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원의 표면을 기어가고 있는 개미는 자신이 걷는 길이 평면인지 구면인지 모르지만 파리의 경우는 다르다. 2차원적인 평면에서 벗어나 3차원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슈피로는 수학, 물리학, 경제학, 재정학 등의 다양한 과목을 공부한 저널리스트이다. 푸엥카레의 추측이 대수적 위상수학으로 물리학에 상당 부분을 기대있는 것을 보면 저자의 약력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저자보다도 책을 번역한 전대호의 약력은 더욱 궁금하다. 그는 물리학 전공,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것을 보니 그가 서문에 기록한 글들이 이해가 된다.
"대규모 집단과 거창한 장비와 화려한 조명과 대중의 환호와 정책적인 지원으로 범접할 수 없는 한 개인의 자유, 한 정신의 맑은 흐름을 생각할수록 페렐만과 푸엥카레를 비롯한 수학자는 시인인 것 같다. 수학은 세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묻고, 대답하고, 따지고, 자기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배우고, 다시 묻는 태도"
수학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고 본류와 비본류의 구분은 있나 보다. 수학의 세계 안에서도 이 책에서 잠깐 나오는 것처럼 남의 이론과 증명의 방식을 내 것인 양 내세우기도 하고 허명을 위해 모험을 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는 것 같다. 수학계의 해이한 윤리나 명예 탈취 시도, 불가피한 논쟁 등에 회의를 느끼고 은둔을 택한 페렐만의 초연함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가 세상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맑고 고귀한 품성을 가진, 양심과 지성을 지닌 수학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푸앵카레 추측과 이후 푸앵카레 병(푸앵카레의 추측을 풀기 위한 모든 열정과 좌절)에 걸려 있던 수학자들의 노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천재 그리샤 페렐만이 추측을 정리한 순간까지 100년에 걸친 위상수학자들의 삶에 대해 다룬다. 푸앵카레 추측은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 일곱 개 가운데 하나였다. "어떤 다양체의 기본 군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체가 구면과 위상동형이 아닐 수 있을까?"
푸앵카레는 자신의 직감을 정리가 아니고 질문으로 제시하였다. 그 대답 없는 질문은 여러 세대의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20세기 내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학자들이 그 추측에 매달려 학자로서 일생의 상당 부분을 소비했다. 처음에는 추측이 잘못 되었다는 반례를 찾으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그 추측이 옳다고 확신하고 무려 100년 동안 세계의 수학자들은 증명을 찾아 헤맨다.
푸엥카레의 추측에 도전한 지 8년 만에 페렐만은 문제를 풀었다는 확신에 도달한다. 그가 쓴 세 편의 논문으로 '푸앵카레 추측' 뿐 아니라 기하학화 추측까지 해결하게 된다. "콤팩트하고 단일하게 연결된 다양체를 리치 흐름을 통해 변형하고 모든 특이성들을 수술로 제거하면 결국 구면들의 집합만 남는다. 시간을 되돌려 구면들을 다시 붙이면 원래의 다양체 자체가 구면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다."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페렐만의 증명
페렐만이 세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린 후, 3년 동안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8월에 ICM에서 필즈상 수상자로 발표되었고 그는 그 상을 거절했다. 명예와 대중의 인정에 관심이 없는 그는 푸앵카레 추측을 자신이 증명한 그 자체로 이미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지도 모른다. 1998년 클레이 수학 연구소는 일곱 개의 밀레니엄 난제를 풀 경우에 각각의 문제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페렐만은 그의 증명을 유명한 학술지에 출판하기만 하면 100만 달러의 상금을 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수학계와 발을 끊은 그는 수학을 완전히 버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소르마니는 말한다. "페렐만이 수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지만 아마도 많이, 일주일에 50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하고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혹시 아는가. 몇 년 뒤, 새로운 난제를 해결했다는 그의 소논문이 아카이브 학술지에 실리고 세상이 또 한번 왕창 놀랄지.
지적인 욕구가 웬만큼 있는 사람이라면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페렐만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0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푼 천재라면, 더구나 모든 수학자가 탐내는 필즈메달을 거부하고 초야에 묻힌 인물이라면, 수학에 몸서리를 치던 학생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들조차 호기심을 품을 만하다. 그래서 신문기사도 읽고 책도 읽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페렐만의 혁명적인 업적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벅찬 과제이다. 아무리 줄여 잡아도 세 고비를 넘어야 페렐만의 업적을 이해할 준비가 된다. 우선 위상수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3차원 구면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리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푸앵카레 추측이란 이런저런 조건을 갖춘 3차원 물체가 위상수학의 관점에서 볼 때 3차원 구면과 같다는 주장이고, 페렐만은 이 주장이 옳음을 리치 흐름을 이용해서 증명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기는 난감하다. 위상수학의 관점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3차원 구면이 무엇인지, 리치 흐름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것인지 간단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책을 제외하고서도 푸앵카레 추측만 다룬 책이 벌써 몇 권 나왔다. 간단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수학은 가장 큰 자유를 위해 가장 엄밀하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피상적인 이미지와 달리 수학자는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라기보다 생각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100년 동안 최고의 수학자들이 거의 옳다 싶은 푸앵카레 추측을 놓고 따지고 또 따졌다. 우리 일반인이 수학에서 배워야 할 정신은 무엇보다 그 집요함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수학자들은 인간적인 면모와 탁월한 창의력으로 연민과 경탄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과학책을 번역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인데, 세상에는 삶과 과학이 한 덩어리가 된 멋진 과학자들이 참 많다.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푸앵카레 추측처럼 어려운 과학은 잘 이해하지 못해도, 과학자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은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과학이 삶의 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삶과 과학이 겉도는 듯할 때가 종종 있다. 왜 그럴까? 혹시 우리는 과학 선진국 사람들과 달리 집요함이나 증명의 욕구를 타고나지 않아서일까? 그건 절대로 아닐 것이다.
적어도 과학계 바깥에서 페렐만은 필즈메달을 거부하고 칩거한 인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만일 수학이 이익을 위한 경제활동이라면, 페렐만의 행동은 실로 엽기적이다. 그러나 수학이 삶의 한 방식이요 그 목표는 큰 자유라면, 그의 칩거는 더할 나위 없이 수학자다운 행동이다. 수학은 가장 큰 혁명이 조용하게 일어나는 장소이다. 페렐만 말고도 수많은 영웅들이 북적거린다. 이 책을 비롯한 여러 기회를 통해서 구경할 가치가 아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