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에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승차장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는 빈 택시를 잡는 편이 더 쉬울 듯해 차도 쪽으로 가는데 긴 택시 행렬이 이어져 있었고, 택시들이 승객을 내려주고 있었다. 손님을 내려주고 떠나려는 택시를 잽싸게 타면서 행선지를 외쳤다.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몇 걸음 앞으로 나와서 타지 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까요?”
택시기사가 말했다. “손님이 탄 곳은 승차장이 아니고 손님을 내려주고 가는 하차장입니다.” “그럼 제가 위법을 한 것입니까?” “위법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요. 바쁜데 줄서서 기다리다 타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것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요령이 좋으면 편하게 사는 겁니다. 저도 거기서 손님을 태우면 안 되지만 마침 제가 차고로 5시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방향도 같고 하니까 모시고 가는 거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닙니까?” 민주주의까지 운운하면서 ‘우리’를 합리화하는 그가 밉지 않았다.
기사는 시정市政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현직 시장은 물론 전직 시장들의 이름을 차례로 거명하면서 한강변에 무얼 지으려고 한 일, 용산역 일대의 개발, 전철역 주변의 공원화, 심야택시제 도입 등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내리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며칠 후 광화문에서 또 택시를 탔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 말에 숙소를 알려주자 운전기사는 자기는 뚝섬 쪽으로 간다면서 반대방향에서 타는 편이 좋았다고 말한다. 1가에서 우회전해서 청계천을 거쳐 퇴계로로 해서 서울역을 거쳐 가면 되지 않겠는가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가능하면 내려서 다른 차를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타서 종로 1가에서 내렸다. 비까지 내린다. 택시를 잡을 수가 없다.
롯데 백화점까지 비 맞으며 걸었다. 택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시청 앞으로 뛰었다. 간신히 택시를 잡아탔다. 30분 이상 비를 맞으며 걸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앞차에 탔다가 내린 얘기를 하니 택시기사는 그런 기사는 고발하라고 했다. 먹고 살만큼 있는 사람들이 개인택시를 하기 때문에 제 입맛에 맞는 손님만 태운다면서 열을 내었다. 이어서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자들에 대해 열변을 늘어놓으며 한 사람, 한 사람 비판하기 시작했다.
부산에서도 택시를 세 차례 이용했으나 서울의 택시 기사들처럼 불평불만을 쏟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상냥하고 친절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택시에서 내렸다. 왜 서울의 택시기사들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있는 것일까?
그 답을 서울역에서 숙소까지 태워다 준 택시기사가 말해주고 있다. “서울에서 영업하는 택시가 7만 5천 대입니다. 그리고 밤 9시부터 오전 9시까지만 운행하는 심야 택시들 때문에 저희들은 수입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죽어라고 일해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개인 돈으로 메우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불만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사람이란 배불리 잘 먹고 등 따뜻하고, 사는 것이 편안하다 믿으면 마음도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택시 운전사들의 불평불만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의 곤지암까지 전철과 버스를 타고가면서 대중교통 수단이 잘 되어 있어 대한민국이 서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감탄했었다. 게다가 택시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그러나 한참 다니다 보니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 그런 교통망이 없으면 어떻게 사람들이 살겠나 싶어 절실한 필요에 의해 발전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잘 발달된 교통수단으로 국민들을 실어 나르면서 그 국민들의 내적욕구는 채워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는 대로 잘 살 수 있으며, 아이들 잘 교육시키고, 재산과 인간이 잘 보호받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욕구는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일 것이다.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다니며 택시기사들의 수다와 열변을 듣는 것은 한국방문의 특이한 체험이다. 택시 안에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는 조그만 창이 열려있는 듯하다. 2014년 5월
서울역에서 숙소까지 가면서 쉬지 않고 현 시장부터 전 시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서민을 무시하는 정책들에 대해 비판했다.
광화문에서 종로 1가까지 가서 빗속에 내려 놓고 가버린 택시
첫댓글 이건 새삼 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60년대에도, 70년대에도 서울은 한국은 그랫습니다. 누구의 소설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국회의원 숫자 줄이고, 기초 의원 없애고, 관피아 청산하고, 갑자기 다른 것들이 생각이 안 납니다. 그냥 한잔 차나 마시지요^^*~
그럽시다. 차나 한 잔 합시다. ㅎㅎㅎㅎ
고생좀 하셨겠네요....
이제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겨졌지만 그날 비맞으며 걸으며 많이 힘들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