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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걱정/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아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 읽기> 엄마 걱정/기형도
기형도를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나 지도 어느새 10여년이 넘었습니다. 겨우 서른의 나이에, 미혼으로 그는 세상을 일찍이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외형적으로 본다면 그는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졸업 후 1984년에는 중앙의 일간지인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며, 1985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라는 시가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벌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신문기자였고, 또 남들이 존경하는 시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확히 1989년 3월 9일, 영화를 보던 중, 극장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기형도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한자리에 모인 그의 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어두운 자아 인식과 세계 인식 앞에서 입을 닫을 줄을 몰랐습니다. 이런 그이 시세계를 대하는 독자들의 가슴도 까맣게 멍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런 기형도의 시세계를 ‘죽음이 살다 간 자리’라는 제목과 ‘차가운 죽음이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의 시세계 속에 들어 있는 죽음이 색채가 너무나도 넓고 진하여.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기형도를 소개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시를 읽고 이해는 하되, 그의 끝간 데 없이 어두운 자아 인식과 세계 인식의 내용은 본받지 말라고……. 저는 어쨌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죽을 힘이 있다면 차라리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아주 평범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가능하면 가짜 희망이라도 좋으니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형도의 글들이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기형도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이 전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로 이것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은 우리나라 독자층이 수준이 정말로 높아졌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독자층이 어떤 수준인가를 결정하는 데는 그 국민들이 교육수준이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놓은 교육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20대 전반기에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학생일 만큼, 가히 대학진학률이 세계 수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폐해도 얼마간은 있겠지만, 저는 우리의 교육수준이 이렇게 높아지는 것이야말로 국력 신장의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독서층이 수준을 높이는 최대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형도 전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독자층이 수준 향상이라는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시인들이 많은 시집들이 독자들에게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기형도 시가 주는 매력이 뭔가 있을 것입니다. 《기형도 전집》이 발간되기 이전부터, 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도 많은 독자들, 특히 젊은 층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런 점을 입증해주는 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형도 시의 그 무엇이 독자들을 이끌어들인 이유가 되었을까요? 저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하나는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그이 어둡고 부정적인 자아 인식과 세계 인식의 태도 및 내용이 독자들로 하여금 심리학에서 말하는 바 그림자shadow를 엿볼 때와 같은 놀라움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들은 그림자를 갖고 살지만 그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의 그림자에 대하여 강한 호기십도 갖고 있습니다. 이 양자의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 실상이지요, 그 둘은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는 한 젊은 시인의 태도가 너무나도 치열하고 진지하다는 점입니다. 그는 고뇌하는 젊은이의 대명사처럼 보입니다. 고뇌의 결과가 무엇을 가져올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젊은이의 특장 중 하나는 고뇌의 힘으로 아직 떫은 기가 가시지 않은 젊음의 혈기를 익혀간다는 것입니다. 독자들, 특히 젊은 층의 독자들은 그의 시에서 고뇌의 힘과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 셋은 그의 시 전체에 흐르는 고독감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고독하다는 것, 당시의 폭력적인 시대가 더욱더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의 개인적인 체험이 아주 이른 시절부터 그를 고독한 인간으로 살게 하였다는 것 등, 고독과 관련된 부분들이 그의 시 앞에 독자들을 붙들어놓은 이유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이니까요. 기형도의 시 전편에 흐르는 이런 고독감을 충분히 보편성을 지니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기형도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중에서 아주 짤막한 시 한 편을 여러분들과 함께 읽기 위하여 골라보았습니다. 제목은 <엄마 걱정>입니다. 이 시는 기형도이 시티고는 그래도 자아 인식이나 세계 인식의 태도 및 내용이 비교적 덜 어두운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기조는 여전히 어둡고, 이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 우리가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묘한 공감의 자리를 숨겨놓고 있습니다. 그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아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유년은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되곤 합니다. 시간의 거대한 강물을 지나면서, 유년의 아픈 체험조차도 마치 흙탕물이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맑은 물로 정화되듯, 그렇게 정화와 자정의 시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시간의 힘이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유년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빛깔로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년이 시간들이야말로 현실생활과 현실적 목적이 없는 무상의 놀이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무상의 놀이 과정은 인생에서 최상의 즐거움을 보장해주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노는 것만이 유일한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유년의 기억과 달리, 기형도에게는 유년의 기억조차 여전히 어둡게 남아 있습니다. 그 유년은 시인이 위 인용시에서 말했듯이 “아주 먼 옛날”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먼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여전히 그에게는 유년이 현실처럼 아픈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어떤 유년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까? 저 자신도 아픈 유년의 기억이 꽤 있지만, 지금은 그 색채가 아주 희미해져버렸습니다. 유년을 말하다가 가끔 눈시울을 붉힐 때도 있지만, 대체로 웃으며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형도 시인이 <엄마 걱정>이라는 그의 시에서 꺼내 보인 유년의 기억은 어떤 것인가요? 이 시의 제목처럼 시인은 작품 속에서 오래도록 시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엄마는 가난하고 연약한 몸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그의 엄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엄마이며,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내며 시장에서 기운 없이 돌아오는 엄마입니다. 그에게 이런 엄마는 연미의 대상입니다. 그런 엄마가 오늘따라 늦게까지 돌아오질 않습니다. 그러기에 엄마에 대한 걱정은 더욱 큽니다. 우리는 이처럼 어린아이가 어른인 엄마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연민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 누구도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지만, 엄마와 자식은 탯줄로 이어졌던 한 몸이기에, 엄마의 고단한 삶 앞에서 자식의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철부지의 어린 나이에, 가난한 살림살이에 연약한 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가 알아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의 이런 삶이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지요.
다음으로 저는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에서 화자이자 시인인 아이의 자기 걱정을 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아이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는 빈집에서 무서움에 떨다 마침내 울어버립니다. 그러나 그가 훌쩍거리며 울어도 역시 집은 빈집입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무섬증을 달래기 위해 천천히 숙제를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나마 숙제라도 하고 있노라면, 숙제가 친구가 되어 무섬증이 덜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천천히 한 숙제가 다 끝나도 엄마는 오질 않습니다. 이제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하나 게다가 날은 어둡고 비가 오고 있질 않은가. 아이는 끝내 훌쩍이며 울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에서 우리를 사로 잡는 것은 존재론적인 고독의 문제입니다. ‘엄마’라는 애칭에서도 나타났듯이, 지금 작품 속의 아이는 엄마와 분리되었으나 분리되지 않은 미분화 상태입니다. 형식적으로만 엄마의 탯줄과 나뉘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있는 나이입니다. 이때, 아이는 엄마가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된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지금 집에 오질 않습니다. 아마도 엄마가 팔러 이고 나간 열무 30단이 다 팔리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밤은 오고, 거기다 비까지 내리니, 아이가 있는 빈집은 완전한 단절과 고독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 이 아이의 유일한 친구는 숙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숙제는 다 끝나버렸습니다. 아이는 이런 자신을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데 이릅니다. 그는 이제 자기를 그릇에 담긴 한 덩어리 찬밥과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싸늘한 자기 인식입니까? 얼마나 고독한 자기 인식입니까? 그는 엄마가 없는, 게다가 어둡고, 비가 내리는 빈 공간에서, 자시이 혼자임을 뼈아프게 느낀 것입니다. 혼자라는 의식이 커질수록 무섬증은 커지고, 무섬증이 커질수록 혼자라는 의식 또한 커졌던 것입니다.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의 부재와 세계와의 단절 속에서 느끼는 이 고독감을 우리는 또한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왔고,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나이를 먹는 것이며, 그런 고독감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영원한 원형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들 개개인의 삶의 여정을 더 나아가서는 인간 일반의 생의 여정을 중첩시켜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마치면서 기형도의 표현 방식에 대하여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형도의 시집을 읽어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기형도는 비유를 구사할 때 항상 살아 있는 것을 죽어 있는 것으로, 물렁한 것을 딱딱한 것으로, 따스한 것을 차가운 것으로, 밝은 것을 어두운 것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햇살도 검은 색으로 보이고, 밤에 뜬 달도 곯은 달걀로 보이며, 나뭇잎도 딱딱한 널빤지로 보입니다. 방금 우리가 감상한 시 <엄마 걱정>에서도 그는 방에서 혼자 숙제하는 자신을 “찬밥처럼 방에 담”긴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발소리를 “배추잎 같은” 것으로, 해가 진 것을 “시든”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아주 신선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비유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세계를 어둡게 읽도록 이끌었는지 좀더 시간을 두고 연구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의 시를 볼 때마다 세계의 그림자를 너무 오래 깊이 바라보다가 그만 그가 그림자에 가위눌려 생을 저당잡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분명 그림자는 무시할 대상이 아니라 바라보아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승화시켜야 할 대상이지 우리가 압사당할 폭력적 실체일 수는 없습니다. 그림자를 직시하는 일은 소중한 일이지만, 그림자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3.
첫댓글 엄마 걱정이 참 아프네요
기다리는 긴장도 느껴지고요, 긴 해설 글 잘 읽었습니다. ^^