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사 이해의 새로운 관점
종래에는 문학사들을 정치왕조 교체에 따라서 문학사를 시대구분 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문학현상을 위주로 해서 문학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서술
1.1 문학의 범위와 갈래
1)문학의 범위
(1)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며, 예술은 형상(形象)과 인식(認識)의 복합체이다.
(2)문학은 말로 된 구비문학(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과 글로 된 기록문학(시. 소설. 수필)이 존재한다.
(3)국문학의 범위에는 말로 된 구비문학, 문어체 글로 된 한문학, 구어체 글로 된 국문문학이 있다.
(4)문학의 범위는 비유나 상징(시), 사건의 구성(소설), 인물대립의 구조(희곡)로 볼 수 있다.
2)문학의 갈래(종류, 종별, Genre)
(1)국문학의 갈래를 나누는 방법은 서정, 교술, 서사, 희곡으로 나누는 사분법을 교재에서는 제시한다.(조동일) 교재 2p13줄~30줄*
1.2 시가의 형식과 율격
1)문학은 산문과 율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율문은 시가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사, 시조, 고려속요, 경기체가 등을 시가로 볼 수 있다.
2)한 줄이 어떤 짜임새를 가지고 있는가가 논란이 되었는데, 글자 수를 따지는 음수율에 규칙이 있다고 들 해서 다시 살핀 결과 음보를 단위로 한 음보율이 더 적합한 것임이 밝혀졌다. 음보를 우리말인
'토막'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3)시가형식의 기본양상은 민요에서 찾을 수 있다.
*민요의 형식
(1)교환창(짧은 형식) : 한마디씩 주고받는 형식(향가, 시조)
(2)선후창(여음이 삽입되는 형식) : 앞소리꾼이 사설, 뒷소리꾼이 여음 뒤풀이(속악가사. 경기체가)
(3)독창(긴 형식) : 혼자서 계속 사설을 잇는 형식(가사) 3p~4p 8줄까지 참고
4)판소리는 여러 율격형태를 다양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보인다.
1.3 시대구분의 방법
1)종래에는 왕조별로 시대구분을 하였는데, 왕조와 왕조에 걸쳐서 문학이 존재하기도 하였고 문학의
성격에 따라 설명이 안되므로 역사에서 문학사를 넘어오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사를
설명하면서 역사를 곁들여서 설명하는 것이 유리하다.
2)시대구분의 기본원리에는 일원론(一元論) 다원론(多元論)이 있다.
.일원론 : 역사일반의 기준으로 문학사를 역사에 맞추어서 설명
.다원론 : 사회, 정치, 경제의 전반적인 시대구분 4p 21줄~ 6p 4줄 참고
3)시간적인 순서에 의해 작품을 열거한다면 문학사의 첫 시기는 첫 작품이 나타난 때 시작되고,
그 다음 시기는 다른 이질적인 작품이 나타날 때 시작된다.
4)문학사의 시대구분 방법에 있어서, 처음에는 작품을 한 편 씩 주목하자는 데서 시작해서, 다음으로는 작품의 성격을 갈래개념을 통해서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갈래는 갈래체계에서 고찰하자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새로운 갈래체계를 이룩하는 문학담당층을 찾아내는 데까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1.4 시대구분의 실제
1)교재 6p~8p에 걸쳐서는 조동일교수의 시대구분 방법이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학자들의 시대구분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2)[조선문학사] 1922. 안확 (1) 상고문학 : 삼국시대이전
(2) 중고문학 : 통일신라시대
(3) 근고문학 : 고려
(4) 근세문학 : 조선
(5) 최근문학 : 해방이후
3)[조선문학사] 이명선 (1) 고대문학 : 삼국시대이전
(2) 중세(봉건)문학 : 삼국시대이후 조선시대
4) [국문학사]1949, [국문학사개설], [한국문학사]1963 조윤제는 11가지로 구분을 했는데 그 시대의
특색 있는 단어를 시대구분의 이름으로 사용
(1)태동(상고) (2)형성 : 삼국통일~고려 초 (3)위축 (4) 잠동 (5) 소생 (6)육성 (7)발전 (8)반성
(9)운동 : 갑오경장~3.1 (10)유신 :3.1~해방 (11)재건(해방이후)
5) [한국문학사] 1978 장덕순 : 구비문학을 국문학속에 최초로 넣음
6) 김동옥 NHK한국문학(1985)강의에서 4가지로 구분함
(1)상대 : 상고시대~통일신라시대 (2)중세 : 고려 (3)근세 : 조선~갑오경장 (4)근대 : 갑오경장~해방
7) 북한[조선문학사] 사회과학출판사 정홍교외 6인의 15권
(1)원시~7세기 (2)10~14세기 (3)15~16세기 (4)17세기 (5) 18세기 (6)19세기 (7)19세기말~1925 (8)(9)1926~1945 (10)평화적 민주 건설시기(해방이후~6.25이전) (11)조국해방전쟁시기(6.25)
(12)전후복구 건설및 사회주의 기초 건설시기(6.25이후) (13)사회주의 전면적 건설시기
(14)(15)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시기
2. 첫째시대 : 원시문학(조동일 교수가 처음으로 설정)
2.1 구석기 시대의 문화와 언어예술
1)공주 석장리의 조형예술이나 울산 반구대의 암각화 등에서 보듯이, 그 당시에는 조형예술이 동작
예술이나 언어예술과 얽혀 '원시종합예술'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2)이 시기에 사람들이 누린 문학은 구비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3)토테미즘, 애니미즘 같은 원시 종교적인 사고는 신화를 통해서 후대까지 표현
예)우리나라의 곰을 숭상하는 단군신화
2.2 신석기 시대로의 전환
1)신석기 시대는 7000여 년 전부터이거나 그보다 더 오래지 않을까 한다. 단군 시대가 4300여 년
전으로 보는 근거가 우리나라 기록에는 없지만 중국 기록의 근거로 단기를 4300년으로 봄.
2)인류가 수렵생활에서 농업생활로의 변화로 농업노동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여가시간에 언어로 신에 대한 농사를 잘 짓게 해달라는 주술행위와 신화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굿을 하면서 춤을 추는 동작예술, 노래를 하는 언어예술 - 구비문학의 초기형태
3)고령 양전동 알터 암각화에는 동심원이 주목되는데, 동심원은 농사를 좌우하는 태양일 수도 있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던 알 일수도 있다.(신화. 설화 발생)
4)이시기의 선도산, 지리산성모, 죽령산신은 모두 여신이며 모계사회의 양상을 반영한다.
5)국가 성립이전이라 건국신화보다는 천지창조, 생명의 유래 등 신화가 많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2.3 민족문화의 계통과 관련해서
1)종족적인 연관성으로 보아 고조선 -> 서나라 -> 부여국으로의 바뀌었다.
2)이는 서국의 건국서사시와 부여계 건국신화가 공통된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3. 둘째시대 : 고대문학
3.1 건국신화, 국중대회, 건국서사시
앞에서 고대문학에서는 인류문명이 국가라는 형태를 이루기전에 구비문학, 원시문학으로 되었다고 보겠는데, 이번 단락부터는 국가가 성립되어 한문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기록문학이 성립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1. 건국신화*(고조선: 단군, 고구려: 주몽, 가락국: 수로, 신라: 박혁거세)
1) 국가의 성립을 반영하는데 국가 성립시기는 고고학의 시대구분에 따라 청동기 시대이다.
2) 우리는 우랄알타이어 지방,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주해왔다고 보는데 언어학적으로 알타이어족 이다.(일본, 만주 퉁그스족, 콩고, 터키...)
2. 국중대회
1)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굿을 하면서 노래부르고 춤을 춘 행사이면서 국가단합을 위한 정치적인
기능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제천의식)
2)제정일치의 시대이다.
3. 건국서사시
.국중대회 때 부른 노래는 건국시조의 내력, 즉 건국서사시 가사가 되며 풀어서 글로 쓰면 건국신화가 된다.
3.2 고조선의 경우
1. 삼국유사에 있는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서사시이다.
2. 단군신화의 해석 1)웅녀족 : 선주민인 고아시아족(지신족)
2)환웅족 : 이주민인 알타이족의 갈래 또는 예맥족(천신족)
3)천부인 : 무당임금의 권능을 상징하는 신물로 천부인은 방울, 거울, 칼 등이다.
3. 국중대회에 관한 기록은 없고 중국에서 기록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남아 있어서 추측 가능하다.
4. 환웅 하강, 웅녀의 시련, 환웅과 웅녀의 혼인및 이에 따르는 단군의 출생은 굿놀이로 나타나 보이기에 알맞은 내용이며, 같은 내용이 해모수, 유화, 주몽의 관계에 되풀이되며 맞이, 싸움, 혼인은 후대 마을 굿의 기본과정이 되었다.(천신족과 지신족의 결합 양상을 보인다.)
*5. 단군신화의 내용을 벽화로 그려 놓은 것이 산동반도에서 발견되었다. 이의 의미는
- 고조선의 영토가 그곳까지 미쳤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후한서 동이전 서두에도 당시 우리의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6. 서나라의 건국서사시를 재구해 볼 수 있는 자료-서언왕의 탄생설화 : 부여계 건국신화와 공통점
3.3 부여. 고구려의 전승
1. 부여
1) 부여의 국가적인 성장은 읍루에 대한 정복전쟁을 통해서 묘사되어 있다.
2) 해모수, 해부루, 동명, 주몽 등을 내세워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지배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자 한 건국서사시는 고구려의 신화와 닮아있다.
2. 국중대회는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 [동맹] -> 중국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
3. 북이 탁리국의 내력은 주몽 신화와 같으므로 같은 민족으로 보인다.
1)20p 20줄 달걀처럼~되었다 -유화가 금와왕에게 갇혀 있을 때 햇빛이 따라와 임신
2)20p 30줄 금와왕은~박해하기도 했다.- 삼국유사와는 다른 부분이 있는데 무엇이 다른지는 각자가 알아보도록.^^*(시험출제 가능성)
4. 고구려 1)주몽(추모)-광개토왕의 비문
2)고구려 시조이기만 한 인물의 고유명사인지 모른다.
*3)여성의 수난사는 웅녀에게서 처음 보이다가 유화를 통해 처음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그 전통이 서사무가나 소설(바리공주, 당금애기, 춘향)을 통해서 오랫동안 이어졌다.
5. 백제 : 고구려 계통의 귀족이 세운 나라로 보이므로 건국신화는 고구려와 같다.
3.4 삼한, 신라, 가락, 탐라 쪽의 사정
1. 마한 : 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천군(나라무당)이라 부르고, 소도라는 이름의 별읍을 정해 큰 나무를 세워 거기다가 방울과 북을 달아 귀신을 섬겼다. 진한, 변한에 대한 기록은 없다.
2. 신라 : 신라가 건국되기 전 육촌이 있었다. 가락국 단계에 이르기 전에 구간이 추장 노릇을 하고
있었고 신라의 산신으로는 선도산 성모가 높이 숭상되었다.
*1) 혁거세(赫居世) : 신라 건국시조이며, 흰말이 꿇어앉아 있던 곳에 있었던 알에서 태어남.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점을 강조(천신족): 특별하게 시련과 투쟁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지
않았다. 알영과 혁거세 사이에는 우열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2) 알영(閼英) : 우물가에 나타난 계룡의 왼쪽 갈비뼈에서 태어났다.(지신족) - 성경의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
3) 탈해(脫解)집단 석씨족 : 고난을 겪은 후 왕이 되었다가 토함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영웅의 일생을 그대로 보여줌
*영웅의 일생 : (1) 혈통이 귀하고 (2) 비 정상적 출생 (3) 탁월한 능력 (4) 위기(버려짐, 죽을 고비)
(5) 구출자 (6) 다시 위기봉착 (7) 자기 힘으로 극복 (고주몽, 탈해도 이 공식에 적용)
3. 가락국 : 1)건국의 사적을 나타내는 굿과 노래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2)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보이는 '구지가' : 구간이 구지봉이라는 영험한 산에서 수로를 맞이했다는 것부터가 맞이굿이었을 것이다
*수로 : 머리를 내밀다 와 머리를 맨 먼저 내민다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4. 탐라국 : 건국신화와 건국시조 고. 양. 부, 이들은 땅에서 솟았다고 하는 점이 대륙의 신화와는 차이 를 보이고 있다.
*5. 연오랑과 세오녀 - 일본에 대한 문화의 우월감을 입증.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고 왕비가 됨.
3.5 짧은 노래 몇 편(조동일 이외에는 이 부분부터 문학으로 봄)
1. 흔히 고대가요라 하는 '구지가', '공무도하가', '황조가'등이 비록 한시로 번역된 형태이지만, 노래
말이 남아있는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1) 구지가
(1) 가락국 건국신화에서 거북에게 머리를 내놓으라며 부른 노래.
*축도가, 의식가, 주가가 발전(황패강)했다고 보는 설, 여성의 남성 유혹 노래(거북의 머리 모양),
영신제의, 출산제의, 회생무용제의 노래, 의식의 노래, 노동요(땅을 팜)라는 설
(2) 신라 때 해가와 흡사하다.
2) 공무도하가
(1) 중국 최표 [고금주], 조선 정조때 한치윤 [해동역사]
(2) 공후를 타면서 부른 노래라 하여 공후인이라 했는데, 내용으로 보아 ‘공무도하가’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3) 배경설화에 나오는 ‘조선’은 중국 직예성 내의 한 지방이기 때문에 이 노래가 중국 것이라는 주장 도 있지만, 고조선의 판도가 그 곳 직예성까지 미쳤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래로 볼 수 있다.
3) 황조가
(1) 고구려 2대 유리왕이 기원전 17년에 지은 작품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2) 화희. 치희의 싸움은 종족간의 싸움을 나타내었다는 설-서사시로 보는 시각
치희가 돌아오지 않음을 슬퍼하면서 지은 노래, 원비 송씨가 일찍 죽어 애도하며 지은 노래,
제례의식에서 불린 노래, 서정요, 서사시라는 주장들이 있다.
3.6 전설. 민담시대로의 전환
1. 신화시대
1)자아(사람과 자연)와 세계가 동질적이거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
2)고조선 시대에 사회질서를 위해서 만든 팔조금법은 현재 3개항만 남아 있다.
(1)살인자는 사형
(2)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 보상
(3)절도한 자는 주인의 노예가 됨
2. 전설시대
1)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세계의 우위에 입각해서 다루기 때문에 자아의 패배를 귀결로 삼으며,
합리성을 추구하다가 더욱 큰 불합리에 부딪히고 마는 이야기.
2)해명태자 이야기 : 고구려 2대 유리왕의 태자. 이웃나라 왕이 보낸 화살을 해명태자가 꺽어버리자
이웃 나라와의 화친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한 유리왕이 칼을 보내고 해명태자는 해명하지 않고 자결함.
3)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고구려 왕자 호동과 낙랑국 공주의 이야기. 부부가 된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어 고구려의 침입이 가능했으나 낙랑공주도 죽임을 당함.
3. 민담시대
1)미천한 처지에서 무력하게만 살아가던 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 공상 속에서나 가능한
소망을 두루 성취한다. 주로 행복한 결말이다.(자아와 세계의 대결에서 자아가 이기는 결말)
2)고구려 미천왕, 온달, 서동(백제무왕) 이야기
셋째 시대 : 중세전기문학 - 제1기(삼국 남북국 시대)(고려전기 전까지) -
4.1 한문학의 등장과 그 구실 *고대에서 중세로 전환: 한자 수용, 불교 수용
한사군 설치 이전에 한자가 삼국에 수용되어 각 국에서 역사책이 마련되었고, 정부의 공식 문서도
한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1) 양서(중국의 역사서) 신라전에 보면 '글자는 없고 나무를 깎아서 신표로 삼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 근거
① 고구려는 '건국 초에 문자를 처음 사용할 때 어떤 사람이 기사 100권을 지어서 이름을 <유기> 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② 25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 과(戈) 형태의 무기를 팜(기원전 222년 기자조선 말기에 해당)
=> 따라서 기원전 2~3세기 전에 한자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2) 고대가 우리말 문학의 시대였다면, 중세는 한문학을 상층의 공식적인 문학으로 삼고 우리말 문학은 기층문학으로 존속하도록 내버려둔 시대였다.
*3) 한문이 활용되면서 중세문학이 성장했다. 한문이면서도 우리말 어순에 따라서 쓴 서기체라는 글이 있었고, 뒤 이어 한자의 음과 뜻을 따서 우리말을 온전히 표기한 향찰을 만들었다.
(통치체제, 불교전래, 국사편찬, 비문)
4) 고구려 국사 - <유기> 100권과 이문진의 <신집> 5권
5) 백제 국사 - 고흥의 <서기(書記)>(4세기 근초고왕 때),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
6) 신라 국사 - 진흥왕 6년에 거칠부가 문사를 널리 모아 국사를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7) 광개토왕비 비문 : 연대가 확실한 최초의 문학작품,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을 보여준다.
-> 내용 : ① 건국에서부터 장수왕까지의 역사 ② 광개토왕의 업적
③왕릉을 후손이 잘 보존하라는 내용,
8) 이 외에 고구려의 비로 <중원비>가 더 있다. 신라의 비로 주목되는 것은 <적성비>, <창녕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북한산비>가 있고, 백제의 비로는 <사택지적비>, *칠지도(백제의 문화 와 국력을 말해 줌, 일본에 대한 우위)가 남아 있다.
.이러한 비에서 우리는 당시의 문학 정도를 읽을 수 있다.
9) 최초의 한시는 을지문덕의 *<여 수장 우중문 시>, 신라 진덕여왕의 <태평송>(아부의 개념이 강함, 사대사상의 전례)이 있다.
4.2 노래의 새로운 모습
.이 시대에 오면 무엇보다도 눈에 띠는 것이 바로 '예악(禮樂)의 정비'이다.
.이것은 문화사의 시대구분에서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왜냐 하면 통치체제를 상징하고 나라의 위엄 을 자랑하며, 밖으로 문화수준을 드러내고, 안으로 백성을 감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악(樂)'으로,
.이러한 현상은 통치제제가 정비되기 전에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 고구려 : <내원성>, <연양>, <명주> :<고려사> 악지 삼국속악지에 소개됨고 있음.
백 제 : <선운산>, <무등산>, <방등산>, <정읍(가사가 유일하게 전해짐)>, <지리산>
신 라 : <도솔가>, <회소곡>, <물계자가>, <우식곡>, <혜성가>
① 정읍은 <정읍사>라는 노fot말이 남아 있는데 1493년 <악학궤범>에 실려있다. - 궁중악
② 신라 유리왕이 <도솔가>를 처음 지었는데 이것이 가악(歌樂)의 시작 - 차사(감탄사) 사뇌격
※ 사뇌가는 10구체로 제일 발전된 형태.
사뇌의 뜻 - 동방, 사뇌야(野)들판, 존엄한 대상의 노래로 바친다 등의 뜻이 있음.
향가의 초기작품이라 추측, 종합공연물(오페라)이라고 추측
③ 도솔가의 뜻은 '두릿노래'이고 그 뜻은 '편안하게 하는 노래'이다. 후에 월명사가 지은 <도솔가>는 노래 이름이라기보다 노래갈래 이름임을 말해준다.
④ 각 작품의 내용을 필히 알 것(교과서33 ~ 36쪽 참조).
2)향가의 국문학사적 의의 (향가의 국문학사적 의의는 분명히 알 것)
.향가는 우리말로 된 최초의 기록문학이고 또한 개인 창작시라고 할 수 있다.
.향가는 불교의식 가요 및 한시와 구별되는 특정기능이 없는 우리말 노래이면서 향찰로 표기되고,
.사설이 아주 중요시되며, 개인작으로 인정되는 서정시이다.
3) 각간 위홍과 대구 화상이 역대의 향가를 모아 편찬한 삼대목 -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4)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로 구성.- *고려 초 균여전에 ‘향가는 삼구육명(향가의 형식)으로 구성’
된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다.
5) 다섯 줄 형식으로 된 향가의 첫 例 - 혜성가( 다섯 줄 향가 - 사뇌가 중 대표)
*사뇌가는 6세기말부터 향가의 잔존형태인 도이장가(悼二將歌), 정과정곡 때까지 600년 간 존속.
※ 사뇌의 뜻 - 사뇌가(향가 중 가장 발전된 형태)
① 동방의 뜻
② 사뇌야(野), 들판의 뜻
③ 존엄한 노래의 대상으로 바친다.
4.3 향가의 작품세계(작품의 작자와 설화 내용을 알아 둘 것)-출제 가능성이 있다고 하심.
① <서동요> :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차지하기 위하여 서동이 지어 부른 노래.
.불가능의 세계를 가능의 세계로 만든 문학적 상상력으로 볼 수 있다.
.마퉁이가 백제 무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② <풍요> : 양지라는 신통한 승려가 아주 커다란 불상을 만들 때 온 성안 남녀가 다투어 흙을 운반 하면서 불렀다고 한다. ‘풍요’라는 말은 민요를 뜻하고 특정 노래명칭은 아님. 노동요.
③ <헌화가> :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 굿 노래의 일종, <해가>
④ <혜성가> : 화랑 셋이 풍악에 가서 놀고자 했는데 혜성이 나타나 심대성을 범했다고 함.
.이에 융천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르니 혜성이 사라졌다는 노래.
.이 노래는 사뇌가의 구실과 특징을 알아 볼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다섯줄 형식을 취하고 있다.
⑤ <모죽지랑가> : 죽지랑이라는 화랑을 찬양하고 사모한 노래.
.향가 중에서 네 줄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처용가와 이 노래 두 편뿐이다.
⑥ <원가> : 효성왕이 자신을 잊자 원망을 담아 신충이 지은 노래 - 잣나무와 관련됨.
.노래의 주술성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노래가 일신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예.
⑦ <도솔가> : 해가 둘이 나타나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는 변괴에 월명사가 도솔가를 지어 변괴를 퇴치했다고 함. 월명사가 지은<제망매가>는 죽은 누이의 제를 올릴 때 부른 노래, 개인 의 노래를 한 것, 문학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⑧ 충담사 : <안민가>와 <찬기파랑가(제망매가와 높이 평가를 받는 사뇌가) >를 지었다.
⑨<우적가> : ‘영재’라는 스님이 도적을 만나 지었다는 노래. 민중들의 반항의식을 북에서 높이 평가함.
⑩광덕이 죽은 아내를 위하여 부른 노래<원왕생가>, 희명이라는 여인의 눈먼 아이의 눈을 뜨게 했다 는 노래<천수대비가> 또는 <도천수관음가> 등이 있다.
4.4 불교문학에서 문제된 이치와 표현
불교와 한문은 유래나 통용범위가 다르지만 중세의 보편주의를 구현하는 양대 지주로서 문화수준을 높이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44쪽 6줄 ~ 9줄 밑줄(염화시중)
① 신라에서 불교에 대한 저술의 종류 : 기(記)- 경전을 공부하면서 갖게 된 생각을 적은 글,
소(疏), 종요(宗要), 논(論)- 경전을 풀이한 글이면서 경전의 일부로 편입되기에 이른 글
② 원효의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원효대사의 불교 연구는 너무나 심오하고 위대하여 그 연구 결과가 불경의 일부로 편입되기에 이른 것)
.원효는 말에 대한 신뢰를 무시한 사람의 하나이다. 그는 높은 경지에 있는 고승의 자세를 지양하고 스스로 광대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無라는 춤을 추면서 노래(*무애(無㝵))를 지어서 부르기도 하였다. 화쟁(和爭), 진여(眞如-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우주 만물의 절대적인 진리. 말로써 말을 없앤다는 태도)
.그가 지은 '沒可斧歌'(몰가부가)는 승려로서는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내용을 가진 작품이다.
*원효는 말을 떠난 진여에 이르기 위해서는 말에 의한 진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말로써 말을 없앤다는 태도로 계속 글을 썼다. 말로써 말을 없애는 방법이 결국 역설과 비유라고 하는 논리는, 문학에서의 표현이 일상적인 언어를 넘어서기 때문에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근거를 보장해 준다.
③ 원측의 ‘유식학’
④ 의상의 화엄학, 일승법계도
⑤ 혜초: 여행기를 저술하고 시를 지을 만큼 문학적 소질이 뛰어났던 사람, 밀교(密敎-7세기에 일어난 불교의 한 종파, 해석이나 설명을 할 수 없는 경전, 주문, 진언 등, 임금의 비밀한 교시)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왕오천축국전(시가 5편)을 지었다. ->오천축국은 인도를 뜻한다.
*⑥ 게송(偈頌) - 범어로 ‘가타’라고 하는 이 노래는 아름다운 말로 부처를 찬미하는 것.(46P16줄~23줄)
4.5 설화에 나타난 상하·남녀 관계
.현존하는 기록 중에서 설화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역시 {삼국사기}일 것이다.
.{삼국사기}는 역사서이지만 열전 같은 데서 설화적인 요소를 가지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삼국유사}를 들 수 있다. {삼국유사- 설화의 보고}는 민족의 기원과 관계 있는 신화적 인 이야기와 불교와 관계가 깊은 신이한 이야기들이 대거 수록된 설화집이다.
.선도산 성모 같은 이야기는 신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대로 오면서 중국에 대한 사대적인 생각이 가미되어 신화적인 성격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①신격이 등장하지 않아 전설처럼 보이지만, 신화의 흔적을 간직한 것으로서 일본에 대한 우리의
우월한 입장을 드러내는 이야기 - 연오랑과 세오녀
② 신화적 질서에 불신이 생긴 후에도 어느 특수한 집단에서 신화를 전승 - 미추왕 죽엽군(竹葉軍)
③ 전설에서 민담으로 격하된 이야기 : 영웅이 괴물을 퇴치했다는 이야기 - 거타지 이야기, 작제건,
서사무가인 군웅본풀이, 용비어천가
④ 불교설화에서는 영웅 대신에 고승을 내세웠다. 불교가 재래신앙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편 이야기 - 보양스님
⑤ 모든 세속적인 욕구나 인연의 초탈과 불도의 경지마저 떨쳐버린다는 이야기 - 의상
⑥ 귀족적으로 굳어진 불교를 불신하고 숭고 대신에 골계를, 격식보다는 비속을 택한 - 원효나 혜공
또는 신라 말기의 선승들
⑦ 미천한 처지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는 이상스러운 승려 이야기 - 혜공과 혜숙
⑧ 천한 백성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상상 - 마퉁이(서동)와 미천왕 이야기
⑨ 김춘추가 고구려에서 들은 이야기(선도해라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구토지설을 들음)라는 구토지설(龜兎之說)은 불경을 매개로 해서 들어온 외래설화의 변용이지만, 약자의 지혜를 암시하는 교훈과 후대에 토끼전(토별가)의 선행설화로 주목된다.
⑩백제 개루왕이 천한 백성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다 실패한 이야기 : 도미처 이야기
⑪지귀라는 천한 역졸이 선덕여왕을 짝사랑했다는 이야기 - 심화요탑(수이전-오늘날 전해지지 않음)
⑫전기(傳記)- 창작성 가미, 소설에 가깝다. 전기는 문학적 수식을 의도적으로 가미해 글로 정착시킨
설화라고 할 수 있다.
4.6 연극의 자취를 찾아서
굿, 놀이, 연극은 원시시대에 시작되었고 고대(고조선)에 이미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국중대회)
53쪽 18줄 ~24줄 볼 것(다른 점에 대해)
①굿 : 사람 아닌 것과 사람의 갈등을 주술을 써서 해결하자는 행사이고,
놀이 : 화해와 단합을 꾀하고, 미리 정해진 공동의 절차에 몰입하도록 하고,
연극 : 사람들끼리의 갈등을 행동으로 나타내면서 몰입이 아닌 각성을 경험하게 하는 것.
②굿에서 연극으로까지 이어진 공동의 절차는 맞이와 싸움과 혼인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③굿과 연결되는 연극은 농악대가 하는 굿(탈춤으로 발전했을 것)과 무당이 하는 굿(무당굿놀이) 등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④고구려의 가무(무용총 벽화) - 중국에서 받아들였으나 다시 중국으로 전해줌(당나라 장수 이적이
고구려의 꼭두각시놀음을 자기 나라에 갖다 바쳤다) : 해동역사에 인용되어 있음.
.[지서]라는 놀이가 있는데 오늘날의 [짓]에 해당되는 연극
⑤백제사람 미마지가 남중국 오나라에서 <기악>을 배워 일본에 전했다는 내용이 <일본서기>에 전한다.
⑥신라에서는 가무백희(歌舞百戱- 공연물), 황창무(가면무), 경흥우성(탈춤), 처용무 등이 있었다.
-처용무 :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춤이지만 굿 또는 연극으로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처용은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데리고 와서 왕정보좌의 임무를 맡긴 신참자이다.
.처용이 역신과 맞서는 데까지 이르는 과정은 굿이면서 연극이다.
⑦<삼국사기> 악지에 최치원의 시 "향악잡영오수"의 내용은 다섯 가지 놀이인 오기(五伎)를 시로 읊은 것으로 남사당의 전신이 아닌가 추측된다.
.금환(金丸)은 금빛 방울을 돌리는 놀이니 곡예, 월전(月顚)은 놀이꾼의 모습, 공연내용, 청중의 반응, 무대분위기, 공연시간 등을 적어 놓았으니 연극, 대면(大面)은 가면을 뜻하고, 속독(束毒)은 탈을 쓴 모습이고, 산예( 猊)는 사자춤이다.
4.7 남북국시대의 상황과 문학(통일신라와 발해시대)
한 민족이란 의식으로 신라는 남(南)이라 하고 발해를 북(北)이라 함. (신라에서 발해를 북국으로 부름)
① 한자를 빌어 민족어를 표기하는 방법 : 신라의 향찰, 일본의 가명, 월남의 자남
② 통일신라는 독서 삼품과(국가 고시) 설치 - 문인을 양성
③ 발해는 당나라에서 해동성국이라 불림, 한문학이 난숙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을 입증한 예들 :
- 최치원의 글(당시 외국사신 영접 서열에서 발해가 앞섬, 당 빈공과에서 발해인이 수석 합격한 사실)
- 1949년 발견된 정혜공주묘비와 1980년 발견된 정효공주묘비가 있다.
- 발해의 시인으로 양태사, 왕효렴, 인정, 정소, 배정 등을 든다.
④ 신라 문인이 당나라에 가서 활동한 자취 - <전당시>, 설요, 김지장, 김운경 : 고국상실자의 모습
4.8 신라 한문학의 성숙(작품의 특색, 최치원에 대해)
① 설총이 남긴 글로 <풍왕서> 또는 <화왕계>가 있다.
② 성덕왕 때의 문인 김대문의 저서로는 <소승전>, <화랑세기>, <악본>, <한산기>, <계림잡전> 등.
③ 고운 최치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변의 막하에서 <격항소서>를 지어 문명을 떨쳤다.
.<계원필경집>, <사산비명>, <난랑비서>, <촉규화>, <강남녀>, <우흥> 등의 작품이 있다.
.<촉규화> : "천한 땅에서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도 참고 견디는" 접시꽃에다 자기 처지를 비하했고,
.<강남녀> : 자신을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으로 의식하여, 주위 민중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진
여유로움으로 지은 시다.
④ 최광유의 <장안춘일유감>
⑤ 박인범의 <기향암산예상인>, <범일국사영찬>, <무애지국사영찬>
⑥ 신라 말에 문장에 뛰어난 인물로 삼최(三崔)[최치원, 최승우, 최언위]가 있었으며, 신라문학이 고려문 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제 5장 셋째시대 ;중세전기문학 제2기 '고려전기'
5.1창업과 쟁패의 신화적 표현
1)고려전기로 접어들면서 건국의 정당성을 입증할 신화를 필요로 했으나 사람들은 이미 신화를 믿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백제;견훤-4가지정도의 신화. 태봉;궁예-자기 자신을 신격화하려다 파멸)
2)왕건은 선조들을 신화의 주인공으로 삼았을 뿐 자기 자신은 경험적 세계만을 서술함으로써, 더욱 건국 신화의 위광과 통치의 설득력을 갖출 수 있게 했다. 선조 이야기는 고려사 서두에 전해지며 출처는 김관의- 편년통록(編年通錄)이다.
3)선조 이야기 중 영웅으로 부각된 인물은 호경(-성골장군이라 칭하여 신성한 혈통임을 강조)과 작제건 이며, 작제건이 당나라 숙종의 아들이라는 것은 중국 중심주의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작제건이 바다 를 건너가다가 용왕의 요청을 받고 요물을 퇴치했다(용신 신앙)는 것은 거타지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4)왕건이 등장하는 대목은 신라임금의 옥대를 받았다는 한 가지밖에 없다.
5.2 향가의 전통과 그행방
1)한시와 향가가 존재했던 신라문화의 이원성을 그대로 유지 - 보편주의와 민족의 독자성을 보여줌
2)불교적 색채로 인해 통일신라시대보다는 예술성이 떨어진다.
3)향가의 기록
⑴ 균여전-혁련정이 편찬한 균여의 전기
①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 균여의 작품,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한 대목을 노래로 풀이.
.최행귀의 한역시와 함께 전한다.
② 3구6명: 번역 의도를 밝힌 <역가서譯家序>에서 균여전에 전하는 한시와 향가의 관계를 전개함.
."한시는 중국말로 지으면서 5언7자로 다듬고, 향가는 우리말을 3구6명으로 배열한다. 또한 우리는 중국 글을 아는데 중국 사람들은 우리 글인 향찰을 모른다“고 했다.
.이는 문화인식의 폭과 수용능력에서 우리가 앞선다는 논리가 도출되며, 중세의 보편주의에 구애되지 않고 민족문학의 의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시한 의의가 있다.
⑵ 현화사비음기(玄化寺碑陰記)-8대 현종의 <향풍체가>. 신하들이 지은 <시뇌가>에 대한 기록이 있음.
⑶ 도이장가-예종이 지음, 향가의 잔존형태로 남음
.벌곡조: 예종(정치의 득실을 알고자 언로(言路)를 열었으나 신하들이 말을 하지 않자 신하들을 풍자, 시용향악보에 전하는 <유구곡>, 또는 <비두로기>라는 노래가 아닌가하는 추정
⑷정과정곡: 정서의 작품, 사뇌가의 잔존형태. 충신연군지사
.고려사 악지에 노래를 지은 연유를 소개, 이제현이 소악부에서 한역한 것을 실음,
.국문으로 된 사설은 악학궤범에 전하며 ‘삼진작’이라고도 함
5.3 불교문학의 방향 모색
.고려는 여러 갈래로 나뉜 불교의 종파를 통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광종 - 승과제도 창설, 선종의 법안종 통합을 도모
.현종 - 현화사 창건으로 법상종 융성의 계기를 만듦
1)불교의 문학론
① 균여-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 균여의 상반된 견해를 볼 수 있다.
.의상의 <일승법계도>를 풀이
.<성상융회(性相融會)>;균여의 주장이 잘 집약됨-성은 없음의 영역이고 상은 있음의 영역이라
하겠으며, 성에 관한 이론은 공관론, 상에 관한 이론은 유식론 쪽에서 전개해온 것이
불교의 교리라 할 수 있다.
② 제관- <천태사교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는 말로 요약-사람의 등급을 셋으로 나뉘지만 모자라는 쪽이라도 함께 성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살과 같은 경지에 이른다
③ 의천-대각국사, 교관병수라는 말로 요약-교는 이론, 관은 수행 즉 교종과 선종이 같이해야 그 어느 쪽도 막히지 않는다고 함,
④ 계응, 혜소-의천의 제자. 파한집에 이들의 시가 수록되어있다.
⑤ 탄연-선종의 승려, <문수사>라는 시를 남김
5.4 과거제 실시와 한문학
.광종의 과거제 실시로 한문학 발전을 북돋움
1) 건국초기 문인들
① 최언위: 왕건의 정치철학을 충실히 대변, 새 왕조의 이념적 기틀을 마련, 불교와 유학이 힘을
합치게 하는 정책을 받듦
② 최응: 태봉계통의 문인. 왕건의 통일 기원문인<통삼한위일가발원소>를 지음
2) 태조왕건-훈요십조(訓要十條); 중세적 보편주의와 민족문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유의
3) 고려의 과거는 진사(進士), 명경(明經), 복업(卜業), 의업(醫業)으로 나뉘는데 그중 진사를 높임.
.진사에는 시(時),부(賦) 송(頌), 시무책(時務策)이고 그 중 시가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과거의 시험관을 지공거(知貢擧)라 했는데 이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 문학의 풍조가 결정되었다.
3) 성종- 국자감 창설, 월과법 시행
4) 광종-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실시
5) 최승로- 시무이십팔조(時務二十八條); 임금의 바른 도리를 제시
6) 최충- 여러 차례 지공거를 역임. ‘문헌공도’라는 사학을 만들었다.
7) 박인량- 국서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 송나라에서 두 사람(박인량과 김근)의 시를 모아 <소화집>
이라는 시집을 펴냈다 (김근: 김부식의 아버지)
8) 김황원- 문학이 영달의 수단이 됨에 반발, 고문(古文)을 잘 지어 해동제일이라는 평도 들었다.
5.5 설화와 역사 사이
.교종, 즉 이론불교가 초경험적인 영역에 대해 함부로 상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존체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은 하층의 민간전승과 연관, 신이한 설화를 이으면서 민족의식 을 드높이고자 했다.
.중국사신의 견문기: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민간신앙의 제당을 두고 그 유래를 설명, 숭산묘, 동신사. 합굴룡사. 오룡묘 네 곳을 열거하고 있다.
.군주가 아니면서 신화적인 요소까지 지닌 영웅전설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민간영웅을 희구하는 전통이 어떻게 하다보니 특정인물과 결부되었으리라 보고 있다.
①최응: 아기장수 이야기의 원형.
②강감찬 장군: 보한집과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음.
.부친이 개국공신이었는데도 설화에는 미천한 백성으로 그려놓고 있는 것은 민간출신의 영웅으로 만들려는 백성들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임.
.별이 떨어진 곳을 ‘낙성대’라 하여 명소로 삼은 것은 적강소설 설정의 기원이 됨.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는 역사서이지만 김해지방 수령이 지은 가락국기를, 일연이 삼국유사에 개요 를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1) 문헌에 나와있는 설화
① 수이전- 원작자는 최치원일 가능성이 있고 그 다음 개작자는 박인량→ 김척명 순으로 보고 있다.
② 삼국사기: 김부식 일파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진압한 다음 이념적 반론을 굳히고자 편찬함.
.높은 수준의 역사의식과 대단한 문장력을 보여주며, 격식을 갖춘 고문이 처음으로 정착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평가,
.삼국사기는 편찬의도가 실제 서술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음. 신라정통론을 주장.
.열전-사실기술보다는 민간전승까지 끌어들인 설화적 서술을 더 많이 지녔다.
.‘김유신전’은 전기문학의 모범적 전례로 평가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5.6 고려전기 귀족문학의 결산
1) 예종: 예종창화집편찬(고려사에도 20여수 전하고 있다),고려도경(당시로서는 파격적-불교국가에서 도 교를 숭상, 국가적 종교로 삼으려고 했음)
2) 곽여: 금문우객이라 불림
3) 이자현: 시 - 낙도음(은거와 도피의 문학)
4) 박호- 하팔관회표(賀八關會表)
5) 권적- 조송로상기제우(朝宋路上寄諸友)
6) 최약- 예종에게 위기인식을 고하며 도학적 문학관을 지님, 위기극복 방안을 제시
7) 정극영- 어진 신하를 맞이하라(위기의식)
8)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
①개경파; 김부식 중심. 문벌귀족세력, 신라 정통론, 사대의 의의를 강조, 귀족불교와 제휴한 유학으로 이단을 물리쳐야한다고 주장
②서경파; 묘청 중심(묘청의 난). 고구려 정통론을 주장, 자주적인 기상을 드높이며 민중불교를 택함.
대표적 인물은 정지상, 묘청, 백수한
9) 김부식: 유학의 이념을 분명하게 해서 정치를 하거나 문학을 하는 기준으로 삼음,
.문학은 경전을 모범으로 삼고, 내용도 규범이 될 수 있는 바를 갖추어야한다고 주장함.
.<정서군막유감>, <군막우음>, <관란사루>
10) 정지상: 묘청과 함께 서경천도운동을 주도, 표현기법을 깊이 터득했으므로 근체시의 고정된 격식을 어기는 요체(拗體)라는 것을 택하더라도 그 묘미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는 평을 듣는다.
*송인(送人)- 천년을 두고서 그 이상 가는 것이 없다는 평을 듣는 이별의 시이다.
11) 정습명: 의종의 잘못을 간하다 미움을 사 자살함 (<석죽화>를 남김)
12) 신숙, 최유정-난세에 자신의 몸은 건사했으나 유약한 문인으로 남음
13) 김돈중-김부식의 아들.(숙안락군선원)
6장 넷째시대 : 중세후기문학
-중세후기문학 : 여러 가지 다양한 문학장르들이 나타난다.
.문학평론, 문학비평론, 문학론 등이 나타나고 불교에서는 가사가 지어지고 여러 가지 전(가전체),
경기체가, 고려속요 등이 생겨남.
6.1 무신란. 몽고란과 문학 : 무신란을 기점으로 해서 고려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1. 무신란(1170, 의종24년)
1) 이시기의 문학은 위축됨직 하나 도리어 전대 이상으로 발전하여 새로운 문학사를 열었다
2) 이점에 대한 이해는 두 방향으로 볼 수 있다.
-무신의 전횡을 피한 문인들이 문학에만 매달릴 수 있었으며
-최충헌이나 그 후계자들이 문학을 장려하였다는 점이다.
3) 신라 이래의 인습을 고집하고 권력을 독점하여 민족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안일을 추구하던 문벌귀족 의 문학을 청산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신흥사대부의 문학이 생기게 하는 데에서 무신란의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신흥사대부 : 지방출신의 관리들, 중소지주 출신들의 문인
2. 무신란 이후 문학의 동향
1) 김극기 : 고려전기 문벌귀족 문인들의 작품세계와는 달리 농민의 생활이나 느낌을 과장이나 수식
없이 자기의 것으로 만든 작품을 남겨, 이 시기 문학의 전환점을 마련함.
2) 죽림고회: 세태를 비판하고 산수를 즐기며 고결한 문학을 표방하면서도 벼슬의 기회를 엿보던 임춘, 이인로, 오세재, 조통, 황보항, 함순, 이담지가 중국의 죽림칠현을 본 따서 결성한 단체.
.이들은 고전적인 표현의 전례를 따르는 용사(用事)를 중요한 창작방법이며 평가척도로
삼아 소식의 뒤를 잇고자 했다. [용사론: 옛사람의 문구를 따르고 배워야 한다는 이론]
3) 임춘(林椿): [공방전], [국순전]등 돈과 술을 의인화하여 그 폐해를 그렸다.
4) 이인로(李仁老): [파한집]이란 최초의 시화집을 지어 문학의 절대적 가치와 그것이 표출 방법으로
공교로운 표현을 강조했다.
5) 신의론: 죽림고회의 용사론에 반대되는 신의론을 가지고 활동했던 금의, 유승단, 김인경, 이규보 등을 들 수 있다.
*신의론 : 옛사람의 표현을 되풀이하는 풍조를 배격하고 새로운 착상이 소중하다. (창작론)
6) 이규보(李奎報) :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며 민중의 삶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주체적인 문학을 이룩하려는 뜻을 가졌다.
.[東明王篇]으로 대표되는 주체적 역사의식의 표현과 민족정신의 고취라는 방향과 농민시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을 파헤치려 하는 방향으로 나타남.
3. 무신란과 몽고란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문벌귀족의 무능력이 드러나고, 하층민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새로운 지식인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6.2 비평의식의 성장
1. 문학이 성장하면서 문학을 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검토를 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추세였다.
1) 이인로: [파한집]은 시와 관련된 사항들을 기록(일화, 시평, 작가론, 문학일반론) (98p 4줄~14줄)
*파한 : 한가로운 것을 깨트린다.
2) 이규보: [백운소설] 시화집으로 문학의 본질을 다룸 (98p 14줄~24줄)
3) 최자 :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완한다고 하면서 문학관을 따라 시화집 [보한집]을 지었다.
.유학의 도리에 합당하여야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전제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사롭지 않은 표현을 개척하여야 한다는 신유학에 근접한 생각을 서술하여, 신흥사대부들의 문학활동에 이론과 창작의 방향제시
4) 최해 : [동인문]총서 편찬. 한국의 한문학이 중국의 한문학과 대등한 것으로 파악
5) 이제현: 정통적인 시문을 새롭게 한 [익재난고], 시의 형상론(이미지론)의 [역옹패설]로 비평전개.
.글 다듬는 재주나 자랑하는 무리를 ‘조충전각지도’ 경전을 밝히고 행실을 다듬는 선비를
‘경명행수지사’라고 하면서, 구 귀족의 잔존세력과 불교를 아울러 비판하려는 의도를 드러냄.
.고려문학은 중국을 따르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해야 하고,
.이인로의 用事論과 최자의 新意論이 조화의 묘리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함.
6.3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
.고려전기에는 귀족불교인 교종이 불교계를 지배하였으나, 무신란이 일어나 선종이 무신정권의 지지를 받았다.
1) 지눌: 선종을 통하여 불교를 혁신하고자 하였다.
.선종은 원래 말이나 글을 불신하고 불립문자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였으나 선종의 고승이 한말 이나 노래를 적어서 모은 책을 어록으로 만들었다(구어체).
.<수심결>에서 문자가 아닌 뜻이 긴요하며 스승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깨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2) 혜심: 이미 지니고 있던 문학적 역량을 살려 지눌의 사상을 발전시키는데 힘쓰면서 유학을 불교로
아우르려 하였다. [죽(竹)존자전], [빙(氷)도자전]과 같은 의인체의 가전과 [어부사]를 지었다.
3) 충지: 문집의 편제를 갖춘 [원감록],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빙자하여 영남해안의 백성을 가혹하게
부리고 수탈하자 [영남간고상]으로 참상을 고발한다.
4) 경한: [백운화상어록] 선가문학이 계속 생동하는 의의를 가지는데 공헌
5) 보우: [태고화상어록]
6) 혜근(나옹): 향찰로 표기된 [승원가]는 불교포교의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가사문학 최초의 작품이다.
6.4 민족사 재인식의 시대
.무신란 이후 고려후기의 역사문학은 [삼국사기]에 대한 반론으로 나왔다고 함.
.반론을 제기한 이유는 고려 전기 귀족문화 규범의 붕괴와 주체의식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가 중세문화의 확립을 꾀했다면, 고려후기의 역사문학은 중세문화를 재검토했다고 할 수
있다.
1)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론에는 [삼국사기]에 동명왕의 기록이 부실하고 중국중심주의 때문에 위축된 의식을 떨쳐버리고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고장임을 만천하에 알리려 지었다고 되어있다.
.[구삼국사]를 처음에는 허황되고 (단군신화, 고주몽의 신화...)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 환과 귀라는
느낌이 들더니 환→聖 귀→神으로 깨닫고 영웅서사시이자 민족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쓰게 되었다.
2)[해동고승전]: 각훈이 지은 승려들의 전기집.
.[삼국사기]가 불교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쓰여 승려의 전기가 무시된 데 대한 불만과 함께 불교가
정신적인 지도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집필의 동기가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앞뒤로 70년이란 사이를 두고 중간적인 위치를 차지함
3)일연의 [삼국유사]: 역사와 문헌을 조화시킨 역사문학에서 가장 뚜렷한 위치에 있다
(102p 25~ 103p 13줄)
4)영사시: 역사를 읊은 것으로 고려후기에 많이 나타난다.
.오세문의 [역대가]가 첫 작품이다.
.[제왕운기]: 이승휴가 한시로 지은 저서
-상권에는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하권에는 민족사를 재인식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단군의 사적을
본문의 서두로 삼았다.
-[동명왕편]을 참고하고 [삼국유사]와 같은 견해를 표방하면서 발해의 역사까지 수용함으로써
원나라에 복속되어 위축된 시대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6.5 사람의 일생 서술방법
.사람의 일생에 대한 관심이 문학으로 표현되어 온 내력은 신화로까지 소급된다.
.사람의 일생을 출생. 시련. 혼인. 투쟁. 등의 고비에 따라서 문제삼는 문학적 표현은 민간전승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1)열전 : 역사와 문학의 거리를 좁혀 놓았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유신전은 역사이면서 문학작품이다.
.열전에는 불가열전, 유가열전이 있으며 유가열전에는 행장과 묘지가 있다.
(1) 행장 : 죽은 인물의 일생에 관한 공식적인 서술
(2) 묘지 : 공적이고 사적인 기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을 돌에 새겨 무덤에 넣는다.
2)전(傳) : 전을 짓는데는 마땅히 사서의 열전에 들어가야 할 인물을 찾아 열전을 보완한다는 의식과
함께 새로운 표현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난다. [동문선]에 기록된 대부분의 전이 이 시대의 것이다.
(1) 김진양의 전 : [고려사]열전에도 소개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짓는 전의 표현영역을 확인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고려사]열전은 김진양이 정치싸움에 나서서 반대파를 공격하고 자신도 수난을 당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이숭인의 전에는 김진양의
정치적 행적보다 개인적인 친분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다.
(2) 여자의 행실을 다룬 전으로는 이곡의 [절부조씨전], 이숭인[배열부전]으로 수난을 극복하는 여인의 의지와 정절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지어졌다.
(3) 도잠의 [오류선생전]은 작가자신의 전을 가상적인 인물에 의탁해서 쓴 탁전인데 [동문선]에 수록 된 이규보[백운거사전], 최해[예산은자전]이 그런 유의 작품이다.
-[백운거사전] 이규보 : 자기를 높인 글
-[예산은자전] 최해 : 자기를 낮추면서 쓴 자학에 가까운 글
3)가전 : (1) [동문선]에는 7편의 가전이 실려있고 다른 문헌에 전하는 것도 2편이 있다.
(2) 술, 돈, 거북, 대나무, 지팡이 같은 사물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은 고려 후기에 처음 나타 났으므로 갈래의 특징도 문학사적 성격논의의 대상이 된다.
(3) 임춘 [국순전], [공방전] 은 술과 돈의 폐해를,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술의 장점을 그렸다.
이규보 [청강사자현부전]은 거북이, 혜심의 [죽존자전] 이곡의 [죽부인전]은 대나무,
[빙도자전]은 얼음을 의인화하였다.
6.6 속악가사와 소악부의 노래
1.속악가사
1)가시리, 만전춘별사, 쌍화점 등 속된 가요를 말한다. [‘속되다’는 것은 저속하다는 뜻이 아님]
2)일반적으로 속요라 하는데 조윤제는 장가, 이병기 정벽욱은 별곡이라고 칭함
3)<고려사>악지에는 악(樂)을 아악(?樂),당악(唐樂),속악(俗樂)으로 나누었다.
(1)악은 음악일 뿐만 아니라 춤, 놀이, 말로 된 노래 등을 포괄하는 복합체인데 여기에는 민간에서 전승 되는 것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①아악 : 궁중에서 공식적으로 숭고한 기풍을 갖추어야 하고 엄격한 분위기에서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 공연되어야 한다.
②당악과 속악 : 비공식적 행사 특히 잔치를 거행할 때 즐기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속된 노래)
③당악정재(唐樂呈才) : 당악을 연주하면서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며 춤이나 노래로 흥을 돋우는 것
<헌선도>, <수연장> 중국의 악(樂)
(2)속악가사는 궁중의 악곡으로 잔치를 벌일 때에 불렀다.
①속악가사는 하층문화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민요의 모습을 적지 않게 띠고 있지만, 그 시대 특유의 상층문화로 변모되고 속악정재의 공연방식에 따라서 개편되었으므로 이중적인 성격을 띈다고 하겠 다. (동동, 만전춘별사, 정석가)
②고려전기의 속악이 어떤 것인지는 <고려사> 악지의 삼국속악에서 찾을 수 있다.
(3)속악작품108p31줄~112p 24줄(각 작품별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①처용가
㉠신라 때 향가의 하나였는데 고려 때에 이르러 가사가 추가되어서 속요로 불려짐.
㉡신라 때는 춤, 노래, 놀이에 연극적인 요소까지 갖추었을 터인데 고려 때에는 굿으로의 기능을
지님.
②동동
.농가월령제로서 달거리형식으로 민요형식과 상통하고 자연적이고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전개됨.
③쌍화점
㉠쌍화점 놀이는 예사 속악정재가 아니라 가극이란 견해와 가극의 대사라는 견해가 있다.
㉡노랫말이 네 장으로 되어 있다.(왕, 외국군인, 승려, 일반사람)
㉢사회적이며 공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많고 문란한 성도덕도 비판
4) 조선 초기에 고려에서 물려받은 속악을 정리하여 아악을 새로 제정하면서 만전춘별사, 서경별곡,
청산별곡의 곡조는 이용하고 사설은 남녀상열지사라 하여 배격했다.
2. 소악부 (130p25줄~131p)
1)정부(조정)의 음악담당 부서였는데, 나중에는 음악자체를 뜻하는 말로 고려 때 유행하던 우리나라노래, 즉 민요를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것을 말한다.
2)오늘날의 유행가로 그 당시의 세태나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담았다.
3)소악부는 한시이면서도 우리말 노래, 특히 민요의 진솔한 사연을 담으려 했기에 주목된다.
*교재를 읽어보고 특히 <사리화>, <장암>을 알아두길 바랍니다.
6.7 설화, 무가, 연극의 양상 (구비문학)
1. 설화
1)설화는 인류문화가 시작될 때부터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조선-삼국-남북국-고려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것이 계승되어 왔을 뿐 아니라 새로운 설화의 창작이 현재까지도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기록상으로 삼국유사(설화의 보고), 삼국사기에 실려진 설화를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본다.
3)고려후기에 와서 고려사에 실린 것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실린 것에 비교해서 성격을 달리한다. .그 이유는 시대가 발전하였고 신화시대- 전설의 시대-민담의 시대로 발전함과 함께 보다 합리적인 성리학의 영향으로 과학적으로 평가되었다.
4)고려후기에 나타난 시화(詩話)는 시를 짓는데 따르는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인 고사, 일화 숨겨진
이야기를 기록 해놓은 것을 말한다.
.이인로 <파한집>, 이규보 <백운소설>, 최자 <보한집>
5)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긍정적으로 평가한 보은담이 있는데, 보한집, 역옹패설에 실려있다.
(동물이 인간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
6)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설화로는 뼈다귀 세찬(강감찬), 설죽화(여성주인공의 민중 항쟁의지 형상화)
등이 있다. (교재115P20줄~30줄)
2. 무속 (교재 115P31줄~ 116P 21줄 이금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세요)
1)고려후기에는 신유학(성리학)이 등장하면서 무속을 완강하게 배격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지만, 일반
민중은 난세를 맞이해서 소망을 풀어줄 구원자의 출현을 기대했기에 제석이나 미륵으로 자칭하는
무당 또는 승려가 거듭 출현해 민심을 장악했다.
3.연극
1)팔관회, 연등회, 나례의 기본순서에 이어 벌이는 가무백희는 연희이기는 해도 연극은 아닐 듯 하다.
(1)팔관회 : 산신이나 용신을 섬기면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행사 (불교 행사가 아닌 민족전통연희임)
(2)연등회 : 부처에게 복을 기원하는 불교적인 행사
(3)나례 : 가면을 쓰고 창을 휘두르면서 잡귀를 몰아내려는 절차로 되어 있는 것(중국의 전례에 따라)
2)당악정재(당나라 음악)인 <헌선도>, <오양선>등과 향약정재(우리나라 음악)인 <처용무>는 팔관회, 연등회, 나례 등을 거행하는 기회가 아니더라도 별도로 공연되는 인기 있는 연회이다.
3)<고려사>열전의 염흥방(廉興邦)은 길거리에서 하는 민간연극이 있었음을 입증하고 풍자수법을 사용 했다는 증거도 갖추고 있다.
4)민간연극의 더욱 깊은 층위는 농촌에서 전승되는 탈춤이었을 것이다.
(교재117P29줄~118P14줄에 나와 있는 안동 화회마을 탈춤의 내용과 꼭두각시놀음 살펴 볼 것)
5)권근은 <우인효자군만전>에 창우(倡優), 우인(優人), 영인은 해학으로 웃기는 일을 맡는다고 했다.
.<고려사> 열전 전영보(全英甫) 대목에는 우리말로 가면을 쓰고 노는 자를 광대(廣大)라 한다는
구절이 보인다.
6.8 경기체가, 시조, 가사의 형
.권문세족이 무신란과 몽고란을 겪고 나서 상층문화를 재건하는 대신 전에 볼 수 없었던 놀이와 노래를 속악가사나 속악정재로 편입시켰다.
.신흥사대부는 이에 불만을 가지고 상층문화를 가다듬고 지배 체제를 정비할 수 있는 이념을 마련하고자 하여 내어놓은 것이 경기체가, 시조, 가사이다.
1. 경기체가 (교술시- 어떠한 사실 전달)
1)한림별곡
①경기체가의 첫 작품이며, 문인들이 함께 놀면서 한 대목씩 지어 돌림노래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②23대 고종 때 한림제유(8명의 문인)의 공동작이다. 시부, 서적, 명필, 명주, 화훼, 음악, 누각, 추천(그 네) 등을 내용에 담고 있다.
2)안축의 <관동별곡>, <죽계별곡>
①혼자서 창작한 경기체가의 첫 번째 예이다.
②신흥사대부가 경기체가를 통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표현한 점에서 주목된다.
③경기체가는 신흥사대부가 득의에 찬 기백을 과시하는 데 특히 잘 어울리는 갈래였음을 안축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④경기체가는 조선시대에 가면 이념구현의 도구가 되고 속요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2. 시조
1)신흥사대부들은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또 한편으로는 사실에 속한 것과 원리를 이루는 것을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기체가와 같은 교술시와 함께 시조와 같은 서정시도 필요 했다. 그러므로 시조는 우리말 서정시를 다시 이룩하는데 의의와 사명을 가졌다.
2)시조의 기원을 향가의 사뇌가에서 연원을 찾는 학설과 한시의 절구에서 연원을 찾는 학설, 정읍사나 만전춘별사와 같은 네 토막이고 세 줄인 노래에서 연원을 찾는 학설 등이 있다.
3)고려말의 정치적 격동과 관련해서 창작된 시조는 두 가지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조가 그만큼 큰 구실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도 다양하면서 묘미 있는 표현이 개척되었다는 것이다.
4)시조의 첫 작품은 우탁의 [춘산에 눈 녹이는] [한 손에 가시를 들고]로 보고 있다.
교재 120P16줄~123P 2줄 시조의 기원과 작품별 설명을 살펴보세요
3. 가사
1)한문으로 전하는 더 이른 시기의 노래 가운데도 고려 후기에는 가사와 상통하는 형식의 노래가 적지 않게 성행했는데, 그런 작품은 선종의 승려들이 한시의 기존 격식을 파괴하면서 선(禪詩)를 찾는
한편 우리말 노래를 지어 불렀기에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2)구송가사- 충지, 보우, 혜근은 변칙 선시로 하층의 신도를 끌어들이고자 하여 가사로서의 의의를
상실했다.
3)승원가(나옹화상)- 최초의 가사로 보는데 향찰 표기가 당대의 것이 아니고, 몇 가지 국문가사는 오래 구전되다가 정착되었으므로 자료의 신빙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교재123P2줄~ 125P4줄)
6.9 사대부 문학의 방향과 문제의식
1)사대부는 화려한 수식을 일삼는 풍조를 청산하고 질박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문장을 내놓고자
했으므로 고문(古文)을 택하였다.
2)성리학을 표방하면서 고려문화를 혁신하고자 한 첫 세대는 안향, 백이정, 우탁 등인데, 안향과 백이정 은 원나라에서 신유학을 받아들이고, 우탁은 수입된 신유학 서적을 남보다 앞서 이해하고 풀이했다.
3)최해
①<동인문>이란 총서를 완성했다.
②<예산은자전>-생계를 이을 길이 없어서 절간 승려의 땅을 얻어 소작인 노릇을 하는 데까지 이른
처지를 자학에 가까운 말로 묘사했다. (이규보의 백운거사전과 대조적)
4)안축 <관동와주>는 경기체가인 <관동별곡>처럼 이름난 경치를 보고 찬탄하는 대신에 그 근처
백성들이 어찌해서 산을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리겠는가를 묻고 탄식했다.
5)이제현
①<역옹패설> : 역사와 문학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를 폈다.
②재도(載道)로서의 문학이 아니고 관도(貫道)로서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데 머물렀다.
-문학이 도를 싣는 도구가 아니고 도와 문을 같은 수준의 것으로 보는 견해(표현)
6)이색
①<관어대부>(觀魚臺賦)-웅대한 기상과 함께 대단한 포부를 나타내고, 사물과 심성의 이치를 온통
다루고자 한 착상은 한문학이 우리 풍토나 생활과 깊은 관련을 가져야 더욱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②경세치용의 학문을 하였다.(조선시대 정약용의 사상과 비슷함)
넷째 시대: 중세후기문학 -제2기. 조선 전기
7.1 왕조 교체기의 한문학
.고려 전. 후기와 조선 전기, 이 세 시기를 견주어 보면 왕조의 지속과는 관계없이, 고려 전기와 후기 사이에는 이질성이,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사이에는 동질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고려 후기에 신흥사대부가 모색하고 주장하던 문학의 양상이 조선 전기에 와서 구현되고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고려 후기 동안에 거듭된 역사의 격동은 철저하고도 과감한 개척 정신을 요청했다. 그래서 사상과 문학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권근, 원천석, 길재, 조운흘, 변계량 등이 이러한 전환을 주도했다.
▼조운흘 : {삼한시귀감}이라는 시선집을 편찬했는데, 이는 최해가 {동인문}의 일환으로 마련했던
업적을 이어 이따금씩 보이는 비점과 평을 받아들이고, 자기대로의 선정 작업을 다시 해서
고려 고종 때까지의 시 가운데에서 널리 모범이 될 만한 것들을 모은 것이다.
▼변계량 : 정도전과 권근을 잇는 사람으로서, 한양 도읍을 칭송한 경기체가 <화산별곡>이 유명하다.
① 조선시대 사대부문학의 두 가지 방향 : 처사문학과 관인문학
② 정도전 : .문학은 도리를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음.
.문학이 재도(載道)를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재도란 다름이 아니라 세상을 바로잡는 실천적 활동이라 함(재도지기)
<소재동기, 답전부, 금남야인, 무덕곡, 문덕곡, 심문천답, 심기리편, 불씨잡변>
③ 권근 : (전천후 여당, 권력자의 비위를 잘 맞춤) 글을 잘 지음.
④ 원천석 : '운곡행로'라고도 하는 '운곡시사' 5권을 남겼다.
⑤ 길재 : 시골생활을 다룬 '산가서'와 '후산가서'가 흥미롭다.
⑥ 변계량 : 문학이란 찬양하고 수식하는 일이라고 봄.
.[태행태상왕시책문]에서 태조를, [봉정정삼봉]에서 정도전을 칭송했다.
.한양 도읍을 칭송한 경기체가 [화산별곡]도 같은 맥락이다..
7.2 훈민정음 창제와 서사시, 언해
.훈민정음은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연도 알아둘 것)
①훈민정음은 한문을 대신하는 글이고, 한자에 의한 차자표기를 대신하여 쓸 수 있다. 기록문학의 성장 에서 한문학의 등장, 차자표기 문학의 시작에 이어 세 번째로 국문문학의 시대를 여는 구실을 했다.
②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국문문학작품을 창작하고자 한 것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월인천강지 곡(月印千江之曲)]이 창제 직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라고 할 수 있다.
③[용비어천가]는 노래로 부를 때에는 '여민락'이라고 했다.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말 노래, 한시, 사실 또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주해가 그것이다.
.제1장과 제2장에 전체의 주제가 요약되어 있다고 하는데, 위대한 과업은 하늘이 복을 실현하면서
이루어졌고, 옛날의 성인들의 경우와 일치한다고 하고서, 근본이 단단하니 앞으로도 계속 번영을 누리리라는 것을 비유를 들어서 나타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제1장이 한 줄이고, 제2장이 두 줄이며, 마지막 장인 제125장이 세 줄인 것은,
왕조의 창업이 천. 지. 인의 三才와 일치함을 시가 형식을 통해서 구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각 장이 서로 독립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일관된 흐름이 두드러지지 않고, 노래에 나타난 사연을 이해하자면 해설을 참고해야 하는 것이 이 작품을 서사시로 보는 데 장애가 된다. 그러기에 단편적 인 영웅의 집합 같으며, 순수한 서사시라기보다는 교술적인 서사시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용비어천가>에서는 범인을 능가하는 영웅의 세계를 그리고자 일상성을 배척하도록 했지만,
<월인천강지곡>에서는 영웅의 세계를 월등히 능가하는 엄청난 상상을 누구나 영험할 수 있는 일상 생활의 모습과 함께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또 <용비어천가>는 후대의 소설에서 영웅적 주인공의 시련과 투쟁이 전개되는 양상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면, <월인천강지곡>은 초월적인 원리와 일상적인 현실, 숭고한 이상과 빈곤한 경험의
이원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작품구조와 관련을 갖는다.
.산문으로 된 <석보상절>은 <월인천강지곡>의 이해를 위해서 큰 도움이 되는 언해물이다.
사실 전달에 충실하면서 품위 있고 우아한 문체를 개작한 점이 우선 주목된다. 그리고 문장은 길게 이어지면서 혼란이 없고, 기본 줄거리와 곁가지를 적절하게 연결시켜 내용이 풍부해지도록 했다.
.<석보상절>에 들어 있는 안락국태자, 선우태자 이야기가 후대에 국문소설로 개작되기도 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④[용비어천가] 제22장에서는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탁조)가 백룡의 부탁으로 흑룡을 한 살에 죽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고려 태조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용왕의 부탁을 받고 천 년 묵은 여우를
쏴 죽이는 이야기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토속신앙은 용신신앙이다.
⑤[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합본이 [월인석보]이다.
⑥왕조서사시인 [용비어천가]가 국가적인 이념을 굳히는 데 사용되었다면, 불교서사시인 [월인천강지곡] 은 세종 자신이나 왕실의 가족이 내심의 위안을 얻는 데 쓰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⑦[두시언해]의 원래의 이름은 [분류두공부시언해]이다. [두시언해]는 세종 때 두보의 시를 번역 간행하 고 그 후 150여 년이 지난 후 또다시 이를 번역 간행하여 낸 책으로 이는 당시의 국어 변천의 실례를 알 수 있게 해주어 국어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되고 있다.
⑧언해라는 이름의 번역사업은 국문이 한문을 보조하는 구실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아 원문에 충실하였 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면서 국문문학작품인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이 만들어졌다.
7.3 악장, 경기체가, 가사
.조선 전기 국문시가문학은 악장, 경기체가, 가사, 시조로 이루어져 있다.
.시조는 서정시이고, 나머지 셋은 교술시이다. 그런데 악장이 경기체가로, 경기체가에서 가사로 올수록 음악으로서의 구실은 줄어들고 문학으로서의 구실은 확대되었다.
1. [악장] - 공적인 문학
▼ 정도전 : 태조의 무덕을 칭송하여 <무덕곡>이라 통칭되는 <납씨곡> 또는 <납씨가>, <궁수분>, <정동방곡>을 지었다. 또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도 지었다.
.<납씨가> : 태조가 원나라 잔당 납흡출의 침공을 물리친 공적을 찬양한 노래
.<궁수분> : 태조가 왜구를 물리친 공적을 서술한 노래
.<정동방곡> : 동방을 편안하게 한 공적을 기린다고 하면서 위화도회군을 다룬 것
.<신도가>는 한시로는 없고, 국문악장만 있으며, 이것은 악장이 한시에서 토를 단 형태 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마련했음을 말해준다.
2. [경기체가] - 공적, 사적인 문학
①악장의 구실을 하는 것 ②승려의 노래 ③개인적인 노래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악장 구실을 하는 것 :
-권근 <상대별곡>. : 악장 구실을 하는 나라 노래 경기체가의 첫 작품
-변계량 <화산별곡> : 서울이 빼어난 고장이라고 칭송하면서 어진 임금이 훌륭한 정치를 베풀어
태평성대가 도래했다고 서술한 작품
-<가성덕> <축성수> : 예조에서 왕조의 안정과 번영을 노래한 곡
▼ 승려의 노래 : 기화 <미타찬>, <안양찬>, <미타경찬>. 의상 <서방가>. 지언 <기우목동가>
▼ 개인적인 노래(가장 많은 수를 차지, 경기체가의 해체를 가져옴) :
-유영 <구월산별곡>. 정극인 <불우헌가>. 박성건 <금성별곡>. 김구 <화전별곡>. 주세붕 <도동곡> <육현가> <엄연곡> <태평곡>. 권호문 <독락팔곡>
*경기체가는 고려 때 3편(한림별곡, 관동별곡, 죽계별곡), 조선전기 때 22편 총25편이 전해진다.
3. [가사] - 사적이기만 한 문학
.조선시대 가사의 첫 작품은 정극인의 <상춘곡>으로 알려져 있다. 산림에 묻혀 청풍이나 명월을 벗삼으니 남자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노라고 하여 산림처사로서의 생활을 표현하였다. 이런 내용은 전형적인 은일가사라고 할 수 있고, 사림파의 문학으로 자라났다.
①유배가사 : 첫 작품으로는 조위(만분가), 유배가사이면서 은일가사인 것은 이서(낙지가)가 있다.
②은일가사 : 정극인(상춘곡), 이인형(매창월가), 송순(면앙정가)
③견문가사 또는 기행가사 : 백광홍(관서별곡), 양사준(남정가),
④도학가사 : 이황(퇴계가, 금보가, 상저가, 도덕가, 효우가), 조식(권선지로가),
이이(낙빈가, 자경별곡, 낙지가),
⑤불교가사 : 혜근(승원가), 휴정(회심곡)
⑥정철(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이른바 충신연주지사 라고 한 시가의 흐름을 이었고, 가까이는 조위의 <만분가>를 모형으로 삼았다.
⑦허초희의 <규원가>는 여류가사, 내방가사,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봉선화가>는 후대에 화전가류로 계승되었다. 현재에도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선 규방가사가 지어지고 있다.
7.4 시조의 정착과 성장 - 협의의 시조가 되며 정착하는 과정
①맹사성<강호사시가>가 안정기의 정서를 표현하는 길을 열었으며, 황희(대쵸 볼 불근 골에)가 호응.
②조선 초 과업을 맡은 김종서가 넘치는 기개를 나타낸 [순풍은 나무 긋티 불고]를 남겼다.
③자연에다 도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강호가도(정치가 싫어 자연에 침잠해 무위생활을 읊은 시조)의
시조 등장 - 월산대군(추강에 밤이 드니)
④이황(도산육곡) : 한시는 읊을 수 있을 따름이고 노래 부를 수 없기에 우리말 노래(시속 말)를 찾다가, 한림별곡류라는 경기체가는 방탕스럽게 들떠있는 것이라서 배격하고,
이별<육가>가 완세불공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한 맛이 부족해 불만이지만
그 형식을 본 따서 <도산육곡> 전,후편 12수를 짓는다고 도산육곡 발에 기록함.
④영남지방의 시조 : 도학을 주제로 해 예술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있음
.이현보(농암가, 어부가), 주세붕(오륜가), 이황(도산십이곡)
⑤이이(고산구곡가)는 강호가도를 다시 구현했다. 이퇴계의 도학사상을 수정 발전시킴.
⑥호남가단 : 송순-물아일체, 예술성이 짙음(면앙정단가)
⑦이현보(영남 가단), 송순(호남 가단)의 강호가도 비롯 -> 윤선도 절정 -> 후기에 김수장, 김천택,
김성기가 계승
⑧성산가단 -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⑨여류기생 - 소춘풍, 황진이, 이계랑, 홍랑
7.5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
.관인문학(훈구파)과 사림문학(사림파)은 사회적인 성격이나 사상적인 기반에서 차이가 있다.
.관각문학 또는 관인문학은 왕조 사업을 하면서 문학의 장식적인 기능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작자 자신 의 내면적인 요구에 호응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격식에 맞게 잘 다듬어진 표현을 추구했다.
.이에 비해 처사문학 또는 사림문학은 문학이 자기 성찰을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따라서 표현 자체보다는 거기에 따르는 흥취나 사상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이에 따라 관인문학 쪽에서는 한문학이 지위나 능력을 입증하는 데 독점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보아 그 본령인 한시의 수준을 높이는 데 온통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사림문학 쪽에서는 강호가도를 구현하는 데 시조나 가사가 오히려 적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관인문학 : 문학 표현의 장식적인 기능 존중
사림문학 : 문학 내용의 도덕적인 기능 강조
①조선 전기 관인문학의 전성기는 성종 때이고, 그 주역은 서거정(동문선, 태평한화골계전)이다.
②이승소(송도삼수, 한도십영), 강희맹(금양잡록, 촌담해이), 성간(용부전, 신설부)
③성현(악학궤범, 용재총화)
④이행, 박은 - 해동의 강서파(기교적인 시를 씀)
⑤관각삼걸(정사룡, 노수신, 황정욱)
7.6 사림문학과 심성에서 우러나는 소리
1) 김종직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영남학파의 종조가 되었고 성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훈구파와 크게 대립.
.도학과 문학, 경술과 문학은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고 주장.
.‘조의제문’ :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하는 내용.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하여 무오사화의 원인이 됨.
2) 유호인 : 김종직 제자 중 가장 높이 평가 됨.
3) 김일손 : 김종직의 제자 중 가장 강경파로 文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4) 남효은 : [육신전] - 사육신의 전기, [사우명행록] [추강냉화] [야몽성광자] [수향기]
5) 김광필 : 시를 지으면서 마음가짐을 돌아보려 했고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데 무관심했음.
6) 조위 : [두시언해] 편찬 사업. [동도악부]를 본받아 [계림팔관] 8수를 남김.
7) 서경덕 : 이기일원론 주장. 산수를 유람하는 일 외에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에 몰두
8) 이언적 : 영남서림의 선구자. 이기심성의 이치를 탐구해 이황으로 이었고 시를 중요시 함.
9) 이황(퇴계) : 시조에서는 이현보를 따르고 한시에서는 이언적을 계승. 자연과의 화합을 중시.
10) 이이(율곡) : 이황의 도학을 수정하면서 문학의 원리에 대해서 총괄적인 정리를 하고자 하였다.
7.7 방외인 문학과 반감의 양상
.방외인이란 국외인, 제3자라는 뜻으로 훈구파에 대해서 적대적 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사림파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과거를 거쳐 입신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나, 자기 재능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해서 비판과 방랑으로 일생을 보낸 경우가 많았으며, 한문을 익혀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의 문학이다.
1) 김시습 : 방외인 문학의 대표자
.정통 유학에 반발하면서 반발을 유학자체의 논리로 체계화하기도 함.
.[금오신화]를 지어 시련과의 대결의지를 소설로 나타내었다.
.농민의 어려움을 시로 읊은 [자탄] [영산가고] [석서] 등의 작품을 씀.
.불교와 도교사상이 저술로 남겨져 있다.
2) 도가사상 : 도교는 지배체제에 불만을 가진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매력을 주는 사상이었다.
.홍만종의 [해동이적], 양사언의 [만리대] 송익필의 [구봉집] 등이 있다.
3) 어무적 : 미천한 처지에서 사회를 바로 비판했던 인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대변하는 작품을 씀.
.[유민탄] : 연산군의 학정으로 더욱 늘어난 유민의 처지를 나타냄.
.[신력탄] : 이상향을 상상
.[작매부] : 고을 원님의 횡포를 규탄
.사실주의적 경향, 비판적 현실인식
4) 삼당시인 : 백광훈, 최경창, 이달. 송시의 풍조를 버리고 당시를 따르며 시풍을 혁신 함.
.조선 전기 사대부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선 후기 한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예고하는 변화를 줌.
5) 임제 : 삼당시인의 뒤를 이으며 사대부문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감.
.시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경지를 개척했고, [원생몽유록] [수성지] 같은 산문에선 자기의 세계를 철저히 구현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얻은 벼슬을 버리고 울분과 방황으로 후반의 생애를 허비하는 가운데 오직 문학에만 정열을 쏟았다.
.수많은 기행시를 썼고, 민요에 관심을 가져 [패강가] [전가원] 등의 작품을 집필.
7.8 척불의 시련에 놓인 불교문학
①보우: .문정왕후에게 발탁되어 승과를 부활하여 인재를 찾고 불교중흥의 계기를 만든 승려.
.한시를 힘써 지으면서 선과 시를 일치시키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삼았다.
②휴정: .보우의 뒤를 이어 불교계의 새로운 바람을 더욱 세차게 일으킨 승려.
.불교, 유학, 도가사상을 한데 어우르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넓게 공부하고 깊이 다진
결과를 정리해서 [선가귀감, 유가귀감, 도가귀감] 삼부작을 저술하고, 그 가운데 [선가귀감]을
으뜸으로 한 데서 사상체계가 잘 드러난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문학도 배척을 받았으나, 방외인문학과만은 연결이 되어 있었음.
7.9 산문의 영역확대와 소설의 출현
①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서는 [고려사]이다.
②서거정은 [동인시화]와 [필원잡기]를 따로 저술, 시화와 잡기가 분리되는 첫 예를 보였다.
③조선 전기의 잡기류 : 이륙(청파극담), 어숙권(패관잡기), 이자(음애일기), 남효온(추강냉화] [사우명행 록], 김정국(기묘록), 이중열(을사록), 이이(경연일기), 허봉(해동야언)
④사물을 의인화한 (저생전, 포절군전, 주장군전), 심성을 의인화한(천군전, 신명사도, 수성지)
⑤몽유록계(수향기, 몽기, 안빙몽유록, 서재야회록, 원생몽유록, 금생이문록)
⑥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설화와 관련된 소재를 가져왔어도 자아와 세계의 대결방식을 전에 볼 수 없게 구현했기에 소설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해서 최초의 소설이라 한다.
⑦금오신화의 다섯 작품은 명혼소설(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몽유소설(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명혼+몽유소설(취유부벽정기)로 구분할 수 있다.
⑧골계전: .전설이 아닌 민담을 모으고, 그 가운데서도 음담패설에 깊은 관심을 보였음.
.서거정<태평환화골계전> => 강희맹<촌담해이> => 송세림<어면순> => 성여학<속어면순>
.<어면순>은 잠을 막는 방패라는 뜻으로 유학의 교화에 대해 반발하는 원색적인 내용이었음.
7.10 연희의 양상과 연극의 저류
①조선 전기에는 나례희와 산대희를 국가적인 행사로 실시했다.
②나례희 즉 산대희는 규식지희(줄타기, 방울받기, 땅재주 등의 곡예), 소학지희(재담으로 웃기는 연극), 음악으로 이루어졌다.
③작자미상의 [지양만록],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귀석이란 광대가 했다는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갖는 소학지희의 내용을 싣고 있다.
④성현의 [관극시]에 괴뢰라고 한 꼭두각시놀음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조선 전기에도 꼭두각시놀음과 탈춤이 민속극으로 전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을 괴뢰라고 한 것은 소련의 꼭두각시라는 뜻임.)
다섯째 시대 :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
( 임진왜란~ 1806년 순조에 이를 때 가지의 문학)
8.1 민족수난에 대응한 문학
☞ 임진왜란(1592년)과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은 우리민족에게 역사적 전환기를 마련
①전란의 체험을 통해 느끼고 통탄한 바가 많아짐
②상하계층간의 간격이 좁아지고 형식적이고 규범적인 것이 보다는 내용이 앞서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문학의 경향을 나타냄
▶임진왜란과 호란의 기록 및 체험
1) 유성룡 <징비록>
①임진왜란 실기의 대표작으로 사태의 진상을 철저하게 파헤침
②통치체제의 무너짐을 여실히 드러냄
2) 이노 <용사일기>
①김성일의 업적을 치하하는 내용- 범위와 저술의도의 한정
②의병의 활약상, 소개 옹호
3) 이순신 <난중일기>
①매일 겪은 일의 진술과 자기 번민이 그대로 드러남
4) 유진 <임진록>
.피란의 기억을 회고,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진술
5) 노인 <금계일기> - 왜군에게 잡혀간 사람들의 울분과 고통을 기록
6) 강항 <간양록> -임금께 올리는 글. 자기 체험기, 일본에 남은 동포들에게 보내는 격문으로 구성됨.
7) 나만갑 <병자록> - 남한산성에서 직접 수난을 겪은 실제의 일을 기록함.
㈔ 남업 <병자일기> - 文士들에게 적병을 막도록 하라고 한 군사들의 요구를 기록함.
*소현세자를 따라 청나라로 잡혀간 관원이 기록한 <심양일기>와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로 시작하는 시조에서는 당시의 비통한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 한시
㈎ 귄필 <적퇴후입경>
㈏ 허균 <노객부원>
㈐ 이안눌 <동래사월십오일>
▶ 국문시가 및 가사
㈎ 김덕령 이순신의 시조
㈏ 최현 <명월음>, 박인로 <태평사> <신성탄>
㈐ 조우각 <대명복수가> - 청나라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표현. 명나라를 대신해서 복수하자는 내용.
▶ 몽유록: 전란의 실상과 감회를 아우르는 방법으로 허구적인 상상을 통해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변용시켜 할 말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식을 택함 (각기 다른 내용을 알아두세요)
㈎ 윤계선 <달천몽유록>: 임진왜란을 자체적으로 평가, 이순신 및 여러 충절 장수의 공적을 평가
㈏ 황중윤 <달천몽유록>: 신립의 잘못도 용서할 수 없지만 사전대비가 없고 불균등한 상벌 등이
패전의 원인이라고 기술함
㈐ <강도몽유록>: 병자호란을 두고 지은 몽유록으로 몽유록의 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 소설(설화가 소설로 변함)
㈎ 조위한 <최척전>
8.2 정통 한문학의 동요와 지속
☞ 임진왜란 직전에 한문학은 최성숙의 시기였으며 복고적인 표현으로 사회변화를 지연시키는 구실을 하였지만 문학내부의 흔들림에 따라 한문학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함
㈎ 유몽인: 벼슬에서 물러난 뒤 사림으로 자처, 현실 인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글마다 새로운 표현을
찾고자 함
㈏ 이수광 <芝峰類設>: 문학의식 전방에 걸친 반성의 기틀 마련, 문학이란 천기를 얻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 권필: 보통의 유학자와는 다른 삶, 자기성찰, 울분과 갈등을 토로, 잘못된 사회상 비판
.<충주석>: 세도가의 횡포는 자연을 파손하고 백성을 수고스럽게 하여 신도비에 새겨놓은 허구의
문구는 후대인들 까지 속인다고 비판
㈑ 허균: 성리학에 근거를 둔 문학관을 비판, 허위에 찬 구속에서 벗어나서 험난한 경험을 하는 정이야 말로 문학의 진실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
①<문설>: 문학은 상하의 정이 통하게 하고 당대의 상어(常語)를 택해야 한다.
②<국조지산>: 작품의 실상에서 한시를 정리, 하류층의 한시에도 관심을 보임
③<호민론>: 복종하는 백성이 원망을 하게 되고 원망을 하는 백성이 들고일어난 과정을 설명
④<유재론>: 하늘은 사람에게 재능을 균등하게 배분하였는데 이를 거부하고 지체를 가리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함.
㈒ 한문 사대가: 이정구를 선두로 하는 한문 사대가는 모두 시인을 겸함. 문을 더욱 소중하게 여김
①이정구: 외교 문서에 능, 문필가, 집권층의 순정한 문학의 중요성
②신흠: 문학과 도학의 관계에 대해 논함, 성리학적 문학관을 재확인
③이식: 오랜 권위를 지니고 있는 문장을 본뜬다고 해서 고문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 나름대로의 창작력이 중요하다면서 작문모범(作文模範)이란 글을 지음
④장유: 문학의 독자성과 순수함을 옹호, 문장을 평가하는 기준은 도가 아닌 미. 예술지상주의자,
‘시는 천기(天氣)이다’라고 한 말은 재도론에 대한 반론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 허목: 남인의 영수. 유학의 근본정신을 재확인, 청사열전(개혁적 성향)
㈔ 송시열: 선악의 대립관계를 줄곧 강조. 문학은 음란하거나 천박한 소리를 배제하고
천리지정(天理之正)의 자세를 갖추어야 함
-북벌론의 이론을 제공,
-삼학사전, 임경업 장군전, 포수 이상룡전 등을 지음
㈕ 호론(湖論): 성(性)을 실제적 현상으로 보자,
낙론(洛論): 성(性)은 불변의 원리로 사람과 동물의 성이 같다.
①박세당: 시경에다 근거를 두어 윤리적인 규제를 벗어나 정의 진솔한 표현을 긍정하는 입론을 전개 하여 문학의 방향전환을 촉진하는 구실을 함.
②정제두: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문구를 수식하고 남의 글을 외고 널리 알아서 훈고하기를
일삼는 것은 자기 상실에 이르는 길이다.
③김창협: 낙론을 선택하고 보수적인 도학을 기본 입장으로 하면서도 그 동안 제기된 비판적 성향의 문학을 포괄하려는 태도를 보임
㈖ 이옥 <유광억전>, 우하영 <천일록(과거제의 폐단을 그림)>, 신유한 <해유록(도가적 취향을 채택)>
㈗ 벌열층 문장가
①홍양호: <국조보감>의 편찬사업에 참여, <해동명장전>
②신위: 시에서 한시가 개척된 이래 최고봉이란 평을 들음. 4000여수로 작품 수도 많고 경향도 다양.
.<관극절구> 12수: 판소리 공연을 보고 지음
.<소악부> 40수: 시조를 한역한 것. <동인론시절구>: 한시에 대한 비평을 절구 35수로 읊은 것 ③홍석주 <학강산필>: 타고 난 그대로의 마음을 긍정하며 재래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문학운동에
동조
8.3 소설시대로 들어서는 전환
☞ 전(傳): 사실의 기록, 한문학의 한 갈래였지만 한문학이 밀려나자 국문전기가 이어 짐.
.전 또는 전기와 소설의 관련양상에 따라 문학사의 단계를 구분함.
㉠ 전만 있던 단계 - 중세기 문학
㉡ 전과 소설을 전이라 부르던 단계가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
㉢ 소설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단계가 근대문학기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기(記), 전(傳) , 지(志) 녹(錄) 등이 분별 없이 사용
㈏전이라고 한 소설과 전의 구별은 자아와 세계가 대결하는 양상으로 판단
㈐이항복 <유연전>: 소재 선행의 소설
㈑조위한 <최척전>: 어우야담에서는 설화이던 것이 작자의 창작과 윤색이 보태져 전의 제약을
넘어 소설이 됨
㈒허균: <손곡산인전> <엄처사전> <장사인전> <남궁선생전> <장생전>
.주인공이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사실은 비범하였으며 놀라운 행적이 있으나 세상에 쓰이지
못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사소설(逸士小說)로 볼 수 있다.
㈓국문소설
①<열녀전>: 여자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음, 한문에서의 전보다는 문제의식은 약하고 윤리적인 주제는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 국문소설의 발전을 제약
②허균 <홍길동전>: 원본은 국문본이고 한문본 <율도국전>이 있음- 불합리적이고 모순에 찬 당대의 현실을 예리하게 폭로, 민중의 지향적인 이념을 반영
③홍길동전, 전우치전, 최문헌전, 최고운전(최치원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도술을 부리는 영웅을 내세 워 그릇된 사회와 대결하도록 한 소설
④<임진록>: 한문본과 국문본이 공존하는 소설, 어느 한 사람이 주인공일 수는 없고 여러 영웅이
등장. 작자 미상, 여러 사람이 기록
⑤병자호란을 소재로 택한 <임경업전>, <박씨전> 등과 같은 소설은 연대기 형식을 취하지 않고
일대기소설로 돌아감
㈔ 불교소설
☞ 국문소설 원천의 하나인 불교설화에 자세하고 흥미로운 사건 및 일상에서의 관심을 보태었다.
<안락국전>, <적성의전>, <금송아지전> => 모두 <석보상절>에 수록된 설화를 바탕으로 함.
①생활 속에서의 고난을 초경험적인 전제에 따라 제시, 귀족적인 주인공의 무력함을 묘사
②이원론적 소설의 극단적인 예는 차차 줄어들고, 일원론적인 설정에 접근한 것이 소설사의 흐름임.
㈕ 우화소설
☞ 동물을 의인화한 이야기인 우화는 있을법한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상황과 결부되는 의미를 가질 수 있게 구체화화 하는 것이 소설로 개조하는 작업의 필수적인 과제이다.
①토끼전, 두껍전, 녹처사연회, 까치전, 쥐를 의인화한 국문본「서동지전」, 한문본「서대주전」
㉠토끼전: 삼국사기에 구토지설이 들어있음으로 그 유래가 오래됨을 알 수 있음
사회소설 및 풍자소설로 그 위치가 높음
㉡두껍전: 세태의 풍자
㉢녹처사연회, 까치전: 정상적인 재판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풍자,
㉣메기장군, 장끼전과 같은 소설은 관원의 행패뿐 아니라 여러 형태의 허위를 비판
㈖ 중국소설
☞ 중국소설이 미친 영향을 평가할 때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태평광기>임.
①三國志演義: 번역본 또는 번안본이 많은데 그 중 화용도, 조자룡실기, 강유실기 등이 있다.
②파생소설: <몽결초한송> <황부인전>, <제마무전>, <오호장대기> 등
㈗ 구운몽, 사씨남정기
*<구운몽>이 이상주의를 택했다면 <사씨남정기>는 삶의 실제 양상이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나타내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①구운몽
㉠영웅소설
㉡적강소설
㉢소설의 과정이 꿈으로 처리
㉣주제가 유, 불, 선 삼교가 두루 들어 있지만 몽유소설의 기본설정 구조를 하고 있다.
㉤전편이 불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
②사씨남정기
㉠사실주의 소설
㉡구성이 치밀하고 성격묘사나 심리묘사의 방법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음
8.4 문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재검토
㈎ 중세적인 문학론에 대한 찬반론
①조선후기에 이르러 문학담당층이 확대되고 문학의 실상이 크게 달라짐에 따라 중세적 규범에 대한 찬반론이 치열하게 전개됨.
②송시열- 가치관의 위기를 절감하고 문학을 성리학의 규제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노선을 천명함.
정조- 文體反正을 일으켜 시대변화에 호응하는 문체를 정책적으로 규제
③唐宋 이전의 고문을 찾고 성리학 이전의 유학으로 복귀하자는 복고주의가 극단화되기도 함.
④허균, 김만중을 거쳐 박지원으로 이어지는 혁신론자들은 당대에 새롭게 이어지는 문학을 옹호하는 논리를 폄
⑤홍대용- 대동풍요서(다른 기회에는 개진하지 못한 문학관을 내놓음)
㈏ 문학을 다루는 방식
①序와 跋 : 중세적인 문학론에 대한 반발과 전체적인 문학에 사회분위기의 변동으로 반대론자들은
論, 設, 策, 義등의 논설문으로는 어려움을 느껴서 서와 발을 이용, <소대풍요> 이하의
위항시집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함.
②詩話: 문학을 다루는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이용함.
.허균 <성수시화> <학산초담> <국조시산>, 김득신 <종남총지>, 남용익 <호곡시화>
.문학의 전체적인 양상을 다룬 시화로는 이수광 <지봉유설>, 이익 <성호사설>
③漫筆: 아주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기 위해서는 만필을 택해야 했음
.장유 <계곡만필>, 김만중 <서포만필>, 홍만종 <순오지>
㈐ 문학의 인식방법
①성리학의 문학관- 문학은 性情에서 나온다.
.허균: 성과 정의 관계를 떠나서 정을 그 자체로서 긍정
②홍대용의 유기론, 김정희의 성령론, 최한기의 성정론: 문장은 신기에서 나온다.
.여기서 신기란 지각하고 경험하는 활동의 주제
③허균 <문설>: 고문의 전례인 명문이 당대의 상스러운 말을 받아들여 다듬었을 따름이므로 이를
잇고자 함은 한심스런 노릇이라고 함.
④신경준 <시칙>: 시의 이론, 창작법 등에 대한 시 종합개론서
⑤박지원 <소단적치인>: 직설법이 능사일 수 없고 표현방법을 개발하는 作戰이 긴요한 과정이라고 함.
⑥이옥 <이언집>: 남녀관계에 관한 민요를 한시로 옮김
⑦홍만종 <순오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위축된 민족의 기상을 되살려야 한다고 적극 주장.
.주체적 도가사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펴는 한편 속담을 수집해 놓기도 하고
우리말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관심을 보였다.
⑧이우준 <몽유야담>: <소설>이란 제목으로 "소설은 빈 데 시렁을 메고 허공을 꿰뚫어 생각을 쌓고
뜻을 포개어 기이한 말을 지어내는데 본뜻을 캐면 깊고 또한 이치에 맞다"라는 주장을 폈다.
5. 문학담당층의 확대에 따른 변모
1. 중세의 공식문학관은 남성중심이었으나 한시문에 능한 부녀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관심만
보일 뿐 오히려 서녀나 기생들이 그 불리한 위치로 인해 더욱 분발하게 되었다.- 황진이, 이옥봉,
김부용당. 박죽서, 강지재당 등이 유명하다.
2. 위항인 문학: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행정실무나 기술에 관한 직책에 종사한 중인을 위항인이라고 함.
.사대부문학과 서민문학의 중간형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의 특성을 보여줌.
1)최기남 <육가잡영>: 위항시집의 첫 예
2)위항시인
.홍세태 <해동유주>: 작품에 수록된 시인이 48인이나 된다고 함.
.오광운 <소대풍요>; 60년마다 위항시집을 편찬하는 관례의 기점이 됨.
.천수경 <풍요속선>; 소대풍요가 나온 지 60년 되는 해에 간행. 333인의 시인을 수록함.
.유재건 <풍요삼선>; 풍요속선이 나온지 60년 되는 해에 간행.
3. 평민가객 (가단): 위항인 중에서도 더 지체가 낮아 서리나 포교이하의 계층에 속했으며 그 모임을
가단이라 함.
1)김천택(경정사가단) <청구영언>: 서문에 시조는 말로만 전하다가 없어질 것은 아니라며 의의 역설.
2)김수장(노가재가단) <해동가요>
3)박효관, 안민영 <가곡원류>: 가창가사, 잡가, 판소리 등이 새로운 음악연희로 자리를 잡자 가곡의
틀을 잡기 위해 편찬함.
4. 판소리 - 전라도지방 남자무당인 화랭이 집단에서 생겨났다고 추정
1) 송만재 <관우회>: 판소리가 가곡, 잡가는 물론 줄타기, 땅재주 등과 함께 공연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묘사
2) 유진한 <만화본춘향가>가 1754년에 지어진 것을 보면 그보다 앞선 숙종 말, 영조 초 쯤이 처음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음.
3) 하한담, 최선달이 최초라고는 하나 권삼득부터 구체적으로 일컫음
4) 흥선대원군이 판소리 광대를 불러 소리를 들은 후 박만순, 박기홍(동편제). 박유전(서편제)이 명성을 얻음
5) 신재효<광대가>: 이론정립, 판소리사설 6마당정리
5. 전기수: 직업적인 소설낭독자를 일컬음
6.실학파문학의 새로운 방향
*실학자: 사회의 모순을 비판, 개혁을 자각한 사람들을 말함
1)이익(선구자): <성호사설>의 ‘육두’라는 글에서 올바른 선비라면 스스로 창조하는 문학을 해서 삶의 실상을 드러내 세상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함.
2)홍대용 <담헌연기>: 한문학에 집착하는데 벗어나는 결정적인 전환을 이룩함.
3)박지원 <열하일기>: 한문학을 중시. 상스러운 말도 써야한다고 주장.
.복고주의 작품; 열하일기. 호질, 허생전. 방경각외전. 양반전. 예덕선생전(양반의 허위의식을 꾸짖음) 민옹전(소설의 중요성을 구체화)
4)이덕무: 서얼출신. 소설배격론 <청비록>-개성적 가치를 작품에서 찾아야 한다.
5)이옥: 박지원처럼 설화를 수용하였으나, 사실적, 소재가 기이하고 세태반영폭이 넓었다.
.작품;<심생전> <이언집(남녀간의 사랑노래 66수를 수록)> <이홍전>
6)정약용: 현실에 대한 한탄과 사연을 풍자나 우화로 표현, 조선시를 이룩해야한다고 주장
.작품; <용산리>-농민시. <탐진촌요> <탐진어가> - 연작민요시
7)최한기: 문장은 객관적인 현실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근대사실주의 문학의 길을
열었다. 중세이념에 결정적인 비판을 하는 근본적인 논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7.민요, 민요시, 악부시
1.민요: 구비문학 중 가장 오랫동안 우대한 장르이다.
.허균, 김만중, 홍대용 등은 민요를 가장 가치 있다고 주장.
.근대 민중문학, 또는 민족문학으로의 발판을 마련.
1)형태-농가가 대표적.
.나무꾼노래-초가. 또는 메나리, 어사용이라 불림
.어가- 고기잡이 할 때 부른 노래
.사친가- 규방가사. 민요의 시집살이노래와 같다.
2)성격-잡가와 구별
3)다른 영역과 관계- 노랫가락: 무가를 민요로 전환
중타령: 탈춤의 파계승과 관련
이사원네 맏딸애기: 양산백전과 관련
옥단춘요: 옥단춘전, 숙영낭자전과 관련
2.민요시: 한시를 민요화하는데 중요한 구실
홍양호-홍주풍요시십장. 이옥-이언집 이학규-앙가오장
3.악부시: 소악부, 영사악부, 기속악부로 나눌 수 있다.
1)소악부-칠언절구형식 : 신위-소악부 40수. 시조를 한역한 것이다. (고려시대엔 민요를 한역함)
.영사악부-역사를 다룸 : 심광세의 '해동악부'- 비판적 사회시. 한시가 민족문학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하여 근대문학의 이해에 한몫
.기속악부-풍속을 다룸
2)김려 <고시위장원중처심씨전>- 장편서사시, 세태소설. 신분차별타파
4.희작시
*김병연 - 김립, 김삿갓으로 불림
.<김립시집>: 과시, 정통적인 한시, 육담풍월, 언문풍월의 네 가지 종류의 시를 실음.
.구비문학과 국문문학이 한문학을 해체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형! 대단하오! 나는 3학년 편입생인데...... 형의 글 보고 놀랐습니다 이 장문을...... 시간들여서리....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존경하며, 자료 잘 활용하리다. 나도 국문학사를 수강신청했는데.......자료를 찾다가 형의 자료보고 잘 활용하리다! 근데, 2학년 형님들 고맙다는 댓글에 너무 인색하오! ㅎㅎㅎ
첫댓글 Danke
형! 대단하오! 나는 3학년 편입생인데...... 형의 글 보고 놀랐습니다 이 장문을...... 시간들여서리....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존경하며, 자료 잘 활용하리다. 나도 국문학사를 수강신청했는데.......자료를 찾다가 형의 자료보고 잘 활용하리다! 근데, 2학년 형님들 고맙다는 댓글에 너무 인색하오! ㅎㅎㅎ
소중한 자료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스크랩 해갈께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좋은 자료 너무 감사합니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 받겠습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감동했어요~~~ 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