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산 두봉 가는 길
이어서 이른바 제암(帝巖)이라고 하는 정상에 올라 돌계단을 기다시피 오르는데 거의 다 오
르자 겨우 몸 하나 빠져나갈 만한 돌구멍이 나왔다. 몸을 곧추세우고 들어가니 겨우 머리만
이 굴에 들어갈 수 있을 뿐, 몸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마침내 뒷사람에게 부탁해서 발을
잡고 밀게 하자 배와 등을 뺄 수 있는데, 마치 통 속에서 빠져나오는 듯 했다. 굽혔던 몸을 펴
니 순간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因登極頂所謂帝巖者。攀緣石梯。躋旣盡。有石竇受之。聳
身而入則頭纔入竇。身礙不可遂。遂懇後人執足以推之。腹背抽。如出筒中。旣屈得伸則頓覺
身輕。)
하늘 가운데 우뚝 서서 바라보니 지역 내 여러 산이 마치 쌓아 놓은 음식을 발아래 늘어놓은
듯하였다. 정상의 너럭바위는 5, 6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이였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
은 노래와 생황으로 구름 사이의 신선에게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뒤 육신과 정신이 시원하다 못해 써늘해져 오래 머물 수 없었다.(竦立天半。域內諸山
如列飣餖於脚下。石頂盤陀。可坐五六十人。獨惜乎無歌笙以報客來於雲間人也。須臾骨爽神
冷。不可久留也)
――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 「獅子山同遊記」에서
▶ 산행일시 : 2019년 3월 1일(금), 맑음, 바람, 미세먼지 아주 나쁨
▶ 산행인원 : 10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8.3km(1부 12.7kn, 2부 5.6km)
▶ 산행시간 : 9시간 30분(점심시간과 이동시간 불포함)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05 - 여산휴게소
04 : 29 ~ 04 : 45 -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 게재,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24 - 384.5m봉
06 : 00 - △443.8m봉
07 : 00 - 등로 진입
07 : 28 ~ 07 : 47 - 호남정맥 687.3m봉, 아침식사
08 : 33 - 제암산(帝岩山, 806.2m)
09 : 09 - 곰재, ╋자 갈림길 안부
10 : 03 - 사자산 미봉(獅子山 尾峰, 667.5m)
10 : 40 - 사자산 두봉(獅子山 頭峰, 569.2m)
11 : 20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통합의학센터 앞,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15 -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 여암 마을 근처, 2부 산행시작
12 : 52 - 너럭바위, 휴식
13 : 30 ~ 14 : 00 - 억불산(億佛山, 517.4m), 휴식
14 : 16 - 정남진 천문과학관
15 : 10 -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주차장, 산행종료
15 : 26 ~ 17 : 57 - 장흥, 목욕, 저녁(해도지횟집)
22 : 21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제암산, 사자산)
1-2. 산행지도(억불산)
2-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제암산, 사자산)
2-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억불산)
3. 산행 고도표
▶ 제암산(帝岩山, 806.2m)
무릇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 시작이 어려운 법. 산행에서도 그러하다. 이번에는 제암산 들머
리를 멀찍이 잡았다. 반산리(盤山里) 게재다. 고갯마루를 오르기 전에 산속을 향하는 임도가
보이기에 바로 여기다 하고 버스를 멈추고 산행준비를 서둘렀다. 버스에 내려 막상 검은 산
릉을 바라보자 꾀가 나기도 했다. 이왕이면 고갯마루로 가서 진행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싶어
다시 버스에 올라 200m쯤 더 간다.
게재 고갯마루는 높은 절개지로 감히 뚫을 엄두를 내지 못하게 낙석방지용 철조망을 길고 높
게 둘러쳤다. 방금 전의 임도 입구가 맞나 보다 하고 뒤돌아간다. 뒤돌아가다 곰곰이 생각하
니 조금만 더 내려갔으면 등로가 있을 것 같기도 하여 뒤돌아 게재 고갯마루를 넘는다. 철조
망이 계속 이어진다. 역시 처음의 판단이 옳았다. 뒤돈다. 두메 님더러 버스를 돌려서 타고
가자 하기가 미안하여 걸어간다.
영진지도에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와는 다르게 ‘게재’가 아니라 ‘기재’로 표기되어 있다.
전라도에서는 ‘게〔蟹〕’를 ‘기’라고도 하니 ‘기재’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는 게처
럼 옆걸음질 한다. 임도는 산자락을 불안스레 길게 돌다가 편백나무 숲이 나오자 왼쪽으로
방향 틀어 오른다. 이곳 지명이 반산(盤山)이다. 산들이 반반해서 일 것.
사뭇 느긋하던 발걸음이 잠깐이다. 편백나무 숲을 벗어나자 임도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울창
하게 우거진 잡목 숲이 우리를 맞이한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이 앞장서서 뚫는다. 앞사람을
바짝 따라가면 잡목 숲을 헤치는 수고를 덜기보다는 느닷없이 튕기는 나뭇가지 회초리에 눈
물이 찔끔 나는 매운맛을 보기 일쑤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가까이 할 수도 없
고 그렇다고 멀리 하자니 일행을 놓치기 쉽다.
조금만 더 오르면 인적이 나오겠지 하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혹시 인적을 곁에 두고 엉뚱한
데를 가는 것을 아닐까 의심이 들어 사면을 비틀어서 가보기도 하지만 명감 가시덩굴 숲에
갇혀 허우적거리다 어렵사리 빠져나오곤 한다. 384.5m봉을 넘어서면 길이 풀릴 것이라 기대
하였으나 384.5m봉 정상조차 잡목이 빽빽이 우거져서 둘러앉아 숨 돌릴 데가 없다. 선 채로
인원파악만 하고 물러난다.
△443.8m봉 가는 길. 반산이 아니라 첨산을 간다. 잡목 숲은 그 기세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된다. 이끼 덮은 너덜길이 나오기도 한다. 개천의 징검다리를 건너듯 살금살금 살
펴 간다. 안부께에서는 길이 잘 다듬어졌기에 여태 푹 수그렸던 허리를 펴고 두 활개를 휘저
으며 내달았으나 이도 잠깐이다. 숫제 형극의 길이다. 더하여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삭
풍이다. 어둠 속에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듯한 먼 데 바람소리부터 차갑다.
2시간이 넘게 거의 쉬지 않고 잡목 숲을 헤친다. 첨봉 3개를 넘었다. 날이 밝아오자 그 기세
가 꺾이고 얼마 안 가 왼쪽 웅치면 서재동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 산죽 숲 가르마 탄 것 같은
길이다. 선두 쫓느라 잰걸음 한다. 687.3m봉 품에 들어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다. 바람에 떼
밀려 오른다. 암릉 암봉을 직등한다. 외길이다. 미세먼지가 심하여 원경은 뿌옇다.
687.3m봉. 용두산 넘고 시목치 지나오는 호남정맥 길과 만난다. 이제야 첫 휴식을 겸하여
아침 식사한다. 입산주 탁주 안주는 신가이버 님의 넙죽이 오뎅탕에 소백 님 배추전이다.
687.3m봉에서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 제암산이어도 거리는 2.7km나 된다. 길 좋다. 서리가
하얗게 깔렸다. 서릿발을 밟으면 푹신푹신하다. 아까 새벽에 가시덤불과 잡목 숲을 뚫던 일
이 꼭 꿈속의 일만 같다. 악몽이었다.
제암산 오르막 중간쯤에 있는 전망대에 들른다. 사자산, 삼비산(일림산) 연릉을 감상하기 좋
다. 우리가 지나온 능선은 봉봉이 아련하게 보인다. 가파른 돌길 오르고 Y자 갈림길이 나온
다. 두 길은 곧 만나지만 오른쪽은 제암(帝岩)을 오르는 길이다. 짧은 한 피치 바윗길을 돌아
배낭을 벗어놓고 직벽을 오른다. 약간 까다롭다.
장흥 관산 사람인 존재 위백규가 65세 때 여기를 올랐다. 예전에는 제암산을 사자산의 ‘제
암’으로 여겼는지 그의 「사자산동유기(獅子山同遊記)」에 보면 제암을 오르는 대목이 자못
생생하다. “겨우 몸 하나 빠져나갈 만한 돌구멍”은 그 바깥으로 절벽을 돌아 오르는 편이 수
월하다. 정상은 수십 명이 쉴만한 너른 암반이다. 오늘도 예전에 존재가 올랐던 때 “육신과
정신이 시원하다 못해 써늘해져 오래 머물 수 없었다.”라고 한 것처럼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
대 얼른 기념사진만 찍고 내려온다.
존재는 제암을 내려갈 때 우리와는 달리 동쪽 암벽을 내렸다.
“내려갈 때는 돌구멍이 좁다는 것을 알기에 왔던 길을 바꿔 동쪽 돌사다리를 이용했다. 손으
로 바위틈을 꽉 잡고 발에 의지한 뒤 손을 옮기고, 손에 의지한 다음 발을 옮겼다. 앞사람의
정수리에 뒷사람의 발꿈치가 이어져 마치 〈한봉선기(漢封禪記)〉에 나오는 모습과 같았다.
어느덧 다 내려와 술을 한 순배 돌렸는데, 술을 가지고 오르지 않은 이유는 취하여 발을 헛디
디는 것을 막으려고 그리했던 것이다.(將降則徵於竇狹。改從東梯。以手猛爬石罅。信足而
後移手。信手而後移足。前頂後趾。恰如漢封禪記也。旣下又行一盃。盖酒不偕上。防醉跌
也。)”
4. 지나온 능선
5. 지나온 능선, 호남정맥 687.3m봉 오르막에서 길이 풀리기 시작했다
6. 687.3m봉에서 바라본 제암산
7. 제암산 가는 길
8. 687.3m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9. 호남정맥 삼비산(일림산) 연릉
10. 제암산 가는 길
11. 호남정맥 삼비산 연릉
12. 오른쪽이 사자산
13. 사자산, 그 뒤는 억불산
14. 제암산 정상에서, 찬바람이 몰아쳐 엄청 추웠다
▶ 사자산 미봉(獅子山 尾峰, 667.5m), 사자산 두봉(獅子山 頭峰, 569.2m)
우리도 제암산을 다 내려와서 전망 좋은 헬기장에 둘러앉아 탁주를 한 순배 돌린다. 사자산
이 그럴 듯한 작명이다. 사자가 장흥읍을 향하여 길게 엎드려서 고개를 살짝 들고 있는 모습
이다. 제암산에서는 귀엽게 보였는데 다가갈수록 사납게 보인다. 한동안 느슨하던 등로는 돌
탑봉인 735.6m봉을 지나고 나서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0.8km를 쏟아져 내리면 왼쪽이 웅치면을 오가는 ╋자 갈림길 안부인 곰재〔熊峙〕다. 가파
르게 내린 딱 그 짝인 오르막이 이어진다. 수시로 모자를 벗고 얼굴 들어 찬바람에 열을 식혀
가며 오른다. 뒤돌아보면 제암산의 푸짐하고 너른 품이 가경이다. 629.8m봉 주변은 온통 철
쭉지대다. 전국제일의 철쭉평원이라고 내세울 만하다. 다만, 키가 큰 철쭉이라 전망대가 없
으니 이 드넓은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바람소리를 철쭉들의 봄맞이 아우성으로 듣는다. 사자산을 잔뜩 높여놓고 오른다. 제암산에
서 바라볼 때는 납작 엎드렸던 사자산이었는데 벌떡 일어섰다. 더러 탈락된 목재계단 100개
를 오르면 사자산 중턱이다. 여기도 전망대 정자가 있다. 등로 주변에는 키 큰 나무가 없어
전후좌우 조망이 훤히 트인다. 사방 경치 구경하며 걷느라 힘 드는 줄 모르겠다.
사자산. 사자가 엎드린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안내판에 “사자가 하늘을 우러르는 사자앙천
형(獅子仰天型)의 산으로 사자가 도약하는 형상이다”라고 한다. 사자산 미봉 또한 빼어난 경
점일 텐데 사방이 흐릿하여 아쉽다. 우리 오지산행은 12년 전인 2007년 5월 5일 여기를 왔
었다. 그때는 사자산 두봉을 가지 않고 삼비산 쪽으로 진행했다. 그때 이 사자산 미봉에서
2km나 떨어진 두봉을 들른 준족들이 있었으니 17명 중 4명(히든피크, 사계, 신가이버, 솔
개)이었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사자산 미봉에서 두봉을 가보는 것이다. 우선 쭉쭉 내린다. 멀리
서는 한달음에 내달을 것처럼 매끄럽게 보이던 사자의 잔등이 그리 만만하지 않은 돌길이고
암릉이 나와 사면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등로 벗어나 전망 좋은 바위에는 꼬박 들러 전후좌
우 경치를 살핀다. 내려다보는 긴 좌우사면이 다가가기가 겁나게 거의 수직으로 가파르다.
두봉도 조망이 좋은 암봉이다. 배낭 벗어놓고 오래 휴식한다. 두봉 하산 길. 기산 마을이 가
장 가깝다. 두봉 내리는 길이 암릉이기에 손맛 좀 볼 수 있으려나 다셨는데 데크계단으로 덮
어버렸다. 암벽 지나고 너덜 길 0.3km가 그렇다. 그 다음은 먼지가 풀풀 이는 흙길이다. 산자
락 리기다소나무 숲길 빠져 나오면 임도이고 월평 김삼섭(月坪 金三燮)의 행적비를 지나서
내리면 통합의학센터이다.
근처에서 우리 연락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두메 님을 부른다. 통합의학센터 아래 도로 옆 너
른 공터가 양광이 가득하여 점심자리로 명당이다. 짜파구리, 스낵면, 라면 등등을 고루 맛보
니 만복이다. 언제나 그렇듯 신마담의 커피로 개운하게 입가심하고 일어난다.
15. 사자산 미봉
16. 오른쪽 맨 뒤 흐릿한 산은 억불산, 그 앞은 사자산
17. 제암산 정상 부분
18. 제암산
19. 오른쪽이 사자산 미봉
20. 사자산 두봉
21. 제암산
22. 사자산 미봉 주변
23. 사자산 두봉
24. 사자산 미봉 주변
▶ 억불산(億佛山, 517.4m)
2부 산행은 억불산이다. 억불산에서도 그 들머리를 헤맨다. 억불산 동릉을 겨냥하여 여암마
을 근처로 가려다 후진하여 방향 튼다. 덕림재 넘어 정남진(正南津) 편백숲 우드랜드로 간
다. 그런데 입장료를 받는다. 대인 1인당 3,000원. 나는 면제다. 생사면을 뚫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차창 밖으로 몇 곳을 기웃거렸으나 새벽에 잡목 숲에서 혼겁한 일을 생각
하면 만정이 달아난다. 여암 마을 근처로 간다.
억불산 동릉을 오른다. 소축사 지나고 마을 고샅길을 오르면 임도가 이어진다. 임도 따라 산
자락을 돌면 양지바른 무덤이 나오고 이정표가 소로의 등산로를 안내한다. 반갑다. 억불산
정상 2.0km. 울창한 시누대 숲을 지나고 줄곧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오후에 들어 날씨가 따
뜻해졌다. 겉옷 벗고 반팔 셔츠차림 한다. 아침나절의 그 차디차던 바람이 벌써 그리워진다.
이대로 진행하다가는 하산시간이 너무 이를 것이라 걸음을 아껴 걷는다. 등로 옆에 전망 좋
은 너럭바위가 보여 단체로 들른다. 미세먼지가 여전하여 들판 건너편 사자산이 흐릿하게 보
인다. 저 아래 들판의 푸른 작물은 무엇일까? 대간거사 총대장님은 혹시 마늘이 아닐까 하고
혼잣말처럼 어정쩡하게 말하자 수담 님이 대뜸 자신 있게 다마네기라고 한다. 별다른 이견이
없어 다마네기 밭으로 굳어지는가 했는데 산행 후 대간거사 총대장님은 장흥읍내에서 팩트
체크에 들어갔다. 그곳 주민들은 다마네기는 전혀 심지 않고 마늘을 심는다고 한다. 수담 님
이 모처럼 ‘만지면’에서 얻은 신뢰가 빛이 바랬다.
가파름이 한풀 꺾이고 월포거사 김현(月圃居士 金鉉)의 무덤을 지나서 긴 한 피치 오르면 억
불산 정상이다. 암봉이다. 산 이름 또한 기암괴석들이 솟아 있는 모양이 모두 부처가 서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사방 조망이 뛰어난 일류의 경점이겠는데 오늘은 흐릿하
다. 천관산이 가물가물하고 장흥읍내조차 안개 속이다.
하산시간을 조절하려고 오래 휴식한다. 데크로드에 누워 해바라기도 해보고 배낭 털어 먹고
마시고 게시판의 며느리바위 전설도 들여다본다. “구두쇠 시아버지가 시주하러온 도승을 박
절하게 대하자 며느리는 용서를 빌었다. 도승은 며느리에게 모월 모일에 이곳에 물난리가 있
을 것이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뒤돌아보지 말고 앞산으로 가라고 했다. 도승의 말대로 되던
날 며느리는 물난리를 피하여 산을 오르다, 며늘아가! 나를 두고 혼자 가느냐? 하는 시아버
지의 애절한 부름에 뒤를 돌아다보자 그만 돌로 변하였다.” 이 며느리바위는 『신증동국여지
승람』에 “부암(婦巖) 혹은 망부석이라도 일컫는데, 억불산 산허리에 있다”고 소개한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몰려들고 자리를 내준다. 하산. 가장 긴 코스를 잡는다. 우선 ‘말레길’이라
는 데크로드를 내린다. 널찍한 데크로드는 기왕의 등로와는 별도로 내었는데 경사도를 줄이
려고 사면을 이리저리 돌고 돌며 내린다. 완만하여 저절로 줄달음하게 된다.
가도 가도 데크로드이기에 어쩌면 우드랜드까지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말
레길은 총연장 3,736m의 무장애(無障碍) 데크로드라고 한다. 그중의 1.4km 정도 내렸을까
(100m마다 흰 페인트로 바닥에 표시하였다) ┫자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하는 데크로드는 입
장료를 받는다고 안내판에 공고하였다. 오지산행이 돈 내는 등로를 간다면 위신이 서지 않는
다. 왼쪽의 야자매트 깐 길로 간다.
한 피치 내리면 정남진 천문과학관이다. 정남진(正南津)은 서울의 정남쪽에 있다고 알려진
나루터다. 광화문에서 정남쪽을 가리키며 전라남도 장흥군이 해당한다. 이곳 천문과학관까
지는 우리 버스가 들어올 수 있겠지만 일부러 부르지 않는다. 편백숲을 내린다. 편백숲 쉼터
에도 들른다. 사이좋게 늙어가는 노거수 삼수(팽나무, 푸조나무, 느티나무-이들은 똑같이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이다) 우러르고 동백나무 숲을 내린다. 동백꽃은 다 졌다.
산자락을 빠져나와 들길은 간다. 봄은 여기에 있다. 밭두렁 논두렁에 큰개불알풀꽃이 한창이
고 동네 집 담장 너머에는 매화가 만발하였다. 억불산을 또 한 번 바라보고 탐진강 건너서 장
흥읍내로 간다.
25. 사자산 두봉에서 바라본 미봉
26. 사자산 두봉
27. 억불산 오르면서 바라본 사자산과 제암산(맨 왼쪽 뒤)
28. 억불산 정상에서
29. 억불산 자락의 편백나무 숲
30. 매화
31. 매화
32. 큰개불알풀꽃
33. 억불산, 맨 왼쪽은 며느리바위
34. 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