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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따뜻한 대구! 활달한 대구!
본인은 8월27일부터 29일 대구에서 개최한
“대구컬러풀축제 2010년”참관을 요청으로 대구를 방문을 하게 되었다.
27일 주최측에서 챙겨준 중앙로근처의 “노보텔”에 여장을 풀고 행사
평가준비를 마쳤다.
행사의 내용은 대구시의 대행사인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리허설의 일환으로
27일부터 29일 까지 3일간 총7억규모의 예산을 들여 중앙로 0.5km거리에 온갖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깔아놓는 것이었다.
행사주제는 “놀라운 상상, 아름다운 유혹”이다
제일처음 개막행사로 “2011년 세계육상 선수권 대회
D-365일 티켓런칭 세러머니“가 개최되었다.
본행사의 홍보대사이자 파페라가수 임형주, SG워너비,다빈치등
유명한 가수들이 나와서 개막식을 빛내주었다.
이런 행사는 별로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역의 특색을 살린 행사가 아니라 그저 거대자본을 동원한
상업주의와 만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그냥 흥겹게 보았다.
끝날즈음 대구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가 다이내믹하게 펼쳐졌다.
이때 본인은 비로소 대구의 선의연대 회원님들이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폐부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불교회로부터 소외된 곳
어느 면에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만 한 곳 대구
학회의 간사이라 할만큼 대성인님의 근본정신이 맥동치는 곳 대구
행사참관을 우선 마치고 13층 노보텔에 들어왔다.
13층에서 반짝이며 내려다보이는 대구시내를 대경으로 하여
방편품과 자아게를 독송하고
대구의 선의연대님들을 위해 진심어린 기원을 올렸다.
다음날 28일 오전 10시 30분에 “옛골목은 살아있다”라는 거리연극이
민족시인 이상화씨의 고택 앞마당과
국채보상운동의 제안자이시면서 독립운동가인신 서상돈의
고택 앞마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그곳에서 연극이 개최되었다.
제목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진정으로 대구의 지역적인 정신혼이 살아 있는 곳에서
그때 그 시절의 나라를 잃어가는 애저린 갈등을 거리연극으로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민족을 위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상징적인 성역인 대구의 옛곳목에서
연극인들은 그 시절의 슬픔과 아픔을 현대적수용을 통해서 잘 담아내고 있었다.
오후 4시 옛골목은 살아있다 2부가 중앙로 거리에서 펼쳐진다.
제목은 “향촌동 그 때 그 시절”이었다
1950년대 대구시 향촌동은 '피란문학'의 요람이었다.
번화한 북성로 상점과 관청, 은행이 밀집해 있었기에
이 일대는 일제시대 대구의 유흥중심이었다.
패전한 일본인들이 떠나고 쇠퇴하던 향촌동은
1950년 피란 문인들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골목에는 바흐와 베토벤이 물처럼 흘렀고,
문학이 꽃피었다. 묵객들은 외상 술일망정 호기롭게 마셨고,
주인들은 외상인줄 알면서도 술상을 내놓았다.
당시 대구 향촌동에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만 있었을까.
백기만, 마해송, 박두진, 이윤수, 조지훈, 김광섭, 박목월, 유치환,
이호우, 장덕조, 최정희, 최태응, 정비석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 좁은 골목을 풍미했다.
향촌동은 피란 시절부터 60년대까지 한국문단의 중심이자 문화`예술의 요람이었다.
대구의 모든 연극인 20명과 대구예술대학생 60명이 참가하고 있는
이 거리연극은 대구만의 향토색 짙은 문화예술이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연극인 것이다.
대구가 낳은 바리톤가수 김원경분이 나와서 사회를 보고
변사가 나와서 연극해설을 시작한다
만장하신 신사숙녀여러분
혹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는 고모역을 아십니까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생이별을 했던 장소로 1946년 가수 현인에 의해서 불려진
“비내리는 고모령”의 소재가 된곳입니다. ....
극중에는 싱싱싱음악과 무용수들이 뛰쳐나와 춤을 추고
출연자 무용수 관객들이 함께 트위스트 춤을 추며 난장을 벌리고
이제 1960년대 활동한 예술가와 그 당시의 인물상이 재현되는데
이중섭화가,봄나들이 작곡가 “권태호” 시인구상,
빨간마후라의 주인공 유치곤
본이오면 작곡가 김동진
여류소설가 서정희등이 나온다.
대구가 낳은 가수 남일해가 빨간구두아가씨를 부르며 나타난다.
노래끝나고 기차멈추는 소리., 연극은 종료된다.
이 연극은 대구의 모든 혼의 물주기를 잡아낼 듯이
대구의 모든 지역적 특성과 문화적인 칼라를 전부 드러내고 있는 연극이었다.
매주 토요일 마다 10월까지 하는데
총5개월간 18회 2억원의 예산을 들었다.
아주 독특한 대구만이 처음 할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이라 할수 있다.
두 번째날인 28일날은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이 500m거리내에 상당히 몰려 들었다.
문화예술프로그램 시각,무용, 국악, 재즈, 음악, 전통등
문화축제에 나올수 있는 것은 전부 나왔다
여기저기서 놀라움 박수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대구시민들의 모습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선의연대 회원님들이 오버랩되면서
여러가지 느낌이 전달되어 왔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이미지가 드러나 보이고
여유롭고 다정하고 따뜻한 이미지
뒤로 돌리지 않고 그대로 확실히 표현하는
느낌등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문화와 예술의 본질은 소통에 있다.
작가의 의도하는 바
연출가의 의도하는 바
축제를 의도하는 바를 작품과 행사를 통해 나타내면
시민들은 그것을 읽어내고 감탄하고 환호한다.
작가들의 내면의 창조성을 밖으로 들어내면
그것은 시민들이 일상속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한발 앞선 것을 표현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시민은 작품을 통해 통상적인 인식으로부터
한발 더나아가 그 것을 깨고 참신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주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예술작품은 관객들에게 지루한 인식을 넓혀주고
담론(작품앞에서 놀라움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함)을 형성해주고
놀라움을 주게 한다.
대구시민은 다른 도시의 어떤 곳보다
그 작품에대한 소통의 반응이 매우 빠르고 인터렉티브하다.
정말 감수성이 예민하고 좋은 것에 대한 자극이 매우 빠르다고
느꼈다. 이것은 나쁜 것에 대한 반응도 빠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0년도 구로동에서 회관수성측과 회관집입자들간의 소요가 벌어질시
본인은 지역간부였었는 데 본부에서 수차례 출두할 것을 명했으나 가지 않았다.
매번 대립과 싸움이 있었을 때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역의 멤버들의 성화에 못이겨 나간적이 있었다. 살벌한 광경..
광선회관 커피 뽑아먹는 곳에서 밖을보니 대구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한 스물살정도가 되는 예쁘장한 대구 여자대학부 멤버 건너편 건물에서
이쪽을 향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다.
가슴이 아팠다. 페스티벌행사를 수차례보면서 그때 그 광경이 떠오른다.
박정희대통령 때 국민을 호도하면서 선전 할 때가 중2였는데
본인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광주사태가 벌어졌고 언론에서 아무리 신군부편을 들어 떠들어 대도
5.18이 터졌을시 바로 본인은 신군부의 획책이었다고 생각했다.
누구한테들은 것도 아니고 데모진에 가담한것도 아닌데
도서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신군부측의 말을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당시 구로동에서 사적대 반대파라고 할 때 기분이 상당히 언찮았다.
전부 권력유지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그 생각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중앙로 500m거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느낀
대구시민, 선의연대회원님들의 건강한 소통의 생명력은
진정으로 아름답다.
훌륭한 것에 대한 좋은 것에 다한 놀라움의 표현
그릇된 것에 대한 재빠른 반응!
이것은 전제주의와 획일주의.... 그런 것들의 병폐성이 바로
도요타사태로 나타나게 되었던 일본은 따라올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원초적인 의식이다.
본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역시 대한민국의 활달한 혼은 영혼의 도시 대구에 생생히 살아있다고
우리나라 묘법이 들어와서 가장 반응이 빨랐던 곳 대구
그곳을 불교회는 밀어낸 것이다.
본인이 불교회 어떤분을 만나기 위해 본부동에 들린 적이 있다.
본부동 1층로비 쇼파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쇼파에 앉아서 둘러보았다. 사물들과 오브제의 배치는 아마추어수준이다.
이것 역시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고
신심이면 무엇이든 다된다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상상해보면 아마도
책임간부가 나름대로 펼쳤을 것이다. 그러니 수준이하이다,
그러면 부인부들에 의해 서민적으로 배치되었으면 따뜻함과 다정함이라는
느낌이 배어 나와야 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발팔방에서
나같은 사람은 거기 앉자
있지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거북하다
바로 장소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로비가 상당히 촌스럽지만
그러나 촌스러움의 다정함이 전혀 없다. 촌스러움과 다정함은
항상 등식관계가 성립되는 데 정말 아이러니 하다.
깔끔함, 맨질맨질함, 반질반질함이다.
반질반질함은 모든 것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
반질반질한 이런곳은 어디하고 닮았을까
국회의사당, 정부종합청사, 김일성주석궁등이다
전부 “권력”의 상징인 것 들이다.
그러나 국회나 청사는 요즘 상당히 인간적으로 변했다.
본인을 맞이하는 본부동의 직원들의 매뉴얼 대응방식은
친절하고 분명하고 선명한 태도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면 느낄수 있는 다정함이 없다. 반질거림이다
본부동의 반질거림은 권력을 표상한다.
반질거림과 권력, 이런 것의 서사성은 무엇일까
바로 “길들여짐”이다
종교권력의 주체세력 이들은 관료집단이다.
관료집단은 봉급과 일방적인 지침에 의해
길들여진다. 관료집단이 관리하는 대상은 회원들이다.
회원들은 잘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이상한 말, 튀는 말 했다가는 바로 “길들여짐”에 반하는 것임으로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의정불이이다.
회관을 가 보아라
거기는 얼마나 "반질"거리는 가
어찌 서민들이 그 곳에 마음놓고 있을수 있는
곳인가.
부인부는 1시부터 나올 것,
오후 6시면 반드시 귀가 할 것.
그리고 회관에서 죽치고 제목부르지 말 것.
그리고 음식은 싸가지고 오지말 것
김밥도 먹지 말 것
점심은 밖에 가서 사먹을 것
돈 없으면 얼쩔 수 없음...
절대 회관에서 무얼 먹지 말 것
부인부들의 서민성 때문에 관리가 안될 것 같으면 지역간부들이
순번제로 지키면서 눈치를 주어가면서 길들이고 종국에는
맨질거리게 만들어간다.
본부동과 관료집단, 회관과 핵심간부들 일체가 전부 의정불이로
맨질거림과 반들거림과 그에 대비한 길들이기의 권력지향성이다.
그러니 길들여 지지않은 대상을 보면 권력지향성들은
절대 못봐준다
못견딘다.
반질거리게 만들든지 아니면
밀어내든지 둘중에 하나
그러므로 불교회 공문에 나타난 화합의 조건을 검토해 보시어라
권력, 반질거림, 길들이기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나 활달한 대구의 멤버들을 보시어라
10년간 월급도 받지 않고 얼마나 헌신적으로 움직여 왔는가.
거기에는 일방적인 지침이 없고 봉급이 없다. 권력이 없고 무작(인위적이지 않음)의
삼신여래가 계시기 딱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반질거림과는 정반대편에 위치하며
잡초처럼 자신의 자태를 뽑내며 무위의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나 양자가 대비되는 가?
박재일의 신화창조, 옳지 못함, 권력지향적 마성,"길들여짐"에 항거하고
“사막의 낙타”처럼 뛰쳐나간 대구멤버들의 활달한 심성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관료화된 불교회는 과연 대구멤버들을 껴않을 수 있을까?
불교회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본질을 잘 알아야 한다.
깊이 있게 반성해야만 그들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길들이기와 반질거림의 심성으로는 절대로 마음이 편치않아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버리든지 아니면 차원을 높여 원융해서 절대묘의 제법실상으로
깨닫든지 하여야 할것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은 화합을 할 때 "조건"을 내걸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권력은 외부의 근본악이 쳐들어 왔을 때 학회를 수성하고
회원들을 보호하라고 있는 “선의 권력”인 것이다.
선의 권력은
멤버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반들거리게 하기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대성인의 불법을 통해 회원들의 건강한 소통과 생의 기쁨,
활달함, 원초적인 생명을 만킥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본존속에 계시는 사대천왕을 보시어라.
지국,광목,비사문,증장천왕 이들은 외부의 근본악에 대하여는 무서운 얼굴로
으름장을 놓고 계시지만은 본존님의 사각의 틀안에 있는
제천 불보살, 지용의 보살, 일반대중에 대하여는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얼굴을 하시고 계신다.
집안의 아버지를 보아라
제대로 된 아버지라면 밖에 나가서는 거칠게 일을 하고 표정이 사나워도
집안으로 와서는 그 무섭던 기세가 자상함으로 변하지 않던가?
불교회 본부는 이들을 길들임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맨질거리게 만들대상이 아니라.
자상하고 다정하게 대하여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10월 보름이 가기전에 다시한번
“향촌동 그때 그 시절”을 관람하러 대구로
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대구분이 영화필름을 엄청 소장해놓고 계시는 데
첫눈이 오면 “닥터지바고”를 우인들과 함께
십수년을 감상하였다고 하니 첫눈이 오는 날 ktx를 타고 대구로 날라 갈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직설적인 대구를 향하여!
활달한 대구 파이팅!
< 대구컬러풀축제 2010년 옛골목은 살아있다 "향촌동 그 때 그 시절" 장면 일부 >
< 옛골목은 살아있다 "빼앗긴 들에도 몸은 오는 가" 장면 일부 >
< 대구 중앙로 0.5km 거리에 펼쳐진 대구칼라체스티벌 프로그램 장면>
< KSGI 본부동 >
첫댓글 현,사태가 주마등 처럼 지나가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깊은 사색속에 잠겨봅니다, 글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우와~ 교향악을 보는? 듯 합니다.
저같이 능력없고 하찮은 사람이 지기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대구의 사과처럼 미인이 많기로도 유명하지요.
저도 20대때에 대구의 버스차장 아기씨에게 연정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게 처음의 만남이고 마지막이 되고 말았네요.
우리 대구의 여자부들 대단하지요^^<--&
지금도 대구는 본부에 여이사장, 임고욱부장, 김찬근사장,
우택덕국장, 김인수국장(대구근처), 경리쪽의 누구씨등등
의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으며 박덕현 전이사장님과 선의
연대의 최일출 방면장님은 동서며, 서로간에 남이 아닙니다.
저는 대구를 앞으로는 '세계의 간사이'로서의 역할을 담당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