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갑산(三水甲山)/노자영
삼수갑산 가고지고
삼수갑산 어디메냐
아하 산첩첩에 흰구름만 쌓이고 쌓였네.
삼수갑산 보고지고
삼수갑산 아득코나
아하 촉도난(蜀道難)이 이보다야 더할소냐.
삼수갑산 어디메냐
삼수갑산 내 못 가네
아하 새더라면 날아 날아 가련만도.
삼수갑산 가고지고
삼수갑산 보고지고
아하 원수로다 외론 꿈만 오락가락.
===[명시의 감상, 사계]===
노자영(盧子泳)
출생 1901(1898?). 2. 7, 황해 장연
사망 1940
낭만적 시와 산문을 써서 당시에 인기가 높았다. 호는 춘성(春城). 평양 숭실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의 영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뒤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일했다.
〈서울〉·〈학생〉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을 발표했고 1925년 일본대학에서 공부하고 귀국했다. 폐질환으로 5년간 고생하다가 1934년 〈신인문학〉을 펴냈으나 경영난으로 그만두고 〈조광〉의 편집을 맡아보았다. 1938년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1919년 시 〈월하의 몽(夢)〉이 〈매일신보〉에 2등으로 입선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시 〈객〉·〈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牛涎愛)형에게〉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첫 시집 〈처녀의 화환〉(1924)에 이어 〈내 혼이 불탈 때〉(1928)·〈백공작〉(1938)을 펴냈다. 그의 시는 당시 문단의 흐름인 낭만적 감상주의를 한결같이 따랐지만 신선한 감각과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부드러운 어조의 연애시를 즐겨 썼으며, 전래의 가락을 담기도 했지만 부분적인 것에 그쳤다. 소녀들이 좋아하는 산문을 써서 인기가 높았으나 그의 글에는 사회성·역사성이 부족하여 뒷날 별로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소설집 〈무한애(無限愛)의 금상(金像)〉(1925), 수필집 〈영원의 몽상〉·〈인생안내〉(1938)가 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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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도난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공부했습니다.
북위 33°2—33°22, 동경 106°51—107°10 사이에 위치한다. 해발고도 500~600m의 평지가 전체 면적의 34.62%를 차지하고 601~800m의 구릉이 28.1%, 701~2038m의 산지가 37.2%를 차지한다. 한중 시내는 해발고도 500m 지점에 놓여있다.
한중의 지리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촉도난(蜀道難)이다. 북쪽으로는 친링산맥(중국어 간체자: 秦岭, 정체자: 秦嶺) 산맥을 경계로 하며, 남쪽으로는 파산(巴山)을 경계로 한다. 물산이 풍부하며, 경치가 수려하다.
"촉나라로 가는 길은 힘들어서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힘들더라!"(蜀道之難難於上靑天).
<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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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갑산" 동일한 제목으로 김소월 시인의 시를 2023년 8월 28일 게시한 것을 링크합니다.
https://cafe.daum.net/qufdl.qltsksms.qkadp/G5kS/835
오늘도 산뜻한 날 되시고 행복하세요.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