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
1388년 2월,최영을
중심으로 명의 전초 기지인 요동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이 해 4월우왕은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삼고 좌군도통사에 조민수 그리고 우군도통사에 이성계를 임명하고는 드디어 요동 정벌을
감행했다. 그러나 5월, 장마로
인해 물이 급격히 불어난 상황이 발생하자 이성계는 요동성을 공격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우왕에게 요동 정벌의부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불가론'으로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염려가 있으며
넷째,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요동 정벌을 독촉하자 이성계는 좌군도통사 조민수
와 논의한 뒤 개경을 향해 회군을 단행한다. 개경으로 진격한 이성계와 조민수는 최영 군대와 접전을 벌인
끝에 승리하여 최영을 고봉현으로 유배시키고 우왕을 폐위하여 강화도로 보낸다. 그리고 조민수의 주장에
따라 창왕을 옹립한다.
출처 조선왕조 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