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제헌헌법에 대한 심의를 마무리한 국회는 7월 20일 오전 10시 신익희 국회부의장의 사회 아래 대통령선거(간접선거)에 돌입, 이승만 1백80표, 김구 13표, 안재홍 2표, 무효 1표(외국 국적을 보유한 서재필 박사에 투표해 무효처리)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에 선출했다. 이와 함께 국회는 이승만의 후임으로 신익희부의장을 선출하고 신부의장의 후임으로는 조선공화당의 김약수를 선출했다. 언론은 "대통령은 38선을 타파하고 국권을 회복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지고 있다"고 임무를 규정했다. 남북통일과 정부수립에 쏠린 시대적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선거일 : 1948. 7. 20 (화)
○ 임기 : 4년(1차중임 허용)
○ 선출방법 : 국회간선
○ 선거기간 : 2일
○ 선거인수 : 198인
○ 투표자수 : 196인(99.0%)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이승만(李承晩) : 180, 김 구(金 九) : 13, 안재홍(安在鴻) : 2, 무 효 : 1
제2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이번선거는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는 대통령선거에 자신이 없었던 이승만이 한국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와 있는 상황에서 정치파동을 겪으면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켜 실시되었다. 선거결과도 독재자의 권위와 마찬가지였다. 5백23만 2천40표를 얻어 상대 이시영후보 79만여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이승만정권은 4·19로 하야할 때까지 12년 장기집권을 하며 한국정치사에 독재와 공작정치의 풍조를 심게 된다.
○ 선 거 일 : 1952. 8. 5 (화)
○ 선출방법 : 직선(1952. 7. 7 발췌개헌 공포)
○ 선거기간 : 18일
○ 선거인수 : 8,259,428인 [부산은 339,205인]
○ 투표자수 : 7,275,883인(88.1%) [부산은 245,256인(72.3%)]
○ 당 선 자 : 이승만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이승만(자유당) : 5,238,769(74.6%) [부산은 105,917인(44.9%)]
조봉암(무소속) : 797,504(11.4%) [부산은 81,873인(34.7%)]
이시영(무소속) : 764,715(10.9%) [부산은 40,741인(17.3%)]
신흥우(무소속) : 219,696(3.1%) [부산은 7,155인(3.0%)]
무 효 : 255,199 [부산은 9,570인]
제3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표출했던 제3대 대통령선거는 우리 헌정사상 첫 여야 후보의 직선대결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민주당의 선거구호는 당시 이승만정권의 부패상을 한마디로 압축해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동안 난립했던 야당세력을 결집해 새롭게 등장한 민주당은 도시 지역은 물론 여당세가 강한 농촌에까지 바람을 일으키면서 약진해 야당의 집권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꿈은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정면 승부를 겨뤄보지 못한 채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 선 거 일 : 1956. 5. 15 (화)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48일
○ 선거인수 : 9,606,870인 [부산은 439,195인]
○ 투표자수 : 9,067,063인(94.4%) [부산은 391,059인(89.0%)]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이승만(자유당) : 5,046,437(70.0%) [부산은 225,333인(69.0%)]
신익희(민주당) : 1956. 5. 5 호남 유세중 사망
조봉암(무소속) : 2,163,808(30.0%)[부산은 101,041인(31.0%)]
무 효 : 1,856,818(신익희 55,050 포함) [부산은 64,685인]
제4대 대통령선거 (1960. 4. 26 국회 무효의결 하야)
□ 선거개요
1960년의 제4대 대통령선거 및 제5대 부통령선거는 집권 자유당의 정권연장이냐 아니면 야당의 정권교체냐의 기로였다. 선거열기는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고 여야는 사활을 걸었다. 정·부통령선거는 정치사적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분기점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과 부통령이 동일정당에서 나와야 한다는 "동일티켓개헌안"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자유당이 제안한 동일티켓개헌안은 야당의 반발과 여론악화를 불러왔고 결국 이승만대통령이 개헌포기 의사를 밝힘으로써 성사되지 못했다. 1월 29일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조병옥 박사가 신병요양차 미국으로 떠나자 이승만정부는 7월 14일까지 여유가 있던 선거일자를 3월 15일로 앞당겨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조박사의 선거운동기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월 15일 미국의 월터리드병원에 입원중이던 조박사는 심장병으로 서거했고 4년전 부통령을 민주당에 빼앗겼던 자유당은 이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목한 이기붕씨를 부통령후보로 내세웠다. 조박사의 서거로 야당에서 대통령후보를 내지 못함에 따라 실질적인 선거전은 부통령선거전의 양상이었고 이승만정부와 자유당은 부통령선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두 번이나 대통령후보를 잃은 민주당도 부통령선거에 당력을 집중하며 조박사에 대한 추모투표를 준비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1956년 5월 호남 유세중 심장마비로 급서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신익희씨에 대해 1백만 표가 넘는 국민들이 추모투표를 했던 것을 상기, 추모투표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서는 등 여야의 신경전은 날로 날카로워졌다. 결국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선거는 자유당의 극심한 선거부정으로 4. 19민중혁명을 초래하여 대통령선거 및 부통령선거는 선거자체가 무효되었고, 자유당정권이 붕괴되었다.
○ 선 거 일 : 1960. 3. 15 (화)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41일
○ 선거인수 : 11,196,490인 [부산은 530,399인]
○ 투표자수 : 10,862,272인(97.0%) [부산은 496,610인(93.6%)]
□ 선거결과
○ 제4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별 득표상황
이승만(자유당) : 9,633,376(100%) [부산은 405,538인],
조병옥(민주당, 2. 15 미육군병원 사망),
무 효 : 1,228,896 [부산은 91,072인]
제4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선거결과가 종결되지 않은 일부지역을 제외한 220명의 민의원과 43명의 참의원중 259명이 참석하였다. 대통령후보는 윤보선외 11명이 출마하였으나 민주당내의 신·구파 모두의 지지를 얻은 윤보선이 1차투표에서 208표를 얻어 무난히 당선되었다.
○ 선 거 일 : 1960. 8. 12 (금)
○ 선출방법 : 민의원·참의원 양원 합동회의 간선
○ 선거기간 : 2일
○ 선거인수 : 263인
○ 투표자수 : 259인(98.5%)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윤보선 208, 김창숙 29, 변영태 3, 백낙준 3, 허 정 2, 김도연 2,
김병로 1, 박순천 1, 나용균 1, 이철승 1, 유옥우 1, 김시현 1,
무 효 6
제5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제5대 대통령선거는 진정한 민정이양이냐 5·16군부세력의 집권연장이냐를 결정하는 선거였다. 또한 지역감정과 사상논쟁의 설전이 핫이슈였다. 정책대결보다는 사상논쟁에 휘말린 5대 대통령선거 결과는 박정희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끝없는 설전으로 번졌던 사상논쟁도 선거가 끝남에 따라 결말없이 묻혀버렸다. 박정희후보는 4백70만 2천6백40표를 얻어 4백54만6천14표를 얻은 윤보선후보를 15만6천여 표차로 가까스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로서 5·16세력은 군복을 민간복장으로 갈아입고 정권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치열한 공방 끝에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윤후보는 "득표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 나는 정신적 대통령이다"라며 선거패배의 아쉬움을 달랬다. 야권이 처음부터 단일정당으로 출발했다면 이길 수 있었다는 예측이 가능한 선거였다.
○ 선 거 일 : 1963. 10. 15 (화)
○ 선출방법 : 직선(소선거구제)
○ 선거기간 : 40일
○ 선거인수 : 12,985,015인 [부산은 665,545인]
○ 투표자수 : 11,036,175(85.0%) [부산은 532,571인(80.0%)]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박정희(민주공화당) : 4,702,640(46.6%) [부산은 242,779인(48.2%)]
장복석(신흥당) : 198,837(2.0%) [부산은 3,419인(0.7%)]
오재영(추풍회) : 408,664(4.1%) [부산은 11,214인(2.2%)]
윤보선(민정당) : 4,546,614(45.1%) [부산은 239,083인(47.5%)]
변영태(정민회) : 224,443(2.2%) [부산은 7,106인(1.4%)]
송요찬(자유민주당, 10. 12 사퇴),
허 정(국민의당, 10. 3 사퇴),
무 효 : 954,977 [부산은 28,970인]
제6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움켜쥐었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군복을 갈아입고 출마한 63년의 제5대 선거와 제6대 총선에서 적전분열로 정권을 되찾는데 실패했던 야당은 제6대 대선과 7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도 고질적인 이합집산을 거듭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국군의 월남파병과 한일굴욕외교, 군부정권의 부정부패 등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굵직한 현안들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던 야당은 제6대 대선과 제7대총선을 목전에 두고 극적인 통합을 성취했다. 62년 12월 6일 계엄해제와 더불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정당들은 제5대 대선과 6대 총선을 거치면서 원내 제1,2야당인 민중당과 신한당으로 세력이 결집되어 있었으나 뿌리깊은 알력으로 인해 통합의 시계는 극히 불투명했다. 그리고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화당은 재집권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시켰다. 67년 실시된 윤보선과 박정희의 재격돌은 조국의 근대화를 주창한 박정희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유권자의 지지기반이 종전의 남북구도에서 동서구도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 선 거 일 : 1967. 5. 3 (수)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40일
○ 선거인수 : 13,935,093인 [부산은 692,039인]
○ 투표자수 : 11,645,215인(83.6%) [부산은 545,680인(78.9%)]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박정희(민주공화당) : 5,688,666(51.5%) [부산은 338,135인(64.2%)]
이세진(정의당) : 98,433 (0.9%) [부산은 3,028인(0.6%)]
전진한(한국독립당) : 232,179(2.1%) [부산은 4,556인(0.9%)]
윤보선(신민당) : 5,526,541(40.9%) [부산은 164,077인(31.2%)]
김준연(민중당) : 248,369(2.2%) [부산은 6,866인(1.3%)]
오재영(통한당) : 264,533(2.4%) [부산은 9,922인(1.9%)]
서민호(대중당, 4. 29 사퇴),
무 효 : 586,494 [부산은 19,096인]
제7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정부는 1971. 3. 23 제7대 대통령선거일을 4월 27일로 공고했다. 7대 대선은 전형적인 조직 대 바람으로 요약되는 선거였다. 공화당은 조직의 우위를 바탕으로 당의 공식조직은 물론 사랑방좌담회 등 각종 단합대회와 사조직을 총동원했다. 신민당은 양당붐 조성과 함께 표지키기에 주력했다. 양당은 후보등록과 선거공고에 때를 맞춰 김종필 부총재와 김대중 후보의 중소도시 유세로 선거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또한 제7대 대통령선거는 영남과 호남사이에 지역감정이 대두된 선거였다. 선거결과 박정희후보가 총 투표수 1천2백41만7천8백24명인(79.8%)중 6백34만 2천8백28표를 얻어 김대중후보(5백39만 5천9백표)를 94여만표로 따돌렸다. 각 언론은 너나할 것 없이 동서간 지방색이 선거를 가늠했다고 선거전의 총평을 실었으며 공화당의 우세한 행정력과 자금·조직력이 승인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신민당은 유세붐을 표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원천적 부정방지에 실패한 것이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어째든 선거가 끝나자 신민당은 4·27선거를 부정선거라고 규정했고 공화당은 국면전환을 위해 5·25총선체제로 들어갔다.
○ 선 거 일 : 1971. 4. 27 (화)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35일
○ 선거인수 : 15,552,236인 [부산은 944,872인]
○ 투표자수 : 12,417,824인(79.8%) [부산은 708,529인(75.0%)]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박정희(민주공화당) : 6,342,828(53.2%) [부산은 385,999인(55.7%)]
김대중(신민당) : 5,395,900 (45.3%) [부산은 302,452인(43.6%)]
박기출(국민당) : 43,753(0.4%) [부산은 2,518인(0.4%)]
이종윤(자민당) : 17,823 (0.1%) [부산은 583인(0.1%)]
진복기(정의당) : 122,914(1.0%) [부산은 1,974인(0.3%)]
성보경(민중당, 4. 26 사퇴)
김 철(통일사회당, 4. 24 사퇴)
무 효 : 494,606 [부산은 15,003인]
제8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박정희는 극소수 친위그룹이 닦아놓은 대로를 따라 8대 대통령의 자리로 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유신헌법이 확정되고 개정헌법 아래서 대통령선거인단까지 선출된 마당에 거칠 것이 없었다. 12. 23 장충체육관에서 통대 첫 집회가 열렸다. 개정 유신헌법아래서의 첫 대통령을 뽑기 위해 통대의원들은 모였다. 체육관선거의 시작이었다. 투표전 개회사에서 박정희는 "10월유신의 당위성'을 남북대화와 통일에 대한 중요정책을 심의하고 국회발의의 개헌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확정하는 중요한 국정을 다루게 된다"며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국가 최고의 주권적 수임기관임을 치켜세웠다. 결국 8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당선됐다.
통대의원 2천3백59명 중 단 2표만 무효표로 빗나가고 2천3백57명이 지지한 결과였다.
○ 선 거 일 : 1972. 12. 23 (토)
○ 선출방법 :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
○ 선거기간 : 5일
○ 선거인수 : 2,359인
○ 투표자수 : 2,359인(100%)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박정희 : 2,357, 무 효 : 2
제9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이번 선거는 제8대 대통령선거시와 같이 박정희가 단독후보로 추천되어 재적대의원 2,581인중 2,578인이 참석한 가운데 박정희 후보가 찬성 2,57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 선 거 일 : 1978. 7. 6 (목)
○ 선출방법 :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
○ 선거기간 : 5일
○ 선거인수 : 2,581인
○ 투표자수 : 2,578인(99.9%)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박정희 : 2,577, 무 효 : 1
제10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1979. 10. 26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고로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권한대행을 수행하면서 실시하게 되었다. 곽상훈 대의원등 827인이 추천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단일후보로 출마하여 출석 대의원 2,549인중 2,465표의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 선 거 일 : 1979. 12. 6 (목)
○ 선출방법 :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
○ 선거기간 : 5일
○ 선거인수 : 2,560인
○ 투표자수 : 2,549인(99.6%)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최규하 : 2,465, 무 효 : 84
제11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군부정권 아래에서 서기로 출발하여 총리에 이르기까지 정치보다는 관료로 일관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대통령에 오른뒤 9월 21일만에 물러났다. 신군부를 주도하는 전두환은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2,525명을 소집하여 2,524표의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 선 거 일 : 1980. 8. 27 (수)
○ 선출방법 :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
○ 선거기간 : 5일
○ 선거인수 : 2,540인
○ 투표자수 : 2,525인(99.4%)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전두환 : 2,524, 무 효 : 1
제12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선거인단을 뽑는 선거는 1981. 2. 11 실시됐다. 78.1%의 투표율을 보인 이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가 3,676명, 민주한국당 411명, 한국국민당 48명, 민권당 20명, 무소속 1천1백23명등 5천2백78명이 선출됐다. 그렇게 상대의 손발을 옥죄고 치른 선거였는데도 민정당 당선자가 69.6%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무소속이 21.3%나 당선됐다는 점이 의외라면 의외였다. 보름 후인 2월 25일 치러진 선거인단의 선거에서 전두환은 선거인단의 90.2%인 4천7백55표를 얻어 제12대 대통령으로 확정되었다. 민주한국당 총재 류치송 등이 억지춘향격으로 동반후보에 나서 경쟁의 꼴을 갖추려 했으나 11대 통대선거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양새로 끝나고 말았다.
○ 선 거 일 : 1981. 2. 25 (수)
○ 선출방법 : 대통령선거인단 간선
○ 선거기간 : 32일
○ 선거인수 : 5,277인
○ 투표자수 : 5,271인(99.9%)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전두환 4,755, 유치송 404, 김종철 85, 김의택 26, 무 효 1
제13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1987년은 정치사상 한 획을 기록한 해였다. 야당의 직선제개헌추진과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6·10국민평화대행진'을 계기로 확산되자 민정당 노태우대표위원은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의 수용등 8개항의 시국수습안을 극적으로 제시했다. 여야 합의 개헌 결과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총유효투표의 36.6%에 해당하는 828만여표를 획득, 당선됐다. 제13대 대통령선거는 야당이 60%를 얻는 득표를 하고도 후보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패배를 자초했다.
○ 선 거 일 : 1987. 12. 16 (수)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30일
○ 선거인수 : 25,873,624인 [부산은 2,290,038인]
○ 투표자수 : 23,066,419인(89.2%) [부산은 2,024,324인(88.4%)]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노태우(민주정의당) : 8,282,738(36.6%) [부산은 640,622인(32.1%)]
김영삼(통일민주당) : 6,337,581 (28.0%) [부산은 1,117,011인(56%)]
김대중(평화민주당) : 6,113,375(27.1%) [부산은 182,409인(9.1%)]
김종필(신민주공화당) : 1,823,067(8.1%) [부산은 51,663인(2.6%)]
신정일(한주의통일한국당) : 46,650 (0.2%) [부산은 3,612인(0.2%)]
홍숙자(사회민주당, 12. 7 등록무효)
김선적(일체민주당, 12. 14 사퇴)
백기완(무소속, 12. 14 사퇴)
무 효 : 463,008 [부산은 29,007인]
제14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1992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특히 이번 대통령선거는 사상 초유의 중립내각하에 선거가 치러진데다 김후보를 비롯 순수 민간인출신 후보들만이 출마함으로써 32년만의 민간정권을 창출하는 하나의 기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민주당의 김대중후보가 민자당 김후보에게 패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고 1년전 재벌의 총수에서 정계에 뛰어든 국민당 정주영후보도 선거에서 패한뒤 의원직을 사퇴하는 바람에 국민당와해와 함께 정계개편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양김후보와 정후보외에 새한국당의 이종찬후보, 신정당의 박찬종후보, 대한정의당의 이병호후보, 무소속의 김옥선, 백기완후보등 8명의 후보가 나섰으나 새한국당의 이후보가 도중에 사퇴해 7명이 대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선거전은 초반부터 양김후보의 대결속에 정후보가 가세하는 3파전양상으로 전개됐다. 이번선거에는 총유권자 2,942만2,658명중 2,409만5,246명이 투표해 81.9%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이중 민자당 김영삼후보가 41.4%인 997만7,646표를 얻어 당선됐다.
○ 선 거 일 : 1992. 12. 18 (금)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28일
○ 선거인수 : 29,422,658인 [부산은 2,565,831인]
○ 투표자수 : 24,095,170인(81.9%) [부산은 2,135,546(83.2%)]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김영삼(민주자유당) : 9,977,332(42.0%) [부산은 1,551,473인(73.3%)]
김대중(민주당) : 8,041,284 (33.8%) [부산은 265,055인(12.5%)]
정주영(통일국민당) : 3,880,067(16.3%) [부산은 133,907인(6.3%)]
박찬종(신정당) : 1,516,047(6.4%) [부산은 139,004인(6.6%)]
이병호(대한정의당) : 35,739(0.1%) [부산은 978인(0.05%)]
김옥선(무소속) : 86,292(0.4%) [부산은 3,236인(0.2%)]
백기완(무소속) : 238,648(1.0%) [부산은 21,736(1.0%)]
이종찬(새한국당, 12. 14 사퇴)
무 효 : 319,761 [부산은 20,157인]
제15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이번 대선은 각당의 입장에 따라 3김청산, 정권교체, 세대교체를 기치로 걸고 7월말부터 본격적인 선거에 뛰어들어 법정선거 마지막 날인 12월 18일까지 복잡다난한 합종연횡, TV토론, 계속된 매체의 여론 조사 실시 등을 거치면서 어느 때보다 민주적인 가운데 치러졌다. 초기에는 신한국당, 국민회의의 양자구도와 자민련을 포함한 3자구도가 예상됐으나 신한국당이 헌정사상 최초로 집권당후보의 경선을 실시한 가운데 과열후유증이 이회창후보의 자녀병역문제와 결합되어 파장을 일으키면서 조순시장의 민주당 후보 출마, 이인제 경기지사의 국민신당 창당으로 5자구도로 변했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이른바 DJP연합이 이뤄지고 신한국당이 조순총재의 민주당합당을 이뤄냄으로서 결국 3자구도로 대선을 치루게 됐다. 본격적인 선거운동기간 중 TV토론에 따라 각 후보의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이회장후보의 아들병역문제, 김대중후보의 비자금문제, 이인제후보의 청와대 신당지원설이 서로간에 치열한 핵심쟁점사항이 되었고 막판에는 오익제 편지사건, IMF경제파탄 책임론 및 IMF재협상논란등이 크게 부각되면서 진짜 핵심정책부각 노력은 미미한 꼴이 됐다. 선거결과는 밀리던 이회창후보가 막판까지 역투하면서 김대중후보와 1,2위를 다투는 박빙의 드라마를 연출했으나 현정권의 경제 파탄과 여권분열을 부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민들은 총유효투표수 25,622,438표의 40.3%인 1,326,272표를 김대중후보에게 주어 37만표차로 그를 새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면서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뤘다.
○ 선 거 일 : 1997. 12. 18 (목)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23일
○ 선거인수 : 32,290,416인 [부산은 2,693,311인]
○ 투표자수 : 26,042,633인(80.7%) [부산은 2,124,010인(78.9%)]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이회창(한나라당) : 9,935,718(38.7%) [부산은 1,117,069(53.3%)]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 10,326,275(40.3%) [부산은 320,178인(15.3%)]
이인제(국민신당) : 4,925,591(19.2%) [부산은 623,756인(29.8%)]
권영길(건설국민승리21) : 306,026(1.2%) [부산은 25,581인(12.2%)]
허경영(공화당) : 39,055(0.2%) [부산은 2,252인(0.1%)]
김한식(바른나라정치연합) : 48,717(0.2%) [부산은 2,211인(0.1%)]
신정일(통일한국당) : 61,056 (0.2%) [부산은 3,359인(0.2%)]
무 효 : 400,195 [부산은 29,604인]
제16대 대통령선거
□ 선거개요
‘뉴 밀레니엄’ 첫 대통령으로 민주당 노무현후보를 선택한 12.19 대통령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미디어선거, 사이버선거의 활성화라 할 것이다. 대규모 군중집회가 사라진 빈 자리를 TV합동토론 등 ‘미디어선거’가 자리를 메웠고, 사이버 시대에 맞춰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선거운동’도 두드러졌다. 본격적인 선거운동기간중 TV합동토론에 따라 각 후보의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확산된데다 북한의 제네바 협약파기로 핵풍(核風)대응을 둘러싼 논란 및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후보에 대한 공조파기 선언은 이번 대선의 최대파란으로 기록되었다. 주요언론에서는 금번 선거를 “헌정사상 처음 보혁 대결양상이 전면에 드러난 선거”라면서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병폐가 완화되고 더불어 선진선거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노무현후보는 총 유효투표수 24,561,916표의 48.9%인 12,014,277표를 얻어 46.6%인 11,443,297표를 얻은 이회창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 선 거 일 : 2002. 12. 19 (목)
○ 선출방법 : 직선
○ 선거기간 : 23일
○ 선거인수 : 34,991,529인 [부산은 2,786,142인]
○ 투표자수 : 24,784,963인(70.8%) [부산은 1,983,492인(71.2%)]
□ 선거결과
○ 후보자별 득표상황
이회창(한나라당) : 11,443,297(46.6%) [부산은 1,314,274인(66.8%)]
노무현(새천년민주당) : 12,014,277(48.9%) [부산은 587,946인(29.9%)]
이한동(하나로국민연합) : 74,027(0.3%) [부산은 2,148인(0.1%)]
권영길(민주노동당) : 957,148(3.9%) [부산은 61,281인(3.1%)]
김영규(사회당) : 22,063(0.1%) [부산은 1,380인(0.07%)]
김길수(호국당) : 51,104(0.2%) [부산은 2,064인(0.1%)]
무 효 : 223,047 [부산은 14,399인]
첫댓글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찌된다 쿱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