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득 도♧
종이를 찢기는 쉽지만 붙이기 어렵듯,
인연도 찢기는 쉽지만 붙이긴 어렵습니다.
마음을 닫고 입으로만 대화하는 건,
서랍을 닫고 물건을 꺼내려는 것과 같습니다.
살얼음의 유혹에 빠지면 죽듯이,
설익은 인연에 함부로 기대지 마십시오.
젓가락이 반찬 맛을 모르듯
생각으론 행복의 맛을 모릅니다.
사랑은 행복의 밑천
미움은 불행의 밑천입니다.
무사(武士)는 칼에 죽고,
궁수(弓手) 는 활에 죽듯이,
혀는 말에 베이고 마음은 생각에 베입니다.
욕정에 취하면 육체가 즐겁고
사랑에 취하면 마음이 즐겁고
사람에 취하면 영혼이 즐겁습니다
그 사람이 마냥 좋지만,
좋은 이유를 모른다면 그것은 숙명입니다.
한 방향으로 자면 어깨가 아프듯,
생각도 한편으로 계속 누르면 마음이 아픕니다.
열 번 칭찬하는 것보다
한 번 욕하지 않는 게 훨씬 낫습니다.
좌절은 "꺾여서 주저 앉는다"는 뜻입니다.
가령 가지가 꺾여도
나무 줄기에 접을 붙이면 살아나듯 의지가 꺾여도 용기라는 나무에 접을 붙이면
의지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납니다.
실패는 "실을 감는 도구"를 뜻하기도 합니다.
실타래에 실을 감을 때
엉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감으려면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듯
실패는 "성공의 도구"입니다.
오늘도 어떤 시련을 만나든
득도의 경지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지내시고
감기 코로나 조심하세요.
ㅡ 모셔온 글 ㅡ
☃️ 바람 속을 걷는 법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 이정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 살았으면 좋겟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하지 않는 친구.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고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있으면 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것이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치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유안진-
🍁견인🍂
ㅡ이병률
올 수 없다 한다
태백산맥 고갯길, 눈발이 거칠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신만 되돌아온다
분분한 어둠속, 저리도 눈은 내리고 차는 마비돼 꼼짝도 않는데 재차 견인해줄 수 없다고 한다
산 것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일 것처럼 쏟아붇는 눈과
눈발보다 더 무섭게 내려앉는 저 불길한 예감들을 끌어다 덮으며
당신도 두려운 건 아닌지 옆얼굴 바라볼 수 없다
눈보라를 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만항재에 도착한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
안 그래도 이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었다고 한다
기억으로는 삼십년 전 바로 이 자리,
이 고개에 큰길 내면서 수북한 눈더미를 허물어보니
차 안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 한다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그 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 이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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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도 소설처럼 사람 이야기지만 왠지 이 시는 소설의 한 장면 같다. 즐겨봤던 기억속 TV문학관 풍경도 그려지며 싸하다.
그 순간 화자는 얼마나 막막하고 무서웠을까. 입장 바꿔 생각지 않아도 막막함이 전해진다.
인적도 없는 태백산 고갯길 차안에서 꼼짝없이 눈속에 갇혀 버렸으니, 그래도 그 순간 혼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눈속에 묻힌 사람, 물살에 떠내려간 사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자연앞에서는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에 의해 새벽에서야 구조된 화자는 견인차 기사부터 눈속에 갇혀 차 안에서 얼어죽은 남녀 얘기를 들으며 그들의 먹먹했을 사랑을 짐작한다.
화자는 그런 일을 겪고 보니 눈속에 끌어안고 죽어간 연인의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던지 그 순간 함께 있어 준 옆자리의 애인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 연이 인상 깊어 다시 읖조리게 된다. 눈속에서 죽어간 연인도 그렇고 사랑은 짠하면서도 가슴먹먹함이 있다.
" 그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
-토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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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깊이 들어가면 전술 전략이 다 필요 없지만, 한 번은 자발적 고립으로 갇히고 싶기는 하다. 물론 스스로 빠져나올 만큼의 여유를 두는 것은 연애 중 이상무를 유지하려는 적절한 처신이다. 문제는 그럴 리 없을 것 같은 일이 꼭 한 번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견인의 갈구가 도래하는 것이니
이쯤이면, 거기를 왜 갔는지 하필 눈보라 치는 날 그래야 했는지의 사설은 필요하지 않다. 사랑의 경계에 자유와 고립의 낱말이 나란히 걸리지만, 진면모는 위기상황에 있을 때 드러난다. 둘이 끌어안고 죽는 처지에서 옆자리 당신과 나는 어떨까. 사랑의 자리이거나 숨이 멎은 자리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적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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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꽃송이🍂
― 정현종
복도에서
기막히게 이쁜 여자 다리를 보고
비탈길을 내려가면서 골똘히
그 다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주 오던 동료 하나가 확신의
근육질의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시상(詩想)에 잠기셔서……
나는 웃으며 지나치며
또 생각에 잠긴다
하, 쪽집게로구나!
우리의 고향 저 원시(原始)가 보이는
걸어다니는 창(窓)인 저 살들의 번쩍임이
풀무질해 키우는 한 기운의
소용돌이가 결국 피워내는 생살
한 꽃송이를 예감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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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은 여자의 미끈한 다리를 보고 눈길이 가지 않는 남자가 있을까.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가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한다고 하는데 아마 잘 빠진 다리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쩌면 마음속으로 간음을 할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너희 중에 마음속으로 간음하지 않은 자, 저 여자를 돌로 쳐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행동은 들키면 낭패를 본다. 안 그런 척, 안 본 척해야 한다. 속으로는 뜨끔할지라도, 혹여 얼굴이 빨개질지라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듯이 행동을 해야 한다. 어디 먼 산이라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까지 우리는 용납을 해준다.
정현종 시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복도에서 ‘기막히게 이쁜 여자 다리를 보’고는 가던 길 계속 가면서 그 다리만 생각한다. 어쩌면 만지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골똘히 상상을 하며 가니 누가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것을 모르는 동료가 지나가며 한 마디 한다. 시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詩想에 잠기셔서……’라 한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는 시상에 잠겨 있다고 좋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근육질의 목소리’이다. 시인은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앗, 들켰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알았지, 내 얼굴에 표가 났나, 족집게구나…… 하면서 이내 웃으며 다시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우리들도 당할 수 있는 경험이다. 다만 다른 것은 ‘詩想에 잠기셔서……’가 아니라 ‘정신 어디 두고 다니냐?’라든가 ‘뭔 생각을 하기에 다가오는 나를 못보냐?’……와 같은 핀잔이 있을 것이다.
시인이 우리와 또 다른 것은 그 다음 생각이다. 시인은 처음에는 남자의 눈으로 여자의 다리를 봤는지 모르지만 ‘詩想에 잠기셔서……’란 말을 듣고는 이내 여자의 이쁜 다리에서 다른 것을 본다. 바로 ‘이쁜 여자 다리’는 ‘저 原始가 보이는 / 걸어다니는 窓’이요, ‘살들의 번쩍임’이며 ‘풀무질해 키우는 한 기운’이자 ‘소용돌이가’ ‘피워내는 생살’이고 ‘한 꽃송이’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본 ‘이쁜 여자 다리’는 한 편의 시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과 우리의 생각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차이가 도무지 없어지지 않으니 감탄할 뿐이다. ♣
ㆍ이병렬 시인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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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망스'라는 우스개 소리는, 성(性)에 대한 이중잣대를 들추고 있다. 성(性)은 적재적소에서 이뤄지면 사랑이며, 부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되면 추행이 된다. 성 그 자체는 늘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숨바꼭질이다. 이쁜 다리를 드러내고 걷는 여자와 그것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황홀해하는 시인. 유혹은 생겨났지만 아직 마음 바깥으로 그것을 집행하는 행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인이 훔쳐본 그 다리는 무엇이었던가. 원시가 보이는 창이며 살들의 번쩍임이며 풀무질해 키우는 한 기운이며 소용돌이가 피워내는 생살이며, 한 꽃송이다. 인간의 분별을 넘어, 저 이쁜 여자 다리의 시(詩) 한편을 훔치는 것이다.
ㆍ이상국 시인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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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주 복도에서 여자의 예쁜 다리를 만나는가? 어딘가로 통하는, 텅 빈, 그래서 두 사람만이 또렷하고 충만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이 이어진 길이 내리막 비탈길일 수밖에 없음도 안다. 오르막 한분, 당신 그 생각을 하는 거지? 한다. 또 잠시 생각! 감미로운 여백이다. 당신 족집게야! 그 사다리가 우리를 어느 쪽으로 건네주느냐 하면 행복, 그 맨살의 소용돌이.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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