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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청주] 나의 보물 1호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1열왕 3,5-6ㄱ.7-12
† 제2독서 로마 8,28-30
† 복음 마태 13,44-52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는 비유 말씀을 듣습니다. 보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기뻐하며 다른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복음의 가치를 안다면 매일의 삶에서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기꺼이
복음에 따른 선택을 할 것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에 얽매여 사는 이가
아니라 복음에 따른 삶의 기쁨을 깨닫는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이 미사 중에 청해야겠습니다.
★ 솔로몬의 꿈에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그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물으신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백성을 잘 이끌고 선악을
잘 분별해 낼 수 있기를 청한다.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시리라 약속하신다(제1독서).
★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과 주님의 섭리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을 전한다
(제2독서). .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에
비유하신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과 진주를
얻는다. 또한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모아들이는 그물에도 비유하신다.
그물에 걸린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기고 나쁜 것은 던져지듯 세상 끝
날에도 그리될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주님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겸손하게
청하는 솔로몬과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제2독서인 바오로 사도의 짤막한 구절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고 전해 줍니다.
이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지혜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순간순간 선악을 분명히 분별하고 주저 없이
선을 행하는 것과, 이 세상의 어둠과 혼돈스러움을 만난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선과 조화를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요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
보이기도 하고, 선이 아니라 악이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신앙인의 지혜보다 세속의 ‘영리함’을 추구하고 싶은
유혹을 자주 느낍니다. 또한 세상이 궁극적으로는 선으로 나아가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세상의 조화를 이루셨다는 우리의
믿음은, 불의와 모순에 찬 현실 앞에서 자주 흔들리곤 합니다.
이러한 유혹과 절망에 빠지는 우리의 약함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지혜에 대해 다시 깨닫습니다. 곧, 오늘 복음의 그물의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결국은 이 세상 끝 날에 그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선과 진리와 정의에 대한 완전한 확신은, 우리의 체험과 사유에서가
아니라 주님에 대한 신뢰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햇빛이 비치듯 우리 삶의 틈을 여시고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진리의 조짐과 예감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어두움이 짙게 깔린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희망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선을 행하는 가운데 주님의 선하심을 믿는 지혜로운 신앙인의
삶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나의 보물 1호|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마태13,44-52)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44-52<또는 13,44-46>
나의 보물 제1호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에 대해 기대하는 만큼 중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간수하려 애쓰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일입니다. 여러분의 보물
제1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보면
무엇을 보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값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 보다 못한 것을
처분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모두를 소유하고자합니다. 그러다가 모두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큰 것을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큰 은총입니다.
하늘을 희망하면서도 세상을 꼭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 크면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은 그 보물 앞에서
빛을 잃어버립니다. 억제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아무리 갚진 것이라도
하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보물1호는 양보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둔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피3,8).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피1,21).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님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오로의 진정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10,17이하를 보면 ‘부자 청년의 비유’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 하면서도 자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보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양다리 걸치기, 어중간은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얻으려는
사람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희생적인 투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법’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곡식 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노래하리라.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 가던 그들은 춤추며 환호하리라.”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루가17,21) 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21,3).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은 그만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화는 지금 여기서부터 주어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보화가 있습니다”(성 암브로시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물로 얻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또한 이웃의 보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마태7,21).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잘라도 도박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손이 크다.’ ‘손버릇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선한 일을 하면 고운 손이 됩니다. 손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을 갈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죄를 지은 마음은 손으로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천상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기뻐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보물찾기 하던 생각나십니까? 선생님이 숨겨놓은 쪽지는 먼데
있지 않았습니다. 돌 틈에 있었고, 나뭇가지에도 있었고 그냥 길바닥에
흘려놓은 것은 아닌 줄 알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보물은 먼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볼 눈이 없었고 찾는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상품도 타지 못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 놀라지도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보물 1호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그분의 이름으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모두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나라의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있고, 이웃 안에 있습니다. 보물을 잘 찾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천상의 행복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이 이웃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보물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 것에 있지 않습니다.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ㅔ17주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44-52<또는 13,44-46>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게 된 ‘단지 15분’이라는 서양 연극의 내용입니다.
주인공인 젊은이가 어느 날,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더니만
글쎄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불과
‘단지 15분’이었지요. 얼마나 어이없겠습니까?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상태에서 한 통의 전보를 받습니다. 글쎄 억만장자였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는데 그 재산을 젊은이에게 모두 넘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또 하나의 전보를 받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올해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
전보였습니다.
모두 좋은 일이고,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과연 15분밖에
남지 않은 이 젊은이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연극은 그 모든 것이
젊은이에게 어떤 위안도 주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15분이
지나고 숨을 거두게 되지요.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과연 어떤 것에 있을까요? 우리들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재물과 명예, 높은 지위 등이 과연 인생의 진정한
의미일까요? 지금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게 15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도 소중한 것인지를
판단해 보십시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
비로소 깨닫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
그리고 좋은 진주를 찾은 사람. 모두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보물과 진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왜냐하면 자신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는 바로 주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세상
안에 그 소중한 말씀이 숨겨 있기 때문에, 주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소중한 보물과 진주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주님을 통해 소중한 보물과
진주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
보물과 진주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주님의 말씀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길에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보물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매겨보시길
바랍니다.
벗이 너에게 화를 내거든 너에게 크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마음은 풀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다시 너를 사랑
하게 될 것이다(장파울).
잠을 충분히 잡시다.
다음은 신문기사의 내용입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OECD조사 대상 18개국 가운데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2일(현지시각)
OECD 통계를 활용해 “한국인은 하루 평균 7시간 49분만 잔다”며 “이는
18개 조사 국가 중 꼴찌”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면시간이 가장 긴 국가는 평균
8시간 50분의 프랑스로 조사됐으며 8시간 38분의 미국이 2위, 8시간
34분의 스페인이 3위였다.
수면시간이 7시간대인 국가에는 일본과 한국만 속했으며, 일본은 7시간
50분으로 우리나라보다 수면시간이 1분 더 길게 조사됐다.
이에 대해 FT는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적은 이유로 긴 근무시간을
꼽으며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지만, 노동생산성은 OECD
전체 평균의 66%에 머문 것으로 나타나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제가 비정상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많이
자야 5시간이거든요. 워낙 능력도 또 재주도 없는 저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서 잠을 줄여나갔는데, 효율성을 따져보니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님을 요즘에 많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음 역시도 잠을 줄여나가는 과정 안에서 생기는 것이었지요.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더라도 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통해 어떤 효율도 낼 수 없겠지요. 그런데 무조건
오랫동안만 앉아 있고, 오랫동안만 행동하면 효율도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음을 솔직히 인정하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여유 있는 삶 안에 있음을 요즘에서야 깨닫습니다.
맑은 정신과 깨끗한 마음은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 인천 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이왕이면 대어(大魚)가 됩시다!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44-52<또는 13,44-46>
이왕이면 대어(大魚)가 됩시다!
밤늦은 시간 고깃배 한척이 환하게 불을 밝혀놓고 잡은 물고기들을
분류하는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전문직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나갈 때 대상 종목을 한
종목으로 국한시킨다고 하더군요. 우럭이면 우럭, 광어면 광어, 오징어면
오징어, 한 어종만 집중해서 잡는 다는 것입니다.
마침 이날 어종은 광어였습니다. 한 사람이 큰 뜰채를 이용해 배 밑
수족관에서 솥뚜껑만한 광어들을 갑판위로 끌어올립니다. 이어서 다른
사람은 광어를 크기별로 척척 분류해서 큰 바구니에 담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바구니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서는 육지에 대기해있는
운반차량에 신속히 싣습니다.
그날 잡은 고기들은 거의 대부분 광어였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다른
어종들이 올라왔습니다. 우럭이나 농어, 참돔이나 놀래미들이 눈에
띄었는데, 어부들은 그 녀석들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흥미 없다는 듯,
재수 없다는 듯 배 한구석으로 집어던지는데, 녀석들은 거기서 아등바등
대며 몸부림을 쳐대지만 눈길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비유 말씀과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섬뜩할 정도였습니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어부들로부터 전혀 환영받지 못하며 아무렇게나 던져지는 잡어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어부 마음에 드는 큰 광어가
되어야겠다.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대어로 성장해야겠다.”
하는 결심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 어떻게 보면 한없이 나약하고 한심한 존재가
분명합니다. 머리칼보다 많은 죄, 상처와 결핍 투성이의 존재가 맞습니다.
그러나 마냥 거기에 머물러 살라는 법은 없습니다.
인간이 대단하고 위대한 이유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면 엄청난 성장이
가능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부단한 성장 끝에 제2의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살아가신 성인(聖人)들께서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을 통해 똑똑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인간 프란치스코
성인은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고까지 불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한없이 부족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하느님 마음에 쏙 드는
1미터짜리 대광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손톱만한 피라미가
아니라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대어로 성장해야겠습니다.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가슴에 품고 이 한 주간을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기타] 보물을 보십시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진짜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십시오.'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복음묵상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오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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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물이라는 말에 눈이 머뭅니다.
숨겨졌다는 것은 숨긴 누군가가 있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무엇인가에 의해 가려지고 말았다는 말일까요?
저는 후자를 선택하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세상에
나아가 마음껏 아름답게 살아보라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 많은 이유를
대어가며 스스로를 엉터리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이유의
이면에는 우리의 욕망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여 보물을 찾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들고 좀 더 넓은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선한 세상이던, 악한 세상이던
상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찾아야만 하는 보물을 보십시오.
우리의 숨이 붙어 있는 한, 악은 우리의 눈을 가리려 할 것입니다.
무엇으로 눈을 가리려 하는지 일일이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영혼을 죽이는 것들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좇고 있는 것들로 인해,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것을 볼 수
없다면 더 이상 바보스러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시나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제 1의 가치로 여기며 살고 계십니까?
하느님 나라를 진정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약함은 보물을 손에 놓고도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쥐고 있어야 할 것이
보물이라는 것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매 순간 만나게
되는 악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찾아야 하고, 그 보물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삶이라는 여정의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인천] “숨겨진 보물”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마태오 복음 13장 44~52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44-52<또는 13,44-46>
오늘 복음에 보면 ‘숨겨진 보물’ 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그 단어를
듣고 떠오른 것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강아지입니다. 최근에 제가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요.
작아서 너무나 귀엽고,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무척 신기합니다. 언제 눈
뜨나.. 했는데 벌써 눈도 뜨고, 이빨도 나고, 뒤뚱뒤뚱 걷기도 합니다.
어미가 먹는 밥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오늘은 살짝 뛰어다니기도
하는데요. 그런 귀엽고 예쁜 모습이 내가 가진 시간을 다 내어놓게
만들더라고요. 시선을 떼기가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작년에도 병아리를 부화시킬 때 비슷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알을 부화기에
넣고 21일 정도 지나면 안에서 병아리가 알을 톡톡 깨고 나오는데요.
생명이 부화하는 그 장면이 너무 신기해서 몇 시간 동안 그 장면을 지켜
보았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하루가 지나면 털이
보송보송해지는데요. 아기 주먹만한 병아리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신자들을 보여드렸더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시더라고요. 시간을 다 내어놓아야 할 것만 같은 귀여움과
신비로움이 새끼들에게 있는 거 같습니다.
두 번째는 밭에서는 나오는 열매들입니다. 요즘 밭에서 열매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자로부터 시작해서 단호박, 양파, 참외, 수박, 옥수수,
고추.. 등 많은 열매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수확해서 거실에 늘어놓으면
부자가 된 듯한 충만함이 있습니다. 어머니도 이래서 힘든 농사를
짓나보다.. 하셨는데요.
봄에는 그 열매가 숨겨져 있습니다. 열매는 보이지 않고 땅을 갈아야
하는 수고로움과 중간중간 순을 따주고 잡초를 뽑아야 하는 고생이
있는데요. 그 모든 것을 감수하는 이유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얻게 되는
수확, 곧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알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 열매와
보물들을 얻기 위해 가진 힘과 시간을 내어놓게 되는 거 같습니다.
세 번째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인 거
같습니다. 서로 마음을 열기도 어렵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들여주는 것도 쉽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한 마음이 되어 움직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함께 모여
친교를 이루고,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이유는 공동체 안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열매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전에 본당에 있을 때 공동체로부터 돌아서고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공동체 안에서 제 모든 힘을 다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서 행복하다.. 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된 거
같습니다.
지금도 그 열매를 알기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일이 지금은 공동체의 구성과 틀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닥치는 대로 공동체에 필요한 연수들을 다니고
있고,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있습니다. 더디고 느리겠지만 밭에 숨겨져
있는 공동체라는 보물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힘을 다해야 할 거 같습니다.
네 번째는 예수님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숨겨진
보물입니다. 공동체 안에 보면 냉담자들도 있고, 몸이 불편한 이들도 있고,
아이들도 있는데요. 그들이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보물이고, 그들을 찾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해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방문을 다니고,
봉성체를 늘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그 일은 저보다 본당 수녀님이 더 큰 열의를 보이시는 거 같습니다.
냉담자들이 돌아오면 그들 시간에 맞춰 재교육을 해주시고, 환자들을
버스타고 다니시면서 방문하시고, 아이들을 찾아내어 세례를 받게 하고
첫영성체를 시키시는 걸 보면 정말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을 사려는
사람인 거 같다.. 는 느낌이 듭니다. 그 일로 많은 분들이 신앙으로
돌아왔고, 환자들이 위로를 받고, 아이들이 성당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듯합니다.
다섯 번째는 말씀과 성체입니다. 신앙 안에 숨겨져 있는 가장 큰 보물 인
거 같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매일 매일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다보면, 또 성체를 받아 모시고
그 앞에 머물러 기도하다보면, 그 안에 얼마나 큰 보화가 숨겨져 있는지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살리는 보물이
그 안에 있음을 조금씩 알고 확신하게 되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려고 할 겁니다.
오늘 하루, 숨겨진 보물을 찾고 얻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전 주에 내가 꾸르실료 교육을 가게 되어서,
까맣기로 유명한 동기 신부에게 주일미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평일 미사 강론 때 신자들에게 물었다.
“저보다 까맣죠?”
“아니요~ 신부님이 더 까매요~”
놀랐다. 동기 신부는 신학교 다닐 때도 손에 꼽히는 사람이었는데,
그 보다 더 까매진 거 같다...^^;
- 인천 교구 대부동 성당 김기현 세례자 요한 밤송이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버려야 주지!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복음: 요한 15,9-11
< 버려야 주지!>
아녜스 수녀님은 로마에 성서를 공부하러 나왔습니다. 학부 과정부터
밟아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진이 빠지는 힘든 과정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철학과정 한 학기를 마치고는 완전히 풀이 죽어 하느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원망하였습니다.
여름 방학 때 또 다른 수녀님이 돌로미티(이태리 알프스 지역)로 등반을
다녀오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엔 거기 갈 힘도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바람도 쐴 겸 가기로 하였습니다. 가게 된 계기는 그 수녀님이 에델바이스
(알프스의 별)를 좋아했는데 그 꽃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왠지 그것을 보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800미터 고지에 있는 숙소에 머물며 3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산에서 에델바이스 꽃만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등반하고 있는데 수녀님은 제발 에델바이스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땅만 쳐다보고 다녔습니다.
결국 3일 만에 자신은 에델바이스를 꼭 찾기를 원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한 명은 같이 가자고 한 수녀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태리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태리 사람이 하는 말은, 그 꽃은 매우
험준한 곳에 피기 때문에 이런 낮은 산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채취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서 꿈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부터는 셋이 함께 에델바이스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일주일이 다 지나서 다음날 새벽 로마로 돌아와야 하는 한 밤중이었습니다.
에델바이스를 찾지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짐을 차에 싣고
문고리를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태리 사람이 뒤에서 “아녜스,
위를 봐!” 하고 알프스가 떠나가라 외쳤습니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녀님은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그렇게 구했던 것이 에델바이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의 별’이란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수녀님에게
땅 바닥에 피는 에델바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상의 에델바이스를
선물로 주려고 하고 있었는데 수녀님은 땅만 바라보고 작은 꽃만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녀님은 그 때 얻은 힘으로 9년 만에 성서 석사
과정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주제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면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야만 합니다. 혹은 아주 귀한
진주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그것을 위해 내 자신을 비워낼
줄 알 때 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천상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찾아 헤매기 때문에 정작 그분께서 주시려고 하는 것은 받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해지려면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먼저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모든 율법을 잘 지켰지만 하느님 나라의 가치보다는 자신의
재산의 가치를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우울해 하며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부자는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재물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는 이상 그에게 하느님 나라의 행복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다 팔아서 가난해 지는 사람이어야 보물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난해 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팔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버려진 술통을 집 삼아 살던
자유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부자가 디오게네스를 초대하여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자랑하느라 디오게네스가
말 할 시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디오게네스가 그 부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아까부터 침이 고여서... 근데 이 집은 너무 호화로워 침을 뱉을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평화와 정의로운 삶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나의 뜻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얻으려면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 부자인 것이고 자기먼저
챙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바뀌어
주시기를 바랐던 사람이 가리옷 유다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꽃밭 길로
인도해 줄지 알았는데, 예수님은 계속 가시밭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팔아 가난해지고
겸손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아직까지
목숨은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해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묶여있는 만큼 그리스도를 딱 그만큼 따를 수
없고 딱 그만큼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가 현자의 제자가 되기로 하고 모든 것을
버린 하산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리던 때의 자존심과 명예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하산에게 마을 푸줏간에 가서 양의 내장 40킬로를 사서
등에 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산이 그것을 사서 등에 졌더니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와 오물로 온 몸이 젖게 되었습니다. 부와 권력을 누리던
그가 그렇게 마을을 지나오는 것은 진정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많아서 큰 냄비가 있어야 했습니다. 스승은 하산에게
다른 마을 푸줏간에 가서 큰 냄비를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억지로
순종하여 피 묻은 옷을 입고 얼굴을 숙인 채 냄비를 빌려왔습니다.
스승은 그가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린 뒤, 자신이
다녀왔던 두 마을로 가서 등에 양의 내장을 지고 가던 사람과 피 묻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을 보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가 돌아온 뒤, 스승이 물었습니다.
“그래, 사람들이 너를 보았던 것을 기억하느냐?”
“아닙니다. 아무도 제가 그렇게 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알았느냐?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만 관심 있지 남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모든 제자들에게 양의 내장으로 만든 스프를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먹어라. 이 스프는 핫산이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로 만든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신을 따를 때는 집도 가족도 애정도
모두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 꾸준히 고통과 멸시만을
청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 하나만을 위해 다 팔아버릴 수 있는 은총을
청한 것입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가 들지 미리 생각해 보아야하고, 싸움터에 나가려면
지금의 병력으로 이길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선물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내가 얼마만큼 내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담당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영원히 쓸 수 있는 엄청난 보물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44-52<또는 13,44-46>
영원히 쓸 수 있는 엄청난 보물
‘땅을 파봐. 100원이 나오나.’ 한 푼 돈이라도 귀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땅에 보물이 잔뜩 있는 걸 알고 있다면 땅을 파낼 이유가 있지요.
그런데 땅은 파지도 않고 보물만 갖겠다고 한다면 좀 부족한 사람이지요.
파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곳에 엄청난 생명의 보물이 있다는 겁니다.
배우고 믿어 실행하면 영원히 쓸 수 있는 엄청난 보물을 말하는 거지요.
그게 하늘 나라라는 것이고 그곳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13,44)”
- 서울 대 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지혜로운 사람 -하늘 나라의 제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7주일
열왕기 상3,5-6ㄱ.7-12 로마8,28-30 마태13,44-52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44-52<또는 13,44-46>
지혜로운 사람 -하늘 나라의 제자-
식은 넘치지만 지혜는 태부족의 현실입니다.
지식인은 많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드문 현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옛날 구도자들은 사막의 지혜를 찾아 사막의 수도승들을 찾았습니다.
오늘날도 끊임없이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추구하는 것 역시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니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지혜 하나뿐입니다.
지혜로울수록 진정 자유인이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처럼,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또 좋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지혜로운 이들이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사는
이들입니다.
오늘은 '지혜'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지혜가 보물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이, 좋은 진주가 상징하는 바 참 보물입니다.
세상에는 거짓 보물도 무수합니다.
요즘은 돈이 우상이, 보물이 된 세상입니다.
진정한 보물은 무엇입니까?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가 보물입니다.
1독서의 솔로몬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간절히 지혜란 보물을
찾았기에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선물 받은 솔로몬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솔로몬은 물론 이 거룩한 미사 중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묻습니다.
솔로몬의 청이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 장수도, 부도, 명예도 청하지 않았고, 듣는 마음과
분별력의 지혜를 청했습니다. 솔로몬의 청은 주님 보시기에 좋았고 주님은
그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새삼 지혜는 찾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지혜는 사랑입니다.
지혜를 사랑하십시오.
필로소피아,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철학의 어원입니다.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지혜를 사랑한다 함은 바로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닮아 일치입니다. 돈을, 명예를, 지위를, 편리한 삶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하고 신의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역시 사랑뿐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화답송 후렴처럼 주님의 가르침을 사랑할 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현자,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
새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지혜는 발견입니다.
간절히 찾을 때 발견되는 지헤라는 보물입니다. 오늘 복음의 밭에 숨겨진
보물이, 좋은 진주가 상징하는 바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이요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이란, 그리스도란 보물은 멀리 밖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가까이 지금 여기 일상의 밭에, 마음 밭에 숨겨져 있습니다.
깨달아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보물입니다. 가까이 있는
하느님이란 보물을 놔두고 가난하게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보물인 지혜를, 하느님을 체험할 때, 깨달아 발견할 때, 참
기쁨입니다. 말 그대로 '발견의 기쁨'입니다.
마치 숨바꼭질처럼, 숨어 우리가 찾아 발견하기를 고대하는 참 보물인
하느님이요 그리스도입니다.
넷째, 지혜는 치유입니다.
깨달음의 지혜가 우리를 치유합니다.
대부분의 영육의 병은 무지와 탐욕에서 기인입니다.
무지와 탐욕의 불통이요 지혜와 사랑의 소통입니다.
참 보물인 지혜이신 하느님을 만날 때, 발견할 때 무지의 어둠은 사라지고
탐욕도 비워져 저절로 화통한 삶에 치유요 영육의 건강입니다.
그러니 지혜보다 좋은 치유제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영육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지혜의 빛 앞에 저절로 사라지는 무지와 탐욕의 어둠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의 비유를 들려 주신 후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묻습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복음의 제자들처럼 "예."하고 대답할 수 있을런지요.
넷째, 지혜는 분별입니다.
분별력의 지혜가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지혜는 분별을 통해 드러납니다.
솔로몬은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의 지혜를 청하였기에 주님의 칭찬과
더불어 선물로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그물의 비유에서, 잡은 고기들 중,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리는 사람들이 상징하는바 역시 분별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자기 곳간에서 자유자재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에게서 빛나는 분별의 지혜를 봅니다.
다섯째, 지혜는 자유입니다.
지혜와 자유는 함께 갑니다. 현자가 진정 자유인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 중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을 산 사람은 진정
자유인입니다. 하느님 보물을 소유함으로 진정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입니다. 또 값진 진주하느님을 발견하자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 하느님 진주를 소유한 상인 역시 자유인을 상징합니다.
원주의 정신적 대부였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 역시 현인이었습니다. 혹자는
이분의 삶을 '잘 놀다간 자유인'이라 묘사했는데 참 매력적인 분입니다.
과연 이런 하느님 보물을 발견하여 지닐 때 참으로 부유하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수도자의 가난도 이런 최고의 보물 하느님을 지녔기에 가능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로 하는 가난이 아니라, 하느님 보물을 발견하여
지녔기에 저절로 자발적 가난입니다.
겸손히 자기를 비워 하느님 보물로 채울수록 가득해지는 지혜와
자비입니다. 최고의 보물인 지혜입니다.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보물이요 빼앗아 올 수 없는 보물입니다.
누가 찾아 줄 수도 없고 거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보물입니다.
각자 발견하여 소유해야 하는 지혜입니다.
위의 지혜 대신 하느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바로 하느님이, 그리스도가 참 지혜의 보물임을 가르쳐 줍니다.
간절히, 끊임없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찾아야 하듯, 간절히, 끊임없이
지혜도 사랑하고 찾아야 합니다. 찾아 발견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지혜도
일상에 묻혀 사라집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의 참 보물이자 지혜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우리
모두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되어, 지혜롭고,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를 드릴수록 받게 되는,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인 지혜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시편103.2).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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