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께 선생님 심성을 닮은 함박꽃 한 송이 바칩니다:낙산사 경내에서 촬영>
"에, 이제 여러분들은 정든 교정을 떠납니다.
지난 6년 동안 여러분들이 정성들여 가꾼 이 은행나무 묘목을
한 그루씩 나누어 드릴 테니 집에 가져 가셔서 잘 심고 길러,
나무가 커가는 만큼 여러분들도 이 나라의 훌륭한 기둥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재승>
그는 내 고향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 조그만 국민학교에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 까지는 동네에 있는 서후 분교에 다니다,
3학년이 되면서 나는 고개를 하나 넘어 정식, 국민학교에 다니게 되었지요.
3학년 이 되어 처음 등교하던 날, 그 안재승 교장선생님은
손수 이름을 써 넣은 이름표를 하나하나 일일이 달아 주시면서
등을 두드려 주셨고, 이후 육학년 까지 호된 한문 공부와 펜글씨,
그리고 붓글씨를 가르쳐 주셨고,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묵화 작업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재직하시는 동안 학교 주변공터에 화단 대신, 은행나무 묘목장을
만들어 학생들이 직접 은행을 심어 나무를 가꾸게 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기념으로 은행나무 한 그루씩 나누어 주시었는데,
나는 그 나무를 잘 자라라고 살이 좋은 채마밭에 심고 거름도 많이 해 주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거의 같은 사정이었지만,
빠듯한 시골살림에 등록금 대기가 만만치 않아 학기마다 소를 팔든지,
논,밭 뙤기 하나씩을 팔았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밭을 팔아 서울에 자취방을 마련하고, 덕에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요.
그렇게 그 은행나무는
내 월사금 때문에 기억의 저편으로 살아 졌는데_
어느 단풍이 유난히 짙던 가을날,
나는 우연히 고향에 들러 그 은행나무를 보았지요.
벌써 아름들이 나무가 되어 땅으로 실한 은행과 고운 잎을 떨구는
나무를 보고 한 동안 회한에 젖어 자리를 뜨지 못 하기도하고,
내가 이담, 돈 많이 벌어 꼭 이 나무를 되찾아야지
명절 때마다 고향에 와 나무를 안아 보고 다짐을 하곤 했었는데,
양평에 개발 붐이 일어 나면서
그 채마밭이 서울사람에게 팔려 나가고
거기에 동화에나 나오는 언덕 위에 하얀집이 지어지고
접근할 수 없는 울타리 철조망이 쳐졌습니다.
이제는 그나마 다가가서 안아 볼 수 조차 없게 되었으니_
안재승 교장선생님! 이 제자는 그 은행나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금 은행나무 근처에 와 어찌어찌 살면서도 그냥 바라만 볼 뿐
다가서지를 못합니다.
새치가 늘어 가는 지금도 언젠가 꼭 저 은행나무를 되 찾아야지
다짐만 하고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제 나무이든 남의 나무로 살든 선생님이 나누어 주신 나무가
저렇게 굳건히 이 땅에 자라고 있는 한,
언젠가는 고향을 찾는 힘들고 지친 모든 나그네에
편히 쉴 수 있는 쉼터, 당산나무 그늘이 되리라 믿어 봅니다.
모처럼 아버지고향에 내려온 고3짜리 자식놈을 앉혀 놓고
나무를 사랑하신 선생님의 심성을 가르치려 애를 쓰나
이해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나무를 마음밭에 다시 심으며_>
2004.5.17 풀잎편지(poolip.net)_백암
음악 : Jean Redpath - Sonny's dream
첫댓글 너무나 훌륭하신 교장선생님. 나무의 버팀이 어린제자들의 가슴에 고향을 향한 심지가 되게 하셨군요.... 그것은 우리들의 정체성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