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28]
2013년 7월 말에 수원에 있는 P정신병원에 환자보호사로 취업을 했다. 보호사란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김대중 정부 때 만든 명칭이다. 말이 보호사지 성질이 나쁜 보호사는 마치 교도소의 교도관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러나 지역 인권위원회가 생긴 이래로 환자들의 권리가 향상되어, 권리가 침해당하면 112나 인권위원회로 환자가 고발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악명 높은 보호사는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이 병원에 들어오게 된 경우도 전임 보호사가 환자를 구타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피해를 입은 환자가 경찰에 신고하여 처벌을 받아 해고되었다. 그래서 병원 측에서는 나같이 나이가 많아도, 환자에게 친절히 할 수 있는 보호사를 구하는 중이었고, 내가 젊은 때는 무술을 한 경력 등이 정신병원의 콘셉트와 잘 맞아 채용이 되었다.
내가 정신병원에 근무하게 된 동기는 인생의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가 바로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되어 그들과 애환을 같이 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병원에는 남녀 환자가 50명가량 입원해 있었고, 이들을 돌볼 보호사가 다섯 명, 간호사가 네 명, 복지사 한 명, 원무과장과 원장이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 일하시는 분이 두 명으로 교대로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했다.
간호사 중 수간호사는 40대 중반이었는데, 미혼으로 성격이 까다로워 원장이나 과장에게 고자질을 잘해 보호사들이 어려워했다. 또 한명의 간호조무사도 50대 중반으로 과부인데 감정의 기복이 심해 보호사와 마찰이 자주 있었다.
50대 중반의 K보호사는 영업용 택시기사를 하다가 2년 전에 이곳에 왔는데, 몸집이 크고 성질이 괄괄해 대하기가 부담이 되는 사람이었다.
원무과장 L은 입원환자가 퇴원하면 그 빈자리를 메울 신입 환자를 구해오는 소위 병원 영업과, 환자 간, 환자와 보호사 간 분쟁조정과 병원의 전반적인 해결사로 나서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원장은 지방의대를 나왔고 외래환자 진찰, 입원환자 회진, 입원환자 대상 정신과적 교육을 담당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는 교도소의 요청에 의하여 수형인 진찰을 하러 인근 교도소에 가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약제사를 대신하여 투약, 차트 관리 및 가벼운 응급처치 등을 담당했다. 간호사 중 두 명은 교대로 2층 여자입원실 스테이션에서 당직근무를 했다.
보호사들은 2명이 하루씩 교대로 근무하는데, 식사, 투약, 면도기 배분 및 관리, 외출, 외박, 간식 조달 및 배급, 환자이송, 환자외래 진료 시 동행, 난동 시 제압, care room 격리, 다툼 시 화해 조정 등 전반적인 환자 보호 관리를 맡는다.
여성 복지사는 오후에 복지교육을 실시하며, 고충상담, 영화상영, 옥상 산보 및 체조, 생일자 파티 등을 개최한다.
보호사들은 스테이션 안에서 주로 근무하는데 스테이션은 환자들과 보호사를 격리해 놓은 곳으로 강도가 강력한 강화유리로 된 유리창과 철문으로 보호되어 있다. 유리창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놓아 필요한 대화를 하거나 담배 및 간단한 물품을 환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보호실(care room)은 심신이 미약한 경우 링거를 놓거나, 난동환자가 있는 경우 강박 끈으로 침대에 묶어 환자가 제정신이 돌아 올 때까지 격리 보호하는 곳이다.
첫댓글 제가 모르는 세상 이야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늘 재미난 사연들 잘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필하소서^^
항상 부족한 글 애독해 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ㅡ
TV 에서나 보았던
정신과 병동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저도 궁금합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ㅡ
참 듣도 보도 못했던,,,
정말 많은 경험을 하시며 살아 오신 다저스선배님,
전혀 상상으로도 짐작이 안 가던 얘기에 흥미가 돋습니다~~
ㅎㅎ
소설을 읽은적이있는데 더 드라마틱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