프를 맡다가 지난 4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선발 톱타자를 맡고 있다.
이강철 KT 감독의 작전은 적중했다. 조용호는 세 경기 연속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기록 중이다. 지난 7일 광주 KIA전에선 3안타를 때려냈다. 이번 시즌 출루율 부문에서도 3위(0.426)를 달리고 있다.
조용호는 단국대 졸업을 앞두고 오른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했다. 졸업 후 프로 입단에 실패해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에서 권토중래를 노렸다. 그러나 부상 재발로 한 달 만에 쓸쓸히 유니폼을 벗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엔 겸직 허가를 받고 일과 뒤 신문 배달, 중국집 주방보조, 피자 배달, 우유 배달 등 닥치는대로 파트 타임 일을 하며 야구를 잊고자 했다. 하지만 제대 후 다시금 야구에 승부를 걸었고, 2014년 SK 와이번스에 육성선수로 입단, 이듬해 정식 선수가 됐다. 2017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했다.
조용호는 "야구를 잠깐 쉴 때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건 할 줄 아는 것이 이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중함과 절실함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데뷔 7년 만에 전성기를 열어가는 중이다.
조용호 선수는 분명 큰거 한방이 중요한 현대야구의 트렌드에는 맞지 않은 선수입니다.
열심히 뛰고 발이 빠르긴 하지만 신체조건이 열세로 도루개수도 많은 편이 못되고
오로지 컨텍으로만 투수를 이겨내야하는 똑딱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고 고질적인 부상도 있기에
젊은 선수들이 많은 KT에서 언제든지 주전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갑작스럽게 트레이드될 가능성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에게 이렇게 빠져들게 되는 건
야구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있는
자신만의 스포츠판타지에 존재하는
동화 속 주인공같은 느낌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조용호 선수의 스토리텔링은 해피앤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뭔소리야 당연히 해피앤딩이지 당장 따라와!)
첫댓글 이런 사연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몇시즌만 더 좋은성적 내고 어렵지만 만약에 팀을 우승시키거나 아니면 골든글러브라도 타면
백퍼 영화각이네요
와 진짜 영화인줄
몰랐던 얘긴데, 정말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아...조용호인데...저그가 아니라니....
하지만 응원합니다.
이정도 스토리면
술자리에서 가오 잡는거 인정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